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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고재완의 지식창고 2020.06.01. 13:28 (2020.06.01. 13:28)

절단 복원된 홍지문(弘智門)

 
북한산 갈 때 세검정 근처에 있는 큰 대문이 보이는데 홍지문(弘智門, 漢北門)이다. 조선 숙종 때 지어진 홍지문은 탕춘대성(蕩春臺城)의 성문이다. 일제 강점기 홍수로 유실된 것을 1977년 복원할 때 인왕산 쪽이 잘려서 복원되었다.
북한산 갈 때 세검정 근처에 있는 큰 대문이 보이는데 홍지문(弘智門, 漢北門)이다. 조선 숙종 때 지어진 홍지문은 탕춘대성(蕩春臺城)의 성문이다. 일제 강점기 홍수로 유실된 것을 1977년 복원할 때 인왕산 쪽이 잘려서 복원되었다.
"탕춘대(蕩春臺)"란 이름은 연산군이 사찰인 장의사(莊義寺)를 놀이터로 만들어 시원스레 흘러내리는 계곡 옆에서 따뜻한 봄날을 쓸어내릴 듯 놀겠다는 뜻으로 적군을 막기위한 성곽이름에는 좀 그렇다.
그래서 영조 때 탕춘대를 연융대(鍊戎臺)로 변경 확대해 총융청(總戎廳,경기지역 관할하는 군영, 원래 총융청은 1624년에 사직동 북쪽에 설치되었으나, 헌종 10년에 삼청동으로 청사를 이전시켰다가 영조 때에 신영동으로 다시 이전함)을 옮겼고(신영동 이름의 유래) 군량미를 보관하던 곳이 평창동이다.
탕춘대성은 한양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성(西城)이라고도 한다. 탕춘대성의 성문인 홍지문은 1715년(오간수문도 함께 만듬)에 한양 도성의 인왕산(仁王山) 서북쪽과 북한산성의 비봉(碑峰)을 연결해 적군을 막기 위해 홍제천변에 만들었다. 이 성문은 조선의 옛 수도인 한양의 북쪽에 위치하고 북을 방위한다고 해 한북문(漢北門)이라 불렀고 숙종의 친필로 "홍지문"이라고 편액을 썼지만 지금은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로 "홍지문"이라 걸려있다.
\na-;▼탕춘대성(인왕산 쪽)
 
\na-;▼1970년대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 홍지문(弘智門) 개요
☞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산4-5
☞ 서울시 유형 문화재 33호로 탕춘대성(약 4km)의 성문이다.
☞ 한양 4대문(동대문: 흥인지문, 서대문: 돈의문, 남대문: 숭례문, 북대문: 숙정문)의 북대문으로 오해하기 쉽다. 內四山인 북악산, 인왕산, 남산 그리고 낙산을 연결한 한양도성은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청문의 사대문(四大門)을 두고, 그 사이에 홍화문(동소문), 소덕문(서소문), 광희문(수구문), 창의문(북소문)의 사소문(四小門)을 두어 도성의 안팎을 연결하였다.
☞ 성을 많이 쌓은 숙종 때 인왕산의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탕춘대성,홍지문과 오간수문(五間水門, 五間水口라고도 함)이 축조됐다.
☞ 일제 강점기에 홍수로 홍지문과 오간수문은 유실되고 한양 4대문에 비해 관심을 끌지 못했다. ☞ 겸재 정선의 홍지문- 수문천석(水門川石) 등 그림이 있다.
☞ 1977년 지역 개발과 도로 확장에 따라 원래 위치에서 서쪽으로 약 4m 벗어났고 인왕산 쪽의 연결 부분은 절단 형식으로 복원했다.
☞ 홍지문은 홍예(무지개다리) 형태의 위에 정면 3칸(9.4m), 측면 2칸(4m)의 우진각 지붕(숭례문도 우진각)을 한 문루가 있고 문루의 좌우에는 협문을 만들고 전돌로 담장을 둘렀다.
☞ 원래 현판은 숙종 임금이 쓴 것이나 지금 홍지문의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이 쓴 것이다.
☞ 홍지문 문루나 오간수문은 출입 금지다.
\na-;▼외부(홍제천 하류에서 상류 방향) :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 지붕
 
\na-;▼박정희 대통령 글씨
 
 
\na-;▼지붕에 취두(용마루에 있는 새 모양의 조각), 석누조(石漏漕,물 홈돌),홍예 받침돌,계단은 우측(상류에서 하류 방향)만 보인다.
 
\na-;▼인왕산 방향의 홍지문은 4차선 도로로 좌우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협문만 보이며 절단 복원되었다.
 
 
▣오간수문
\na-;▼홍제천의 오간수문 (상류에서 하류 방향)의 좌측은 홍지문, 우측은 비봉 쪽 탕춘대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na-;▼수문 아래로 홍제천 길이 연결되어 있다.
 
 
\na-;▼수문들 비교
 
\na-;▼일제 강점기 홍수로 유실되기 전의 사진으로 홍지문이 탕춘대성을 연결하고 성문으로 통행객이 보인다.
 
 
▣복원 전후 비교
☞인왕산과 연결부분 끊어짐
 
☞오간수문과 연결된 담장 축소
 
☞담장에 총구멍인 근총안(近銃眼)의 위치가 아래쪽에 있는데 복원된 것에는 원총안(遠銃眼)과 같은 높이로 보이고, 오간수문의 수문 반경이 줄어들어 홍수 때 상류지역이 침수될 수 있겠다.
 
▣홍지문과 오간수문의 자료
\na-;▼권섭(1671~1759, 삼청동 출생 화가)의 홍지문 수문루(水門樓),1753년,문수봉(文殊峰)과 한북문이 표시되어 있다.
 
\na-;▼겸재 정선(1676~1759, 청운동 출생 화가)의 홍지문- 수문천석 그림으로 탕춘대성은 인왕산과 비봉을 연결하고 홍제천변에 돌이 많다.
\na-;▼동국 여도(東國與圖, 1800년대 초반)에 표시된 한북문(홍지문), 오간수구(五間水口)
 
\na-;▼마무리하며
세검정 주변은 풍류객들이 선호하던 곳으로 지역개발과 도로 신설로 많은 문화재들이 사라지거나 제대로 복원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다. 먹고사는 게 우선인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문화재는 나중의 문제였다. 지금부터 후손을 위해 관리를 잘했으면 좋겠다.
세검정터에서 하류로 가는 홍제천변은 걸으려면 다리 밑은 사람 키보다 낮은 곳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따라서 양재천처럼 제대로 걸을 수 있고 홍수에 대비해 홍제천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na-;출처: 민족문화대백과, 구글, 네이버, 국사편찬위원회,규장각,명지대
▣ 주변 볼거리
★석파랑
https://jawkoh.blog.me/221955739836
★세검정
https://jawkoh.blog.me/221963453362
★옥천암 마애석불(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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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