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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이일걸의 지식창고 2020.09.21. 16:56 (2020.09.21. 16:56)

대문구(大汶口) 박물관과 태산(泰山)을 다시 오르다

 
[스카이데일리 연재] 수천 년 전 신석기 시기의 원시사회의 문화와 조우하다
오늘은 집 떠난 지 7일째다. 함께 온 친구들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조반(朝飯·아침식사) 전에 제녕(濟寧) 시내를 둘러보기로 하였다. 호텔 안내판에 꽂혀 있는 “중국공민문명여유공약”이라는 안내문을 가지고 나와 읽어 보았다. 안전을 중시하고, 예의바르게 설명하며, 떠들지 말기 등 10개 항의 공약이 적혀있다. 또한 안전여행의 행동지침에서는 문명(文明), 안전(安全), 성신(誠信)을 강조하였다.
 
오전 6시에 숙소 1층에서 친구들과 만나 대로변으로 나오니 중년의 남녀 청소부들이 리어카를 몰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른바 우리식의 새마을 청소다. 제녕 시가지는 무척 깨끗하고 화단에는 예쁜 꽃도 가꾸어져 있었다. 제녕시는 매우 조용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은 도시로 보였다. 지난해 여행 왔을 때도 느꼈지만 시진핑이 집권한 후 달라진 것이 도로변의 풍경이다. 나무도 많이 심었지만 길거리를 단장하고 깨끗해진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30년 전에는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 제법 푸른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특히 고속도로 좌우의 인공조림 및 모든 도시의 주차장과 도로변에 설치한 “중국몽”과 “사회주의 핵심가치”의 홍보게시판이 새롭다. 더구나 밤에도 사회주의 핵심가치 12개를 회전 적색 네온사인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시진핑 집권 후 나타난 “사회주의 핵심가치 12개”는 △부강(富强) △민주(民主) △문명(文明) △화해(和諧) △자유(自由) △평등(平等) △공정(公正) △법치(法治) △애국(愛國) △경업(敬業) △성신(誠信) △우선(友善)으로 각각 5개의 세부사항이 있다.
 
이들이 내세운 핵심가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추구하는 기본 가치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지난 5000년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서 도출하여, 청소년은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도 알리기 위해 책자까지 발간했다. 여기에는 중국의 60여명의 인물과 고사성어(故事成語)를 인용했다.
 
첫 번째 가치인 부강 편의 첫 세부 항목은 발분도강(發奮圖强)인데 월왕 구천의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를 들었으며, 마지막 가치인 우선 편에선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을 그린 ‘관포지교(管鮑之交)’와 조(趙)나라의 두 기둥인 정승 인상여와 염파 장군의 문경지교(刎頸之交)를 통해 단결을 강조했다. 과거 중국 역사상 성공적인 인물들을 통해 국민을 단결시키려는 목적이다.
 
심지어 제녕시의 호텔에는 ‘문명시민수첩’과 ‘문명여행수첩’을 비치하였다. ‘문명시민수첩’에는 ‘문명공약’ 등 10개 공약의 세부 수칙과 시민이 지켜야할 “사회주의 핵심가치 12개”에 맞는 잠언을 경전(經典)에서 뽑은 글귀와 ‘가풍 가훈’에 맞는 글귀 100개를 뽑아 기술하였다. 그 중 인상적인 글귀는 ‘소년의 지혜는 나라의 지혜이며, 소년의 부(富)는 나라의 부(富)이며, 소년이 진보하면 나라가 진보한다’는 양계초의 말이었다.
 
이와 같은 “사회주의 핵심가치”의 홍보 목적은 시진핑이 2013년 취임 연설에서 강조한 중화민족의 부국강병의 꿈인 ‘중국몽(中國夢)’을 이루기 위한 기초작업인 셈이다. 현재 중국은 관민(官民)이 단결하여 최대강국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주의 핵심가치”라는 정신적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 답사단은 아침 식사 후 8시 20분경에 버스에 승차하여 출발해 가상현(嘉祥縣)의 무씨묘군석각(武氏墓群石刻)으로 향했다. 이는 무량사화상석(武梁祠畵像石)을 말하며, 이 화상석이 단군신화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 이는 미국에서 활동했던 김재원(金載元)씨다. 이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지만 나 자신이 직접 보지는 못해 그에 대한 시비(是非)를 논할 수는 없었다.
 
이번 답사에 상당한 기대를 하였지만 막상 가니 답사가 불가능하였다. 즉 10시 경에 목적지 마을에 도착하였지만, 입구의 도로 수리 공사로 인해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을 모두 막아둔 상황이라서 버스 접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에 답사단은 부근의 치우총(蚩尤塚)를 답사하기로 하였으며, 10시 40분에 치우총에 도착하였다.
 
평지에 위치한 치우총의 주변에는 키 큰 버드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 둔덕의 사잇길로 100m 정도 걸어가니 높이 20m 정도, 지름 30m 정도의 무덤이 나타났다. 무덤 아래에서 간단하게 차례를 올리고 무덤 위로 올라 주변을 바라보았다. 이와 같은 치우총은 중국에 여러 개가 있다고 하였다. 전쟁의 신이었던 치우를 마을 사람들이 존경하여 만들었다는 설이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11시 30분에 출발하여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30분에 대문구유지(大汶口遺址)로 향했다. 한 시간 후에 대문구고고유지공원(大汶口考古遺址公園)이라는 대문구문화 유적지의 발굴 현장에 도착하였다. 아직도 발굴원들이 발굴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로 옆에 ‘대문구박물관’이라는 민간 가옥으로 들어가니 마당에는 화강암 유구들이 놓여있고 네 칸 정도의 대청에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너무 빈약한 대문구박물관의 모습이었다.
 
대문구문화는 지금으로부터 5000~7000년 전 사이의 신석기 시기의 원시사회의 문화이다. 대문구진 서남 지역과 대문하(大汶河) 북안에 위치하여 82만 평방미터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5000년의 동방문명사의 발전단계를 보여주는 곳이다. 특히 토기에 그려진 해와 달의 문양은 학계에서 매우 주목을 받았다.
 
답사단은 한 시간 정도 대문구유지와 박물관을 견학하고 바로 태산(泰山)으로 향했다. 우리 일행은 주차장에 버스를 세워 두고 소형 버스를 탄 뒤 태산의 계곡을 굽이굽이 돌아 20분 후에 중천문(中天門) 광장에 도착하였다. 여기에서 삭도(索道·케이블카)를 타고 태산의 천주봉으로 가는 코스이지만, 삭도를 타려고 하는 대기자들이 너무나 많아서 천주봉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중천문 일대를 둘러보았다.
 
본래 태산은 산동성의 가장 높은 산이다. 오악(五嶽) 중의 동악으로 남악은 형산(衡山), 서악은 화산(華山)이고 북악은 항산(恒山), 중악은 숭산(嵩山)이며 태산은 오악 중의 우두머리 산으로 대종(岱宗)으로 불리었다. 진(秦) 시황제 이후 역대 72제왕이 태산에 와서 봉선(封禪)을 지냈다. 역사상 태산이 중국의 중심 산악의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중원 사람들이 태산을 숭배하였음을 의미한다.
 
태산 정상부의 남천문(南天門)은 600년 전 원(元) 시기에 건립되었으며, 정상인 천상신부(天上神府)인 옥황정(玉皇頂)에 이르는 길 양편에는 명승고적과 루, 정, 비석, 마애각서 등의 유적이 존재하였다. 역대 제왕이 지내는 봉선대전(封禪大典)은 태안시 북쪽의 대묘(岱廟)인 천황전(天貺殿)에서 지냈다고 하였다,
 
우리 일행은 삭도를 타고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계단을 따라 한 시간 정도 오르다 보니 좌우 계단 옆의 석벽에 붉은 글씨로 새겨진 “오악지존(五嶽之尊)”등 수많은 글을 볼 수 있었다. 이윽고 다시 중천문 광장으로 내려와서 소형 버스를 타고 하산하였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숙소인 제남(濟南)시의 용도국제대주점(龍都國際大酒店)으로 향했다.
【작성】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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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