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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고재완의 지식창고 2023.02.23. 18:56 (2021.12.13. 10:20)

안양 삼막사(三幕寺) 둘러보았어요!

 
11월의 마지막 휴일에 몇 번 다녀온 안양의 삼성산(三聖山) 삼막사(三幕寺)에 또 다녀왔습니다. 갔었던 등산로를 이용하지 않고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걸어 삼막사에 가보았습니다. 허가된 차량만 다니는 도로라 자전거 라이딩하시는 분들이 보입니다. 자전거로 힘들게 올라가시는 분들과 씽씽 신나게 내려가시는 분들이 보여 걸을 때 주의가 필요했지요. 그렇지만 도로 옆에 좋은 글귀와 위치를 표시한 안내판이 중간중간에 있어 좋았습니다.
11월의 마지막 휴일에 몇 번 다녀온 안양의 삼성산(三聖山) 삼막사(三幕寺)에 또 다녀왔습니다. 갔었던 등산로를 이용하지 않고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걸어 삼막사에 가보았습니다. 허가된 차량만 다니는 도로라 자전거 라이딩하시는 분들이 보입니다. 자전거로 힘들게 올라가시는 분들과 씽씽 신나게 내려가시는 분들이 보여 걸을 때 주의가 필요했지요. 그렇지만 도로 옆에 좋은 글귀와 위치를 표시한 안내판이 중간중간에 있어 좋았습니다.
▶코스
관악역→ 6-2 버스→ 경인교대 정문→ 삼막사 주차장→아스팔트 도로 2.4km(약 40분)→ 삼막사(고도 358m) → 일주문(一柱門)→ 천불전(千佛殿)→ 삼층석탑(3層石塔)과 거북 석조(石槽)→ 육관음전(6 觀音殿)→ 명왕전(冥王殿.명부전)→ 망해루(望海樓)→ 범종루(梵鐘樓)→정대 스님 부도와 공덕비 → 삼막사 사적비(事蹟碑)→ 산신상(山神像)→ 원효굴(元曉窟)→ 삼귀자(3龜字)→ 남녀 근석(男女根石)→ 七寶殿(칠성각)의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 부처님의 가피가 있으시길 빕니다.
▼주차장에서 삼막사로 올라가는 아스팔트 도로 풍경과 안내판의 글귀입니다.
 
"당신의 행복은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글이 보입니다. 현재 고도 125m, 삼막사까지 2,300m 남았다고 안내판이 보여줍니다.
 
 
 
▼자전거 라이딩 분들과 등산객들이 쉬고 있는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일주문이 보입니다.
 
▼삼막사 배치도를 작성해 보았습니다.
 
▼일주문(一柱門)
☞일주문은 산문(山門)이라고도 하는데, 산사(山寺)에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문으로 절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앞 현판(심헌 성정주 글씨)에는 不三聖 원효(元曉) 대사·의상(義湘) 조사·윤필(潤筆) 거사 및 삼성산 삼막사라 쓰고 뒤에는 불이문(지헌 박외수 글씨)이라고 쓴 현판이 붙어있습니다.
"빛깔은 고와도 지고 마는 것
이 세상 그 누구 무궁하리요."라는 글귀(주련)가 기둥에 붙어 있습니다.
☞ 현판은 좌측에서 우측으로(한글 쓰기) 쓰여 있는 것은 일주문을 만든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고찰의 현판은 우측에서 좌측으로(한자 쓰기) 쓴 것이 많습니다.
 
 
 
 
일주문을 지나 왼쪽의 범종루로 오르는 길은 코로나로 인해 막았기에 직진합니다.
▼도로 아래 서쪽 풍경
 
▼삼막사의 가장 큰 나무인 느티나무도 이젠 벌거숭이가 됐습니다.
 
이정표입니다.
 
이정표에서 좌측 방향으로 가면 보이는 첫 건물이 천불전입니다. 법당은 코로나로 인해 상주 기도가 불가하며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참배만 가능합니다.
▼천불전(千佛殿)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의 녹색 기와 건물로 석가모니,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등을 모십니다.
 
 
현판은 도광(道光)의 글씨랍니다.
 
☞주련
纔降王宮示本然(재강왕궁시본연)
周行七步又重宣(주행칠보우중선)
指天指地無人會(지천지지무인회)
獨振雷音遍大千(독진뇌음변대천)
천불전을 지나 우측에는 삼층석탑, 감로정 석조 및 석좌 불상이 있으며 좌측은 종무소 등이 있는 삼성당 건물입니다.
 
▼삼층석탑(三層石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고려 시대 탑으로 높이 2.55m
☞평지에 조성된 다른 탑들과 달리 이 탑은 산비탈에 조성되어 있다. 또한 주불전인 육관음전 앞에는 탑이 없어 특이하며 탑 자리에는 돌로 깔아 만든 연꽃무늬가 있습니다.
☞이 탑은 1232년(고려 고종 19) 몽고 침입에 승장(僧將) 김윤후 스님이 몽고군 총사령관 살리타이(살례탑)를 화살로 쏘아 격퇴한 것을 기념해 조성한 승전탑이라 전합니다.
 
 
▼거북 모양의 감로정 석조(甘露井石漕)
☞안양시 향토문화재 제5호인 거북 모양의 석조(큰 물그릇)입니다. 석조는 1837년(헌종 3), 덮개는 1979년에 만들었답니다.
 
 
▼자연석에 새긴 작은 관세음보살입니다.
 
좌측의 종무소와 불교용품 판매대를 지나면 좌측에 망해루와 범종루, 정면에 명왕전,우측에 주불전인 육관음전이 보입니다.
▼ 육관음전(六觀音殿)
☞정면 3칸, 측면 3칸에 청기와를 올리고 돌기둥의 맞배지붕 건물로 과거에는 화재로 소실된 대웅전이 있었습니다.
☞건물 돌기둥에 주련은 없으며 외벽에 벽화도 없습니다.
 
☞6관음 보살은 중생이 갖가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여러 모습으로 변해 나타나 중생을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주거나 복덕을 얻게 해주는 여섯 관음보살을 말합니다.
좌측부터 마두관음(馬頭觀音),성관음(聖觀音), 천수관음(千手觀音), 준제관음(准提觀音),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을 말하며 6관음을 모신 사찰은 전국에 많지 않다고 합니다. 보통 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 보살은 성관음이랍니다.
 
중앙의 천수관음(千手觀音), 준제관음(准提觀音)입니다.
 
▼1990년 화재로 소실된 대웅전 사진을 보면 돌기둥에 주련이 보이고 앞마당도 흙으로 되어있었는데 소실된 후 이곳에 육관음전을 세웠습니다.
 
▼명부전(冥府殿)
☞경기도 지정 문화재 제6호입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880년(고종 17)에 의민 스님이 주도하여 세웠답니다.
☞명부전은 사람이 죽어 살아 있을 때의 일을 심판받는 곳인 명부(冥府)를 상징하는 곳으로, 주로 10번의 재판을 주관하는 10명의 왕인 시왕(十王. 진광대왕, 초강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태산대왕, 평등대왕, 도시대왕, 전륜대왕)과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봉안하며 명부전을 시왕전, 지장전이라고도 합니다.
☞명부전 현판은 명왕전(冥王殿)이라 되어 있습니다.
 
 
 
가운데가 지장보살이며 좌우에 무독귀왕과 도명존자입니다.
 
☞주련
地藏大聖威神力 (지장대성위신력)
恒河沙劫說難盡 (항하사겁설난진)
見聞瞻禮一念間 (견문첨례일념간)
利益人天無量事 (이익인천무량사)
※여래(如來)와 보살(菩薩)의 외관 구분법
여래 (부처, 佛)는 곱슬머리에 옷은 얇은 천(가사)을 한쪽 어깨에 걸쳐 아래로 늘어뜨리며 몸에 아무런 장식이 없습니다.
관세음보살처럼 보살은 삭발한 스님처럼 두건을 쓰거나 긴 머리를 빗고 묶으며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며 상징물을 몸에 지닙니다.

여래(부처)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보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대세지보살

육관음전과 망해루 및 지장전 사이의 바닥을 보면 사각형 내 돌로 만든 연꽃무늬랍니다.
 
▼망해루(望海樓)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인 망해루는 청명한 날 서쪽을 바라보면 서해가 보인다고 하여 망해루라 지었답니다.
☞망해루 현판(1900년 가을, 서산書山 창령 성용이 염재 송태회 요청으로 씀)에 테두리를 해서 걸면 좋을 텐데 아쉽습니다.
 
 
▼범종루(梵鐘樓)
☞불교 사물(四物)인 범종(梵鍾),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板)이 보입니다.
☞법고는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운판은 하늘을 나는 생명을 향하여, 목어는 수중의 생명에게 소리를 보낸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모두 소리를 통한 부처님의 진리를 중생에게 전해 해탈성불을 염원하는 교화에 의미를 둡니다.
☞아침, 저녁 예불 때 법고, 목어, 운판, 범종 순서로 치는데 범종은 아침 28번, 저녁은 33번 타종합니다.
 
일반적으로 1층 건물이면 각(閣)이고 2층 이상이면 루(樓)인데 범종루와 망해루는 서쪽에서 보니 2층입니다.
 
▼명왕전 뒤쪽에 보이는 공덕비와 부도(스님들의 사리나 유골을 모신 곳)는 월암당(月庵堂) 정대(正大. 1937~2003, 전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임종게(臨終偈. 고승들이 입적할 때 남기는 마지막 글)
올 때도 죽음의 관문에 들어오지 않았고
갈 때도 죽음의 관문을 벗어나지 않았도다
천지는 꿈꾸는 집이어니
우리 모두 꿈속의 사람임을 깨달으라.
(來不入死關 去不出死關 天地是夢國 但惺夢中人)
 
이제 왔던 길로 되돌아 계단으로 삼막사 사적비로 올라갑니다.
▼사적비(事蹟碑)
☞삼막사의 사적을 기록한 비로 1707년(숙종 33)에 화강암 석재로 만들어졌으며, 받침돌·몸돌·지붕돌을 갖춘 비석입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5호입니다.
☞비문에는 신라 원효(元曉. 617~681) 스님이 창건하고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중건하여 관음사(觀音寺)라고 개칭하였고, 고려 태조(太祖)가 중수하여 삼막사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말에는 지공(指空. ?~1363)ㆍ나옹(懶翁.1320~1376)ㆍ무학(無學.1327~1405) 등의 고승이 오래 머물면서 선풍(禪風)을 드날렸다. 조선 태조(太祖) 때 왕명으로 비가 중수된 사실도 기록되어 있다. 비문의 뒷면 음기에는 시주자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사적비의 지붕돌은 팔작지붕이고 받침돌(地臺石)은 지면 아래 묻혀 있다. 비문(碑文)은 마모가 심해 판독이 어려운 상태이나 사적비가 경기 관악 산맥 삼성산 밑 삼막사에 있고 왼쪽에는 향로봉이 있다고 적혀있다.
 
▼앞쪽에 보이는 건물은 월암당(月庵堂)으로 30대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 스님이 입적하기 전에 머물던 장소입니다.
 
▼바위에 산신, 호랑이, 동자가 새겨져 있는 산신상(山神像)이 있고 1시 방향 바위에 구름이 새겨져있습니다. 다른 사찰의 산신각과 다른 느낌을 줍니다.
 
 
▼원효 대사가 창건했다는 삼막사에 원효굴이 있어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등곡대(燈谷臺)라 암벽에 새긴 글씨가 보이는데 등곡은 학조대사(學祖大師)의 호(號)이며 삼막사에서 수행했다고 합니다. 이 바위 위에 원효굴이 있습니다.
 
 
▼원효대사가 계셨다는 원효굴(元曉窟)은 건물과 지붕을 만들어 보호합니다.
 
돌로 만든 원효대사는 두 손으로 지팡이(?)를 쥔 채 연꽃무늬 좌대 위에 앉아 계시는데 왠지 작아 보입니다.
 
원효굴에서 보이는 앞쪽 풍경을 멋집니다.
 
아래쪽 풍경
 
계단을 내려오면 좌측에 삼귀자, 오른쪽에 백련지(白蓮池)가 있습니다.
▼삼귀자(3龜字)
☞안양시 향토 문화재 제4호로 높이가 좌로부터 74cm, 77cm, 86cm 돌에 3개 문자를 새긴 것입니다.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 귀(龜) 세 글자는 1920년 지운영(1852~1935)이 삼막사에 있을 때 만든 것입니다.
☞가운데 글자가 거북처럼 보여 쉽게 눈에 들어옵니다.
※ 지운영은 종두법의 지석영 형으로 한국인 최초로 고종을 촬영한 사진가이고 호는 백련(白蓮)이며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글씨를 잘 썼고 인물화와 산수화도 잘 그렸습니다. 또한 1886년에는 김옥균(金玉均)을 암살하기 위하여 일본에 건너갔으나 미수에 그치고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강제 귀국당하여 유배되었다가 풀려났습니다.
 
백련지(白蓮池)는 지운영선생의 호(號)인 백련(白蓮)에서 따온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삼귀자 쪽에서 본 원효굴 방향 풍경입니다.
 
▼ 마애3존불 가는 길은 법당 앞처럼 돌로 깔려있습니다. 많은 계단을 지나야 합니다.
 
200~300m 정도 가면 보이는 여근석과 남근석 및 칠보전이 보입니다.
▼남녀 근석(男女根石)
☞경기도 민속 문화재 제3호로 안양 8경에 속했으나 현재는 제외되었습니다.
☞삼막사 남녀근석은 칠보각(칠성각) 옆에 위치한 2개의 자연 암석으로 그 모습이 남성과 여성의 성기인 남근(男根)과 여근(女根) 모양을 닮았습니다.
☞남근석의 높이는 150㎝, 여근석의 높이는 110㎝이며 서로 약 3m의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습니다.
☞성기 숭배는 주로 성기를 닮은 바위나 기암괴석 등 자연물을 대상으로 다산과 풍요를 빌거나 마을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전통적인 민간신앙입니다.
☞원효대사가 삼막사를 창건하기 전부터 이 바위를 토속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여 왔다고 합니다.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 북극성,해,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로 1763년 (영조 39)에 조성되었습니다.
 
☞삼막사마애삼존불(三幕寺磨崖三尊佛)은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협시로 거느린 치성광여래불(熾盛光如來佛)입니다. 주로 칠성탱화에서 볼 수 있는 구도인데 마애불로 조성한 점이 특이합니다. 자연 암벽에 감실을 조성하고 그 안에 부조로 조성한 삼존불로, 칠보전(칠성각)을 세워 봉안했습니다.
☞치성광여래는 불교에서 북극성을 부처로 바꿔 부르는 이름으로, 불교에서 전통의 칠성신앙을 받아들이면서 생겨난 명칭으로 칠성광여래라고도 하며 높이 150cm입니다. 북두칠성은 칠여래(七如來), 해는 일광변조소재보살(日光遍照消災菩薩), 달은 월광변조소재보살(月光遍照消災菩薩)로 부르며 사찰에서 조각상으로 꾸민 예는 없습니다.
☞칠성광여래는 자식이 없거나 아들을 낳고자 하는 여자, 그리고 자녀의 수명을 길게 원했던 사람들이 믿었던 부처로 불교와 (북두)칠성의 민간 신앙이 만난서 형성된 우리 불교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형식입니다.
☞삼존불을 자세히 보면 손때가 많이 묻어 있는 것은 손으로 부처를 만졌기 때문이고, 칠성광여래의 코가 많이 닳은 것은 부처의 코를 갈아 먹으면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다는 토속 민속 신앙 때문이랍니다.
 
 
▣삼막사 정보
①연혁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안양 삼막사(三幕寺)는 677년(문무왕 17)에 원효 스님과 의상 스님, 윤필 거사 등 세 분이 현재 삼막사 자리에 3곳의 막(幕)을 짓고 수행 정진했다고 해서 삼막사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신라 말 도선국사에 의해 중건된 삼막사는 관음사(觀音寺)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에 의해 중창을 거치면서 다시 삼막사라는 이름을 되찾게 됐다.
고려 말 불교계를 이끌었던 지공화상, 나옹화상, 무학대사 등 여말선초 3화상 역시 삼막사와 인연이 있다.
조선 태조 때 왕명으로 중수되기도 했으며, 한양 천도시 무학대사가 조선 왕조의 국운융성을 염원하며 청련사, 백련사, 승가사와 더불어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삼은 사찰이 삼막사다.
1707년(숙종 33)에는 삼막사의 사적과 역사를 기록한 안양 삼막사 사적비가 건립됐다.
1763년은 마애 삼존불, 1764년에 칠성각, 1880년에는 명부전을, 1898년에는 응월스님이 대웅전을 중수하며 가람의 면모를 갖췄다.
1935년 원오 스님이 대웅전과 명부전 산신각을 중수했으며, 제30대 총무원장을 지낸 정대 스님이 삼막사에서 계시다가 입적하셨다. 정대 스님의 뜻과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 삼막사 지장전 뒤에 정대 스님의 부도와 공덕비가 조성돼 있다.
②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 1동 삼막로 478. ☎ 031-471-5978
③대중 교통은 관악역, 6-2 버스 타고 경인교대 정문 하차 후 주차장을 지나 등산로나 아스팔트 도로로 올라갑니다.
④삼막사와 주차장 간에 신도들을 위한 승합차가 운행 중입니다.(출발시각 0840. 0910. 0940. 1010. 1030. 1215. 1245. 1400. 1600)
▣다녀온 후기
☞ 주차장에서 약 2.4km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약 40분 소요) 삼막사에 도착하며 걸을 때 씽씽 내려가는 자전거를 조심해야 합니다.
☞삼막사는 크지 않은 절로 전각(殿閣)들이 남북으로 길게 배치되어 있으며 배치도가 안 보여 아쉬웠고, 칠성각(이정표)과 칠보전(현판) 및 명부전(이정표)와 명왕전(현판)을 혼용해 쓴다. 또한 등곡대(燈谷臺)에 대한 설명이 없다.
☞전각 중 유일하게 명왕전만 남쪽 방향이고 나머지 전각들은 산을 등져 전망이 좋은 서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망해루 쪽과 원효굴쪽 전망이 좋았다.
☞녹·청기와 지붕(천불전, 육관음전) 건물이 있고 전각 앞 마당은 돌을 깔았다.
☞천년 고찰인데 고려 시대 3층 석탑과 조선 후기의 사적비, 마애삼존불, 석조가 있으며 전각들은 근대 이후의 것으로 오래된 느낌보다 새로운 느낌의 산사이다.
☞3층 석탑의 위치가 산비탈이고 주불전인 육관음전 앞에 탑은 없으며 육관음전 앞바닥에 돌로 만든 연꽃무늬가 특이하다.
☞장수를 나타내는 거북 관련한 감로정 수조와 삼귀자가 있는 사찰로 다른 사찰과 다르다.
☞고찰이면 고승의 부도가 많을 텐데 월암당 정대 스님의 공덕비와 부도만 보였다.
☞삼막사의 가장 오래된 남녀근석과 칠보각 칠성당여래의 마애삼존불 위치가 절묘하며, 자식을 낳기 원해 돌부처의 코를 갈아먹은 흔적을 보니 짠하다.
☞삼막사 홈페이지는 없는지 못 찾았다.
☞예불 시간 외에 불경 독송을 스피커로 해주면 신도나 방문객들의 심신이 편해질 것 같다.
☞등산객을 위한 화장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고, 신도를 위한 승합차 출발 시각표가 안내되어 있다.(출발시각 0840.0910.0940.1010.1030.1215.1245.1400.1600)
\na-;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구글, 네이버, 카카오 지도, 안양시, 불교신문, 네이버 지도, 조계종, 문화재청,불교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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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