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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여행노소남의 지식창고 2017.12.07. 00:31 (2017.12.07. 00:31)

십만 여존의 불상이 새겨진 '용문석굴' 2015-05-21

 
중국 하남성 낙양시 용문석굴
중국 하남성
낙양시에서 남쪽으로 13킬로미터 떨어진 용문석굴은
동서 두 산 사이를 이하(伊河)라는
강이 흘러 용문석굴의 경치는 아주 수려하다.
 
 
낙양은 과거에 많은 조대의 도읍지였고
이 곳이 황궁문을 마주하고 있어서
용으로 불리우는 황제의 문이라는
의미에서 용문이라는 지명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길이 약 1킬로미터의 용문의 동서 두 산
암벽에는 2300여개의 동굴이 뚫려져 있고
이런 동굴들에 약 10만여존의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 3대 석굴의 하나인 용문석굴이다.
 
[대동의 운강석굴, 낙양의 용문석굴,
돈황의 막고굴을 흔히 중국 3대 석굴로 꼽는다.]
 
[강 건너에서 바라다 본 용문석굴]
 
용문석굴은 기원 5세기경부터 조각을 시작했는데
때는 중국의 북위(北魏)조대였고
북위 왕조의 황제는 불교를 신앙했다.
 
황제가 불교 신자니까 전국적인 범위에서
불교 사찰과 불상들이 우후죽순처럼 많아 졌다.
 
 
 
그 때는 불상을 많이 조각할수록
더 많은 불교의 은덕을 받는다는 설이 있었고
그래서 황제는 많은 은덕을 보기 위해
10만여존의 불상을 새겼다.
황제의 힘을 이용하여서 말이다.
 
 
 
그리고 용문의 암석질이 아주 좋아서 풍화 작용에도
쉽게 모양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이 곳에 석굴을 만들기로 했다.
 
용문석굴은 선후로 400여년의
건설사를 거쳐 완공에 이르렀다.
 
 
그리고 건설과정에 두 조대를 거치기도 했다.
 
기원 4세기부터 6세기까지 이어진
북위 시대에 시작되어 기원 7세기부터 10세기까지
이어진 당조(唐朝)에 완공되었고
그래서 오늘의 용문석굴에서 볼 수 있는
문화재 90% 이상이 이 두 조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북위와 당조가 모두 불교를 신앙하지만 필경
두 조대이기 때문에 풍격이 다르다.
 
그래서 오늘도 용문석굴에 가면
서로 다른 품격의 석굴과 불상을 볼 수 있다.
 
[중국에는 크고 작은 석굴들, 불교 유적이 많다.]
【작성】 즐거운 지구 여행자 노소남(ssnn12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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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