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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고재완의 지식창고 2017.12.07. 13:29 (2017.12.07. 13:24)

한양도성(광희문~ 숭례문 ) 3편 (2016. 3. 11)

 
한양도성 길 중에서 오늘은 3번째로 ① 남산 팔각정, ② 전통 무예시범, ③시간상 올라가지 못한 N 서울타워, ④ 국사당 터, ⑤ 남산 봉수대, ⑥ 사랑의 자물쇠 그리고 ⑦ 케이블 카에 대한 자료다.
서울에 수십 년을 살면서 남산(목멱산, 木覔山)에 몇 번 갔을까 세어보니 다섯 손가락 안이다. 가깝지만 오르기 쉽지 않은 남산은 그동안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한양도성 길 중에서 오늘은 3번째로 ① 남산 팔각정, ② 전통 무예시범, ③시간상 올라가지 못한 N 서울타워, ④ 국사당 터, ⑤ 남산 봉수대, ⑥사랑의 자물쇠 그리고 ⑦ 케이블 카에 대한 자료다. 남산 정상은 한양도성길 방문이 아니어도 View가 좋으므로 서울 전체를 구경하고 싶거나 연인과 커플이 데이트하러 오거나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서울을 보여주기에 좋은 곳이다.
 

 
▼ 남산 위치
 
▼ 남산과 남산타워 위용(탑 237m)
 
▼ 겸재 정선(양천 현감때)이 그린 목멱조돈(木覔朝暾,목멱산에 아침 해가 솟아 오르다)
 
 
▼ 남산 무예시범 정보
 
 
▶ 남산 훼손 내용
 
일본은 공원을 조성한다는 미명하에 일제강점기에 민족혼 말살을 위하여 남산에 위치한 우리의 중요한 문화유산인 서울 한양도성을 덮어 조선신궁을 만들었고 국사당을 철거했으며, 침략의 중심기관인 공사관, 통감부, 헌병대 사령부와 관사 및 주거지를 배치하였다. 남산 정상에 있었던 국사당은 철거하여 인왕산에 옮겼고 고종황제가 항일의 뜻으로 세운 장충단을 공원으로 만들었고, 안중근 의사에게 죽은 이토히로부미(이등박문)를 기리는 박문사(博文寺,지금 신라호텔 자리)를 1932년 지었다.
 
 
▼ 남산 정상의 국사당 (國師堂)터
 
목멱산은 현재의 남산을 일컫고, 목멱신사(木覓神祠)에 대한 이칭은 흔히 국사당(國師堂)이라고 하였다. 목멱신사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과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등에 두루 보인다.
 
목멱산신을 모시게 된 내력은 『태조실록』을 보면 알 수 있다. 1395년 태조가 이조에 명하여 남산을 봉하여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삼은 뒤 산신, 기우제를 지내고 1397년 국사당을 건립하는 등 나라를 지키는 신과 스승을 모시는 영적인 산의 구실을 하였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목멱신사는 목멱산 마루에 있어서 봄과 가을로 초제(醮祭)를 행하였다고 전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경성 목멱산 잠두봉 국사당 음사(京城 木覓山 蠶頭峰 國師堂 淫祀)”라고 해서 비판한 바 있고, 목멱산신에게 제사를 베풀 때는 전사청(典祀廳)을 국사당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고려 공민왕, 본조 승 무학(本朝 僧 無學), 고려 나옹(懶翁)화상, 서인도 지공(指空)화상 등의 영상 및 기타 제신상을 걸어놓았다.
 
또 맹자상(盲者像)과 소녀상이 있는데 소녀상은 두신(痘神)이라 하여 신전에 지분 등을 베풀어 지나치게 설혹(褻惑: 더럽고 정신없게)하였고 기도 또한 성대히 베풀어 나라에서도 금하지 못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목멱신사에서 배향되는 신격은 모두 무속에서 섬기는 신들이므로 무속신앙의 형태를 확인하게 된다.
 
목멱신사는 한마디로 나라에서 행하는 굿을 베풀던 사당이고, 산천제의 기능을 하던 곳이라 하겠다. 『선조실록』에 의하면 나라에 대사가 있으면 반드시 산천에 제를 지냈다고 하였으니 목멱신사도 그러한 제를 지냈던 곳이다.
 
목멱신사에 주로 빌었던 내용은 나라를 지키고 복을 비는 수호기복, 왕가나 왕손의 병을 구원하자는 구병 등이 대부분이다. 고대로부터 지속되어온 산악신앙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이고, 그것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신당의 형태로 드러난 것이 목멱신사이다.
 
이 신사는 1925년까지 본래 남산 팔각정이 있는 자리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남산에 신궁(神宮)을 지으면서 목멱신사가 그들의 신궁보다 높이 있다고 하여 지금의 인왕산 국사당자리로 옮기도록 강요했다.
 
때문에 남산의 국시당을 헐고 사당의 일부를 인왕산 서쪽으로 옮겨 조립해서 그 형태나 구조가 원형과 비슷하게 남게 되었다. 목멱신사가 훼철되고 사당의 일부가 이전된 후 인왕산 국사당이란 명칭으로 1973년 중요민속자료 제28호로 지정되었고, 이곳의 무신도 28점은 이보다 앞서 1970년에 중요민속자료 17호로 지정된 바 있다.
 
 
※ 인왕산 국사당
 
무신도
 
※ 국사당 내부(남산)
고려 공민왕, 무학( 無學), 나옹(懶翁)화상, 지공(指空)화상 등의 영상 및 기타 제신상을 걸어놓았다고 전한다.
 
 
▼ 무신도 비교 -동아일보 사진-
족자에서 액자형테로 바뀌고 그림도 다르다.
 
 
▼ 남산 팔각정(八角亭)
 
1959년 우남 이승만 대통령의 우남정雩南亭)을 지었다가 1960년 4.19의거 때 철거되었고 1968년 다시 건립되었다. 이 팔각정은 남산 정상에 있어 신년 해돋이 명소로 유명하다..
 
 
 
▼ 봉수대(烽燧臺)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4호. 봉수대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옛날의 통신수단으로 높은 산봉우리에서 횃불이나 연기를 이용해 먼 거리에서 일어나는 위급한 소식을 전달하던 시설물이다.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를 피워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임금이 계신 한양으로 신속하게 전달하였다.
 
신호는 횃불이나 연기의 수를 조정하여 위급함의 정도를 나타냈는데, 한 번 드는 것을 일거(一炬)라 하여 ①평상시에는 일거, ②해상이나 국경 부근에 적이 나타나면 이거, ③변경이나 해안 가까이에 적이 나타나면 삼거, ④적이 국경을 침범하거나 병선과 접전을 하면 사거, ⑤적이 상륙하거나 국경을 침범한 적과 접전을 하면 오거를 올리도록 하였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목멱산 봉수(木覓山烽燧)는 서울에 있다고 하여 경봉수(京烽燧)라 하였다. 조선시대 전국 각지의 경보를 병조(兵曹)에 종합 보고하는 중앙 봉수소의 역할을 수행한 제일 중요한 봉수였다.
 
목멱산 봉수대는 동쪽의 제1봉부터 서쪽 방향으로 제5봉에 이르는 다섯 개의 봉수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① 제1봉의 봉수대는 함경도를 출발하여 강원도를 거쳐 경기도 양주의 아차산(지금의 광진구)에 닿은 신호를 받았고,
② 제2봉의 봉수대는 경상도 해안을 출발하여 경상도 내륙과 충청도 내륙을 거쳐 경기도 광주 천림산으로 이어진 봉화를 받았다.
③ 제3봉의 봉수대는 평안도에서 황해도를 지나 경기도 내륙을 거쳐 한성의 무악 동봉에 전해진 신호를 받았고,
④ 제4봉의 봉수대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바닷길을 따라 경기도의 육로로 들어와 한성의 무악 서봉에 연결된 봉화를 받았으며,
⑤ 제5봉의 봉수대는 전라도 해안과 충청도 내륙, 경기도 해안을 거쳐 양천(지금의 강서구)의 개화산으로 전달된 봉수를 받았다.
 
 
목멱산 봉수대가 잘 보이는 곳에 병조의 무비사(武備司)에서 관장하였으며 봉수군(烽燧軍)과 오원(五員)이라 칭하는 감고(監考,감시원)를 배치하였다. 그리고 봉수군은 군사 4명과 오장 2명을 배속시켰는데, 모두 봉수대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으로 선정 임용하였다.
 
목멱산 봉수대는 1394년 태조가 한양(지금의 서울)으로 도읍을 옮긴 때부터 1895년 5월 9일(양력 7월 1일)까지 500여 년간 존속되었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왜군이 남산 북쪽 일대에 진지를 구축하였기 때문에 그들에 의해 봉수대가 파손됨으로써 임진왜란 이후 봉수 기능은 마비되었다.
 
갑오경장으로 봉수제도가 폐지된 후 1930년대까지 남산의 5개 봉수터는 남아 있었기에 현재는 청구도(靑丘圖) 등 관련 자료를 통해 고증하여 복원해 놓은 것이다.
 
 
 
▼ 김정호의 수선전도에 목멱산(木覓山)이 보이고 봉대(烽臺)가 표시되어 있다.
 
 
▼ N서울 타워
 
서울 남산전파탑을 줄인 명칭으로, 남산타워라고도 한다. 대지 8,456㎡에 연건평 15,378㎡에 이르며, 해발고도 480m 상에 위치해 있다. 맑은 날이면 개성 송악산과 인천 앞바다가 보인다고 한다.
 
탑 자체의 높이는 237m로 세계에서 모스크바 타워(해발고도 537m) 다음으로 높은 탑이다. 1969년 8월 동양·동아·문화방송 등 3개 민영방송국이 공동으로 종합전파시설 및 관광전망대 시설허가를 받아 1975년 8월 완공하였다. 준공 3개월 뒤 체신부가 인수하여 보안상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다가, 1980년 10월부터 공개되었다. 2000년 뉴스 전문 채널 YTN이 인수한 후 2005년에 개보수하여 “N서울타워”(정식 이름은 “YTN 서울타워”)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N 서울타워 홈페이지
 
※전망대 입장료 1만원/성인, 레스토랑(점심 3.5만원, 저녁 5만원에는 전망대 요금포함)애서 식사하면서 데이트하려면 참고하세요.
 
 
 
▼ 사랑의 자물쇠
 
연인과 커플이 남산에 자물쇠를 달면 사랑이 이루어진다하여 자물쇠들로 가득하다.
 
▼ 남산 케이블 카 승강장
 
 
 
★ 남산 케이블카 홈페이지 바로가기 (성인 편도 6,000원/ 왕복 8,500원)
 
 
남산 정상으로 가는 방법은 ① 걸어서 올라 가기 ② 케이블 카 타고 가기 ③ 남산 순환버스타고 가기 ④ 대형, 중형버스 이용하기 등 4종류가 있다. 택시나 승용차로 올라 갈 수 없다.
 
 
▶남산 순환 버스 정보(요금 동일)
 
※ 남측순환로(3.1km) : 국립극장 → 서울타워 → 남산도서관
 
☞ 2번 : 충무로역 2번, 동대입구역 6번 출구 탑승, 15분간격, 교통카드 1,100원/현금1,200원
☞ 3번 : 서울역 9번, 이태원역 4번, 한강진역 2번 출구 탑승, 20분 간격
☞ 5번 : 명동역 3번, 충무로역 2번 출구 탑승, 15분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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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한양도성 홈페이지
 
출처: 민족문화백과,네이버지식백과,N 서울타워 홈페이지,환경일보사진,네이버항공지도,서울 한양도성 홈페이지, 문화재청, 문화유산채널, 남산공원홈페이지,네이버지도,간송미술관,구글사진,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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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