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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나바내다의 지식창고 2018.03.29. 14:43 (2018.03.29. 14:43)

#19 권력과 인간 - 정병설

 
정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그의 아버지 영조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반적인 역사책처럼 딱딱하게 서술하기보다는 단순히 팩트들만 나열하기 보다는 인간적인 과점에서 인물들에게 다가간점이 감정이입이 되고 그만큼 더 쉽게 읽혔다.
ŷ정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그의 아버지 영조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반적인 역사책처럼 딱딱하게 서술하기보다는 단순히 팩트들만 나열하기 보다는 인간적인 과점에서 인물들에게 다가간점이 감정이입이 되고 그만큼 더 쉽게 읽혔다.
 
영조는 경종의 동생으로 아버지는 숙종이다. 숙종이 죽고 난후 형인 경종이 왕이 되지만 몸이 아팠던 경종을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게 된다. 대리청정이라는게 너무 잘하면 왕의 자릴 넘볼 수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고 너무 못하면 왕의 자질이 없다고 판단하고 또 적당히 하면 대충대충 한다고 왕의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자리인지라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왕이 되지 못할 왕자들의 목숨은 위태위태하여 태어나서부터 왕이 되기 전까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왕이 된 영조에게는 3가지 콤플렉스가 있었다.
 
1. 신분의 콤플렉스
2. 형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의심
3. 노론이 세운 왕
 
경종 당시 소론이 집권하고 있었지만 후사도 없고 몸이 아픈 경종에게 상소를 올려 세제를 하게 되고 사실상 영조는 노론이 세운 왕이었다. 자존감이 그만큼 없을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어머니의 출생은 왕이 되고 나서도 항상 콤플렉스였고 몸이 아픈 형에게 준 단감과 간장게장을 먹고 죽었다는 사실은 영조가 왕이 되고 30년이 지나 책까지 쓸만큼 평생 억울했을 것이다. 그런만큼 엄격한 자기관리만이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않았나 싶다. 예민했고 깐깐했고 까칠했다. 불길한 얘기를 들으면 귀를 씻고 양치를 했으며 불길한 글자들은 쓰질 않고 화를 불같이 내고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같이 있는걸 싫어했으며 기분이 좋을때와 나쁠때 드나드는 문이 달랐다. 이런 영조가 효장세자가 죽고 나이 마흔에 얻은게 사도세자였다.
 
사도세자에 대한 영조의 사랑은 그만큼 각별했다. 두살에 세자에 책봉하고 유명한 학자들을 불러 재왕학을 배우게 했다. 이게 문제의 발단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우리는 무언가를 얻기위해 사회와 소통하며 그 가운데 사회성을 배우지 않는가? 사도세자는 이미 모든것을 가질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열살까지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영조의 마음에 들려고 했다. 반대로 영조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면 본인은 자수성가해서 왕이 되었지만 처음부터 왕이 될 자리가 마련된 사도세자가 자기의 기대에 따라오지 못하는 만큼 실망을 거듭하며 결국에는 아예 포기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결국에는 관계는 점점 더 틀어지고 사도세자는 광병을 얻어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그 죄로 사도가 죽게되지 않았나 싶다. (자세한건 다른분들 블로그를 참조하세요...)
 
권력과 인간... 인간적인 사랑을 주지 못했고 권력을 인계하기 위한 사랑을 주고 그런 아버지의 사랑의 부재가 결국에 사도세자의 정신발달에 문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백여명의 내인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쉽게 발설을 못한걸로 봐서 사도세자의 권력이 짐작이 간다. 그런 권력을 가진 사도가 영조 앞에서는 항상 죄인취급을 당했으니 아무도 멸시를 할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도가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던것도 조금은 이해는 간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이덕일을 비판하는게 나오는데 이 부분도 역시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역사가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고 정조도 승정원일기에 있던 사도세자의 기록을 지웠다고 한다. 물론 일반 대중들이야 역사들 받아들임에 있어 어떻게 판단하고 그 판단의 기준이 어려운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모든 역사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학설' 일 수 있다는 전제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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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