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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면 향토사 (1993)null 2018.07.12. 11:47 (2018.07.11. 02:38)

四 . 명승고적

 
목 차   [숨기기]
 1. 1 . 팔석정과 봉래 양봉래
 2. 2 . 충암(忠 岩)
 3. 3 . 노적바위 름봉 화암(露積巖,凜峰,華巖)
 4. 4 . 구영소
 5. 5 . 작은산
 6. 6 . 솔모종 거리
 7. 7 . 매지 폭포
 8. 8 . 천심대
 9. 9 . 외솔박이
 10. 10 . 열목어 서식지 흥정천
 11. 11 . 면온 팔경

1. 1 . 팔석정과 봉래 양봉래

봉래 양사언는 1517년에 출생하여 1584년에 사망한 조선시대 문인이며 학자이다 『청주량씨 대동보 1 권 』
 
선생은 24세에 진사과에 합격하였으나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6년동안 시묘를 살고 병오년 문과에 합격하여 대동승에 발탁되었다. 그후 삼등, 함흥, 평창, 강릉도호부사를 역임하고 내직인 성균관사성 종부시정이 되었다가 다시 회양, 철원군수로 나가 강원도의 아름다운 산천을 누비였다고 한다.
 
산천과 명승지며 시와 풍류를 즐기며 강릉도부사로 재직하던 그때 선생은 영동지방을 두루 살핀후 자연경치에 탄복하고 영서에는 이만큼 아름다운 곳이 없겠는가 생각하여 영서지방 여러곳을 다니던 중 이곳 봉평면 평촌리(당시는 강릉부에 소속)에 이르렀다. 아담하고 수려한 경치에 끌려 정무도 잊은 채 8일 간 신선처럼 모든 잡념을 버리고 노닐다가 8일경이란 정자를 세우고 매년 3번씩 춘화, 하방, 추국에 찾아와서 이 고장 선비들과 시상을 즐겼다. 그가 임기가 만료되어 내직으로 발탁되니 다시 이곳에 찾아와 정자를 관리하기 위하여 창동에 집한채를 짓고 샘을 깊이 파고 봉래고정이라 하였다.『조선환여승람』 그리고 주변 바위 여덟군데에각각 봉래, 방장, 령주, 석대투간, 석지청련, 석실한수, 석평위기, 석구도기라 써놓았다.이리하여 이곳을 팔석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봉래 양사언은 이곳을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天通九曲中流白이요 (하늘은 중국무이산 구곡과 통하며 가운데가 희고) 地接三山半落靑 (땅은 삼산에 연접하여 삼신산에 푸르름이 떨어졌다)이라 읊고 이곳을「 四美九奇」(네가지 아름다움과 신기한 아홉가지)라 칭송했다. 즉 「사미」라 하는것은 동유봉산(東有蓬山), 남유청강(南有靑江), 서유삼산(西有三山), 북유노송(北有老松)을 말함이요, 「구기」라 함은 萬丈穴龍(만길깊은룡굴)과 行石九龍(반석에 구룡이 지난 흔적)을 말한다.하였으니 돌과 물을 뜻함이다. 일설에 의하면 량봉래 선생은 죽어 신선이 되어 봉래산으로 갔다고 한다(평창군지 평창군 1909.)『 서울대 규장각소장 청주양씨 세보』
 

2. 2 . 충암(忠 岩)

원길리와 흥정리 경계점에는 충암이라 새겨진 바위가 하나있다. 옛날 어느 누구가 새겼는지 알길이 없다. 1890년대 관서지방에서 이화서 선생의 문인 충재 오영인이 흥정리 입구에 살았는데 혹시 자기의 호를 따서 쓰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도 하였으나 최근 발견된 『 충재기』에는 오히려 자기집 옆에 바위의 충자를 따서 자기의 호를 정했는가 하는 오해를 받을까 두려워서 아니라는 해명까지 쓴 기록이 보인다.정확한 연대는 알 수가 없다.
 

3. 3 . 노적바위 름봉 화암(露積巖,凜峰,華巖)

바위 하나의 이름이 이 셋이다.
 
봉평에서 서쪽으로 약 4.1km 떨어진 흥정천 변에는 노적바위라 불리우는 바위가 있다.이 바위는 노적바위란 이름외에도 노적암 곡식을 쌓은것 같다 하여 름봉이라 이름하기도 하며 이 바위에는 정기가 흐른다 하여 화암이라 이름하기도 한다.
 
정상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피나무가 있어 10여명이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곳이다. 이 바위 앞쪽에 흐르는 흥정천에는 만여평이나 되는 섬이 있고 섬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소나무와 온갖 잡목이 울창하여 여름철 피서 인파가 성시를 이룬다.이 부근의 자연 부락을 화암동이라 부른다. 옛날 무이리 학자 면제 추병즉 선생은 이 바위를 발견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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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