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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정자 (2013)임실문화원의 지식창고 2024.01.06. 12:43 (2018.07.16. 02:38)

10. 반환정(盤桓亭) - 오수면 용정리

 
반환정은 오수면 용정마을 동쪽 입구로 들어서면 우측으로 높직한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반환정(盤桓亭)은 팔작지붕에 기와를 얹은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네 귀에 추녀받침이 있다. 인조 때 진사시에 합격하고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선생의 천거로 광릉참봉을 지낸 한양오(韓養吾)가 만년을 보낸 정자이다.
목   차
[숨기기]
반환정은 오수면 용정마을 동쪽 입구로 들어서면 우측으로 높직한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반환정(盤桓亭)은 팔작지붕에 기와를 얹은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네 귀에 추녀받침이 있다. 인조 때 진사시에 합격하고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선생의 천거로 광릉참봉을 지낸 한양오(韓養吾)가 만년을 보낸 정자이다. 원래의 명칭은 ‘태고(太古)’였는데 1689년 기사사화로 우암이 사사 당하자 정자의 이름을 ‘반환(盤桓)’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반환은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사(歸去來」의 ‘외딴 소나무 어루만지며 서성거린다(撫孤松而盤桓)’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후 반환정은 한양오의 후손들에 의해 1909년에 중건되고 1953년에 보수되었다.
 
반환정 안에는 중건기(重建記) 등 7개의 현판이 걸려 있으며, 네 귀의 추녀 끝에 보조기둥이 설치되어있다. 사각 철로 만든 울타리에 주변에는 10여 그루의 노송들이 어우러져 고색창연(古色蒼然)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개요 - 2014.11 자료 추가】
 
 
 
 

1. 1. 次

萬事涓埃一念空 主人淸趣野人同
侵頭歲月新生白 盈面盃潮晩濃紅
池底香迎凝曉露 庭干疎竹灑涼風
歸臥栗川如栗里 盤桓日夕向亭中
澹虛齋 金之白
 
健步登亭酒不空 碧筒酬酌主賓同
方塘寶鑑寒流白 畵箔淸陰返照紅
早達功名業幾日 晩年巾服濯淸風
歸來松下盤桓立 淡靄開雲落檻中
傭齋 韓■吾
 
流丹亭額逈臨空 晩節歸來志趣同
庭草侵人交淺緣 檻花邀客綻深紅
庭梧淡照濂溪月 川酬噓生洛水風
日日盤桓淸未了 霏煙香靄翠微中
不孤亭 張復謙
 
 
차운(次韻)
 
만사는 티끌, 일념(一念)이 공허하니 萬事涓埃一念空
주인의 깨끗한 취향은 야인과 동일하네 主人淸趣野人同
세월이 차츰 가면서 흰 머리만 더 생기는데 侵頭歲月新生白
술 거나하게 취하니 얼굴이 늦게 붉어지네 盈面盃潮晩濃紅
연못 향기로운 연꽃에 새벽이슬 엉기고 池底香迎凝曉露
뜰 가 성긴 대나무에 시원한 바람 쓸어가네 庭干疎竹灑涼風
도연명처럼 율천(栗川)에 은거하여 歸臥栗川如栗里
서성거리며 밤낮으로 정자를 향하노라 盤桓日夕向亭中
 
담허재(澹虛齋) 김지백(金之白)
 
차운(次韻)
 
씩씩하게 정자에 걸어올라 술이 비지 않으니 健步登亭酒不空
푸른 술통에서 손님과 주인이 서로 주고 받네 碧筒酬酌主賓同
거울같은 연못엔 차가운 흰 물결 흐르고 方塘寶鑑寒流白
주렴 맑은 그늘에는 저녁 햇살 붉게 비추네 畵箔淸陰返照紅
초년에 공명 이루니 얼마나 학업을 했을까 早達功名業幾日
말년에 건복 착용하고 맑은 바람에 씻기노라 晩年巾服濯淸風
소나무 아래에 돌아와 반환정에 서 있으니 歸來松下盤桓立
엷은 아지랑이와 한가한 구름이 난간에 떨어지네 淡靄閑雲落檻中
 
용재(傭齋) 한경오(韓儆吾)
 
차운(次韻)
 
단청 칠한 정자 멀리 허공에 빛나니 流丹亭額逈臨空
만년에 돌아와서 지취(志趣)가 같았네 晩節歸來志趣同
뜰의 풀 사람을 막으니 연초록 빛 덮이고 庭草侵人交淺綠
난간의 꽃 손을 맞아 선홍빛 터드리네 檻花邀客綻深紅
뜰 오동나무에 염계(濂溪)의 달이 맑게 비추고 庭梧淡照濂溪月
냇가 마을엔 낙수(洛水)의 바람이 불더라 川村噓生洛水風
날마다 반환정은 맑게 개이지 않으니 日日盤桓淸未了
푸른 산에 연무와 아지랑이가 피어남일세라 霏煙香靄翠微中
 
불고정(不孤亭) 장복겸(張復謙)
 
 

2. 2. 次

危坐高亭世念空 故人筇舃日相同
堤邊楊柳深含翠 沙上棠花淺染紅
入門嗟四夔翁句 古逕蕪孤靖節風
富貴功名如一醉 盈盈白墅滿樽中
石洞 李文載
 
翼然亭子壓虛空 日日淸遊一席同
幽竹無非淇澳綠 名花舊是武陵紅
淸城後裔千年宅 靖節先生萬古風
認得斯間閒味足 楊烟梧月慏懷中
艮湖 崔攸之
 
卜築年來俗慮䟽 蕭條生計野人居
田園雨足秧針長 村巷風微麥浪齋
臨逕棠紅侵杖舃 捲簾山翠染琴書
訪君終日忘歸去 故故幽禽向客啼
楓渠 李文規
 
登臨日日踏層空 琴酒淸遊與弟同
潭水精神澄鑑白 欄干影子繡簾紅
詩心兼得三更月 仙趣深藏雨服風
時向盤桓亭上立 老松蒼翠護庭中
怡顔亭 韓正吾
 
 
차운(次韻)
 
높은 정자에 꼿꼿이 앉아 세상생각 비우니 危坐高亭世念空
옛 사람은 지팡이 짚고 매일 함께 했지 故人筇舃日相同
언덕 가 버들은 짙은 비취빛 머금었고 堤邊楊柳深含翠
모래밭 해당화는 연붉게 피어났네 沙上棠花淺染紅
문에 들어가 사방에 탄식하니 기옹의 글귀이고 入門嗟四夔翁句
옛 길 외딴 소나무는 정절의 풍속이네 古逕撫孤靖節風
부귀와 공명은 한번 술에 취한 것 같고 富貴功名如一醉
넘실대는 들판만이 술 잔에 가득하네 盈盈白墅滿樽中
 
석동(石洞) 이문재(李文載)
 
차운(次韻)
 
날렵한 정자가 허공을 누르고 있는데, 翼然亭子壓虛空
날마다 청유(淸遊)는 한자리에 동석했네. 日日淸遊一席同
유죽(幽竹)은 기수가의 푸른 대나무와 같지 않음이 없고, 幽竹無非淇澳綠
명화(名花)는 옛적 무릉(武陵)의 붉은 꽃이로다. 名花舊是武陵紅
청성(淸城)후예의 천년된 집이요 淸城後裔千年宅
정절(靖節)선생의 만고의 유풍이구나 靖節先生萬古風
이곳에 한가한 맛이 넉넉하다는 것을 알고 認得斯間閒味足
버들 연무와 오동나무 달을 회상하노라. 楊烟梧月慏懷中
 
간호(艮湖) 최유지(崔攸之)
 
차운(次韻)
 
근래 정자 짓고 세속 걱정일랑 덜했는데, 卜築年來俗慮䟽
생계가 곤란하여 야인(野人)으로 살았네. 蕭條生計野人居
전원(田園)에 비 흡족하니 볏모가 잘 자라고 田園雨足秧針長
촌항(村巷)에 미풍 부니 보리물결이 가지런하여라. 村巷風微麥浪齊
길을 가니 해당화의 붉은 빛 지팡이와 신발을 적시고 臨逕棠紅侵杖舃
문발 거두니 산의 푸르른 빛 거문고와 서적을 비추네 捲簾山翠染琴書
그대를 찾아 종일토록 돌아가는 것 잊으니 訪君終日忘歸去
산새만 짹짹 손을 향해 우는구나 故故幽禽向客啼
 
풍거(楓渠) 이문규(李文規)
 
차운(次韻)
 
날마다 층층이 허공 밟고 올라가 登臨日日踏層空
거문고와 술, 좋은 놀음 아우와 함께 했노라. 琴酒淸遊與弟同
연못의 정신(精神)은 맑은 거울처럼 희고, 潭水精神澄鑑白
난간의 그림자는 문발에 붉게 수놓았네. 欄干影子繡簾紅
시심(詩心)은 겸해서 삼경에 뜬 달을 얻었고, 詩心兼得三更月
선취(仙趣)는 두 겨드랑이에 바람을 깊이 간직했네. 仙趣深藏兩腋風
때로 반환정(盤桓亭) 올라가 서 있노라면 時向盤桓亭上立
노송(老松)이 푸르게 뜰 안을 감싸고 있네. 老松蒼翠護庭中
 
이안정(怡顔亭) 한정오(韓正吾)
 
 

3. 3. 盤桓亭 元韻

高欄壓坐似憑空 今昔盤桓志操同
歸臥南州多髮白 遙瞻北斗一心紅
銀波淡盪蓮塘月 琴調寒生竹砌風
惟有蒼松知我意 晩年淸節在斯中
 
■■■■世慮空 今人志趣古人同
晩歸田園桑麻碧 早拜天庭錦帝紅
半夜婆婆穉竹月 一簾蕭灑綠楊風
暮年棲息於斯足 惟有寒松適意中
鰲洲 崔徽之
 
落日登亭倚碧空 主人樽酒與賓同
滴簾山水微微翠 滿架圖書點點紅
荷葉參差千種色 篁聲淅瀝五更風
方塘之畔盤桓立 明月蒼松雜錯中
永慕齋 丁錫後
 
盤桓亭頭煥蒼空 吾弟淸緣晉士同
晩節歸家雙膝展 微忠憂國寸心紅
良宵淡淡梅簷月 盡日蕭蕭竹砌風
多少■■■■■ 萬年春色滿庭中
蒼洲亭 韓省吾
 
 
반환정원운(盤桓亭元韻)
 
높은 난간 누르고 허공에 기대 있으니, 高欄壓坐似憑空
예나 지금이나 반환(盤桓)의 지조(志操)네. 今昔盤桓志操同
남원(南原)에 귀향하여 흰머리 많아졌는데, 歸臥南州多髮白
대궐(大闕)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한결같이 붉네 遙瞻北斗一心紅
은빛 물결 연당(蓮塘)의 달빛을 담담히 씻어내고 銀波淡盪蓮塘月
거문고 곡조는 대나무 섬돌에 차가운 바람 일으키네 琴調寒生竹砌風
오직 창송(蒼松)만이 나의 마음 알아주니, 惟有蒼松知我意
 
말년에 청절(淸節)이 이 가운데에 있구려. 晩年淸節在斯中
 
차운(次韻)
 
■■■■세상 걱정 부질없는데, ■■■■世慮空
지금사람 지취(志趣)도 옛사람과 동일하네. 今人志趣古人同
말년에 전원에 돌아오니 상마(桑麻)가 푸르렀고, 晩歸田園桑麻碧
일찍이 사은숙배(謝恩肅拜)하니 임금 옷 붉었더라. 早拜天庭錦帝紅
한밤중 달빛에 어린 대나무 하늘하늘 춤추고 半夜婆娑穉竹月
문발에 푸른 버들바람 소슬하게 부네 一簾蕭灑綠楊風
말년에 깃들어 살 곳 여기가 족하니, 暮年棲息於斯足
오직 한송(寒松)이 있어 마음에 들어서라네. 惟有寒松適意中
 
오주(鰲洲) 최휘지(崔徽之)
 
차운(次韻)
 
해 지자 정자에 올라 창공에 기대고 落日登亭倚碧空
주인이 손과 함께 동이의 술을 마시네. 主人樽酒與賓同
문발에 적신 산수는 은은한 비취빛인데, 滴簾山水微微翠
시렁 가득한 도서는 점점이 붉더라. 滿架圖書點點紅
연잎은 들쭉날쭉 천가지 모습이고 荷葉參差千種色
대나무 소리는 우수수 오경의 바람일세 篁聲淅瀝五更風
방당(方塘) 두둑에 가서 서성이니 方塘之畔盤桓立
명월(明月)과 창송(蒼松) 이리저리 섞였구려. 明月蒼松雜錯中
 
영모재(永慕齋) 정석후(丁錫後)
 
차운(次韻)
 
반환정(盤桓亭) 앞에는 환한 창공 펼쳐졌으니, 盤桓亭頭煥蒼空
내 아우의 청연(淸緣)은 진나라 도연명과 같네 吾弟淸緣晉士同
만년에 귀향하여 두 무릎 펴고 지내지만 晩節歸家雙膝展
우국충정은 촌심(寸心)이 붉더라. 微忠憂國寸心紅
좋은 밤 담담한 것은 매화 핀 처마의 달이고, 良宵淡淡梅簷月
하루 종일 소슬한 것은 대나무 섬돌의 바람이네. 盡日蕭蕭竹砌風
즐비하게 아가위 꽃 흐드러지게 만발하니, 多少棣花相雜錯
만년토록 춘색(春色)이 집안에 넘치겠네 萬年春色滿庭中
 
창주정(蒼洲亭) 한성오(韓省吾)
 
 

4. 4. 盤桓亭重建記

本朝文獻 孝顯之際尤盛 惟我祖盤桓亭先生 生
于其時 猗歟實蹟 野史詳載 衆口傳誦 垂後世而足
徵 然則不以亭有而蹟著 不以亭無而蹟泯 何必斯
亭之重建爲哉 噫先祖杖履之跡 今日復新 則後昆
羹墻之心亦復新耶 公諱養吾 字浩然 系出箕聖
世居上黨 有諱蘭佐 麗朝陞大匡太尉 諡威襄 入
我朝 有諱理 吏判 諡忠簡 三傳而有諱終孫 淸
城君 諡安襄 子諱晰 府使 始居帶方廣洞 子孫仍
家焉 有諱應祿 世子翊衛司左侍直 壬辰倡義錄
宣武功 是公之祖考也 蓋自威襄至侍直 簪紱相承
歷世赫赫 不可殫記 嗚呼 善賞花者 只觀花之蓓蕾
善論人者 只觀人之節操 不問班資之崇卑耳 天
啓丙寅 公生于廣洞 文藝夙就 始登司馬 終以宋尤庵
特薦拜光陵參奉 此其出處之正也 早學于愼齋
先生 繼而謁尤春兩先生 出入其門至三十餘年 此
其淵源之大也 在太學時 金文谷壽恒 李雙栢世華
宋霽月奎濂 難疑問答 此其從遊之明也 牛栗兩
先生之陞廡也 率湖南章甫 詣闕上疏至三十餘
度 尤翁之受譴也 叫閽伸辨至五度 此其扶斯文之
篤也 趙嗣基之構誣慈聖也 封疎請討 此其樹義
之嚴也 十一丁內艱 哀毁過節 四十丁外艱 嚼指灌
血 得延旣絶之命於三日 此其孝親之純也 率一鄕
儒生 講鄕約法 行射飮禮 此其範俗之廣也 如此節
操 今昔鮮儔 而位不稱其德 此何足爲輕重也 中年
居龍井 與諸賢設梅堂碧筒飮 其詩韻皆載邑誌 晩
年居栗川 別墅庭畔 有四株松 因搆小亭于其間 扁
之曰太古 至己巳 時象大變 色斯而歸 改其扁曰盤
桓 蓋取陶靖節撫松之義也 厥後諸儒思慕 建腏享
之院 卽高巖也 嗚呼 亭之毁久矣 我先君與四從兄
裕燮 三從叔擎柱 博謀肯搆積有年矣 至是歲春
不肖及圭喆 與昌燮基昊 禹鉉台鉉 紹述先志 得建
一亭于舊庄龍井之北 揭舊額于新楣 且移其五
世孫婦金氏旌閭于其側 是則亭在栗川時舊樣也
亭訖相告曰 惟我諸族 登斯亭聚斯亭 不墜貽謨
則斯亭歷千秋而不朽矣 願諸族勉乎哉
聖上己酉仲春下澣 不肖七世孫 瑢燮 記
 
 
반환정중건기(盤桓亭重建記)
 
본조(本朝) 문헌(文獻)은 효종과 현종 때에 더욱 성대했다. 우리 선조 반환정 선생(盤桓亭先生)께서는 그 시대에 태어나서 아름다운 실적(實蹟)이 야사(野史)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고 외워져서, 후세에 드리워져 징험할 하다. 그렇다면 정자가 있다고 해서 자취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정자가 없다고 해서 자취가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하필 정자를 중건하였는가. 아아, 선조(先祖)께서 노닐던 정자를 오늘 다시 새로 중건했으니, 후손들의 그리워하는 마음 또한 더 새롭지 않아서이겠는가.
공(公)의 휘(諱)는 양오(養吾), 자(字)는 호연(浩然)이다. 계통은 기자성인에서 시작되어 대대로 상당(上黨)에서 살았다. 휘(諱) 난좌(蘭佐)는 고려(高麗)조에 대광태위(大匡太尉)에 올랐고, 시호(諡號)는 위양(威襄)이다. 우리 조선(朝鮮)에 들어와서 휘(諱) 이(理)는 이판(吏判)을 지냈고 시호(諡號)는 충간(忠簡)이다. 3대가 지나서 휘(諱) 종손(終孫)은 청성군(淸城君)에 봉해졌고 시호는 안양(安襄)이다. 아들 휘(諱)는 석(晰)이고 부사(府使)를 지냈는데, 비로소 대방(帶方)의 광동(廣洞)에서 살기 시작하여 자손(子孫)도 이어 그곳에서 살았다. 휘(諱) 응록(應祿)은 세자익위사 좌시직(世子翊衛司左侍直)을 지냈고 임진년에 창의해서 선무공신(宣武功臣)으로 녹훈되었으니, 바로 공의 조고(祖考)이다. 대개 위양(威襄)에서부터 시직(侍直)까지 고관대작이 이어졌고 대대로 혁혁한 벼슬을 지낸 내력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
오호라, 꽃을 잘 감상하는 사람은 꽃 봉우리만 살피며, 사람을 잘 논하는 사람은 사람의 절조(節操)만 살피고, 반자(班資)의 높고 낮음은 묻지 않는다. 공은 천계(天啓) 병인년〔 1626년(인조4)〕에 공은 광동(廣洞)에서 태어났다. 문(文)·예(藝)을 일찍이 성취하여 사마(司馬)에 합격하였으며, 마침내 송우암(宋尤庵)이 특별이 천거(薦擧)하여 광릉참봉(光陵參奉)에 제배(除拜)되었다. 이것은 그 출처(出處)의 정도(正道)이다.
일찍이 신독재선생(愼獨齋先生)에게 배웠고, 이어서 우암(尤菴)과 동춘(同春) 양선생(兩先生)을 배알(拜謁)하여 그 문하(門下)를 출입(出入)한지 30여년이다. 이것이 그 연원(淵源)의 대략이다. 태학(太學)에 재학할 때에는 김문곡(金文谷) 수항(壽恒), 이쌍구(李雙栢) 세화(世華), 송제월(朱霽月) 규렴(奎濂)과 난의(難疑)를 문답(問答)하였으니, 이것은 그 종유(從遊)의 분명함이다.
우율(牛栗) 양선생(兩先生)을 승무(陞廡)할 때에 호남(湖南) 장보(章甫)들을 인솔하고 대궐에 상소(上疏)를 30여 번 올렸으며, 우옹(尤翁)이 임금의 견책(譴責)을 당할 때에도 신변(伸辨)상소를 대궐에 다섯 번이나 올려 호소했다. 이것이 그 사문(斯文)을 부지하였던 독실함이다. 조사기(趙嗣基)가 자성(慈聖)을 모함 할 때에는 봉소(封疎)를 올려 성토(聲討)할 것을 청하였다. 이것은 그 의(義)를 수립하였던 엄격함이다.
 
11살 때 어머니 상(喪)을 당해서 애도하는 마음에 몸이 훼손되었고 예절을 지나쳤으며, 40살 때 아버지 상을 당해서는 손가락을 깨물어 수혈(輸血)하여 이미 끊어진 생명을 3일이나 연명시켰다. 이것은 그 부모에게 효도하는 순수함이다. 일향(一鄕)의 유생(儒生)들을 인솔하고 향약법(鄕約法)을 강론하고 사음례(射飮禮)를 시행하였다. 이것은 그 풍속을 바로잡은 범위이다. 이와 같은 절조(節操)는 고금에 짝할만한 이 드물고, 벼슬은 덕망(德望)에 맞지 않았으니, 이 어찌 족히 경중(輕重)을 논하겠는가.
중년에 용정(龍井)에 거처할 적에 제현(諸賢)들과 매당(梅堂)의 벽통음(碧筒飮)을 설행하였는데, 그 시운(詩韻)은 모두 읍지(邑誌)에 실려 있다. 말년에 율천(栗川)에 살 때에는 별장[別墅]의 뜰 두둑에 4그루 소나무가 있었는데 인하여 소정(小亭)을 그 사이에 짓고 편액을 ‘태고(太古)’라고 하였다.
기사(己巳)년에 이르러 시대가 크게 변하니 조짐을 살피고 돌아와 편액을 ‘반환(盤桓)’이라 고쳤다. 이는 대개 ‘도정절(陶靖節)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였다.’는 의(義)에서 취한 것이다. 그 이후에 제유(諸儒)들이 선생을 사모(思慕)하기 위하여 제향(祭享)을 모실 서원(書院)을 건립하였으니 바로 고암서원(高巖書院)이다.
오호라, 정자가 훼철된 지 오래되었다. 우리 선군(先君)께서 사종형(四從兄) 유섭(裕燮), 삼종숙(三從叔) 경주(擎柱)와 함께 정자를 중건한 것을 널리 의논한지가 여러 해가 되었다. 이 해(기유년) 봄에 이르러서 불초(不肖)와 규철(圭喆), 그리고 창섭(昌燮)·기황(基昊)·우현(禹鉉)·태현(台鉉) 등이 함께 선대의 뜻을 이어서 정자를 구장(舊庄)의 용정(龍井) 북쪽에 걸립할 수 있었다. 옛 편액을 새로 건립한 문지방에 내걸었고 또 오세(五世) 손부(孫婦) 김씨(金氏)의 정려(旌閭)를 그 옆에 옮겼다. 정자는 율천(栗川)에 있을 때 옛 모습 그대로였다.
정자를 완공하고 서로 말하기를 ‘우리 제족(諸族)들이 이 정자에 오르고 이 정자에 모여서 선대의 가훈을 실추하지 않는다면 이 정자는 천추(千秋)가 지나도 썩지 않을 것이니 바라건대 제족(諸族)들은 힘쓸지어다.’라고 했다.
 
성상(聖上) 기유(己酉) 중춘(仲春) 하한(下澣) 불초(不肖) 7대손 용섭(瑢燮)은 기(記)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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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