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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정자 (2013)임실문화원의 지식창고 2018.07.17. 18:34 (2018.07.16. 02:38)

15. 비암정(比巖亭) - 지사면 관기리

 
비암정기(比巖亭記) / 운수(雲水)의 소재지 동쪽, 조치(朝峙)의 남쪽 관터[館基]마을에 사당(祠堂)이 있으니 ‘관곡서원(館谷書院)’이라 한다. 우리 선조(先祖)이신 청호(淸湖)·비암(比巖) 양선생(兩先生)의 제향(祭享)을 모시는 곳이다.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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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比巖亭記

雲水治東 朝峙之陽 館基之村 有祠曰館谷
書院也 卽我先祖淸湖比巖兩先生妥享之
所也 伏惟我先祖比巖先生 生於丹城靑峴
舊第 贅居舊南原館基 因以爲世莊焉 而
當靖陵康陵之際 擧一國專尙時文之日 肄
業而擧進士 獨能留心古學 力行窮居 不以
得喪累其中 究明天人性命之原 探討儀文
度數之詳 著有成說 具在箱篋 而丁酉再亂
家藏文籍 一任灰燼於兵火之中 平生著述
許多文字 一無所傳 而惟其遺範餘韻 至今
爲鄕儒之寓慕者 今之爲亭也 非徒此地之
爲吾祖所嘗杖屨之所不忍廢 實欲使吾後
裔 皆知吾祖德學之懿 而陟降彷彿於斯亭
庶幾有以追慕而紹述焉 先生之歿距今已
歷四百餘載 子姓蕃衍 無處累百 然散在各
處 尙未遑於遺志 歲癸亥後孫南根炳龜炳
璇 收議諸宗 創建一亭於里傍比巖之上 因
以先生舊扁揭之 請余記其顚末 正圭竊念
吾邦舊以仁孝爲治 大夫士庶之族 靡不盡
力於奉先追慕之節 相與勉强慕效 搆丙舍
起墳庵崇棟疊架突兀 相望於嵁河 叢薄之
間 雖其事之不可以經據者 而其爲俗亦
不可謂之不美矣 惟我後裔 乃能守持於板
蕩之會 經營於艱薄之時 恢舊日之圖 而拓
維新之址 以立永世不替之規 是其事決 非
可以强宗富族之用仂 衍費土木以侈 一時
觀聽者比也 爲吾後裔者 果能深體其志 講
明詩禮 敦修孝弟 克紹先徽之重 而不失賢
人之苗裔否耶 詩曰 聿修厥德 無忝爾祖 登
是亭者 幸有明諦此義 而毋循鄕里之故轍
也夫
甲子仲秋節 十四世冑孫 正圭 謹記
 
 
비암정기(比巖亭記)
 
운수(雲水)의 소재지 동쪽, 조치(朝峙)의 남쪽 관터[館基]마을에 사당(祠堂)이 있으니 ‘관곡서원(館谷書院)’이라 한다. 우리 선조(先祖)이신 청호(淸湖)·비암(比巖) 양선생(兩先生)의 제향(祭享)을 모시는 곳이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선조(先祖)이신 비암선생(比巖先生)은 단성(丹城) 청현(靑峴)의 고향집에서 태어났는데 구남원(舊南原) 관터[館基]에 더부살이를 하다가, 인하여 대대로 살게 되었다.
정릉(靖陵: 中宗)·강릉(康陵: 明宗) 연간에는 모두 온 나라가 오로지 시문(時文)만 숭상하던 시대였는데 선생은 과업(課業)을 익혀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다. 유독 고학(古學)에 마음을 몰입하여 힘써 실천하고, 궁하게 살면서도 득(得)·상(喪)으로 인해서 누가 되지 않았고, 천인(天人)·성명(性命)의 근원을 규명하고, 의문(儀文)·도수(度數)를 상세하게 탐구하고 토론하여, 그 학설을 저서(著書)로 만들어 모두 상자에 보관해두었다.
그러나 정유재란(丁酉再亂)이 발발하자, 집안에 소장했던 문적(文籍)이 병화(兵火) 중에 다 불에 타버렸고, 평생 저술한 많은 문자(文字)가 한 장도 전해진 것이 없다. 그래서 오직 그 유범(遺範)과 여운(餘韻)만 지금까지 향유(鄕儒)들이 앙모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이곳에 정자를 지은 것은, 이 땅이 우리 할아버지가 장구(杖屨)하셨던 곳이라서 차마 폐기해버리지 못해서가 아니고, 사실은 우리 후손들에게 모두 우리 할아버지의 훌륭한 도덕과 학문을 알도록 하고, 그리고 이 정자에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시는 모습을 상상해서 추모(追慕)하도록 하고, 또 이어 계술(繼述)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선생께서 돌아가신지 지금 400여년이 지났고, 자손이 번성한지 무려 여러 백년이 되었다. 그러나 각처에 흩어져 살아서 아직 유지(遺志)에 대해 마음 쓸 겨를이 없었다. 계해(癸亥)년 후손 남근(南根)·병구(炳龜)·병선(炳璇)이 여러 종중(宗中)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한 정자를 마을 옆 비암(比巖) 위에 창건(創建)하고, 인하여 선생의 옛 편액을 내걸고, 나에게 그 전말(顚末)을 기록해 줄 것을 청하였다.
나 정규(正圭)는 가만히 생각건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인(仁)·효(孝)로써 다스려졌다. 대부(大夫)·사(士)·서(庶)들이 선조를 받들어 추모하는 예절에 대해 힘쓰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서로 권면(勸勉)하고 본받아 병사(丙舍)를 짓고 분암(墳庵)을 짓되, 높은 용마루에 첩첩 시렁을 우뚝하게 산과 바다를 서로 바라보게 지었다. 분주한 중에도 그 조상을 받드는 일은 경거망동하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풍속에 있어서도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오직 우리 후손은 혼탁한 시대에 지키고 유지하여 어려울 때에 정자를 지었고, 옛 정자 도형(圖形) 보다 더 넓고 그리고 새 터도 더 확장하여 영세(永世)토록 변치 않는다는 법규(法規)를 세워 일을 결론지었다. 부강한 종족(宗族)이 쓰고 넘치는 비용을 들여 토목(土木)을 사치스럽게 써서 한때 경관을 알리려는 정자와는 비교할만한 것이 아니다. 우리 후예(後裔)가 과연 그 유지(遺志)를 깊이 본받아 시(詩)·예(禮)를 강론하여 밝히고, 효(孝)·제(悌)를 돈독히 실천하고, 선대의 훌륭한 뜻을 이어받아 중히 여긴다면, 현인(賢人)을 실추시키지 않는 후손이 될 것이다.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마침내 그 덕(德)을 닦아, 너의 조상을 더럽히지 말라.”라고 하였다. 이 정자에 오르는 사람은 바라건대 이 의미를 분명히 알아서, 향리(鄕里)의 옛 잘못된 전철(前轍)을 밟지 말기를 바라노라.
갑자(甲子) 중추절(仲秋節) 십사세(十四世) 주손(冑孫) 정규(正圭)는 삼가 기(記)하노라.
 
 
 

2. 2. 比巖亭上梁文

山抱水廻可認千年風氣之攸萃
翬飛鳥革遽見一日棟宇之新成
閭井改觀
洞府增彩
 
恭惟比巖李先生
月城苗裔
陜川良士
胚胎於淸湖東萊之世 宜典型氣類之相承傳
生老於南冥浩然之鄕 寔敎澤風猷之多薰襲
藝文素有長才擧業而進士弱冠
孝愛本根天性居喪而侍墓三年
胥宇湖南名郡
卜宅館基深區
樂琴書於靜中居然我泉石
謝簪笏於分外邈矣彼風塵
生涯一付詩書迪來裔於裘箕之業
世運已嬗桑海寓經綸於稼穡之功
紛華視若浮雲
立志(山+乞)如砥柱
霧鎖山頭遊筇穿比巖之逕
春深洞口人烟起花樹之村
水不荒地不廢一方之輿誦尙騰
懦可立頑可廉百世之遺風不息
善必積而有慶
德無修而不興
雲仍日蕃檐甍秩秩而盈閈
世代昭明章甫濟濟而景行
喬木歡顔維恭敬於桑梓
祠宇高(山+乞)奠籩豆於春秋
乃起數間亭子
爲護古昔茅廬
孝思僉至咸篤追遠之深誠
心力俱臻胥遵肯堂之至訓
迨癸亥而始營
諏玄龜而得吉
輪良材而適用椳闑扂樑咸當其宜
集巧匠而分任斧斤刀鉅各執其職
閭里聳觀瞻之美
溪山增靈秀之輝
爰處爰居雲仍擧切怵愴之感
斯歌斯聚衿珮益懋絃誦之工
爲助邪呼
聊陳短頌
 
兒郞偉抛樑東
扶桑瑞日祠齋宮
洋洋陟降尙如在
宜爾雲孫福祿同
 
抛樑南
羅列奇峯翠滴嵐
世世多鍾賢傑出
莫令事業古人慙
 
抛樑西
德嶂靑蒼天與齊
看取峻嶒須壁立
好將髦秀屬提撕
 
抛樑北
鳳凰逝矣巖名特
時來産出吉祥人
穆穆聲音鳴一國
 
抛樑上
萬里無雲天宇曠
君子胸襟相與沕
閒居遺錄令人仰
 
抛樑下
一道淸川日夜瀉
看取有源相續來
祖傳孫繼無窮者
 
伏願上梁之後
風雨不驚
絃誦無恙
資之深積之久實有自得之功
近者悅遠者從載見明來之樂
柱礎鞏固如山河不崩騫
慶祿綿延閱世刦彌昌大
甲子八月旣望 後學 安東 權熙哲 謹撰
 
 
비암정상량문(比巖亭上梁文)
 
산이 품어주고 물이 돌아나가니 천년의 풍기(風氣)가 모이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꿩이 나는 듯 새가 나는 듯 날렵하니 새 정자가 갑자기 하루에 지어진 것을 보겠노라. 여정(閭井)은 경관이 바뀌었고, 동부(洞府)는 광채가 한층 더 빛났도다.
삼가 생각건대 비암(比巖) 이선생(李先生)은 월성(月城)의 후예(後裔)이고, 합천(陜川)의 양사(良士)였다. 청호(淸湖)·동래(東萊)의 집안에서 배태(胚胎)하였으니 마땅히 기류(氣類)를 본받아 서로 이어서 전수했을 것이고, 남명(南冥)·호연(浩然)의 고향에서 나고 늙었으니 진실로 풍유(風猷)의 교택(敎澤)을 허다하게 훈습했을 것이네. 예(藝)·문(文)에는 본래 특출한 재주가 있었으니 과거에 응시하여 젊은 나이에 진사(進士)에 올랐고, 효도와 우애는 본래 천성(天性)이 타고났으니 상(喪)을 당하여 시묘(侍墓)살이 3년을 지냈도다.
서로 집을 지었으니 호남(湖南)의 유명한 고을에 지었고, 집터를 잡았으니 관터[館基]의 아득한 지역에 잡았네. 거문고와 글을 조용히 즐겼으니 거연(居然)히 우리 경치 좋은 정자에서 하였고, 비녀 홀기를 분수밖에 받아 사은숙배하였으니 아득히 저 풍진(風塵)에서 했도다.
생애를 한 시서(詩書)에 부쳤으니 후손으로서 기구(裘箕)을 이끌어 나갔고, 세운(世運)이 이미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변화하니, 경륜(經綸)은 가색(稼穡)한 공노에 붙였네. 분화(紛華)한 것 보기를 뜬구름같이 했고, 입지(立志)는 우뚝이 지주(砥柱)처럼 세웠네. 연무가 산머리를 봉쇄하면 노는 지팡이는 비암(比巖)의 길을 지나갔고, 봄이 동구(洞口)에 깊어지면 밥하는 연기가 화수(花樹)의 마을에서 피어났도다. 수령에 부임해서는 물이 마르지 않게 하고 땅이 황폐하지 않게 하니 온 고을의 칭송이 자자했고, 나약한 사람은 뜻을 세우게 하고 완악한 사람은 청렴하게 하니, 백년토록 그 유풍(遺風)이 전해졌도다.
선(善)은 반드시 쌓아야 경사가 있지만, 덕(德)은 닦는 것이 없으면 부흥하지 않는데, 자손이 날로 번성하니 용마루 높은 집이 즐비하게 마을에 가득하고, 세대(世代)가 다스려지니 장보(章甫)들이 제제(濟濟)히 항렬을 이루었도다. 교목(喬木)에서 기쁘게 맞으니 오직 상재(桑梓)를 공경했기 때문이고, 사우(祠宇)가 높고 우뚝하니 봄가을에 변두(籩豆)를 올렸네.
이에 두어 칸 정자를 지었으니, 옛 초라한 정자를 보강한 것이고. 효사(孝思)가 다 지극하니 조상을 추원(追遠)하는 깊은 정성이 모두 독실해서이네. 심력(心力)을 함께하였으니 정자를 긍당(肯堂)하는 지극한 교훈을 서로 지켰기 때문이네. 계해(癸亥)년에 공사를 시작했으니, 검은 거북에게 물어 길일을 얻어서했도다. 좋은 목재를 실어다가 지도리[椳]·문말뚝[闑]·문빗장[扂]·들보[樑]를 만들었는데 다 적합한 재목이었고, 솜씨 좋은 장인을 소집하여 도끼[斧]·도끼[斤]·칼[刀]·톱[鉅]를 분리해 맡겼는데 각각 자기 직책을 집행했도다.
여리(閭里)는 보는 경관의 아름다움이 돋보였고, 계산(溪山)은 빼어나고 신령한 광채가 한층 더했도다. 이에 살고 이에 거주하니 자손들은 모두 출창(怵愴)한 마음이 절실했으며, 이에 노래하고 이에 모이니 선비들은 더욱 현송(絃誦)하는 공부에 힘썼도다. 야, 협조하라, 에오라지 단송(短頌)을 부르겠노라.
 
어영차 들보를 동쪽에 던지니, 兒郞偉抛樑東
동쪽에 상서로운 해 뜨자 재궁(齋宮)에 제사하네. 扶桑瑞日祠齋宮
태연히 올라가고 내려가며 아직도 살아계신 듯하니, 洋洋陟降尙如在
마땅히 후손에게 복록이 많이 모일 것이네. 宜爾雲孫福祿同
 
어영차 들보를 남쪽에 던지니, 抛樑南
기이한 봉우리 나열하여 비취빛으로 물들었네. 羅列奇峯翠滴嵐
대대로 자손이 많아 훌륭한 인물을 걸출하게 해주시고, 世世多鍾賢傑出
사업(事業)은 고인(古人)에게 부끄러움이 없게 해주소서. 莫令事業古人慙
 
어영차 들보를 서쪽에 던지니, 抛樑西
높은 덕은 청창(靑蒼)한 하늘과 나란히 했네. 德嶂靑蒼天與齊
험준한 곳 살펴서 꼭 울타리를 세워주시고, 看取峻嶒須壁立
재주 있는 선비를 잘 받들어 일깨워주소서. 好將髦秀屬提撕
 
어영차 들보를 북쪽에 던지니, 抛樑北
봉황은 떠나갔으나 바위에 수컷새끼 낳았네. 鳳凰逝矣巖名特
제 때에 와서 길상(吉祥)한 사람을 출산하니, 時來産出吉祥人
목목(穆穆)한 성음(聲音)은 온 나라를 울리네. 穆穆聲音鳴一國
 
어영차 들보를 위로 던지니, 抛樑上
만리에 구름 한 점 없고 하늘도 광활하네. 萬里無雲天宇曠
군자는 흉금(胸襟)을 서로 더불어 함구하나니, 君子胸襟相與沕
평소에 남긴 기록을 사람들이 앙모토록 하네. 閒居遺錄令人仰
 
어영차 들보를 아래에 던지니, 抛樑下
한 줄기 청천(淸川)은 밤낮으로 흘러가네. 一道淸川日夜瀉
근원을 살펴보니 서로 연속해서 흘러나오니, 看取有源相續來
선조는 전해주고 후손은 이어 무궁할 것이네. 祖傳孫繼無窮者
 
삼가 바라건대 상량(上梁)을 올린 다음에는 비바람이 불어도 놀라지 않게 해주시고, 거문고 타고 글 읽으며 무병하게 하소서. 오래 자본을 축적하여 모았으니 실로 자득한 공노가 있을 것이고, 멀고 가까운 곳에서 기뻐하여 따르니 이에 밝아오는 낙을 보게 되리라. 기둥과 주춧돌이 견고하여 산하(山河)처럼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큰 복록이 이어져서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더 창성하게 하소서.
 
갑자(甲子) 8월 15일 후학(後學) 안동(安東) 권희철(權熙哲)은 삼가 찬(撰)하노라.
 
 
 

3. 3. 十三代孫炳周

比巖亭周圍造景獨自喜捨樹植
其奉先追慕之誠意 特異於諸族
故玆以記之
檀紀四三一七年 甲子八月
 
십삼대손(十三代孫) 병주(炳周)가 비암정(比巖亭) 주위(周圍)의 조경(造景)을 독자(獨自)로 희사(喜捨)하여 나무를 심었으니 그가 선조를 받들고 추모(追慕)하는 성의(誠意)가 여러 종족 중에 특별했다. 그러므로 이에 기록한다.
 
단기(檀紀) 4317년 갑자(甲子)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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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