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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수의 세상이야기오문수의 지식창고 2018.08.06. 13:28 (2018.08.06. 13:28)

일본해로 표기된 동티모르 역사교과서 동해로 바꾸기도

 
[인터뷰] 동티모르와 몽골에서 인쇄 기술 지도해주는 신익재
▲ 동티모르와 몽골에서 선진 인쇄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신익재씨. 몽골인들이 성산으로 여기는 알타이산에서 촬영했다. ⓒ 오문수
 
몽골알타이 답사단이 12일(6.17~6.28) 동안 몽골서부를 여행할 동안 일행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분이 있었다. 항상 미소를 머금고 답사단과 몽골 운전사 중간에서 통역과 궃은 일을 도맡아하던 사람. 달리던 차가 사막 한가운데서 펑크가 나 일행이 막막해하면 "몽골은 원래 그런 곳이니 이해해주세요"라며 한국 답사단을 달랬다.
 
"아무것도 볼 게 없는데 거기를 왜 가느냐?"고 항의하는 몽골 운전사들한테는 "너희 나라를 이해하려고 여기까지 오셨다. 손님들이니 힘들더라도 끝까지 잘해드려라"며 운전사들을 달랬다. 10여 년간 몽골을 오가며 사업하는 동안 몽골을 사랑하고 몽골인들을 사랑한 사람 신익재씨다.
 
3000㎞ 이상의 긴 여정을 함께하며 그에게서 소중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는 어려운 이웃을 사랑한다. 코이카단원으로 동티모르에서 봉사했고 몽골에서도 어려운 이들을 돕는다. 몽골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한 달 후(7.28) 답사단 일행 중 몇 분이 답사기와 사진집 발간을 위한 모임을 가졌다. 저녁을 먹으며 신익재 사장으로부터 어려운 이들 편에 서서 정의와 평화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 코이카단원으로 동티모르에 파견된 시기는?
"2011년 7월 30일부터 10월 26일까지 코이카와 신구대학협력단에서 실시한 동티모르 교과서보급사업 연수생초청 강사로 참여하여 서울인쇄센터에서 교육을 담당하였습니다. 2012년 7월부터 12월까지 동티모르국정교과서 인쇄소의 현장기술지도에 참여했습니다."
 
▲ 동티모르 국립교과서 인쇄센터(NGPTL: National Graphic arts & Printing center in Timor Leste) 준공식(2012.9.7) 모습. 우리나라가 500만 불을 무상지원해 완성한 곳으로 타르 마탄 루악 대통령과 서경석 동티모르 대사가 시설을 돌아보고 있다. ⓒ 신익재
 
- 동티모르에서 한 일은?
"동티모르는 2002년 독립한 신생국으로 400년간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으며 1975년 인도네시아에 통합된 후 극심한 내란이 일어나 많은 양민이 희생되었습니다. 그 결과 1999년 우리나라 상록수부대가 평화유지군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당시 주동티모르 서경석 대사님께서 학교를 순방하면서 느낀 것은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책이 뭔지도 모를 정도로 열악한 교육환경을 보고 본국에 국정교과서를 발간할 수 있는 인쇄소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해 교과서를 제작할 수 있는 인쇄기를 비롯한 모든 설비, 인쇄기술자 양성을 통한 교과서 제작을 원조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신구대학 오세웅 교수와 함께 인쇄전문가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교과서 제작 실무를 담당하였습니다."
 
- 동티모르인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쇄는 물론 컴퓨터조차도 다뤄보지 못한 직원들이 책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때문에 파견된 전문가들이 직접 책을 만들어주자는 의견이 있었어요. 하지만 현지 기술자가 직접 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향후 교과서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도하였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본인들이 만든 땀과 눈물이 밴 교과서를 대통령에게 전달할 때 뿌듯했습니다. 언론보도를 보고 먼 지방에서 올라와 교과서를 얻어 기뻐하며 돌아가는 선생님, 영양실조에 일을 하다가 쓰러진 3명의 엄마인 여직원, 늦은 밤까지 열심히 노력하던 직원들의 모습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특별히 기억나는 일은 지리 역사교과서에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된 것을 통티모르교육부와 콘텐츠를 제공한 포르투갈 담당자를 찾아가 교체하도록 설득하여 반영시킨 것입니다."
 
- 동티모르 근무를 마치고 느낀 보람은?
"독립초기 치안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도 있지만 무엇보다 수인성 질병에 걸리면 비행기를 타고 인도네시아 발리나 서울로 후송하여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이질에 걸린 오세웅 교수께서 끝까지 교과서 사업을 완료하고 이듬 해 그 후유증이 더해져 갑자기 별세하여 큰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한국전쟁 중에도 유엔군의 도움을 받아 교과서를 찍었는데 우리가 동티모르의 미래를 위해 베풀 수 있어 보람 있었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욱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아서 일정을 연장하여 귀국하던 때 젖먹이 아이를 때어놓고 떠나는 심정이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너희의 미래가 달린 이곳을 꼭 지키라고 당부했습니다."
 
- 몽골은 언제부터 그리고 무슨 일로 갔나.
"몽골은 1990년 민주화정부 수립이전에는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2011년 서울인쇄센터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을 때 몽골인쇄산업협회의 자르갈 사장이 방문한 것을 인연으로 양국 인쇄산업 간 교류가 시작되었습니다. 매년 몽골의 인쇄산업체 임직원이 한국의 인쇄산업 기자재전 참관과 인쇄업체 방문, 몽골 인쇄기술자의 한국초청 교육을 하였습니다. 주로 러시아와 독일, 중국으로부터 기술과 장비, 재료를 수입하여 사용하는데 한국과 관계를 증진시켜 장비도입과 기자재의 수출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몽골이 외환위기로 IMF지원을 받는 중이지만 점차 회복되고 있습니다."
 
- 10여 년간 몽골을 오가며 몽골인들이 우리와 닮은 점은 무엇이며 다른 점은 무엇인가?
"산업이 고도화되고 소득이 높아진 대한민국은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 풍요해졌지만 짧은 시간에 높은 성장을 추구하다보니 잃은 것도 많고 과거에 비해 행복해졌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몽골은 드넓은 땅에 비해 인구가 350만에 불과합니다. 가족애와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주위에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 해결하려는 독립심이 높습니다. 차세대에 대한 교육열도 높은 편입니다. 근검절약하고 매사에 진취적인 자세는 우리와 닮았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 한국에서 17년간 일하다 귀국해 신익재씨(맨 오른쪽)의 도움으로 여행사를 차린 저리거(맨 왼쪽)씨와 부인. 몽골 서부 알타이지역 3000킬로미터를 여행하는 동안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값진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 오문수
 
- 저리거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몽골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회사인 웅거트사에서 최첨단 인쇄설비를 한국에서 도입하였으나 원활하게 운영이 되지 않아 약1년 간 한국인 기술자와 함께 울란바토르에 상주하며 기술지원을 하였습니다. 그때 공장장이 저리거씨입니다. 몽골의 풍요로운 자연과 지역 간 교통인프라가 좋아지면 관광이 보다 활성화될 것으로 보고 저리거씨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겨울철 비수기가 길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앞으로 동계스포츠 시설 등이 확충된다면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몽골인들을 대할 때 한국인들이 주의해야할 점은?
"몽골인 뿐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 온 분들을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국제결혼을 해서 한국에 정착하신 분도 계시고 돈을 벌기위해서 온 분도 있습니다. 보다 관심을 가지고 배려를 해주었으면 합니다. 단순한 업무에 한정하기보다는 자기개발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귀국해서 한국과 맺은 인연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모두에게 좋겠습니다.
 
몽골을 여행하는 중에 운전기사와 트러블이 종종 발생합니다. 대부분 관습과 기대치가 달라서 발생하기도 합니다. 계약할 때 세세한 부분까지 서로 합의하고 충분히 이해를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의 눈높이에서 부족한 것을 먼저 도와주고 손을 내민다면 오히려 기대이상의 좋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 한국과 몽골의 인쇄산업 교류에 기여하여 몽골정부 국회부의장이 직접 공로패를 수여하였다. ⓒ 신익재
 
- 몽골의 발전가능성과 한국이 연대해야할 점은 ?
"몽골은 예로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한국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풍부한 지하자원과 다양한 자연환경, 우수한 인력 등 발전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거대시장인 중국과 인접하고 유럽으로 나가는 길목입니다. 앞으로 남북철도가 연결된다면 울란바토르까지 원자재를 철도로 운송하고 임가공을 통해 중앙아시아와 세계시장으로 바로 내보낼 수가 있습니다. 한국의 우수한 기술력과 자본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몽골산업 발전에 동참하여 중국과 일본의 중간에 낀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몽골과 연대한다면 양국의 미래는 보다 나아질 것으로 봅니다."
 
 
▲ 몽골알타이 답사단 일행 34명이 고비사막과 대초원길을 열흘 동안 여행한 거리는 3000킬로미터가 넘었다. 4륜구동 차량 6대에 분승한 일행은 거의 매일 밤 10시가 넘어 초원(텐트)과 호텔, 게르에 도착해 숙식을 해결했다. 길이 험해 고장난 차량의 총합은 10대가 넘었다. 일행이 무사히 여행을 마치도록 안내해 준 신익재씨와 몽골여행사 저리거 사장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다. ⓒ 오문수
 
- 이번 답사단과 3000㎞의 대장정을 마치고 난 소감은?
"우리 민족의 원류를 찾는 답사단과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역사학자, 각 전문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갖춘 단원들로 구성된 답사단 모두가 야생에 잘 적응하시고 인내를 갖고 잘 협조해주셔서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3000년 이전 우리 선조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초원기마민족들과의 문화적인 동질성을 확인하였고, 그들의 기억을 통해서 잊었던 역사를 되살리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아가는 노력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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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