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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스쳐간…바람처럼의 지식창고 2018.09.01. 09:45 (2018.09.01. 09:36)

2018 이사부 항로 답사, 전두성의 항해 이야기(5) 회항!

 
7월 4일. 태풍은 밤새 어디로 사라져 버렸고…드디어 고대하던 출항 지시가 떨어졌다. 회항이다.
7월 4일
태풍은 밤새 어디로 사라져 버렸고…
드디어 고대하던 출항 지시가 떨어졌다. 회항이다.
 
주섬주섬 계선 줄을 걷어 들인다.
볼라드 간격이 무척 넓은 선착장이라 홋줄을 거의 끝머리까지 풀어서 걸어 놓은 터이다.
40mm 굵기에 대략 30여 m 넘는 길이가 무려 열한 가닥이다.
세 명의 선원으로 각각의 로프를 끌어당겨 정리하자니 좀 벅차다.
 
기관장이 선미 로프를 거두어 한쪽 구석에 둥글게 사렸는데… 선장이 기대하는 수준에 못 미쳤었나 보다.
애써 사린 로프를 실타래 형태로 다시 사릴 것을 지시한다.
이런 이런…, 비에 젖은 로프라 무겁기도 하지만 선원 한 명당 벌써 서너 가닥씩을 애써 정리한 터다.
 
기관장이 어이없다는 듯 선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리 째려보는 거요!" 끓어오르는 기름에 선장이 물을 부었다.
 
황당한 지시라며 기관장이 조목조목 부당한 점을 지적했다.
"지금껏 애써 작업했던 걸 몰라서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게요?"
 
선장은 그런 태도를 하극상으로 받아들였나 보다.
결국 그동안 쌓였던 감정까지 더하여 아침나절부터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칠순 선장과 팔순 기관장의 대립이다. 사관들의 다툼에 병조장이 끼어들기도 그렇고…
 
<울릉도 출항 때의 사진을 잠시 빌려 옴>
 
 
이번 회항도 중간 기항이 없다. 여수까지 30여 시간을 계속 항해한다는 계획이다.
기관과 항해 부서는 모두 8시간 단위로 각각 당직을 필요로 하는데…
선장, 기관장을 포함한 네 명의 crew로는 좀 무리다!
 
못 할 바는 없지만, 회항 후에 어떤 다급한 항해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 기관은 두 시간마다 터빈 연료 탱크를 확인하고 연료 보충과 엔진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지난번 여수~삼척 항해 때도 기관장은 스물다섯시간 내내 등을 못 붙이고 기관 점검하며 항해했다.
 
여럿을 상대로 무엇을 할 때는 늘 철저하게 기획하여 준비하고,
역할을 나누는 대원에게는 세부 계획서와 함께 설명을 통하여 이해를 구하고 행동했던 나였다.
또한 생사를 걸고 등반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칭찬과 격려, 나눔은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고…
소통과 배려하는 것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범선에 승선하면서 이해 못 할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09:10
동해에 사는 이효웅 님이 전송을 나와 부두에서 라인맨 역할을 해준 덕분에 수월하게 출항한다.
귀항, 가슴에 울릉도 항해의 추억을 간직한 채 그렇게 삼척을 떠났다.
출항하면서 한참 동안 뱃머리에 서서 파도에 몸을 맡기고 바람을 안았다.
 
 
11:30
 
태풍은 사라졌지만, 끝자락 바람에 아직 파도가 거칠다.
풍향이 괜찮을듯싶어 선수 제노아 세일을 펼쳤으나 두어 시간도 안 되어 풍향은 바뀌었고 할 수 없이 세일을 내렸다.
 
로신(슬라와)이 헤드스테이 윈치를 돌려 세일을 감는 동안 롤러에 매어둔 세일 시트를 풀어내는데,
워낙 강한 바람인 것을 생각지 않고 잠시 방심하다 시트를 놓쳤다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 로프 파워가 그렇게 강할 줄은 미처 상상을 못 했다.
자칫 바닥에 널브러진 로프 자락에 손발이라도 걸려있었으면 큰 사고로 이어졌을 것이다.
사고 없이 또 한 번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13:30
 
 
18:30
 
19:00
포항 앞바다 장기 곳, 토끼 꼬리를 지나며 어둠이 다가들었다.
 
22:10
선장님을 일찍 선실로 보내고, 종일 휴식을 하게 했던 로신(슬라외)을 깨워 함께 항해 당직 근무를 한다.
GPS 플로터와 레이더를 틈틈이 확인하며 주변 선박 항해 등과 마스트 등을 관찰한다.
흐린 날씨에 해무까지 있어 시야가 좋지 않다.
 
 
 
 
7월 5일
 
24:00, 울산을 지나며 VTS에 선위 통보를 하고자 했으나 VHF PTT가 말썽이다.
이 근처는 정박한 선박도 많고 통과 선박도 꽤 있는데 VHF 무전기 송신이 안 되니 큰일이다.
손은 오토 파일럿으로 타각을 세밀하게 조정하면서 눈은 항로를 살피고,
혹시 우리 범선을 찾는 통신이 없을까 하여 귀까지 밝힌다.
 
GPS 플로터와 레이더 불빛이 강렬하기에 모니터는 검은 천으로 가려두고 가끔 살펴야 한다.
밝은 모니터 때문에 항로 견시할 시력을 방해받기 때문이다.
로신(슬라외)과 함께 눈을 부릅뜨고 레이더 비교하여 전방 항로를 확인한다.
 
 
00:20
 
 
03:00~050:0
울산 VTS 구역을 지나 부산 앞바다 기장 근처로 접어들었나 했더니 부산을 지나면서 어느 사이에 날이 밝았다.
남해에 들어서며 파도도 꽤 잦아들었다. 날이 밝고 시야가 드러나니 운항도 여유롭다.
대신 긴장이 풀어지면서 피곤이 엄습한다.
 
 
03:20
 
06:40 거제도가 눈앞에 들어온다.
 
 
08:20 매물도…
 
 
항해 당직을 선장과 교대하고 아침을 준비한다.
남은 식빵을 버터로 굽고 햄과 치즈, 달걀 프라이를 곁들여 아침 식단을 마련하였다.
이번 항해에서 기항 중에 식당 이용한 끼니 외에 식사와 간식 차림, 설거지는 모두 내 몫이었다.
리더가 crew를 위해 한 손을 내밀려 하지 않고, crew의 내적 갈등이 있는지도 모르니 해결 방법은 생각할 수도 없고…
 
 
 
 
 
12:20
 
 
14:00
여수 VTS에 VHF로 입항 통보를 하라는 선장의 지시가 있었다.
VHF PTT 고장에 대해 분명히 보고했는데도 선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지시대로 다시 교신을 시도하는데…
"범선 코리아나! 송신 감도가 계속 지글거리고 알아들을 수 없어요!
전화로 입항 보고 하라는데 왜 자꾸 VHF 교신합니까? 교신 중단하십시오!"
다른 선박국과 통신까지 방해된다며 여수 VTS에서 신경질 적으로 통신 중단할 것을 통보한다.
 
 
15:00
가막만으로 들어서기만 해도 정겹다.
멀리 소호 마리나 선착장이 눈앞으로 다가들자 비로소 ending 항해가 실감 난다.
 
선착장,
우리 범선 '코리아나'를 임대하여 경영을 맡고 있다는 회사 사장과 직원을 포함해 꽤 많은 분이 마중을 나왔다.
선수 줄을 당겨 걸었고 도와줄 라인맨들도 많기에 소호 마리나 접안은 신경도 안 썼다.
그런데 지나간 태풍 때문이었던지 선착장으로 이용하는 바지선이 파도에 밀려 위치를 조금 벗어나 있다.
 
미리 손을 보아두었으면 될걸! 범선을 접안하고서야 다시 말려 난 선착장을 끌어당겨야 한다며 법석이다.
그나마 문제를 잘 살펴 무엇을 어찌 정리해야 하는지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을,
웬 똑똑한 분이 그리 많은지 저마다 방법을 떠든다. 게다가 사소한 부분까지 자신의 아는 방법만 주장하고…
돕다가 내가 지쳐버렸다. 슬슬 화가 돋는다.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선내 청소까지 마치고는 사우나로 직행!
사우나 마치고 소호 마리나 앞 자주 들르는 식당에서 crew들의 저녁 식사…
 
마음이 꽁꽁 얼어붙은 기관장은 선장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려 정박한 범선에 남아있고
선장은 범선협회 임원 모임을 미리 주선하여 선약을 만들었다며 식사 도중에 옆자리 모임으로 옮겨 앉았다.
 
 
불과 네 명의 선원으로 열하루 항해 일정을 끝내고 오늘은 그 항해를 마무리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바다라는 자연 속에서 함께 어울림을 가진 crew에게 리더가 없었다.
껄껄대는 뱃놈들의 신나는 이야기, 긴 항해가 끝난 뒤에 아련히 그려지는 달콤한 그리움이 없었다.
 
불현듯 존 메이스 필드의 'Sea Fever'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아무래도 바다로 가야겠다. 그 외로운 바다와 하늘로 가야겠다.
커다란 범선 한 척과 길잡이 별 하나, 그리고 타륜과 바람 노래에 펄럭이는 하얀 돛만 있으면 그만이다.
여린 안개 깔린 바다에 잿빛 아침만 있으면 된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바다로 가야겠다.
거칠게 혹은 맑게, 내가 거부할 수 없는 소리와 흐르는 물결이 나를 부른다.
흰 구름 날리는 바람 부는 날이면 된다. 그리고 흩날리는 물보라와 솟구치는 물거품, 갈매기의 울음소리만 있으면 그만이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바다로 가야겠다. 떠도는 집시의 신세로
칼날 같은 바람이 부는 곳, 갈매기가 가는 길, 고래가 가는 길을 나도 가야겠다.
껄껄대는 뱃놈들의 신나는 이야기, 긴 항해가 끝난 뒤의 깊은 잠과 달콤한 꿈만 있으면 그만이다.
 
 
식사를 마치고 범선으로 돌아와 혼자서 소주 한 병을 또 마셨다.
그리고 늦은 밤 여수를 떠나 새벽에 서울로 돌아왔다.
 
-끝-
【작성】 전두성의 산과 삶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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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