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별초 진도 고려정부 1270년(고려 원종 11년) 강화도에 피신한 고려정부가 몽골에 굴욕적인 강화를 맺고 개경환도를 결행하자 이에 불복한 삼별초군은 6월 3일 강화도를 출발해 8월 19일 진도로 도착하여 군내면 용장리 소재 용장사를 궁궐로 삼고 정통고려정부를 내세웠다. 진도정부는 제주도, 전라도, 나주 이남, 경상도 남부까지 세력권을 넓혔으며 전국 도처에서 진도정부에 합류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삼별초군은 여·몽연합군의 대대적인 침공에 의해 1271년 5월 15일 함락되었으며 궁궐은 불타고 현재 빈터만 남아있다.
◈ 임진왜란과 명량대첩 1592∼1598년의 7년에 걸친 임진왜란 중 1597년 음 9월 16일 진도와 해남사이를 흐르는 명량해협에서 이순신장군을 도와 온 군민이 목숨바쳐 싸웠다.
12척 전선으로 3백 척 이상의 일본수군과 대적하면서 조응량, 조명신 부자,박영희, 박내종 부자, 양응지, 양계원 숙질등처럼 가족이 함께 순절한 경우도 많고 부녀자들은 해변에서 강강술래로 적을 유인했다.
오전 8시부터 시작된 전투에서 적장 마다시가 물위에 떠내려오는 것을 이순신 장군의 배에서 끌어올려 토막을 내자 적의 기세가 완전히 꺾이게 되었다. 이는 진도주민들이 평소 현지여건을 잘아는 만큼 특별히 구사한 쇠사슬작전과 이순신장군의 지휘력이 낳은 전과라 할 수 있다.
◈ 왜구의 본거지였던 진도 왜구의 피해가 커짐에 따라 고려정부는 1350년 진도를 공도화(空島化)시켜 행정관청과 함께 주민들을 내지로 옮기게 했다. 진도군은 1437년 복군까지 87년간 영암, 해남 등지로 옮겨다녔는데 이 기간중 한때 진도는 왜구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1380년 8월 도처에서 싸우던 왜구들은 일단 진도에 와서 전열을 가다듬고 또다시 출전했으며 9월의 운봉전투에 이성계장군과 맞섰던 왜구대장 아기발도가 진도출신이었다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 왕건·견훤 벽파해상 전투 서기 909년에 있었던 후백제 견훤과 후고구려세력 왕건의 벽파 앞바다 해전은 한반도 남해와 서해를 연결짓는 진도를 수중에 넣으려는 싸움이었다. 싸움에 패한 견훤은 해상전투력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왕건은 고려건국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公臣) 김수생(金水生) 1570년대 진도읍 서부 매향동에서 출생한 김수생은 종 6품 훈련주부의 관직에 있다가 임진왜란을 당하여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용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며 특히 정유재란 시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의 명에 따라 선두주자로 종횡무진 분투용전하여 12척의 작은 배로 300여척의 왜적 대함대를 격멸시켜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대공을 세워 선무공신에 녹훈됨.
이외에도 진도출신 박희령, 박종, 박내종, 박후령, 박인복, 김성진, 이천구, 조응량, 조명신, 양응지, 양계원, 차환, 하수평 등이 임란에 참전해 공을세워 선무원종공신이 되었음
◈ 남화(南畵)의 대가(大家) 소치(小痴) 허유(許維, 1809~1892) 1809년(순조9) 진도에서 태어남.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이태 전인 1892년(고종29) 여든넷의 나이로 장서(長逝)하기까지 임금이 쓰는 벼루에 먹을 갈아 그림을 그렸고 이하응(대원군), 권돈인, 문영익 및 그의 스승이었던 추사 김정희, 초의대사 등과 어울리면서 주유천하(周遊天下)했던 조선 말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의 대가이다.
◈ 의제 허백련(許百鍊) 1891년 11월 2일 진도군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난 의제 허백련은 남종화의 전통을 꿋꿋이 지켜온 대가로서 75년 동안의 긴 작가 생활을 통해 1만여 점에 이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의제는 일본에서 기법을 익혔으면서도 일본 색채에서 탈피하면서 소치와 미산의 남화산수를 계승하여 굳게 토착화시켰다.
◈ 추사(秋史) 이래 대가(大家) 소전 손재형 1903년 5월 진도읍 교동리에서 태어난 소전 선생은 추사 이래의 대가로 추앙받을 정도로 우리나라 서예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며 우리나라 한자문화의 정수인 서예를 오늘날에 이어온 서예계의 거목이다.
◈ 박덕인(朴德寅) 대금시나위로 유명했던 박종기의 아버지로 무정 정만조의 은파유필을 통해 확인된 그는 노래, 춤, 악기 등에 탁월한 경지의 예능을 지녔다. 진도아리랑의 작곡을 박종기로 보기도 하는데 오히려 아버지 박덕인일 것이며 현 진도무속예술의 효시가 되는 분이다.
◈ 독립운동가 박종식(朴鍾殖) 광주학생운동에 이어진 목포 항일 학생운동에서 목포상업학교 시위 극동학생으로 1929년 11월19일 제1조를 지휘, 양동 → 남교동 → 무안동 → 역전에 이르며 구호를 외치고 전단을 뿌려 시민들에게 항일투쟁을 선동해 퇴학과 함께 옥고를 치루었다. 출옥 후 고향에 돌아왔으나 공직을 거부하고 민중의 권익과 통일된 조국건설 일념으로 일관하다가 38세로 타계한 선각 항일운동가였다.
◈ 김수생(金水生, 생존시대:1570년대 출생, 출생지:진도읍 서부 매향동) ◈ 박대형(朴大, 본관:경주, 아호:윤곡, 생존시대:1532년 출생, 출생지:진도읍 북상리) ◈ 이씨부인(李氏婦人, 본관:원주) ◈ 허유(許維, 본관:양천, 아호:소치(小痴), 생존시대:1809 ∼ 1893, 출생지:진도) ◈ 허백련(許百鍊, 본관:양천, 아호:의재(毅齋), 생존시대:1891 ∼ 1977, 출생지:진도군 진도면 쌍정리) ◈ 손재형(孫在馨, 아호:소전(素筌), 생존시대:1903 ∼ 1981, 출생지:진도읍 교동리) ◈ 박종기(朴鍾基, 생존시대:1879 ∼ 1953, 출생지:임회면 삼막리 138번지) ◈ 박인복(朴麟福, 본관:밀양, 생존시대:1550 ∼ 1593, 출생지:의신면) ◈ 박덕룡(朴德龍, 본관:밀양, 생존시대:1516 ∼ 1636, 출생지:의신면) ◈ 박헌극(朴憲極, 본관:밀양, 아호:오당(梧塘), 생존시대:1829 ∼ 1891, 출생지:진도읍 동외리) ◈ 진주하씨(晉州河氏, 생존시대:1798 ∼ 1857)
■ 보물
◈ 금골산 5층 석탑 제529호, 군내면 둔전리 산 94-1
■ 사적
◈ 용장산성 제126호, 군내면 용장리 52
◈ 남도석성 제127호, 임회면 남동리 219
■ 중요무형문화재
◈ 강강술래(박용순) 제8호, 진도읍 성내리 7-3
◈ 남도들노래(김기순) 제51호, 진도읍 성내리 7-3
◈ 씻김굿(채계만) 제72호, 진도읍 성내리 7-3
◈ 다시래기(강준섭) 제81호, 진도읍 성내리 7-3
■ 명승
◈ 진도 바닷길 제9호, 의신면 회동
■ 중요민속자료
◈ 진도 한정석의 가옥 제166호, 진도읍 성내리 40-2
■ 유형문화재(이하 도지정)
◈ 상만리 5층석탑 제10호, 임회면 상만리 675
◈ 용장사 석불좌상 제17호, 군내면 용장리 산90
◈ 쌍계사 대웅전 제121호, 의신면 사천리
■ 무형문화재
◈ 진도 북놀이 제18호
◈ 진도 만가(김항규) 제19호, 지산면 인지리
◈ 진도 홍주(허화자) 제28호, 진도읍 쌍정리
■ 기념물
◈ 운림산방 제51호, 의신면 사천리 76
◈ 전왕온의 묘 제126호, 의신면 침계리
■ 문화재 자료
◈ 금골산 마애여래좌상 제110호, 군내면 둔전리
◈ 진도읍성 제43호, 진도읍 성내리
◈ 진도향교 제127호, 진도읍 교동리
◈ 금골산 5층석탑(金骨山 五層石塔) ◈ 용장산성(龍藏山城) ◈ 남도석성(南桃石城) ◈ 진돗개 ◈ 사천리 상록수림(斜川里 常綠樹林) ◈ 상만리 비자나무(上萬里 榧子木) ◈ 관매도 후박나무(觀梅島 厚朴木) ◈ 백조도래지 ◈ 강강술래 ◈ 남도들노래 ◈ 씻김굿 ◈ 다시래기 ◈ 쌍계사 대웅전(雙溪寺 大雄殿) ◈ 상만리 오층석탑(上萬里 五層石塔) ◈ 용장사 석불좌상(龍藏寺 石佛坐像) ◈ 진도 북놀이(박관용)(珍島 북놀이) ◈ 진도 만가(김항규)(珍島 輓歌) ◈ 진도 전통홍주(허화자)(珍島 傳統 紅酒) ◈ 운림산방(雲林山房) ◈ 전왕온묘(傳王溫墓) ◈ 금골산 마애여래좌상(金骨山 磨崖如來坐像) ◈ 진도향교(珍島鄕校) ◈ 진도읍성(珍島邑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