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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임실문화원의 지식창고 임실독립운동사 (2005)
임실독립운동사 (2005)
(보기 : 일자별구성)
▶ 지식지도
(A) 제1편 韓未 任實의 抗日 義兵
(A) 제2편 任實의 3·1運動
(A) 제3편 6·10 萬歲運動과 任實
(A) 제4편 日帝時代 任實의 抗日運動
(A) 부 록
부록
(A) 책을 엮고 나서
about 임실독립운동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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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실독립운동사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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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등록순
2018.07.31
제1장 義兵運動의 展開過程
【저작】 제1절 乙巳條約 締結과 義兵運動의 發端 / 1905년을 전후하여 의병운동이 전국적인 규모의 ‘의병전쟁’으로까지 발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1905년 11월 일제가 조선의 자주권을 박탈한 ‘을사조약’의 체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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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저작】 최성미 전북역사문화학회 이사 / 역사의 흐름 속에 광복 60주년을 맞아 항일운동의 성지인 임실군을 재조명하는데 초점을 두고 항일독립운동사를 꾸며 보니 마음이 새롭고 또한 책임감과 무거움이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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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부록
부록
【저작】 獨立宣言書 / 오등(五等)은 자(玆)에 아조선(我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
31 (+3) |
2018.07.31
제4편 日帝時代 任實의 抗日運動
【저작】 제1장 靑雄 農樂團의 日本駐在所 襲擊事件 / 1925년 늦은 봄에 청웅면 구고리 농민들이 농악을 즐기는 것을 보고 당시 청웅 주재소 일본인 순사 사또가 주재소의 허가도 없이 농악을 치며 도로를 누비고 다닌다는 트집을 잡고 해산을 명령하였다.
24 (+1) |
2018.07.31
【저작】 조선조 마지막 황제이신 순종황제께서 1926년(丙寅) 4월 25일(음 3월 14일) 춘추 53세로 승하하시니 각 신문사에서는 순종황제께서 황후가 위중하다는 호외만 발행하고 총독부에서는 당일 국상을 발표하지 아니하고 일본 국내성과 수차의 전화 통화 끝에 다음날 26일 오후 9시 15분에 일본 국내부에서 승하하신 일자를 하루 늦게 26일 오전 6시 10분에 승하하였다고 정식 발표하였다. 그리고 인산일은 6월 10일로 택정하였다.
9 (+1) |
2018.07.31
제6장 3․1運動의 民族代表 朴準承 先生
【저작】 박준승 선생은 본관이 밀양(密陽)으로 호는 비암(沘菴 : 3․1독립운동 실록에는 자암, 전북지역 독립운동사에는 批菴으로 되어 있음)이며, 1866년(高宗 3년, 丙寅) 11월 24일 임실군 청웅면 옥석리 주치부락에서 박호진의 3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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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제5장 任實 만세운동의 지주 金榮遠 先生
【저작】 김영원 선생은 1853년(철종 4년) 8월 5일 임실군 운암면 선거리 시목동에서 김성집(金星集)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字는 경화(化京), 도호(道號)가 원암(源庵)이며 본관이 경주인 김영원은 3살에 부친을 여의고 15살에 모친마저 별세하였다.
13 |
2018.07.31
【저작】 제1절 任實邑의 3·1萬歲運動 / 3․1 운동에 관한 제반 연락이 임실읍에 전해진 것은 3월 2일이었다. 천도교 전주교구를 통하여 임실 교구장 韓榮泰에게서였다.
30 (+2) |
2018.07.31
【저작】 임실지역의 항일운동은 전국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또한 도내에서도 독립운동 ‘훈, 포장’ 수여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이는 이 지역 운암출신의 부자로 덕망이 높았던 전주 최씨인 ‘최찬국’이 도내에서 최초로 남원(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오수면 둔덕 지역이다.)에 들어온 천도교에 일찍(1874년) 입교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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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저작】 조선왕조 500년의 사직은 1910년 8월 22일 총리대신 이완용과 조선통감 데라우찌 사이에 조인된 한일합방 조약으로 그 막을 내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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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순
2018.07.31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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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 獨立宣言書 / 오등(五等)은 자(玆)에 아조선(我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
31 (+3) |
2018.07.31
【저작】 제1절 任實邑의 3·1萬歲運動 / 3․1 운동에 관한 제반 연락이 임실읍에 전해진 것은 3월 2일이었다. 천도교 전주교구를 통하여 임실 교구장 韓榮泰에게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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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제4편 日帝時代 任實의 抗日運動
【저작】 제1장 靑雄 農樂團의 日本駐在所 襲擊事件 / 1925년 늦은 봄에 청웅면 구고리 농민들이 농악을 즐기는 것을 보고 당시 청웅 주재소 일본인 순사 사또가 주재소의 허가도 없이 농악을 치며 도로를 누비고 다닌다는 트집을 잡고 해산을 명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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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저작】 제5장 韓末 義兵關聯 警察 情報 (任實郡 關聯資料) / 본 문건(文件)은 양만정(楊萬鼎)과 고홍석(高洪錫)이 편저(編著)한 장흥 고씨(長興高氏)의 역사, 그리고 고씨 가문(高氏家門)과 그 인친(姻親)이란 자료에서 구(舊) 한말(韓末) 의병활동(義兵活動)에 대하여 당시 일본경찰(日本警察)이 보는 정보보고(情報報告) 내용을 임실군과 인접군에 관한 사항 중에서도 일부를 발췌하여 수록하였다.
22 (+1) |
2018.07.31
제2장 靜齋 李錫庸 義兵將
【저작】 제1절 靜齋의 出生과 成長 / 이석용(李錫庸)은 字가 경항(敬恒)이며, 호가 정재(靜齋)이고,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아버지는 화산 봉선(華山 鳳善)이며, 어머니는 조양임씨(兆陽林氏)이다. 그는 1878년(고종 15년) 음력 11월 29일 지금의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 죽전마을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다.
2018.07.31
제5장 任實 만세운동의 지주 金榮遠 先生
【저작】 김영원 선생은 1853년(철종 4년) 8월 5일 임실군 운암면 선거리 시목동에서 김성집(金星集)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字는 경화(化京), 도호(道號)가 원암(源庵)이며 본관이 경주인 김영원은 3살에 부친을 여의고 15살에 모친마저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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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저작】 최성미 전북역사문화학회 이사 / 역사의 흐름 속에 광복 60주년을 맞아 항일운동의 성지인 임실군을 재조명하는데 초점을 두고 항일독립운동사를 꾸며 보니 마음이 새롭고 또한 책임감과 무거움이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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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저작】 임실지역의 항일운동은 전국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또한 도내에서도 독립운동 ‘훈, 포장’ 수여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이는 이 지역 운암출신의 부자로 덕망이 높았던 전주 최씨인 ‘최찬국’이 도내에서 최초로 남원(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오수면 둔덕 지역이다.)에 들어온 천도교에 일찍(1874년) 입교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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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저작】 조선조 마지막 황제이신 순종황제께서 1926년(丙寅) 4월 25일(음 3월 14일) 춘추 53세로 승하하시니 각 신문사에서는 순종황제께서 황후가 위중하다는 호외만 발행하고 총독부에서는 당일 국상을 발표하지 아니하고 일본 국내성과 수차의 전화 통화 끝에 다음날 26일 오후 9시 15분에 일본 국내부에서 승하하신 일자를 하루 늦게 26일 오전 6시 10분에 승하하였다고 정식 발표하였다. 그리고 인산일은 6월 10일로 택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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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제6장 3․1運動의 民族代表 朴準承 先生
【저작】 박준승 선생은 본관이 밀양(密陽)으로 호는 비암(沘菴 : 3․1독립운동 실록에는 자암, 전북지역 독립운동사에는 批菴으로 되어 있음)이며, 1866년(高宗 3년, 丙寅) 11월 24일 임실군 청웅면 옥석리 주치부락에서 박호진의 3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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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저작】 전기홍은 자(字)가 수용(垂鏞)이며 호는 해산(海山)이고 본관은 천안(天安)이다. 1879년(고종 16)에 전병국(全炳國)과 경주김씨(慶州金氏) 사이의 장남(長男)으로 지금의 임실군 오수면 국평리 고전동에서 태어났으며 태어나자마자 생모를 여의고 형수의 손에 의하여 자랐다.
2018.07.31
【저작】 ❀ 강 사 과 (姜司果) / 강사과는 무과급제 출신으로 사과(司果, 정 6품) 벼슬을 지냈으며 임실 출신인데 이름은 미상(未詳)이다. 그는 1905년(광무9, 乙巳)에 소위 을사보호조약으로 일본의 간섭이 심해지자 1906년(광무10, 丙午)에 창의기병(倡義起兵)하여 동지 50여 명을 규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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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제1장 義兵運動의 展開過程
【저작】 제1절 乙巳條約 締結과 義兵運動의 發端 / 1905년을 전후하여 의병운동이 전국적인 규모의 ‘의병전쟁’으로까지 발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1905년 11월 일제가 조선의 자주권을 박탈한 ‘을사조약’의 체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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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저작】 조선왕조 500년의 사직은 1910년 8월 22일 총리대신 이완용과 조선통감 데라우찌 사이에 조인된 한일합방 조약으로 그 막을 내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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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저작】 1919년(기미)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은 전국 대도시는 물론 시골 읍, 면에까지 확산되어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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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