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강원도
◎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사(使) 1인, 판관(判官) 1인, 유학 교수관(儒學敎授官) 1인.
본래 예(濊)의 고국(古國)인데(鐵國이라고도 하고, 濊國이라고도 한다), 한나라 무제(武帝) 원봉(元封) 2년에 장수를 보내어 우거(右渠)를 치고 사군(四郡)을 정할 때에 임둔(臨芚)이라 하였다. 고구려에서는 하서량(河西良;일명 河瑟羅)이라 일컬었고, 신라 선덕왕(善德王)은 소경(小京)을 두었다. 태종왕(太宗王) 5년 무오에 하슬라의 땅이 말갈(靺鞨)과 연접하였다 하여, 경(京)을 파하고 주(州)로 만들고, 도독(都督)을 두어서 지키게 하였는데(唐나라 高宗 顯慶 3년), 경덕왕(景德王) 15년 정유에 하서주(河西州)를 명주(溟州)라 고쳤다. 혜공왕(惠恭王) 12년에 옛 이름으로 회복하고, 고려 태조(太祖) 19년 병신(晉나라 高祖 天福 元年)에 이름을 동원경(東原京)이라 불렀다. 성종(成宗) 2년 계미(宋나라 太宗 太平興國 8년)에 하서부(河西府)로 고쳤고, 5년 병술(宋나라 太宗 雍熙 3년)에는 명주도독부(溟州都督府)로 하였다. 11년 계사(宋나라 太宗 淳化 4년)에 명주목(溟州牧)으로 고쳤고, 14년 병신에 명주단련사(溟州團練使)로 고쳤다가, 원종(元宗) 원년 경신에 공신 김홍취(金洪就)의 고향이라 하여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로 승격하였고(南宋 理宗 景正 元年), 충렬왕(忠烈王) 34년 무신(元나라 武宗 至大 원년)에 강릉부(江陵府)로 고쳤다. 공양왕(恭讓王) 원년 기사(明나라 太祖 洪武 22년)에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하였고, 본조에서도 그대로 따랐는데, 별호는 임영(臨瀛)이라 한다. 속현(屬縣)이 2이니, 연곡현(連谷縣)은 본래 고구려의 복산현(攴山縣)인데, 신라 경덕왕 때에 명주(溟州)의 영현(領縣)으로 하였고, 고려 현종(顯宗) 9년 무오에 지금 이름으로 고쳐서 그대로 임내(任內)로 만들었다.(縣사람이 전하기를, “옛 陽谷縣이라”한다) 우계현(羽溪縣)은 본래 고구려의 우곡현(羽谷縣)인데, 신라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삼척군(三陟郡)의 영현으로 하였고, 고려 현종 9년 무오에 명주 임내로 이속(移屬)하였는데, 본조에서도 그대로 따랐으며, 별호를 옥당(玉堂)이라 한다.
명산(名山)은 오대(五臺)이다.(府 서쪽에 있다. 봉우리 다섯개가 고리처럼 벌려 섰는데, 크기와 작기가 고른 까닭에 오대산이라 한다. 西臺 아래 水精庵 옆에서 우리샘[檻泉]이 솟아나는데, 물의 빛과 맛이 여느 물과 다르고, 그 무게도 또한 그러하므로, 于筒水라고 하며, 곧 金剛淵은 한강물[漢水]의 근원이 된다. 봄·가을에 그 고을 관원으로 하여금 제사지내게 한다. 한강물이 비록 여러 곳의 물을 받아 흐르나, 우통수가 중심이 되어 빛과 맛이 변하지 아니해서 중국의 楊子江과 같으므로, 漢이란 이름이 이로 인하여 되었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바다 어귀에 이르기 8리, 남쪽으로 삼척에 이르기 70리, 서쪽으로 횡성(橫城)에 이르기 1백 55리, 북족으로 양양(襄陽)에 이르기 46리이다. 호수(戶數)가 1천 25호요, 인구가 3천 5백 13명이다. 연곡(連谷)의 호수가 1백단(單)4호요, 인구가 2백 51명이며, 우계(羽溪)의 호수가 2백 25호요, 인구가 7백 75명이다. 군정은 시위군이 1백 65명이요, 선군이 2백 50명이다. 토성(土姓)이 6이니, 김(金)·최(崔)·박(朴)·곽(郭)·함(咸)·왕(王)이요, 사성(賜姓)이 1이니, 옥(玉)이다. 속성(續姓)이 3이니, 명(明)·이(李) <평창에서 왔다>·원(元) <원주에서 왔다>이다.(모두 鄕吏이다) 연곡의 성이 5이니, 명(明)·이(李)·진(陳)·신(申)·장(蔣)이요, 속성(續姓)이 1이니 전(全)이다.(정선에서 왔는데 향리이다) 우계의 성이 4이니, 이(李)·변(邊)·심(沈)·노(盧)요, 속성이 1이니, 유(劉)이다.
땅이 많이 메마르며, 간전(墾田)이 5천 7백 66결이요(논이 6분의 2에 약하다), 토의(土宜)는 오곡·뽕나무·삼·왕골·모시·감·밤·모과·닥나무·칠(漆)이다. 토공(土貢)은 꿀·밀[黃蠟]·시우쇠·잣·호도·북나무충영·미역·지초·백단향·석이·사슴포·여우가죽·삵괭이가죽·노루가죽·담비가죽·문어·숭어·대구·상어·전복·홍합이다. 약재는 인삼·오미자·승검초뿌리[當歸]·망초뿌리[蓁芃]·모란뿌리껍질[牧丹皮]·복신(茯神)·대왕풀[白芨]·산무애뱀[白花蛇]·다린송진[白膠香]·북나무진[安息香]·궁궁이[芎藭]·석고(石膏)·일엽초[石韋]·곰의 쓸개[熊膽]이다. 토산(土産)은 가는대와 왕대이다. 염분(鹽盆)이 23이니, 연곡의 염분(鹽盆)이 5이요, 우계의 염분이 20이다. 자기소(磁器所)가 1이니, 부(府) 서쪽 보현촌(普賢村)에 있고, 도기소(陶器所)가 2이니, 하나는 부(府) 서남쪽 궤장촌(机杖村)에 있고, 하나는 우계현 남쪽 마류사동(瑪瑠寺洞)에 있다.(모두 下品이다)
읍토성(邑土城;둘레 7백 84보이다) 파암산 석성(把巖山石城)이 부 서쪽에 있다.(둘레 7백 68보이며, 안에 작은 도랑 5가 있는데, 그 3은 가물면 마르며, 그 2는 마르지 않는다) 우계읍 토성(羽溪邑土城;둘레 1백 97보이다) 경포(鏡浦)가 부(府) 동남쪽 10리에 있으며, 옆에 봉오리가 있고, 봉우리 위에 정자가 있다. 한송정(寒松亭)은 예전에 부(府) 동쪽 12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역(驛)이 13이니, 대창(大昌)·안인(安仁)·구산(丘山)·목계(木界)·고단(高丹)·횡계(橫溪)·진부(珍富)·대화(大和)·방림(芳林)·운교(雲交)·동덕(冬德;연곡에 있다)·악풍(樂豐)·임계(臨界)이다.(모두 우계에 있다) 요해(要害)는 대령(大嶺)이니, 부(府) 서쪽 35리에 있다. 봉화가 5곳이니, 어을달(於乙達)이 임내 우계현 남쪽에 있고(남쪽으로 삼척 地廣津에, 북쪽으로 오근에 응한다), 오근(吾斤;북쪽으로 府의 땅 海令에 응한다) 소이동(所伊洞)이 부(府) 동북쪽에 있으며(남쪽으로 해령에, 북쪽으로 사화에 응한다), 사화(沙火;북쪽으로 연곡 주을문에 응한다) 주을문(注乙文)이다.(북쪽으로 양양 임내 洞山의 陽也에 응한다)
관할[所領]은 도호부가 1이니, 양양이요, 군이 2이니, 정선(旌善)과 평창(平昌)이다.
【원전】 5집 67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