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바위
둔덕면 옥동마을 벼락바위 이야기입니다. 장등산 정상에는 둘레가 50미터나 되는 큰 바위가 있지요. 두 조각으로 나 있는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갈라진 걸까요? 여기에 깃든 이야기는 신라 시대로 한참 거슬러 올라갑니다.
삶이 편안했던 그 즈음은 다양한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특히 부드러운 감촉과 아름다운 색채감이 뛰어난 명주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명주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큰 돈을 벌기 위한 사람들은 누에를 기르는 일을 앞다투어 시작했습니다. 산골에 파릇파릇 돋아난 뽕나무 잎을 따서 누에를 키웠습니다.
옥동마을의 공 씨 할머니도 그랬답니다. 아예 밭농사를 걷어치우고 산 뽕잎을 따 누에치는 일을 천직으로 삼았지요. 공 씨 할머니는 물론 마을 사람들도 돈 버는 재미에 힘든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하여 옥동마을은 살기 좋은 동네가 되었습니다. 먹을 것도 풍족했고, 넉넉한 살림살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집집이 누에를 키우고 점점 수를 늘여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지막지한 채취로 산 뽕잎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귀해진 뽕나무 잎을 따기 위해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 가야 했습니다. 더 따고자 경쟁하다 사고가 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낭떠러지에 굴러 다치기도 했고, 성난 산짐승에 쫓겨 도망치기기도 했습니다.
내내 살기가 좋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옥동 마을에 시련이 왔습니다. 대흉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땅이 바짝 말라 뽕나무가 잎을 내지 못했습니다. 이에 뽕나무 잎을 구하지 못한 공씨 할머니는 한밤중에 아무도 몰래 멀찌감치 누에를 내다 버렸습니다.
며칠이 지나 어찌 되었나 가 보기로 했지요. 자신의 손으로 기르던 누에가 눈에 어른거려 잠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내다 버린 자리에 가보니 누에가 말라죽지 않고 살아 있었습니다. 죽기는 커녕 쉼 없이 고치를 만들고 있어 깜짝 놀랐어요. 할머니가 놀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 테지요. 죽었을 거라 생각했던 누에가 멀쩡하게 살아 제 역할을 야무지게 해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대견스러웠을까요?
그런데 사람 마음 참 간사하지요. 할머니의 욕심이 점점 커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혼자만 잘 살고 싶어서였지요.
“안 돼, 아무도 몰라야 해. 누군가 안다면 다 뺏길 거야. 절대 비밀로 해야 돼.”
공씨 할머니는 아무도 몰래 누에가 실을 뽑아내는 그곳으로 갔습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의 치마를 펼쳤습니다. 그러고는 치마폭에다 조심성 없이 마구 누에들을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빨리 집으로 옮겨가야 해.”
이때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번개가 번쩍거리더니 할머니의 목숨을 앗아가고 말았어요. 화가 잔뜩 난 하늘은 경고하듯 옥동마을 앞산 정상에 있던 큰 바위를 때려 두 동강으로 조각내버렸지요.
뒤늦게야 이런 사실을 안 마을사람들은 공씨 할머니를 양지바른 곳에다 묻어주었어요. 비록 욕심을 부려 벌을 받았지만 같이 살아온 이웃이니 온정을 베풀었지요. 그제야 그 마을 사람들은 깨달았답니다. 욕심이 지나치면 화가 뒤따른다는 것을요.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옥동 마을에는 두 동강 난 바위가 그대로 있답니다. 지나친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일러주기 위함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 바위를 공 씨 할머니의 벼락바위라 부른답니다. 어떤 경우에도 욕심을 부리지 말고 서로서로 나누고 살라는 이야기입니다.
- 옛날 옛적 거제도 이야기 (거제문화원 2020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