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양문대신(이서구) 2
양문대신 이서구 대감이 만세교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어느 양반 집 아들 하나가 지나가다가, 촌사람이 낚시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자기를 건너편까지 월천(越川)을 해달라고 했다. 신을 벗고 건너가기가 귀찮아서 업어 건너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양문대신이 선선히 그 사람을 월천해 주고는, ‘누가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물으면 자기가 월천해 줬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 때 마침 해가 저물어 양반 집 아들은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저녁에 모임이 있어 가보니 거기에 자기를 월천해 준 노인이 있었다. 그런데 노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이상하여 물어보니, 그 분은 옛날에 대신을 지낸 분이라고 했다. 양반 집 아들이 황급히 일어나
“제가 몰라 뵙고 월천을 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누가 그런걸 가르쳐 줬느냐?”
양문대신은 호통을 치며, 자기를 ‘양문대신’이라고 가르쳐 준 마을 사람을 먼저 벌을 주었다. 젊은이가 거듭 사죄를 하자 양문대신이 말했다.
“일어나서 내 말을 듣게. 사람이 평생을 사는데 자네는 편히 가고자 하여 나보고 업어 건너달라고 한 것이 아닌가? 옛날에 한 집에 시아버지도 귀머거리, 며느리도 귀머거리, 머슴도 귀머거리가 있었네. 하루는 영감이 멍석에다 보리를 널었는데, 이웃집 닭이 와서 벼를 쪼아먹고 있었어. 그래서 닭을 친다는 게 그만, 너무 심하게 때려 그 닭이 죽고 말았다네. 이웃집에서 닭을 찾으러 왔는데 죄송하다고 해도 화를 내니까, 영감이 ‘당신 닭이 우리 보리 멍석을 헤쳐서 돌을 친다는 것이 잘못 쳐서 죽었는데 뭘 잘못했다고 야단이냐’ 하고 소리를 질렀어. 그런 찰나에 머슴이 대문을 들어서다가 영감이 막 야단을 치고 있는 것을 보고, 자기가 낮에 볏단을 묶다가 하도 목이 말라서 술집에 벼 몇 단을 갖다 주고 술을 먹은 것이 생각이 난 거지. 머슴은 ‘이 영감이 벌써 그걸 알고서 이렇게 호통을 치는구나’ 하고 생각했어. 그래서 주인 영감에게 ‘내가 하도 목이 말라서 볏단 하나 갖다 주고 술 한잔 먹었기로 뭐 그렇게 잘못했다고 노발대발하시느냐’고 말하며 밖으로 나왔다네. 한편 그 집의 며느리가 또 남모르게 집에서 어른한테 얘기하지 않고 쌀을 꺼내 어린애에게 엿을 사줬대요.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며느리는 ‘그것을 시아버지가 벌써 알고 저렇게 걱정하시나’ 하고 생각했다네. 그래서 시아버지께 ‘아버님 애들이 하도 칭얼대서 말씀 못 드리고 엿을 몇 개 사줬노라’고 그렇게 사죄를 했어. 이 두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 하려고 할 때, 이것이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이 되면 그만둬야 하는데 모두들 그러지 못했다네.”
“자네가 나더러 월천해 달라고 했는데, 물론 자네도 처음부터 늙은이에게 그러고 싶어하지는 않았겠지.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은 남에게도 하지 않는 것이 좋아. 자넨 앞날이 촉망되는 사람이니까 자네에게 벌을 주지는 않겠네. 다만 좋지 않은 일이라 생각되는 것은 자네가 하게. 그러면 자네는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네.”
양문대신 이서구 대감은 이처럼 너그러우면서도 소탈한 분이셨다고 한다.
< 이풍의, 남, 영북면 산정리, 1995. 8. >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