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은혜 갚은 호랑이
옛날에는 산에서 화전을 일구어 감자를 심어서 먹고 살았다. 그렇게 화전을 일구고 살던 한 가족이 아들을 하나 낳았다. 부부는 늦게서야 아들을 낳고 보니 그 아들이 무척 귀여웠다. 흔히 그렇듯이 심심할 때마다, ‘엄마 때려라’ 하면 아이는 남구(나무)를 때리고, ‘아버지 때려라’ 하면 땅을 때리곤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가, 산골짜기에서 호랑이 새끼를 보았다. 그걸 본 아버지는 ‘에잇, 이걸 가져다가 길러야겠다’ 하고서는 데려와서 자신의 아들과 형제지간을 맺어 주었다. 그 호랑이의 이름을 ‘호환’이라고 지었는데, 흔히 양호호환(養虎虎患)이라고 하여 ‘호랑이 새끼를 길러서 후환이 된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아이와 호랑이는 형제처럼 잘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같이 나무를 하러가서 아이가 손을 베었다. 동생인 호랑이는 형이 다친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 그 손가락을 핥기 시작했다. 그런데 핥다 보니 피맛이 좋아 야금야금 하다가 그만 형을 잡아먹어 버렸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부부가 호랑이 곁을 떠나며,
“네가 형을 잡아 먹었으니 우리는 떠나겠다. 그러나 넌 벌을 받아야 한다.”
고 했다. 그리고는 호랑이의 앞발을 잘라낸 뒤,
“너는 어디 다른 데 가서 살든지, 여기서 살든지 마음대로 해라.”
하고 작별을 했다.
그 후로 어느 동네에서는 저녁 때만 되면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며 야단법석을 쳐대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전엔 아낙네들이 밥상을 해 들여 보내고 나서, 해가 지면 물을 길었다. 그러나 이때부터는 ‘호랑이가 오면 물을 못 긷는다’고 하며 문을 걸어 닫고 일찌감치 들어가게 되었다.
어느 날 그 마을에서 한 거지가 동냥을 하려는데, 동네 사람들이 ‘호랑이가 나타났다’며 법석을 쳤다. 거지는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가야만 했다. 그 거지는 바로 호랑이를 길러준 영감이었다.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소리를 들은 영감은 개떼기(타작하고 남은 벼 부스러기) 속에 들어가서 숨어 있었다.
잠시 후, 호랑이가 와서 소란을 떨다가 사람 냄새를 맡고는 개떼기를 파내기 시작했는데, 영감이 가만히 보니까 아주 무서운 호랑이였다. 그러자 영감이 말하길,
“내가 전에 기르던 호랑이 같으면 표가 있다. 그렇다면 물러가고, 그렇지 않으면 날 잡아 먹어도 좋다. 난 이미 호랑이한테 자식까지 잃은 몸이다.”
라고 했다. 그런데 호랑이가 그대로 가만히 있어서 영감이 호랑이의 앞발을 보니 앞발이 없었다. 호랑이는 영감이 그 마을로 내려올 것을 미리 알고, 영감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그 동네에 와서 법석을 쳤던 것이다.
이튿날 동네 사람들이
“그 영감이 잡아 먹혔으니 어찌 됐나 가보자.”
하며, 그 곳에 가보니 영감은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그러자 영감이 지난 날의 얘기를 동네 사람들에게 했다. 얘기를 다 듣고 난 동네 사람들은
“당신은 오늘부터 우리 동네에서 사시오. 우리가 호랑이 때문에 못 견디겠소. 초입에다 집을 지어줄 테니 거기서 사시오.”
라고 했다.
거기서 한동안 살다 보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을에서 또 호랑이가 소란을 피웠다. 거기에도 그런 일이 있다 하니, 영감은 다시 거기에 가서 살면서 같은 일을 반복했다.
결국은 호랑이가 이 세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소란을 피움으로써, 그 영감을 부자로 만들어 주어 은혜를 갚았던 것이다.
< 김천석, 74세 , 남, 일동면 화대2리, 1995. 9. >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