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호랑이와 구렁이
옛날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 해가 저물어, 어떤 오두막 집에 찾아들었다. 그 집에는 예쁜 여자가 혼자서 살고 있었는데, 자세히 바라보니 사람이 아니라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구렁이였다.
나그네는 기겁을 하고 보따리도 놓아 둔 채, 그곳을 도망치고 말았다. 얼마 동안을 도망치다가 바라보니, 저쪽 산기슭에서 불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그네는 그곳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 찾아가 보니, 머리는 사람인데 배 아래가 구렁이로 된 괴물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나그네는 또 기겁을 하고 도망을 치려는데, 그 괴물들이 몰려 와 나그네를 잡아다 광속에다 가두어 버렸다. 그리고 나서 괴물들은 그를 보고 자기네 어머니를 속이고 도망친 놈이라며 나무랐다. 나그네는 ‘이제 죽었구나’ 하고 비탄에 젖어 있다가, 문득 용한 꾀 하나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괴물들에게 목이 몹시 탄다면서 물 한 동이를 청했다. 그러고는 그 물로 광의 벽을 축여서 구멍을 내고는 거기서 도망쳐 나왔다.
이것을 안 구렁이들이 고함을 지르며 추격해 왔다. 그런데 불행히도 나그네가 가는 앞길이 막혀 버렸다. 즉 그의 앞은 높은 낭떠러지였다. 그래서 나그네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라면서, 낭떠러지에서 훌쩍 아래로 뛰어 내렸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밑은 흙이거나 단단한 바위인 줄 알았는데, 몹시 푹신푹신했다. 이윽고 나그네가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그 곳은 호랑이 등이었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것이다.
한편, 누워 있던 호랑이는 깜짝 놀라 일어나 쏜살같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을 달려가서 호랑이 굴 앞에 다다랐다. 그러자 호랑이는 나그네를 등에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발톱으로 나그네의 얼굴을 죽 긁어 피가 나게 해서 새끼들에게 그 피를 빨아먹게 했다. 잠시 후 ‘어흠’ 하고 한 번 소리를 지르더니 어디론지 사라졌다. 이 틈을 타서 나그네는 돌멩이로 그 호랑이 새끼들을 때려 죽이고 나무 위로 올라가 숨어 있었다.
그런 얼마 뒤였다. 구렁이들이 씩씩거리며 그 곳까지 찾아 왔다. 때를 같이하여 어미 호랑이도 돌아왔다.
“야, 호랑이야. 네가 나그네를 잡아 먹었지?”
“아니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이놈들아, 내 새끼를 잡아 먹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네 놈들 혼 좀 나 봐라.”
이리하여 구렁이 떼와 호랑이가 맞붙어 큰 싸움을 벌였고, 얼마 뒤에 모두 죽어 버렸다.
< 抱川郡誌, 1984. >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