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호랑이와 고슴도치
옛날에 호랑이가 큰 바위산에서 살기가 지루해 야산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배가 고파서 먹이를 찾기 위해 어슬렁거렸다. 이때 호랑이는 고슴도치가 살살 기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것이 고슴도치인 줄 모르는 호랑이는 ‘에이, 이거라도 잡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고슴도치를 덥석 물었다.
그런데 호랑이 입 속에 들어간 고슴도치가 죽을까 봐 몸을 바싹 구부리니 가시가 왕성하게 일어났다. 고슴도치를 삼키려던 호랑이는 그 가시 때문에 고슴도치가 입천장에 콱 박혀 버렸다. 이제 호랑이는 씹을 수도 뱉을 수도 없는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드디어 호랑이는 기진맥진해서 고슴도치를 입에 넣은 채, 입을 ‘헤’ 벌리고 다니다가 어느 곳에 이르러 움직이지 못하고 멈추어 섰다.
호랑이가 가만히 있으니 입 속에 있던 고슴도치는 ‘야, 이놈이 인제 기운이 빠졌으니까 나도 이런 기회에 살아야겠다’ 하고 꼼질꼼질하다가 ‘이때다’ 하며 쏙 빠져 달아났다. 호랑이가 이번에는 ‘어휴, 내가 저런 것을 또 먹느니 인간에게서 개를 빼앗아 잡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울타리 뒤에서 개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회오리바람에 쭉정이 밤송이가 쓱 날려 왔다. 호랑이가 보니까 밤송이가 마치 아까 그 고슴도치의 사촌과 같았다. 그래서 꽁지가 빠져라 하고 큰산으로 달아났다. 그 후로 야산에는 호랑이가 없다고 한다.
< 김천석, 74세, 남, 일동면 화대2리, 1995. 9. >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