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우고개
산정리에 여우고개라는 고개가 있다. 그곳에서 여우가 사람으로 변신을 했다가 다시 여우로 되었기 때문에 여우고개라 하는데, 옛날에는 그 근방에 집이 별로 없었다.
한 번은 이동리의 마당바위 쪽에 사는 60살 쯤 되는 노인이, 철원에 사는 딸의 외손주가 장가를 가게 되어서 그 고개를 넘게 되었다. 그 사람이 나무가 우거진 소로길을 올라가는데, 마루터기에서 하얀 옷을 입고 갓을 쓴 남자를 만났다. 그가 장죽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노인에게 어디에 가느냐고 물었다. 노인이
“나는 철원 사는 딸네집에 가는 길이오.”
하고 대답을 했더니, 그 남자가
“아, 그러시오. 나도 철원 쪽에 가는 길이니 나하고 함께 동행을 합시다.”
라고 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담배를 함께 피우고 길을 떠났다.
철원에 도착하여 잔치중인 딸의 집을 찾아가 마당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고 식구들이 ‘할아버지 오셨다’, ‘아버님 오셨다’하고 반기는 바람에 얼떨결에 그냥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다가 문득 함께 왔던 사람이 생각나서 찾았으나, 이미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신부 방에 가보니 외손주 며느리가 될 신부가 둘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큰일이 났다고 소동이 벌어졌는데, 어떤 사람이
“서울 아무개라는 큰 고개에 창을 가지고 사냥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데려오면 진짜 신부를 가려낼 것이다.”
라고 말했다.
나귀를 타고 서울에 가서 그 사람을 찾아 내려오는데, 아무리 빨리 걸으려 해도 결혼식에 제대로 맞춰 올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나귀에 달구지를 달아 타고 채찍질을 하며 내려왔다. 도착하여 그 사람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어느 쪽이 사람이고 어느 쪽이 여우인지를 가려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마당에 있던 썰개(조그만 개를 말함)를 내려 풀어놓았다. 그랬더니 그놈이 사납게 안으로 치고 들어가서 이리저리 쫓아다니다가 벼락같이 방으로 뛰어들었다. 이 때 큰개도 썰개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는데, 큰개는 두 사람이 똑같은 복색을 하고 똑같이 앉아 있어 진짜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썰개가 그 중 한 쪽의 옆을 쑥 밀어서 헤치니, 그 여자의 엉덩이에 꼬리가 아홉 개나 달려 있었다. 꼬리를 들킨 여자는 재주를 넘더니 여우로 변신해서 쏜살같이 도망가 버렸다.
그래서 이 때부터 사람들은 그 고개를 ‘여우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박승운, 남, 영북면 운천9리, 1995. 8. >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