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금강산 여우
옛날 평양에 젊은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부모의 유산을 받아 부자가 된 터라 그저 할 줄 아는 것은 기생집에 다니며 술 먹는 것이 전부였다. 일을 하여 번 돈이 아니니 아낄 줄을 몰랐다. 흥청망청 술집에 다니며 놀고 집안은 통 돌보지 않으니 재산은 없고 남은 것은 놀고 먹는 재주뿐이어서 결국 거지가 되고 말았다.
거지가 된 그 놈은 혼자 가만히 생각을 했다.
‘내가 평양에서 나고 자라 부자로 살았지만 금강산이 그렇게 좋다 하는데도 금강산 구경 한 번 제대로 못했으니 금강산 구경이나 한 번 하고 죽어도 죽어야겠다.’
그래서 남아 있는 돈을 모아서 금강산 구경을 갔다.
금강산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일만 이천 봉을 다 돌아보니 가지고 간 여비가 다 떨어졌다. 이제 평양에 돌아가도 먹을 것도 없고 집안이 망한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하였다.
그날 밤에 금강산 한 봉우리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니 큰곰이 굴에 앉아 있었다. 그 곰을 보고 ‘여기서 죽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굴 앞에 엉덩이를 까고 앉아 곰이 잡아먹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곰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앉았는데 한 예쁜 여자가 초롱불을 든 하인을 앞세우고 산을 내려오다가 엉덩이를 까고 있는 그 사람을 발견하고는
“왜 곰의 굴 앞에 앉아 있나요?”
하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저 평양 갑부의 아들 아무개인데 이제 돈도 떨어지고 살 길이 막막하여 곰에게 잡아먹혀 죽으려고 있는 것이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여자가 그를 일으켜 세우며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해서 함께 집으로 갔다. 그 여자 집에 가 보니 아주 커다랗고 좋은 집이었다. 본디 일할 줄 모르고 얻어먹고 사는 재주밖에 없던 그라 편히 지내며 잘 살았다.
그렇게 몇 해를 잘 얻어먹고 살자니 이제는 평양에 두고 온 처자가 생각이 나서
“나 돈 좀 해주오.”
하고 청하니, 그 여자가 돈을 해주어서 평양에 처자를 만나러 갔다. 그런데 평양에 도착해보니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다. 가족을 찾을 길이 없어지자 다시 금강산으로 돌아가 그 여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여자가,
“오늘밤에 누가 밖에서 불러도 절대로 나가지 마십시오.”
하고 청하는지라,
“그러마.”
하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밤이 되니 밖에서 누군가 자꾸 그를 부르는 것이었다. 여자와 약속한 것은 홀딱 잊고 밖으로 나가 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밤새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들락날락 거리다가 하도 괴이쩍은 생각이 들어 여자의 방에 들어가 보니 여자가 드러누워 있는데 그 배 위로 불덩어리가 빙빙 돌고 있었다. 이 사람이 겁이 나서 문을 열고 나오려고 하니 여자가 그를 붙들면서
“왜 가려고 하십니까? 지금까지 나와 같이 살던 정리가 있지 않습니까? 가지 마십시오.”
라고 했다.
“난 이제 겁이 나서 가야겠소.”
“가지 마세요. 지금껏 살았던 정리를 생각해서 제가 이 골짜기 위에 있는 삼밭을 알려드릴 터이니 그 삼을 캐서 살도록 하십시오.”
여자는 본디 자기가 사람이 아니라 여우였다고 하면서 앞마당에서 홀딱홀딱 재주를 넘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눈을 번쩍 떠보니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꿈이었다. 엉덩이를 까고 굴 앞에 앉아 잠이 들어버린 것이었다.
꿈이 하도 신기해서 그 이튿날 날이 밝자 그 꼭대기를 슬슬 올라가 보니 진짜 삼밭이 있었다. 그는 삼을 캐서 평양으로 돌아와 가족들을 만나서 그 이후로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 허훈, 69세, 남, 창수면 추동리, 1998. 9. 24. >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