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울음산
옛날에 궁예 왕이 왕건한테 쫓기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에 궁예 왕의 첫 도읍지가 철원이었는데 왕건에게 쫓겨나서 관인면 ‘고남산’이라는 곳으로 도망을 쳤다. 왕건이 그 곳에까지 쳐들어오자 울음산으로 도망을 갔다. 도망을 가다가 배가 고파서 그 산에서 국수를 먹고 갔는데, 그 때문에 그 산봉우리에 ‘국수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 곳에서 국수를 먹고는 또 도망을 갔다. 산정호수 뒷산 중에 ‘울음산’이라고 있는데 궁예는 그 곳에 가서 성터를 쌓았고, 얼마동안 머물렀다. (지금도 그 곳에 가면 성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산 이름이 왜 ‘울음산’인가 하면 왕건한테 쫓겨다니는 자신의 신세가 하도 처량해서 궁예가 거기서 통곡을 하고 울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 곳에서 울면서 지내다가 며칠 못 가서 또 왕건한테 추격을 받으니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갔다.
궁예를 잡으면 큰 상을 내린다는 왕건의 말에 주민들이 돌을 던졌는데 그 동네 사람들이 워낙 장사이다 보니 멀리까지 던져서 궁예를 맞추었다. 또 얼마나 돌을 많이 던졌는지 그 시체 위에 돌이 터미로 모여 쌓였다. 그래서 그 동네 이름이 ‘돌터미’가 되었다고 한다.
< 이예손, 63세, 남, 관인면, 냉정2리, 1997. 4. 9. >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