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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면 향토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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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평면 향토사 (1993)     평창군 2018.07.12. 11:42 (2018.07.11. 02:38)

三 . 이고장 학문의 발자취

 
목 차   [숨기기]
 1. 1 . 봉호재와 조사정
 2. 2 . 포촌여숙
 3. 3 . 우은당
우리 봉평은 옛부터 문인, 학자가 많이 배출되고 교육열이 대단한 고장으로 마을마다 훈장 선생님과 서당이 없는 곳이 없었다. 모두 수록 할 수는 없음으로 대표적인 몇 곳을 수록하고자 한다.
 

1. 1 . 봉호재와 조사정

지금으로 부터 150년전(19세기 중엽) 성인에 가까우신 봉서 신범 선생께서 훈학을 한다고 하자 사방 각처에서 학문에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에 원길리에 봉호제라는 서당을 지었는데 그 건축비를 신범 선생 사저로는 부족하여 마을사람들의 협조금으로 충당하였다. 그러나 수학생이 너무 많아 봉호재로는 수용이 불가능하여 별관을 지었으니 이가 곧 조사정이다. 초등반은 봉호재에서 성인반은 조사정에서 향음 주례의 예법을 실습하였다고 한다.『봉서 유고집』중「봉호재 상량문」,「조사정기」
 

2. 2 . 포촌여숙

서기 18세기 말 이 나라 장래가 위태로울 때 이화서 선생의 문인 태은 추성구 선생이 홍천군 기린에서 봉평면 사리평으로 이주하여 여기에 서당 짓고 포촌여숙이라 이름하였다. 많은 문인들에 이곳에서 학문을 수양하였는데 문인록에 수록된 문인만도 100여명에 가깝다. 태은 추성구 선생은 구한말 의병 항일 항재에도 깊이 관여한 학자로 충의 효열록과 강원도 항일운동사에 기록이 보인다 『태은집』
 

3. 3 . 우은당

1945년 8.15해방을 전후하여 우제 이기주 선생이 평촌1리 마진터에다 서당을 차리고 이름을 우은당라 했다. 우제 선생은 이 우운당에서 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유품은 우제집 3권을 비롯하여 많은 서적을 그의 자손이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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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