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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임실문화원의 지식창고 임실의 정자 (2013)
임실의 정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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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임실의 정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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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정(樓亭) 임실군(任實郡) # 산곡정
【향토】
(2018.07.16. 02:38) 
◈ 17. 산곡정(山谷亭) - 임실읍 감성리
산곡정은 임실읍 감성마을에 위치해 있다. 임실읍 소재지에서 대곡리 35사단 방향으로 가다가 좌회전하여 2대대(大隊)정문을 지나서 조금 더 올라가면 감성마을에 다다르는데, 정자는 바로 마을 입구 왼편 산하에 위치하고 있다.
목   차
[숨기기]
산곡정은 임실읍 감성마을에 위치해 있다. 임실읍 소재지에서 대곡리 35사단 방향으로 가다가 좌회전하여 2대대(大隊)정문을 지나서 조금 더 올라가면 감성마을에 다다르는데, 정자는 바로 마을 입구 왼편 산하에 위치하고 있다. 기문(記文)에 의하면 산곡정은 영조 11년(1735) 생원시에 합격한 산곡공(山谷公) 황임징(黃恁澄)이 말년에 은거한 곳에, 산곡정의 학덕을 기리고 후손들의 화목을 기리는 장소를 삼기 위해 산곡공의 6대 손 황해수(黃海秀) 등이 중심이 되어 1958년 건립되었다,
 
정자 안에는 3개의 현판이 있으며, 산곡정 옆에는 효자각을 세워 효자(孝子) 부호군(副護軍) 황임징지려(黃恁澄之閭) 라고 쓴 정려기와 효자(孝子) 부호군(副護軍) 황임징지비(黃恁澄之碑)라고 새긴 비석을 효자각에 세워놓았다. 이 비는 정조8년(1784)에 조정으로부터 통정대부 부호군의 증직과 함께 정려의 은전이 내려져 후손들이 세워진 효자각 이다.
【개요 - 2014.11 자료 추가】
 
 
 
 
 
 

1. 1. 山谷亭

先祖平生務德崇 晩年頤養在斯中
桑麻致力三隣■ 孝友存誠累代風
客子登臨同遠近 兒孫齊宿序冠童
如今恐負趨庭訓 氷薄淵深戒不窮
後孫 哲秀 謹次
 
甘城不是等閒崇 匣裏芙蓉隱此中
智水仁山含淑氣 庭竹籬松奏淸風
慕先亭建羨門路 愛育恩深學海童
花樹繁榮修契文 瓊琚增彩繼无窮
南湖 崔性植
 
 
산곡정(山谷亭)
 
선조께서 평생 숭덕(崇德)에 힘쓰셨으니, 先祖平生務德崇
말년에 이양(頤養)한 것 이 정자에 있네. 晩年頤養在斯中
상마(桑麻) 농사에 힘을 다하니 세 이웃의 광경이고, 桑麻致力三隣景
효우(孝友)를 성(誠)으로 하니 여러 대의 가풍이네. 孝友存誠累代風
객자는 멀고 가까운 곳에서 동행해서 올라오고, 客子登臨同遠近
손자들은 어른 아이 순서대로 나란히 숙박하네. 兒孫齊宿序冠童
지금 추정(趨庭)의 가르침을 져버릴까 두려워, 如今恐負趨庭訓
살얼음 밟듯 깊은 못 임하듯 경계를 무궁히 하네. 氷薄淵深戒不窮
후손(後孫) 철수(哲秀)는 근차(謹次)한다.
 
우(又)
 
감성(甘城)은 필시 등한이 숭상할 것이 아니니, 甘城不是等閒崇
상자 속에 부용검이 이 정자에 와서 숨었더라. 匣裏芙蓉隱此中
지수(智水)와 인산(仁山)은 숙기(淑氣)를 머금었고, 智水仁山含淑氣
정죽(庭竹)과 이송(籬松)은 청풍(淸風)을 보내오네. 庭竹籬松奏淸風
선대를 앙모하려고 정자 건립하니 가문이 자랑스러워라, 慕先亭建羨門路
사랑으로 훈육하여 은혜 깊으니 제자가 인산인해이더라. 愛育恩深學海童
화수(花樹)가 번화하여 계(契) 문서를 정리하고, 花樹繁榮修契文
시(詩)로써 더욱 빛내서 무궁히 계술(繼述)하리라. 瓊琚增彩繼无窮
 
남호(南湖) 최성식(崔性植)
 
 
 

2. 2. 山谷亭記

雲水之東有崖鬱之處 卽
昌原山谷公黃一澄世居
之地 系出義原君居正之
後 公天資純貞 文學卓冠
景廟中進士 致仕之年 歸
鄕還寓 講磨道義 以山水
之樂 終其天年 粤自戊戌
歲 公之六世孫海秀 相宅
于玆 營建一亭 揭曰山谷
其意深且遠矣 繼述家風
慕先裕后之誠 於斯可見
而惟此勢地 則疇昔之甘
泉亭之左右花石 與四時
長在 淸泉茂栢 貫千秋不
移 麋鹿之遊 烟霞之勝 肥
遯之趣 難見眞狀 登斯亭
也 有心曠神怡 興於詩成
於樂立於禮 山谷之遺訓
洋洋如在 日以就月以將
時以習先世之格訓 眷眷
服膺 玉鍊金鍛 刮磨切磋
以至於道成德立 趯趯然
披萃之狀 煥乎文物 於斯
爲盛 則淵明之靖節可追
志士之高風可觀 至矣盡
矣 登亭不無助眺之美 故
遂爲之記
庚子春正月上浣 七世孫 重煥 記
有司 大煥
 
산곡정기(山谷亭記)
 
운수(雲水) 동쪽에 비탈지고 숲이 우거진 곳이 바로 창원(昌原) 산곡공(山谷公) 황일징(黃一澄)께서 대대로 살았던 지역이다. 계통(系統)은 의원군(義原君) 거정(居正)의 후예에서 나왔다. 공(公)은 천부적인 성품이 순수하고 곧으며 문학(文學)에 특출하여 경묘(景廟: 경종)년간에 진사(進士)에 합격했다. 그러나 치사(致仕)하던 해에 귀향(歸鄕)하여 우소(寓所)로 돌아왔다. 그리고 도의(道義)를 강마(講磨)하면서 산수(山水)의 낙을 즐기다가 마침내 천명(天命)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이에 무술(戊戌)년 공의 6대손 해수(海秀)가 이곳에 집터를 봐 두었다가 한 정자를 건립했다. 그리고 편액을 ‘산곡(山谷)’이라고 내걸었으니 그의 뜻이 깊고 또 원대했다. 게다가 가풍(家風)을 계술(繼述)하여 선대를 앙모하고 후손을 넉넉하게 하는 성실함도 여기에서 볼 수 있었다.
이곳의 형세(形勢)와 토지(土地)는 옛적 감천(甘泉)의 정자처럼 좌우로 꽃과 돌이 사시사철 오래 존재해있고, 맑은 샘과 무성한 잣나무는 천추토록 변함이 없이 있고, 미록(麋鹿)이 노닐고 연하(烟霞)가 아름다우니 비둔(肥遯)할 수 있는 장소로는 참으로 보기 드문 집터이다.
이 정자에 올라오면 심신이 탁 트이고 좋아서 시흥(詩興)이 느껴지고 음악이 이루어지고 예의를 차리게 된다. 또 산곡(山谷)께서 끼친 교훈이 양양(洋洋)히 살아 계시는 것 같아서, 공부가 일취월장하여 시시때때로 익혀지는 것 같고, 선세(先世)의 지극한 교훈을 권권(眷眷)이 듣고 실천하는 것 같고, 옥을 단련하고 금을 불려서 깎아 갈고 끊고 갈아 도(道)와 덕(德)이 성립하는데 이르는 것 같다.
성큼성큼 전진하여 익힌 공부가 벅차오르는 모양이 문물(文物)에 환해져서 이에 성대해지면, 진(晉) 도연명(陶淵明)이 고향에 돌아가서 정절(靖節)을 지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었고, 지사(志士)의 고풍(高風)을 볼 수 있는 그런 지극함의 극치였다. 그래서 이 정자에 올라와서 아름다움을 보고 느낀바 일조가 없잖아 있었다. 그러므로 마침내 기문(記文)을 적노라.
 
경자(庚子)년 춘(春) 정월(正月) 상완(上浣)에 칠세손(七世孫) 중환(重煥), 유사(有司) 대환(大煥)은 기(記)하노라.
 
 
 

3. 3. 山谷亭追慕韻

甘泉洞裏四圍山 吾祖曾年隱此間
追慕羹墻亭遂起 費經心力意誠艱
當簷滴翠松千尺 繞檻揚淸澗一灣
秋菊春蘭佳節會 敍宗情話正班班
辛丑仲春七世孫 重煥 謹稿
 
 
산곡정추모운(山谷亭追慕韻)
 
감천(甘泉)이라는 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에워싸여서, 甘泉洞裏四圍山
우리 할아버지께서 젊은 나이에 이곳에 은거하셨네. 吾祖曾年隱此間
추모하고 상상하려고 마침내 정자를 건립하니, 追慕羹墻亭遂起
경비와 인력으로 정성과 뜻을 다 바쳐 지었네. 費經心力意誠艱
추녀가 비취빛에 젖은 것은 천 자[尺] 소나무 때문이고, 當簷滴翠松千尺
난간을 에워싸고 맑게 드날린 것은 계곡 한 물굽이더라. 繞檻揚淸澗一灣
가을과 봄 가절(佳節)에 모임을 갖는데, 秋菊春蘭佳節會
종씨들의 정다운 대화가 정히 훌륭하네. 敍宗情話正班班
신축(辛丑) 중춘(仲春)에 칠세손(七世孫) 중환(重煥)은 근고(謹稿)하노라.
 
戊午년 端陽月(五月) 午日에 新平面 大里의 門下生들이 삼가 이 碑를 세우다.
누정(樓亭) 임실군(任實郡) # 산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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