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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정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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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임실의 정자 (2013)
누정(樓亭) # 육우정
【향토】
(2018.07.16. 02:38) 
◈ 21. 육우정(六愚亭) - 성수면 월평리
육우정은 일명 봉산에 건립하여 봉남정(鳳南亭) 이라고도 불리운다. 건립 시기는 1919년이다. 육우정은 지역에 사는 우곡 심진표(愚谷 沈鎭杓), 우석 홍종익(愚石 洪鍾翼), 우촌 양기형(愚村 梁奇衡), 우계 노학규, 우당 이광의(愚堂 李光儀), 우천 송응진(愚泉 宋應溱)이 뜻을 같이하여 건립하였다. 이들 여섯 인물의 호는 한자로 모두 어리석을 우자(愚字)로 지었기에 육우정이라 이름한 것이다.
목   차
[숨기기]
성수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인 신촌마을 앞에서 다리를 바로 건너면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정자의 주변은 뒤쪽으로 병풍을 두른 듯한 바위가 있고, 바로 앞에는 봉황이 놀았다는 아담한 연못이 있으며 성수산에 발원하여 오수로 내려가는 오수천이 흐르고 있다. 또 멀리 북쪽으로는 고덕산과 삼봉산이 있으며, 동쪽에는 청계구곡(淸溪九曲), 남쪽에는 계봉(桂峰), 서쪽에는 구치(龜峙)가 각각 둘러 있어 가히 일품의 승지라고 일컬을 만하다.
 
육우정은 일명 봉산에 건립하여 봉남정(鳳南亭) 이라고도 불리운다. 건립 시기는 1919년이다. 육우정은 지역에 사는 우곡 심진표(愚谷 沈鎭杓), 우석 홍종익(愚石 洪鍾翼), 우촌 양기형(愚村 梁奇衡), 우계 노학규, 우당 이광의(愚堂 李光儀), 우천 송응진(愚泉 宋應溱)이 뜻을 같이하여 건립하였다. 이들 여섯 인물의 호는 한자로 모두 어리석을 우자(愚字)로 지었기에 육우정이라 이름한 것이다. 어리석다는 말은 참말로 어리석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을 겸손하게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진사벼슬을 한 우촌 양기형은 육우정 기문에서 “나는 어려서부터 어리석었다. 늙어서도 기질을 변화시키지 못하여, 일을 처리하는 데에도 졸렬하고, 언사도 어눌하여 침묵하기 일쑤다. 대개 천하의 어리석음을 논할 때에 나만한 이가 없는데, 다행히 인근 마을에 나와 똑같이 어리석은 자가 다섯 사람이나 되었다.”라고 기록하여 있다. 그리하여 어눌한 인근마을의 친우들이 봉황이 나는 형상의 산에 터를 잡고 정자를 지었다고 자술하고 있다.
 
육우정은 더위를 피하며 시를 짓는 건물로 이용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이며 건물 가운데에는 비바람을 피하며 글을 읽을 수 있는 4尺의 환도실(環堵室)도 만들었다. 정자 안쪽 정면에는 육우정(六愚亭)이라는 편액이 있고, 바깥쪽에는 심농 조기석이 쓴 봉남정(鳳南亭)이라 쓴 편액이 연못을 향하여 걸려있다. 심농 조기석은 벽하 조주승의 아들로 육당 최남선이 심춘순례를 쓰면서 구이 와동마을에 가는 기록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 서예가이다. 또 민윤식이 쓴 세전충효(世傳忠孝)라고 편액이 걸려있고 정자 안에는 육우정기 등 총 15개의 현판이 있는데, 모두 육우정의 자연풍경과 변함없는 우정을 논하고 있다.
 
송규헌의 글을 보면 이곳 “누정에 오르면 표연하여 세상을 버릴 만하고, 편안하여 세상을 즐길 만하며, 유연하여 서로 잊고, 은은하여 몸을 지킬 만하니, 산중의 뛰어난 곳이며, 속세 밖의 이름난 정자이다. 때로는 마음 맞은 사람끼리 마주하면서, 술과 시로 호탕하게 하기도 하고, 음악으로 서로 알아주기도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위의 글에서 보듯이 주변의 빼어난 승경으로 인하여 이곳에 오르면 속세와 단절되어 마치 선경에 온 듯한 착각을 가지는 곳이기도 하다. 정자의 뒤쪽 벼랑위에는 영당(影堂)이 있다. 영당 안에는 정자에서 풍류를 즐겼던 여섯 선비를 모시는 사당인데, 중앙에는 전체사진이 있고 왼쪽부터 우곡(愚谷), 우석(愚石), 우촌(愚村), 우계(愚溪), 우당(愚堂), 우천(愚泉)의 사진이 걸려있다. 현재는 맨 끝의 우천(愚泉)은 사진이 아닌 연필로 그린 초상화가 걸려있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고 전한다. 또한 ‘육우정’ 옆에는 2곳에 3명씩의 이름이 새겨진 암각서와 육우정이란 글씨를 예서체로 바위에 새겨놓기도 하였다.
【개요 - 2014.11 자료 추가】
 
 
 
 
 
 

1. 1. 六愚亭記

雲水縣十里地 有鳳凰山 山下有千仞石壁 北有
高德三峯 東有淸溪九曲 南有桂峯 西有龜
峙 六愚亭在千仞石壁下 一名鳳南亭 登臨
則飄然如遺世 偃然如玩世 悠悠如相忘 □然
如自守 儘山中勝地 物外名榭 有時乎(?)而
會心人相對 或以詩酒自豪 或以峨洋相許
採蕨於西山之巓 賦菊於東籬之下 而又有
芙荷滿沼 可以製孤臣之衣 可以爲君子之嘉 其
會心人誰也 愚谷沈鎭杓愚石洪鍾翼愚邨
梁基衡愚溪魯學奎愚堂李光儀愚泉宋
應湊六人 亭之爲名 以此六愚也 余聞於林學士
應喆 竊欲付尾 而其愚不可及 嗚乎 此豈可與不
知者道也 臨風歎賞 於是乎記
歲在癸亥夏六月上浣 通政大夫承政院右副承旨兼經筵參贊官
春秋館修撰官原任奎章閣直閣恩津老□
宋奎憲 記
 
 
육우정기(六愚亭記)
 
운수현에서 십리되는 땅에 봉황산이 있는데, 산 밑에는 천 길 석벽이 있다. 북으로는 덕고(高德)·삼봉(三峰)이 있고 동쪽으로는 청계(淸溪)·구곡(九曲)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계봉(桂峰)이 있고 서쪽으로는 구치(龜峙:거북재)가 있으며, 육우정(六愚亭)은 천 자 높은 석벽(石壁 ) 밑에 있다. 일명 봉남정(鳳南亭)이라고도 한다. 정자에 올라가면 표연(飄然)하여 세상 일을 버린 것 같고 언연(偃然)하여 세상을 즐길 만하며, 유유(悠悠)하여 서로를 잊게 되고, 혼연(閽然)하여 자신을 지킬 만하니 산중의 뛰어난 곳이며, 속세 밖의 이름난 정자이다. 때로는 마음 맞은 사람끼리 마주하고 술과 시로 호탕하게 놀기도 하고, 음악으로 서로 알아주기도 한다. 서산의 산마루에서는 고사리를 캐고 동쪽 울타리 밑에서는 국화를 읊조리며, 연잎이 연못에 가득하니 굴원처럼 외로운 신하의 옷을 만들 만하고 주염계 같은 군자의 사랑을 받을 만하다.
그 마음을 모은 이들은 누구인가. 우곡(愚谷) 심진표(沈鎭杓), 우석(愚石) 홍종익(洪鍾翼), 우촌(愚村) 양기형(梁基衡), 우계(愚溪) 노학규(魯學奎), 우당(愚堂) 이광의(李光儀), 우천(愚泉) 송응한(宋應漢) 6인이다. 누정의 이름은 이 분들의 6우(愚)로 하였다. 나는 임응철(林應喆) 학사(學士)에게 듣고서 꼴찌로 끼어들려고 했는데 그 우(愚)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오호라, 이 어찌 가히 알지 못하는 자와 함께 말하겠는가. 바람맞으며 찬탄하면서 이에 기록한다.
 
계해(癸亥:1923)년 여름 6월 10일 통정대부 승정원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원임 규장작직각(通政大夫承政院右副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原任奎章閣直閣) 은진(恩津) 노탄(老灘) 송규헌(宋奎憲)은 기록함
 
 
 

2. 2. 六愚亭記

起亭於百尺巖壁之下 一泓淵水之上 揭以六
愚 何也 惟吾自幼愚無知 至老白首 不
能變化氣質無榦辦 而自拙訥言辭
而自默 盖論天下之愚 莫吾若也 幸而
隣里 有與吾同愚者六人焉 若沈愚谷
洪愚石李愚堂魯愚溪宋愚泉 是已
距相一二 而日常追逐東阡北陌 惟意自
適而止焉 去歲春相謂曰 今六吾皆老矣
無所於歸 如是醉吟於榛莽灌叢荒閒
寂寞之濱爲□ 不亦憊乎 豈若休憩一處
以終餘年之爲愈也 乃卜地於縣東鳳山之
麓 作亭數間 背鐵崖而向證潭 柱凡十株
環以軒廳 中架四楹爲房奧 別柱欄檻於三
面 爲踞坐納凉之所 制約而亦甚鴻朗 落
之同飮酒歡 甚見千峯萬壑 咸效奇獻
巧於袵席之上 廓然而虛者與神謀 凝然
而定者與心謀 瀅瀅之聲與耳謀 茸茸
之色與目謀 此樂何極 乃指欄後之鐵
崖而言曰 此巖自混沌氏 七月劈之後 閱盡藍
風灰劫而至今一形 此潭發源於巖根於洑
五六畒許 往往波濤洶湧 勢若碧海風潮
銀山倒竪 此二者皆久而不能變 亦異哉 無
乃與吾儕愚而不能變化者同乎 盖有所
同 故遇其同者而居焉 巖水遇人可乎 人
遇巖水可乎 其必有所遇而愚及焉 自愚
愚物之譏 吾與物皆不得而免也歟
歲在庚申五月上澣 進士愚邨梁基衡記
 
 
육우정기(六愚亭記)
 
백척의 암벽 밑, 깊은 연못 위에 누정을 짓고 편액을 육우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생각건대, 나는 어려서부터 어리석었다. 늙어서도 기질을 변화시키지 못하여, 일을 처리하는데에도 졸렬하고, 언사도 어눌하여 침묵하기 일쑤다. 대개 천하의 어리석음을 논할 때에 나만한 이가 없는데, 다행히 인근 마을에 나와 똑같이 어리석은 자가 다섯 사람이나 되었다. 심우곡, 홍우석, 이우상, 노우계, 송우천 등이 바로 이들이다. 거리가 1,2리 정도 떨어져 사는데 날마다 서로 쫓아다니며, 동으로 갔다가 서로 갔다가 오직 뜻대로 가다가 멈춘다. 작년 봄에 서로 말하기를
“우리 여섯 명은 모두 늙었다. 돌아갈 곳이 없다. 이와 같이 잡초가 우거지고 황폐하여 쓸쓸한 모래톱에서 취하고 읊조리는 것으로 날을 보내는 것은 또한 고달프지 않은가. 어찌 쉴만한 곳에서 남은 여생을 마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라고 하여 이에 동쪽 봉산의 산록에 터를 잡고 누정 수 칸을 지으니 뒤에는 철벽이요 앞에는 맑은 연못이다. 기둥 10柱를 동헌의 대청처럼 두르고, 가운데에는 네 기둥을 가설(架設)하여 방을 만들었으며, 별도로 삼면에 난간을 세워서 걸터앉아 더위를 피할 곳을 삼았으니, 규모는 간략하나 크고 밝도다. 낙성한 날 술을 마시고 매우 기뻐하였다. 수많은 산봉우리와 골짝기를 보니, 자리하는 곳에 모두 기이한 자태를 드러낸다. 넓게 트인 곳은 신과 더불어 사귀고, 어우러진 곳은 마음과 더불어 사귀었으며, 맑은 물소리는 귀와 더불어 사귀고, 각가지 모습은 귀와 더불어 사귀니, 이 즐거움이 얼마나 큰가.
이에 난간 뒤의 철벽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 절벽은 혼돈씨가 칠 일간 깍아낸 뒤에 모진 바람을 영겁도록 겪고 나서 지금의 형태가 되었고, 이 연못은 바위 밑에서 발원하여 5,6 이랑 정도의 보가 되었으니 왕왕 파도가 세차게 일어나면 형세가 벽해의 풍랑이나 은산을 거꾸로 세워놓은 것 것 같다. 이 두 가지는 대개 오래되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니, 또한 기이하게도 우리들의 어리석음이 변치 않은 것과 더불어 같지 않은가. 이는 대개 같은 바가 있기 때문에 어리석음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위와 물이 사람을 만나서 그리된 것인가. 사람이 바위와 물을 만나서 그리된 것인가. 그 반드시 만나는 바가 있어서 어리석음이 미친 것이니, 스스로의 어리석음과 어리석은 物을 기롱하는 것은 우리들과 物이 더부러 모두가 면할 수 없는 것인가.”
하였다.
 
경신(庚申)년 5월 상순에 진사(進士) 우촌(愚邨) 양기형(梁基衡)은 기록한다.
누정(樓亭) # 육우정
【향토】 임실의 정자 (2013)
• 20. 돈학정(遯壑亭) - 성수면 왕방리
• 21. 육우정(六愚亭) - 성수면 월평리
• 22. 수운정(睡雲亭) - 신덕면 금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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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