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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임실문화원의 지식창고 임실의 정자 (2013)
임실의 정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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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임실의 정자 (2013)
누정(樓亭) # 수운정
【향토】
(2018.07.16. 02:38) 
◈ 22. 수운정(睡雲亭) - 신덕면 금정리
수운정중수기(睡雲亭重修記)에 쓴다 / 천하의 일은 유무(有無)가 서로 교대할 뿐이다. 유무(有無)를 따르는 것에는 잠깐의 멀고 가까움이 있어서 움켜 쥔 것도 순식간이지만 얻고 잃는 것[得喪]과 영화롭고 욕된 것[榮辱]이 생긴다.
수운정은 신덕면 금정리 251번지에 있다. 순조 24년(1824)년에 수운 김낙현(金樂顯)이 두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고 만년에 인생을 달관하면서 소요하기 위해 창건하였다고 한다. 노사 기정진이 1877년에 지은 수운정중수기에 의하면 김낙현이 타계한지 30년 뒤 김낙현의 막내 동생 김성철(金星澈)이 누정을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해 다시 중수하였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김낙현은 1847년 무렵 타계하였고, 정자는 1877년 다시 중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200년이 넘게 중수되고 잘 보존되어온 수운정은 1995년 6월 20일 지방유형문화재 15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수운정은 팔작지붕에 겹처마를 올리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수운정의 맞은편 경모재와 더불어 문중의 관리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며, 내부에는 총 27개의 현판이 걸려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정자 주변에는 맑은 물과 푸른 산들은 한 폭의 수채화를 떠올리게 한다. 이로써 일찍이 이곳을 찾은 묵객들은 이곳의 아름다움을 극찬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으며, 그들이 남긴 글들은 크고 작은 현판으로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이곳은 한국전쟁에 마을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지만 이곳 정자만은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수운정 뒷마당 에는 수운정(睡雲亭)이라고 쓴 비석이 비스듬하게 놓여져 있기도 하다. 또한 그 옆에는 최근에 세워진 2개의 효자비가 세워져 있으며 양노당에는 도곡(都谷) 양노당 이라고 쓰여져 있어서 도곡이 금정리(金亭里)의 옛 이름이었음을 짐작케한다. 일제 강점기에 지명을 바꿀 때 이곳에 경주김씨 들이 많이 살고 또한 유서 깊은 정자가 있기에 김씨의 정자가 있는 곳, 즉 금정리라 이름 바꾸었다는 설화가 내려오기도 한다.
【개요 - 2014.11 자료 추가】
 
 
 
 
 
 

1. 1. 題睡雲亭重修記

天下事有無相禪而已矣 有之趨於
無也 有少須臾之久近 執據少須臾之
頃 得喪榮辱生焉 昧者溺焉 達士悲之
今夫睡霎然而凝 瞥然而覺則無有矣
今夫雲油然而作 廓然而消則無有矣
方其有也 有若眞有 及其無也 知其本
無 有無之禪於最近 而知愚之所共見
在人惟睡 在天惟雲 然則睡雲翁名
亭之意可知已 蓋欲超物我外形骸 而
與造物者遊 不役志於得喪也 物我旣
空 作亭者誰 形於我猶外 亭復何有 翁
之觀化後三十年 翁之季子氏悼遺蹟之
將堙 因其址 稍恢其間架 又欲瓦而壽
之 卜壽之幾何 雖不能預定 無乃與睡雲
之名 不相當乎 噫不然也 翁之睡雲其
亭 達觀也 季子氏之欲壽其先人遺蹟
孝思也 易地則然矣 抑吾聞之 物有有
無 而物物者未嘗有有無 不以有是物
而始存 不以無是物而遂亡 此之謂未
嘗有有無 然則天下長久 莫物物者
若也 亭非物乎 欲壽其先人遺蹟 其心
非物物者乎 亭不睡雲 則有無之本形
晦矣 睡雲不重修 則未嘗有有無之精
義隱矣 兩世一亭 不出戶而道存 金氏
子孫 世守兩件事理 勿墜失焉則善矣
翁諱樂顯 系出鷄林 季子氏星徹其名
 
 
수운정중수기(睡雲亭重修記)에 쓴다
 
천하의 일은 유무(有無)가 서로 교대할 뿐이다. 유무(有無)를 따르는 것에는 잠깐의 멀고 가까움이 있어서 움켜 쥔 것도 순식간이지만 얻고 잃는 것[得喪]과 영화롭고 욕된 것[榮辱]이 생긴다. 이 때문에 이치에 어두운 자는 이에 몰두하고 통달한 선비는 이를 비탄한다. 지금 저 졸음이라는 것도 삽시간에 왔다가 별안간에 깨어나면 아무것도 없다. 저 구름도 뭉게뭉게 피워나다가 퍼져서 사라지면 아무것도 없다. 바야흐로 있을 때는 참으로 있는 듯 하였지만, 없어질 때에 그 본래 없음을 안다. 가장 가까이서 유무가 교대되고 지자(知者)나 우자(愚者)가 똑같이 보는 것은 오직 사람에게는 졸음이고 하늘에는 오직 구름이다. 그렇다면 수운옹이 누정에 이름붙인 뜻을 알 수 있겠다. 대개 물아(物我)를 초월하고 형체를 벗어나서 조물주와 함께 노니는 것이 뜻을 득상(得喪)에 두지 않는 것이다. 물아가 이미 공허한데 누정을 지은 자는 누구이며, 형체는 나와는 바깥인데 누정을 다시 지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아마도 이는 옹(翁)이 돌아가신 30년 뒤 옹의 계씨(季氏 : 동생)께서 유적이 장차 없어질 것을 걱정하여 그 유지에 칸과 시렁을 넓히고 또 기와를 해서 오래가게 하였다.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비록 미리 정할 수는 없지만 수운(睡雲)의 이름과 서로 상당하지 않을까. 아! 그렇지는 않다. 옹이 그 누정을 수운이라고 한 것은 달관(達觀)한 것이고, 계씨께서 선인의 유적을 오래가게 하고자 한 것은 효도하는 생각이다. 입장을 바꾸면 서로 그리할 것이다. 또 내가 들으니, 사물에는 유무(有無)가 있으나 물물자(物物者 : 사물을 사물답게 하는 것, 즉 이치)에는 일찍이 유무가 있지 않다고 한다. 이 사물이 있다고 해서 비로소 있었다고 하지 않고, 사물이 없다고 해서 드디어 없어졌다고 하지 않은 것 이것을 일러 일찍이 유무가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하에 장구한 것이 물물자(物物者) 만한 것이 없으니, 누정이 물(物)이 아니며, 그 선인의 유적을 오래하고자 하는 것 그 마음이 물물자(物物者)가 아니겠는가.
누정이 수운이 아니라면 유무의 본래의 형체는 캄캄할 것이고, 수운이 중수되지 않았다면 유무의 정밀한 뜻이 숨겨지지 않았다. 양세의 누정이 뜰 밖을 나서지 않아서 도가 보존되니, 김씨 자손은 대대로 양건의 사리를 지키고 떨어뜨려 잃음이 없으면 좋겠다. 공희 휘는 낙안(樂顯)이고, 계통은 계림(鷄林)이며, 계씨는 성철(星徹)이 그 이름이다.
누정(樓亭) # 수운정
【향토】 임실의 정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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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