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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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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계양구(桂陽區) # 계양산
【여행】
(2019.11.18. 23:52) 
◈ 계양산 산행
휴일 인천에서 가장 높은 계양산(桂陽山, 395m)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에서 인천 공항 가는 길 왼쪽에 보이는 가장 높이 솟은 중계탑이 보이는 산입니다.
휴일 인천에서 가장 높은 계양산(桂陽山, 395m)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에서 인천 공항 가는 길 왼쪽에 보이는 가장 높이 솟은 중계탑이 보이는 산입니다.
계단으로 산에 오르는 것을 싫어하는 저에겐 하느재 쉼터에서 약 700여 개 계단으로 정상에 오르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지요. 물론 오랜만에 산행을 하니 그러려니 했지만 다시 한번 몸 관리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추석이 지난 후 다행스럽게 쾌청한 날씨 덕분에 계양산 정상에서는 360도 막힘없이 잘 보였습니다. 영종대교와 강화도, 일신 신도시와 김포 신도시, 아라뱃길, 북한산과 개화산, 김포공항, 관악산, 인천 시내 등이 잘 보입니다.
▶산행코스
인천 지하철 1호선 계산역 5번 출구 → 계양산 들머리 → 육각정(六角亭) → 계양산성 → 계성정(桂城亭) → 하느재 쉼터 → 700계단 → 계양산 정상 → 헬기장 → 장미원 → 지선사 → 계양 풀장 버스 정류장 → 계산역 전철역
\na-;▼인천 지하철 1호선 계산역 5번 출구에서 좌회전 후 직진하면 만나는 산행 들머리
 
 
▶들머리 안내판
\na-;▼계단으로 시작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GO!
 
 
\na-;▼지나치기 쉬운 육각정 가는 길(걷다 좌측으로 올라감)
 
 
\na-;▼참나무 사이로 난 계단
 
 
\na-;▼육각정
 
 
\na-;▼저 멀리 계양산 정상이 보이고, 목책을 따라 계양산성 흔적이 보인다.
 
 
\na-;▼계양산성(桂陽山城)
☞ 인천시 기념물 10호
☞ 삼국시대 축조
☞ 축조 양식은 테뫼식(산봉우리 중턱쯤에 한 바퀴 휘돌아 쌓는 것으로 山頂式), 돌로 외벽을 쌓고 안을 흙으로 채운 내탁식(內托式) 성벽​
☞ 고산성(古山城)으로도 불림
☞ 5~ 7m 높이의 약 1.2km 길이 산성은 복원 중
☞ 계양산 정상이 아닌 동쪽의 해발 230m에 세움
 
 
☞치성(雉城)은 성곽의 시설 중 하나로, 성곽 일부분을 네모나게 돌출시켜 적들을 손쉽게 진압할 수 있는 시설
\na-;▼계양산성 복원 중
 
 
\na-;▼계성정(桂城亭)의 좌측이 계양산성 서벽 지역이다.
 
 
 
 
\na-;▼하느재 쉼터
하느재는 계양산 주봉과 고성산 사이의 고개로 고개가 높고 가팔라 마치 하늘에 올라가는 것 같다 하여 ‘하늘재’라 부르던 것이 ‘하느재’로 변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na-;▼정상을 향하는 700계단
 
 
\na-;▼나비
 
 
\na-;▼올라온 길을 뒤돌아 보니 오른쪽에 육각정, 중간의 계성정을 지나면 왼쪽의 산불 감시 초소가 보인다.
 
 
\na-;▼계양산 정상
 
 
 
 
\na-;▼산 정상에 산 이름과 유래를 적은 표지석은 처음 본다. 보통 산 이름과 높이만 표시하는데...
 
 
\na-;▼계양정(2017년 12월에 세웠다고 표기)
①난간에 앉지 말라고 하는데 차라리 안전하게 앉을 수 있게 끔하면 좋았을 듯...
② 조선 22대 정조임금이 1797년 10월 부평에서 인천,안산을 통해 수원으로 갈때 쓴 시에 계양산이 나오는데 그 시귀를 적어 놓으면 등산객이 한번이라도 읽지 않을까?
"계양산색극선연(桂陽山色極嬋娟) " 계양산 빛은 곱다는 말로는 다 못하네
 
 
\na-;▼영종대교 방향
 
 
\na-;▼북한산 방향
 
 
\na-;▼산 아래 헬기장에서 본 중계탑과 계양정
 
 
\na-;▼장미원가는 다리
 
 
\na-;▼장미원
 
 
▣ 계양산 정보
☞ 인천광역시 계양구에 있고 높이 395 m로 인천을 대표하는 진산(鎭山)이며 한남정맥(漢南正脈)에 속함.
☞ 적의 활동을 살피기에 적합하여 주변이 두루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으로 전략적 요충지라 정상 옆 중계 철탑은 군부대가 관리 중.
☞ 계양산은 고려 때(940년) 지명인 수주(樹州)를 딴 수주악(樹州岳), 안남도호부 때(1150년)에는 안남산(安南山), 1215년(계양도호부 때) 계양산(桂陽山)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아남산(阿南山), 경명산(景明山)이라고도 불렸음.
☞ 계양산은 삼국 시대에 중국으로 통하는 큰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서 삼국 시대에 이미 민가 5백여 호가 있었고 고려 때 삼남 지방과 왕도 개성을 잇는 중요한 통로였다. 그리고 조선 왕조의 건국 이후 서곶에서 계양산을 넘어가는 큰 고갯길인 경명현(景明峴)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 고갯길은 관아가 있는 부평을 거쳐 서울로 가는 가장 가까운 교통로가 되어서 고개에는 도둑 떼가 많았음.
☞ 경명현은 ‘징매고개’, 또는‘징맹이 고개’라고도 불렀는데 그 명칭은 고려 때 이곳에 매사냥을 하기 위한 나라가 운영하는 응방(鷹坊,매의 사육과 사냥을 전담하는 관청)이 있었기 때문에 ‘매를 징발한다’는 뜻으로 그렇게 붙여졌다. 또 다른 ‘ 천명 고개’라는 이름도 있었는데 그것은 도둑이 많아 천 명이 모여서야 넘을 수 있다는 뜻으로 불림.
☞ 계양산이란 이름은 계수나무(桂)와 회양목(陽)이 많아서 붙었다는데 고려 시대에 계수나무라는 명칭이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동요 "반달"에 나오는 계수나무는 상서로운 나무를 상징하므로 차라리 "상서롭고(桂) 양기(陽) 많은 산"이라고 해석해본다.
☞ 햇빛이 적어도 잘 사는 전나무, 척박한 곳에서 잘 사는 오리나무, 방풍림으로 떡갈나무가 알려져 있는데 현재는 리기다소나무와 참나무 류 등 많은 종류의 나무가 있음
☞주말에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산이며 둘레길도 많은 분들이 건강을 위해 돌고 계심
☞ 계양산 동쪽 능선을 따라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계양산성이 존재하며, 유물 발굴 작업 등을 통해 한성 백제 시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성곽은 상당 부분 훼손되어 일부 영역을 제외하면 성벽의 흔적만 찾아볼 수 있으며 복원 중.
\na-;▼계양산 장사굴(壯士窟) 전설
계양산 남쪽 중턱의 장사굴에 관한 전설이 있다. 굴 입구는 비좁아 사람이 기어들어 가야만 되고 안으로 들어가면 5~6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이 굴 안에서 촛불을 켜놓고 기도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이 굴에 대하여 전설이 있는데, 첫 번째는 옛날 이 굴에서 장사(壯士)가 났는데 어찌나 힘이 세고 컸는지 그 장사는 그 굴에서 나와 남쪽으로 걸어가 영성산(靈城山) 기슭을 지날 때 넓적한 바위를 밟고 지나갔으며 발자국이 그 바위에 패여 남아있다고 전한다.
두 번째로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부평 땅에 침입하여 부평향교에 불을 지를 염려가 있어 유생들이 향교에 있는 공자를 위시해 여려 명현들의 위판을 이 장사굴에 안치하였다가 난이 평정된 뒤에 다시 봉안하였다. 인근 향교는 모두 불에 타니 훗날 이를 표본으로 삼고 다시 제작하여 갔다고 하며 그 위판을 장사굴에 보존케한 사람에게는 숭유 정신(崇儒精神)의 귀감이 된다 하여 참봉 벼슬을 내리고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고 한다.
이런 전설을 간직한 장사굴은 일제 강점기 입구가 폭파되어 붕괴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1970년대 간첩 은신처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군부대에서 폭파해 버렸다.
\na-;▼접근로
\na-;▼계양구 역사 유적(遺蹟) 소개
계산동의 부평 초등학교에는 부평도호부 관아 건물(인천시 유형문화재 2호)과 어사대(인천시 문화재자료 3호), 욕은지(인천시 문화재자료 1호), 은행나무(인천시 기념물 11호) 등이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 부평도호부 관아 터에 국민학교를 세웠기 때문에 지금까지 청사 건물이 부평 초등학교 자리에 있게 됨.
조선 제22대 임금인 정조는 1797년(정조 21) 8월 15일 김포 장릉(章陵) 전배를 마치고 16일에 김포행궁을 떠나 부평부에 들렀다고 한다. 또한 정조가 장릉에 행차하여 제사를 지내고 수원 사도세자의 묘에 가는 도중 부평에 들러 어사대(御射臺)에서 활을 쏘았다는 이야기와 손을 씻었던 곳이 욕은지(浴恩池)라 전함
이 외에 부평 초등학교에서 경인교육대학교 방면으로 800미터 떨어진 곳에는 조선의 교육기관인 부평 향교(富平鄕校)가 자리한다.
 
 
▶ 마무리하며
인천시를 대표하는 395m의 계양산은 여러 곳에서 정상을 갈 수 있다. 계산역 5번 출구에서 출발하니 계단은 약 1,000개 정도를 지나야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무릎이 안 좋거나 계단을 싫어하시는 분들에게 권하지 않는 산이다.
올라가는 계단에 태풍 "링링"으로 늘어진 전선(電線)을 임시 조치를 취해 놓은 것이 보이며, 계양산 정상의 정자(계양정)는 등산객에 비해 협소하며 정자 난간에 위험하니 앉지 말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지만 등산객이 모두 난간에 앉아 빈 곳은 없었다. 또한 계양산의 아름다움에 대한 정조 임금의 시를 보이게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곳곳에 보이는 안내판은 이용객 편에서 보기 편하고 알맞은 장소에 세웠으면 좋겠고 물론 안내판이 탈색, 갈림길에 안내 미표시 등도 정기적으로 확인, 점검, 보완했으면...
주변이 잘 보이는 정상에서 멀리 있는 것은 잘 안 보이므로 망원경을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고 계양산 둘레길도 한번 걸어봐야겠다.
\na-;출처: 네이버, 구글, 인천 시청, 민족문화대백과,인천문화원
★주변의 볼거리
https://jawkoh.blog.me/221364606059
https://jawkoh.blog.me/221359498771
 

 
※ 원문보기
【연결】계양산 산행
계양구(桂陽區) # 계양산
【여행】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 계양산 둘레길을 걷다.
• 계양산 산행
• 장미꽃이 활짝 핀 계양산 장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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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