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지식놀이터 ::【고재완의 지식창고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2019년
2019년 12월
2019년 12월 5일
2019년 11월
2019년 11월 18일
2019년 11월 11일
2019년 11월 7일
2019년 11월 4일
2019년 10월
2019년 10월 30일
2019년 10월 28일
2019년 10월 25일
2019년 10월 23일
2019년 10월 21일
2019년 10월 18일
2019년 10월 16일
2019년 10월 14일
2019년 10월 10일
김포 장릉 돌아봤어요!
2019년 10월 7일
2019년 10월 3일
2019년 9월
2019년 9월 30일
2019년 9월 26일
2019년 9월 23일
2019년 9월 19일
2019년 9월 16일
2019년 9월 9일
2019년 9월 6일
2019년 8월
2019년 8월 15일
2019년 8월 11일
2019년 7월
2019년 7월 25일
2019년 7월 22일
2019년 7월 18일
2019년 7월 8일
2019년 7월 1일
2019년 6월
2019년 6월 24일
2019년 6월 21일
2019년 6월 18일
2019년 6월 14일
2019년 6월 12일
2019년 6월 10일
2019년 6월 7일
2019년 6월 5일
2019년 6월 1일
2019년 5월
2019년 5월 29일
2019년 5월 25일
2019년 5월 22일
2019년 5월 19일
2019년 5월 16일
2019년 5월 11일
2019년 5월 9일
2019년 5월 4일
2019년 5월 2일
2019년 4월
2019년 4월 29일
2019년 4월 17일
2019년 4월 11일
2019년 4월 8일
2019년 4월 4일
2019년 3월
2019년 3월 25일
2019년 3월 18일
2019년 3월 12일
2019년 3월 7일
2019년 3월 2일
2019년 1월
2019년 1월 31일
2019년 1월 23일
2019년 1월 19일
2019년 1월 16일
2019년 1월 9일
2019년 1월 5일
about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내서재
추천 : 0
김포시(金浦市) # 장릉
【여행】
(2019.11.18. 23:52) 
◈ 김포 장릉 돌아봤어요!
휴일 새로 개통한 김포 지하철을 타고 김포 장릉(章陵. 사적 제201호, 인조의 부모능)을 돌아봤다. 아시다시피 조선 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문화재청에서 유지 관리하고 있다. 왕릉이 비슷비슷해 별 재미가 없지만 아는 만큼 보이므로 장릉에 대하여 무엇이 다른지 알아보고 산책로와 연지(蓮池) 및 저수지를 걸었다.
휴일 새로 개통한 김포 지하철을 타고 김포 장릉(章陵. 사적 제201호, 인조의 부모능)을 돌아봤다. 아시다시피 조선 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문화재청에서 유지 관리하고 있다. 왕릉이 비슷비슷해 별 재미가 없지만 아는 만큼 보이므로 장릉에 대하여 무엇이 다른지 알아보고 산책로와 연지(蓮池) 및 저수지를 걸었다.
\na-;▼장릉의 전경 - 역사 문화관 사진 캡처-
 
 
\na-;▼장릉 입구 안내도
 
 
\na-;▼장릉 안내판
\na-;▼추존 원종의 왕릉과 산책길
입구(주차장) → 매표소(1,000원/성인) → 역사 문화관 → 왕릉길 → 장릉 홍살문 → 정자각 → 비각 → 장릉 소나무 숲 → 산책로(참나무 숲) → 저수지 → 재실 → 연지 → 입구
 
 
☞ 일반적으로 왕릉에 가려면 재실(齋室)을 거쳐서 가는데 여긴 바로 갈 수 있다. 왜 그럴까 확인해보니 원래 입구가 아래 저수지 쪽인데 현 위치로 변경 후에 새 왕릉길을 만들었단다. 문헌을 보면 장릉으로 들어가는 길이 현재의 저수지(1960년대 만듦) 부근이다. -해동지도-
\na-;▼장릉 역사 문화관
☞장릉에 관한 자료를 볼 수 있는 역사 문화관이며 해설을 요청하면 된다.
☞입구의 문, 무석인 석상은 장릉에 올라갈 수 없기에 이곳에서 미리 보면 좋다.
 
 
\na-;▼파주의 인조 장릉, 김포 장릉과 계양산은 수직상 일직선이다. 자식이 부모를 그리워하고, 인천 계양산이 조산(祖山, 풍수지리에서 혈(穴)에서 가장 멀리 있는 용의 봉우리)이란다.
\na-;▼김포 장릉에 효종, 숙종, 영조, 정조 임금 등이 참배하였다.
\na-;▼ 보랏빛 가을꽃인 층꽃(꽃말이 "가을의 여인")
 
 
\na-;▼매표소를 지나 산책길로 입장객이 적어 한가롭다.
 
 
 
 
\na-;▼왕릉은 풍수적으로 명당이면서 도성에서 멀지 않은 곳을 고른다. 배산임수(背山臨水,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지세)로 왕릉 앞에 물길을 건너는 돌다리 금천교(禁川橋)를 놓았다. 이 금천교는 왕의 혼령이 머무는 신성한 영역과 속세의 영역을 구분하는 역할이다.
 
 
\na-;▼홍살문(紅箭門)과 장릉 입구 옆에 소나무가 무리 지어 서 있고,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의 참도(參道: 향로香路와 어로御路)는 직선으로 경사가 져 중간에 계단을 둬 지형과 맞게 설치했다.
 
 
\na-;▼장릉 배치도(수라간은 멸실)
 
 
\na-;▼향로(香路, 좌측의 높은 길)와 어로(御路, 우측의 낮은 길), 맞배지붕의 정자각, 수복방(守僕房), 비각(碑閣)
 
 
\na-;▼정자각(丁字閣)의 동쪽 계단은 신계(神階, 향로계)와 어계(御階)의 2개
 
 
\na-;▼서쪽 계단은 어계만 (신은 봉분으로 가기에) 있다. 따라서 동쪽으로 올라 서쪽으로 내려온다.
 
 
\na-;▼비각 옆에 1626년 인헌왕후가 세상을 뜨자 육경원 조성 당시의 비석 받침돌(농대석, 籠臺石)이 출토되어 보존하고 있다. 네 면에 영지와 구름 문양이 새겨져 있어 현재의 영조 때 세운 문양없는 비석 받침돌과 비교된다.
\na-;▼정자각 동쪽에 자리한 비각(碑閣)은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건물로, 비문을 통해 능의 주인공과 그의 생전 행적을 알 수 있다. 안의 비면에는 "조선국 원종대왕 장릉 인헌왕후 부좌(朝鮮國 元宗大王章陵 仁獻王后祔左: 인헌왕후 능은 오른쪽이란 뜻으로 북에서 남향하면 좌측)"라고 쓰여 있으며, 1753년(영조 29)에 세워졌다. 전면은 이조판서 홍계희(洪啓禧)가 전서체로 썼다.
\na-;▼ 쌍릉으로 정자각에서 볼 때 왼쪽이 원종, 오른쪽이 인헌왕후의 능이며 봉분은 사대석(沙臺石)으로 마무리되어있다. 문양이 있는 병풍석과 난간석 없이 호석(護石: 봉분 주위를 둘러막는 돌)만을 두르고 있는데, 이는 원종이 왕으로 추존되기 전 흥경원을 조성할 때의 호석이다. 그 밖에 문무석인(文武石人), 석마(石馬), 장명등(長明燈), 혼유석(魂遊石), 망주석(望柱石), 석양(石羊)과 석호(石虎)는 원종이 왕으로 추존된 이후에 새로 설치한 석물이다. - 출입 금지라 조선왕릉 사진에서 캡처함-
 
 
\na-;▼왕릉 가까이 있는 문석인은 머리에 복두(幞頭)를 쓰고 단령(團領)을 입고 홀(笏)을 쥐고 석마(石馬)와 나란히 서 있다. 무석인은 투구를 쓰고 포 위에 갑옷을 입고 검을 빼어 땅을 짚고 있다.
문석인이 무석인 보다 조금 크며 오른손이 왼손을 덮었고 얼굴이 몸 전체에 비해 크다. - 출입 금지라 조선왕릉 사진 캡처 편집-
\na-;▼홍살문을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소나무 숲길
 
 
 
 
 
 
\na-;▼ 장릉의 나무 종류 중 가장 많은 참나무
참나무 6형제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 굴참나무
 
 
 
 
 
 
\na-;▼저수지로 향하는 우거진 숲길에 들어왔다. 이 숲길에는 갈참나무가 많다. 우거진 참나무 가지들이 햇빛을 가려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na-;▼물이 모이는 저수지로 1960년대 만들었단다.
 
 
\na-;▼단풍 들면 더 멋있겠다.
 
 
\na-;▼저수지의 갈대
 
 
 
 
\na-;▼ 열매가 딸기 모양이라 산딸나무라 한다.
 
 
\na-;▼장릉 제향을 준비하는 재실(齋室)이며 능참봉(종 9품)이 거주하며 관리했다. 부원군(왕비의 아버지)이며 재상에 오른 "한명회"도 능참봉 출신이다.
\na-;▼재실 옆에 모과나무, 대추나무 및 은행나무가 자란다.
 
 
\na-;▼연지(蓮池, 75mx 48m)에 피었던 연꽃은 졌고 잎만 남았으며 가운데 둥근 섬이 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에 맞춰 섬을 만든 것 같다.
\na-;▼보라색 열매가 이쁜 좀작살 나무(꽃말은 "총명")
 
 
▣장릉 정보
☞김포 장릉은 누구의 무덤인가?
장릉하면 김포 장릉(章陵) 말고 파주 장릉(長陵), 영월 장릉(莊陵)으로 모두 3개다. 영월 장릉은 세조에 의해 강제 퇴위한 단종의 능이고, 파주 장릉은 16대 왕인 인조의 능이며 김포 장릉은 인조 임금의 부모 능이다.
☞인조의 부모는 누구인가?
인조의 부친은 정원군(이부:李琈, 1580~1619,40세)으로 선조의 다섯째 아들이다. 사망 후 경기 양주 곡촌리(현 남양주 금곡동)의 흥경원(興慶園)에 묻혔다. 모친은 구사맹의 딸(1578~1626, 49세)로 사망 후 김포 북성산(北城山, 현 장릉산)에 안장하고 육경원(毓慶園)이라 칭하였다.
☞왕을 한 적이 없는데 어째서 왕이라 하는가?
왕의 전통성을 유지하기 위해 부모를 왕으로 추존한다. 사망한 정원군은 이조 반정으로 아들이 인조로 즉위 후 대원군, 1627년(인조 5)에 원종으로, 1632년 모친은 인헌왕후로 추봉되었다. 아울러 흥경원에 묻힌 원종을 인헌왕후가 묻힌 육경원으로 천장(遷葬)하면서 원에서 능으로 바뀌며 장릉이란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조선의 추존왕은 누구누구가 있는가?
추존왕(追尊王)이란 실제로 왕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세상을 떠난 뒤에 왕으로 높여 묘호가 내려진 왕을 말한다.
조선의 추존왕은 모두 9명으로 이들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세자의 신분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거나,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왕의 아버지, 그리고 태조 이성계의 4대 선조이다.
덕종은 세조의 맏아들로 의경세자에 봉해졌다. 그러나 세자로 책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20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동생인 예종이 세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나 예종 역시 1년 남짓한 재위 기간을 채운 뒤 세상을 떠났다. 의경세자에게는 월산대군과 자산군 두 아들이 있었는데,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는 둘째 아들인 자산군으로 하여금 예종의 뒤를 잇게 하였고, 그가 9대 왕인 성종이다. 성종이 왕위에 오른 뒤 의경세자는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원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로 1587년 정원군에 봉해졌으며,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세상을 떠난 지 4년 후, 아들인 능양군이 반정 세력의 추대를 받아 조선 16대 왕 인조로 즉위하자 정원대원군으로 추존되었으며, 9년 후 원종으로 추존되었다. 인조는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올랐고 선왕인 광해군이 폐위된 터라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왕으로 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종은 영조의 맏아들로 1719년 태어나 1724년 경의군에 봉해졌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10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효장세자라는 시호를 받았다. 후에 그의 이복동생인 사도세자(장조)가 왕세자가 되었으나 그마저 즉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사도세자의 아들이 22대 임금 정조로 즉위하였다. 정조는 영조의 유언에 따라 효장세자의 양아들로 입적되고, 효장세자를 진종으로 추존하였다. 이후 대한제국 선포 후 순종황제가 등극 한 후 1908년(융희 2)에 진종소황제로 추존되었다.
장조는 형인 효장세자가 죽자 1736년 세자로 책봉된 후 대리청정을 하는 등 활발한 정치활동을 벌였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1762년 28세의 나이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1776년 아들인 정조가 즉위한 후 그를 장헌세자로 추존하였으며,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 고종의 계승상 고조부의 자격으로 장조의황제로 추존되었다.
문조는 순조의 아들로, 태어난 지 3년 만인 1812년(순조 12)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1827년(순조 27)에는 순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였다. 대리청정 기간 동안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예악 진흥을 위해 정재(呈才)를 직접 만들었다. 그러나 순조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 1830년에 효명세자의 시호를 받았다. 이후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익종(翼宗)으로 추존되었고,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 고종의 계승상 아버지의 자격으로 문조익황제로 추존되었다.
☞김포 장릉은 언제 만들어졌는가?
1620년 흥경원(정원군),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인조 즉위, 1626년 육경원(부부인), 1627년 흥경원 천장, 1632년 장릉(추존 원종과 인헌왕후)으로 승격하여 조성하였다.
☞후대에 누가 언제 이곳을 방문했는가?
\na-;▼김포 장릉에 효종(1655년, 효종6), 숙종(1691년, 숙종17),영조(1734년,영조10), 정조(1797년,정조 21), 임금이 방문하여 참배하였다.
☞ 고종이 “장릉(章陵)에 나아가 친히 제사를 지낸 뒤, 이어 진무영(鎭撫營)에 가서 열병식에 친림할 것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當詣章陵親祭後, 仍詣鎭撫營, 親臨閱武矣) - 1873년(고종 10. 2/22) 승정원 일기-
☞ 정조의 김포 장릉 목적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륭원(융릉)으로 가기 전에 인조의 부모가 묻힌 장릉을 참배해 인조처럼 왕의 정통성을 강화하려고 했을 것이다.
☞장릉과 다른 왕릉과 차이점은 무엇이 있나?
장릉은 왕이 아니었던 왕의 아버지라 봉분의 병풍석과 난간석이 없고 간단한 석물로 대원군에 준하는 형식의 능이다.
\na-;▼선조가 묻힌 목릉을 보면 인석, 병풍석, 난간석이 있다.
☞제향일은 언제?
매년 10월 5일
☞김포 장릉의 원찰은?
봉릉사인데 6.25전쟁 때 소실되어 금정사로 개명, 신축하였다.
\na-;▼금정사
 
 
☞연락처: 031-984-2897
☞http://royaltombs.cha.go.kr
☞입장료 :1,000원/인(25~64세),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무료 입장
☞정기해설(3회/일, 약 1시간 소요) : 10:30, 13:30, 15:30 매표소 입구 출발, 역사문화관 문의 OK
☞주차료 :100원/10분, 자전거는 입구 매표소 옆 보관
☞개방시간
☞휴무일:매주 월요일
☞위치 : 경기 김포시 장릉로 79
☞ 마무리하며
장릉 관람과 장릉 내 산책길은 걷기 좋고 장릉의 원찰인 금정사를 구경하고 장릉산 한 바퀴를 돌았다. 장릉 입장객이 적어 한가로우며 문화해설을 듣고 걸으면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해설 시간과 맞지 않으면 역사 문화관에 문의하면 된다.
왕릉길과 산책로가 완만해 가족끼리, 연인끼리, 건강을 위해 걷는 분이 보인다.
숲과 함께 건강을 챙기고 역사도 배우는 코스로 나무들이 노랗고 붉게 물들어 겨울을 맞이할 시기다. 올 가을 나무, 풀꽃과 함께 숲길을 권한다.
\na-;출처: 장릉 홈페이지,구글, 네이버, 문화재청, 문화유산채널,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릉 길잡이
https://jawkoh.blog.me/220388670622
 

 
※ 원문보기
김포시(金浦市) # 장릉
【여행】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 파주 헤이리의 풍경
• 김포 장릉 돌아봤어요!
• 장릉을 지켰던 금정사(金井寺, 옛奉陵寺)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로그인 후 구독 가능
구독자수 : 1
▣ 정보 :
여행 (보통)
▣ 참조 지식지도
▣ 다큐먼트
▣ 참조 정보 (쪽별)
◈ 소유
◈ 참조
 
? 장릉 (2)
 
▣ 참조정보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 참조정보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