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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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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검여 유희강 생가 마을(아라뱃길 매화동산)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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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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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西區) # 유희강 # 정서진
【여행】
(2018.10.01. 20:15) 
◈ 서예가 검여 유희강 생가 마을(아라뱃길 매화동산) 탐방
추석 연휴를 잘 보내셨는지요? 경인 아라뱃길의 시작점인 인천 정서진과 아라폭포(인공폭포)에 이어 매화동산으로 마무리합니다.
추석 연휴를 잘 보내셨는지요? 경인 아라뱃길의 시작점인 인천 정서진과 아라폭포(인공폭포)에 이어 매화동산으로 마무리합니다. 정서진로의 매화 주차장에서 가까운 매화동산은 경인아라뱃길 조성으로 사라진 서예가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 1911~1976) 선생의 생가 마을에 역사적 흔적을 남기고자 조성한 곳이다. 유신규(柳信圭) 직장 선배의 부친인 유희강 선생은 시(詩) 화(畵) 서(書)에 모두 능했으며, 특히 오른손이 마비되어 글씨를 쓸 수 없자 왼손으로 글씨(左手書)를 써 불굴의 의지로 재기한 예술인이셨다. 매화 필 때 가면 더 좋겠다.
 
▼ 매화동산 표지석
 
▼ 매화동산 속으로
 
▼ 선비의 상징 4군자 매란국죽(梅蘭菊竹)의 하나인 매화 170주가 있단다.
 
▼ 매화나무 정원(정자 이름이 꽃마루)
 
▼ 유희강 생가 마을 표지석
 
▼ 표지석 아래 안내판
 
▼ 서예 1(유지자사경성)
 
▼ 서예 2(적서승금)
 
▼ 탐매도
 
한평생 몇 번의 매화 핀 경치도 보기 어려워
내가 산에 들어가 그리려하니 매화가 이미 피었구나
무성한 꽃망울 하늘을 향해 반쯤 기울고
빰에 부는 산들바람 동쪽에서 불어온 듯
마을 앞 만그루 나무는 천 그루로 그리고
오늘 밤 술잔은 다시 두 잔일세
그대 있어 맑은 흥취 함께 하니
짚신에 푸른 이끼 묻히지 않으려네
 
 
▼ 퇴계 이황의 "도산 월야 영매"
 
獨倚山窓夜色寒 독의산창야색한 홀로 창가에 기대서니 산속 바람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 매초월상정단단 매화나무 가지 끝에 떠오르는 둥근 달
不須更喚微風至 불수갱환미풍지 구태여 부르지 않아도 산들바람 불어오니
自有淸香滿院間 자유청향만원간 맑은 향기 저절로 뜨락에 가득 차네
 
 
▼ 꽃마루 정자에서 불노문(不老門) 방향
 
▼ "지나면 늙지 않는다"는 불로문(창덕궁 불로문은 통째로 만든 돌이지만....)
 
▼ 옹기원(매실을 담아두던 장독대)
 

 
▣ 검여 유희강에 대한 자료 검색
 
▼ 옛집에 대한 회상
검여는 “내가 옛날 어렸을 적에 본 것은, 단풍나무와 떡갈나무가 집을 둘러싸고 있으며, 등나무 줄기는 땅에 드리워져 있고, 작은 시내는 졸졸거리며 뜰 앞을 감돌아 흐르고, 시렁에는 서책이 가득했으며, 책상에는 붓과 벼루가 정돈되어 있었다"라고 문풍이 살아 있던 어린 시절 집안의 풍광을 묘사한 바 있다. 그러나 검여가 태어난 이 집은 경인 아라뱃길이 건설되면서 사라지고 없다.
 
 
▼ 검여의 일생
 
검여 유희강(劍如 柳熙綱, 1911-1976)은 한일합방 다음 해에 유서 깊은 양반가 진주 유씨(晋卅柳氏)의 가문에서 부친 성무(性茂, 1856-1911)와 모친 전주 이씨 사이에서 외동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28일 만에 부친이 망고(亡故)함에 따라 조부 태형(台衡)과 백부 정무(正茂)의 훈도하에서 한학과 글씨를 접하면서 성장하였다. 늦게 20대 중반에 명륜학원(明倫學院,현 성균관 대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다년간 만유(漫遊)하다가 이립(而立)의 중반을 넘어서 1946년에 귀국하였다. 그 후 인천에서 활동하면서 미술계 또는 공직에 종사하다가 불혹(不惑)의 나이에 서단에 몸담은 이후 일약 국전에서 빛을 발하였다. 뿐만 아니라 불과 십수년 만에 일찍이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크게 성가(成家)함으로써 근현대의 대표적인 서예가가 되었다. 50대 후반에 원숙무애(圓熟無碍)의 경계를 목전에 두고 지천명(知天命) 후반에 우반신(右半身) 마비라는 비운을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수(左手,왼손)의 글씨로 다시 재기(再起)함으로 써 견인불발(堅忍不拔)과 불굴불요(不屈不撓)의 예술집념(藝術執念)으로 세상에 더욱 더 잘 알려진 서예가이다.
 
▼ 중국에서 귀국 기념(1946.5)
 
▼ 왼손으로 글을 쓰다.
 
▼ 마지막 작품인 "관서악부"
 
조선 영조 때 신광수(申光洙)가 지은 악부로 작자의 문집인 『석북집 石北集』 권10에 실려 있다. ‘관서백사시행락사(關西伯四時行樂詞)’·‘백팔악부(八樂府)’·‘백팔진주(百八眞珠)’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108수로 된 장편 연작으로, 부임한 한 해 동안 다스린 행적을 다룬 내용이다.
 
 
▼ 서거 30주년 기념 포스터
 
 
글씨는 인물평가 요소인 신언서판(身言書判 : 신체, 말씨, 글씨, 판단)중의 하나다. 잘쓰는 글씨는 그만큼 중요하였으나 지금은 컴퓨터로 인하여 서예학원은 찾기 어렵고 글씨 잘 쓰는 사람은 보기 어렵다. 물론 서예는 수양의 수단이기도 했는데 아쉽다.
 
 
출처 : 민족문화대백과, 인천 광역시, 네이버, 구글, 이희완교수,서거 30주년 학술 심포지움 자료,네이버tv, 네이버블로그,인천문화재단
서구(西區) # 유희강 # 정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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