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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민중항쟁 72주기' 희생자 추모와 정신계승을 위한 문화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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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순천 사건(麗水順天事件) 여수시(麗水市)
【뉴스】
(2020.10.20. 09:03) 
◈ '여순민중항쟁 72주기' 희생자 추모와 정신계승을 위한 문화제 열려
박금만 화가, 여순사건특별법 제정될 때까지 작품활동 계속할 예정
 
\na-;▲ 10월 18일(일) 오후 4시, 여수 이순신광장에서는 여순민중항쟁 72주기 희생자 추모와 정신계승을 위한 문화제가 열렸다. ⓒ 오문수
 
여순사건 72주기를 하루 앞둔 18일(일) 오후 4시, 이순신 광장에서는 여순민중항쟁 72주기 희생자 추모와 정신계승을 위한 문화제가 열렸다. 현장에는 희생자 유족과 시민 50여 명이 참석했다.
 
홍익입시미술학원, 뉴젠리더십교육공동체, 전교조 여수지회, 오림동청년회·방범대가 후원한 공연에는 서혁신, 이중현, 해인밴드, 상록수밴드, 주철희, 박금만, 강경아, 오현웅, 조계수 등이 출연했다.
 
오후 4시가 되자 여순사건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을 올린 참가자들은 곧바로 문화제 행사를 시작했다. 테너 오현웅의 '라그리마, 너도 처음부터 꽃이었구나!'에 이은 강경아 시인의 '여순의 푸른 눈동자' 시낭송이 있었다. 이어진 순서는 여순사건 현장을 발로 뛰며 철저하게 파헤친 주철희 박사의 '여순 항쟁은?'이란 주제 강의가 있었다.
 
'항쟁과 반란'. 항쟁일까? 반란일까? 여순사건이 발생한 지 70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명징하게 결론 내려진 용어는 없다. 사건 초기 여순반란사건이라고 규정했던 정부는 용어 문제로 여수와 순천 시민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자 여순사건이라고 개명했다.
 
하지만 여순사건을 '항쟁'이라고 명명한 주철희 박사는 그의 저서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에서 여순사건은 '항쟁'이라고 주장했다.
 
"항쟁은 역사 용어이다. 어학사전의 의미와 다르다는 것이다. 항쟁은 사건의 성격을 지배자 또는 권력자의 관점에서 본 역사가 아니라, 사건의 주체자를 통해 역사의 성격을 규명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민란이 현대적 개념으로 해석하면 항쟁이다. 항쟁은 '사회적 현실 속에서 특정한 담론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중들이 지배 질서에 대항하여 집단적이고 전면적으로 저항을 실천하고 나아가 지배 질서의 일상적 작동을 정지시킨 사건'을 일컫는다. 일상적 질서의 작동을 정지시킨다는 의미는 '항쟁은 폭력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지배권력자의 부당함에 맞서 집단적 대중적 실천 행위로 이루어진 역사로는 동학농민운동, 제주 4.3항쟁, 광주민중항쟁, 프랑스혁명 등이 있다."

 
이어진 순서는 리더 이정훈 교사가 이끄는 해인밴드 공연, 서혁신의 여수블루스와 여수야화 공연, 이중현의 '꽃물이 든다'와 '부치지 않은 편지' 노래에 이어 상록수 밴드의 '여수 오동도 동백꽃' 노래, 조계수 시인의 '진혼'시 낭독에 이은 '진혼' 노래 공연이 펼쳐졌다.
 
 
 
유족인 박금만 화가... 여순사건특별법 제정될 때까지 작품활동 계속할 예정
 
문화제가 열리는 이순신광장 주변에는 여순사건 희생자를 기리는 30여 개의 걸개 그림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림의 주인공은 여수에서 활동 중인 박금만 화가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여순사건 당시 희생된 할아버지와 생존해 계신 그의 부친의 그림이 있다. 문화제가 열리는 현장에 참석한 박금만 화가의 부친인 박영수(83세)씨를 만나 당시의 상황을 들었다.
 
\na-;▲ 여순사건 문화제가 열리는 이순신 광장 주변에 박금만 화가가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그림속에 아기를 업고 한손에 어린이를 잡은 여인은 박금만 화가의 할머니이고 여인의 손을 잡고 한 손을 든 어린이가 오른쪽에 서계신 박영수(당시 11살)씨다. 한 주민이 학살된 시신을 지게로 옮기고 있다 ⓒ 오문수
 
"여순사건 당시 제 고향인 순천시 주암면 문근리 (당시 흥교리)에 살고 있었는데 여순사건이 발생한 다음 해인 1949년 4월 어느 날 광천초등학교에 젊은이들을 불러 잉크를 뿌려 무명옷 바지저고리에 잉크가 묻은 사람은 무조건 빨갱이라며 잡아다 광천교 위쪽에서 총살했어요. 아버지가 희생되자 저희 형제들은 학교도 못 다녔고 저는 머슴살이를 했어요. 소원이라면 여순사건특별법이 제정되어 누명을 벗고 싶어요."
 
한국화를 전공했던 박금만씨는 35살까지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동안 여순사건은 남의 일로만 알았다. 하지만 우연히 당숙을 만나고부터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na-;▲ 여수사건에 관한 그림을 그리는 박금만화가와 그의 걸개 그림이 이순신 광장에 전시되고 있다. 그는 여순사건 희생자 유족이기도 하다 ⓒ 오문수
 
"작가는 항쟁의 시각에서 보는데 관계 당국에서는 항쟁이 아닌 반란으로 보려는 시각에 대해 반대한다"고 말한 그는 "여수시민으로서 여순사건특별법을 제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지금도 순천대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그는 "유족들이 와서 그림을 보며 눈물을 흘릴 때 작가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근현대사의 아픔이라고 여겨지는 광주항쟁, 제주4.3, 거창학살사건은 추모기념관이 세워졌지만 여순사건은 아직도 특별법과 추모기념관설립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문화제에 참석했던 참가자들은 하루빨리 여수사건특별법이 제정되기를 바라며 자리를 떴다.
 

 
※ 원문보기
여수·순천 사건(麗水順天事件) 여수시(麗水市)
【뉴스】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 "더 많이 알려야겠어요" 중학생 눈에 비친 여순사건
• '여순민중항쟁 72주기' 희생자 추모와 정신계승을 위한 문화제 열려
• 20년 전 쓴 시가 여순사건 추모곡이 된 사연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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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