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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고대문화의 심장, 몽골 유목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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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오문수의 지식창고 2018.09.09. 13:08 (2018.09.09. 12:58)

“쌀알에 동물이 다녀요”

몽골에서 한국에 시집온 지 17년 된 델게르마
▲ 여수에 시집 온 몽골 결혼이주민여성 1호인 델게르마. 몽골출신 결혼이주민여성들이 어머니 처럼 여긴다. 한국이 좋아 친정식구 대부분이 한국에 산다. ⓒ 오문수
 
 
7년 전 필자는 여수에 사는 결혼이주민여성과 외국인노동자를 돕는 여수이주민센터 이사로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필자의 앞에 몽골에서 시집왔다는 델게르마가 나타났다.
 
따뜻한 미소와 친절한 태도가 좋아 여수에 사는 결혼이주민 여성들을 위한 개별상담역을 맡기고 아시안마켓을 운영하라고 했다. 여수이주민센터에서는 이들의 향수를 달래주기 위해 상담실을 운영하고 출신국가별 식재료를 수입해 팔고 있었다.
 
2018년 9월 현재, 여수에는 16개 국가에서 온 결혼이주민여성 1200여 명이 살고 있다. 외국인노동자들까지 포함하면 외국인이 6300여 명이나 된다. 몽골 출신으로는 최초로 여수에 시집온 델게르마는 몽골에서 시집와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후배들을 위해 성심껏 상담해주고 통역을 도맡는다. 여수이주민센터 한정우 이사장의 말이다.
 
"델게르마는 시부모를 잘 모실뿐 아니라 성실하게 일하며 결혼이주민여성들의 모범이 되는 여성입니다. 후배들을 위해 통역과 상담을 맡아 몽골에서 시집 온 후배여성들이 어머니처럼 여깁니다. 델게르마가 중심이 돼 해마다 여수에서 여는 몽골 나담축제 기간에는 여수·순천·광양에 사는 몽골출신 여성들뿐만 아니라 몽골출신 노동자들도 초대해 음식을 제공하고 게임을 하며 향수를 달래줍니다. 축제에 드는 경비 대부분을 델게르마가 부담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여수다문화축제기간에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며 발표하던 그녀의 얼굴이 더욱 환해졌다. 알고 보니 친정 부모님뿐만 아니라 동생들도 여수에 와서 함께 살고 있었다.
 
▲ 델게르마 집을 방문했을 때 친정식구들 대부분이 모였다. 15명의 화목한 가정에서 차담을 하고 돌아오는 내내 행복했다. ⓒ 오문수
 
 
하여 남편과 시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친정식구의 중심에 선 델게르마가 한국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장대비가 심하게 쏟아지는 저녁 8시 무렵에야 퇴근한 그녀 집에 도착하니 친정식구 15명이 화목하게 이야기하며 TV를 보고 있었다. 집에는 그녀의 친정 부모님과 남동생 2명, 1명의 여동생가족이 모여 있었다. 여동생 한 명의 가족은 몽골에서 살고 있다.
 
- 언제 시집왔고 시집와서 처음에 한 일은 무엇입니까?
 
"2001년 1월에 남편을 만나고 5월 달에 여수에 왔을 때 몽골인으로서는 저 혼자였습니다. 그 때 남편이 잠수기 수협에서 다이버 배를 탔었습니다. 남편은 새벽 4~5시쯤에 나가서 오후 1시쯤에 들어왔었습니다. 남편이 일을 마치고 나면 저에게 여수를 구경 시켜주고 볼링도 치러 다녔습니다.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서 한국어도 빨리 배우고 적응도 잘했습니다.
 
남편이 말하길 시부모님을 모시려면 한국어를 제대로 할 줄 알아야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하루에 한 두 시간 앉아서 한국어를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 때 시아버님, 시어머님, 도련님과 같이 살았습니다. 저만 빼고 다른 식구들이 출근하고 나면 한국어 공부를 하다가 집안일을 했습니다. 집에 있는 천으로 책상보도 만들고 이런저런 것들을 만들어 놓으면 어머님이 잘했다고 칭찬을 많이 했습니다."
 
- 어려운 한국말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는?
 
"한국에 온 지 한 달 정도 됐을 때 밥하려고 보니 쌀에 벌레가 있었어요. 몽골쌀에는 벌레가 없어요. 깜짝 놀라 '쌀 안에 동물이 다녀요!'라고 말했더니 한국 사람들이 박장대소하며 웃고 저를 볼 때마다 그 얘기를 하며 웃었어요."
 
▲ 지난 7월 8일, 여수에서 열린 몽골 전통축제인 나담축제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왼쪽은 남동생이다. ⓒ 오문수
 
 
- 향수를 느낄 때는 없었나요?
 
"빨래를 하고 시아버님 옷을 다릴 때 친정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울었던 적도 있습니다. 시집오기 전 친정아버지가 교대 근무할 때 옷을 다려달라고 하면 동생들이랑 서로 다림질을 안 한다며 싸웠던 적이 있었거든요.
 
한번이라도 먼저 다려 드릴 걸 왜 평생 할 것처럼 그렇게 했을까 후회했습니다. 친정아버지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시면 어머니한테 책을 읽어주시는 자상한 분이셨어요. 사람은 소중한 것들에게서 멀어지면 그 소중함이 더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좋은 시댁, 좋은 남편을 만나서 사랑을 많이 받고 한국 생활을 잘 해 온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남편과 식당에 갔는데 '이렇게 잘 생긴 한국 남자 만났으니 부모님 잊어버리라'고 해서 마음이 아팠어요. 부모님이 계셔서 내가 있는 것이잖아요. 부모님은 제 존재이유잖아요. 섭섭했어요."
 
- 한국생활하면서 힘든 것은 무엇입니까?
 
"처음에는 언어 때문에 힘들었고 다음에는 아이들 양육 때문에, 지금은 아이들 교육 때문에 힘듭니다. 힘들다고 하면 끝없이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하나하나씩 해결 하고 살면 행복만 가득할 것 같아요. 처음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니까 항상 예쁨을 받았지만 세금 내는 것과 생활비를 드려야 된다는 것을 모르고 마냥 먹고 쓰고 있다가 아버님이 화가 나셔서 저희를 나가서 살라고 했습니다.
 
저는 월세집, 생활비, 세금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지 몰랐습니다. 제가 한국 생활 방식을 몰라서 그런 실수를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남편 잘 못도 있습니다. 제가 몰랐어도 남편이 알아서 챙겨 드렸어야 했었는데…. 하지만 날마다 아버님 집에 가서 청소도 해 드리고 손주도 보실 수 있게 해드리자 시부모님이 굉장히 좋아하셨습니다."
 
- 한국생활습관을 몰라 실수했던 것은?
 
"한국 어린이집과 학교교육방식을 잘 몰라서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특히 큰 아들 실내화를 안 보내고, 초등학교 1학년 2학기 끝나기 전에 겨울 방학 때 다 끝난 줄 알고 교재를 다 버려서 아들이 학교를 안가고 한 주 동안 결석했습니다. 그때 제가 일을 하고 있어서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전화를 하셔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왜 학교에 가지 않았냐?' 물어보니 '교재가 없어서 선생님께 혼날까봐 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데리고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교재가 없다는 것을 알리고 나서 아들이 학교를 다시 다녔습니다. 이것 말고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 여수에서 열린 몽골 전통축제인 나담축제에 델게르마 식구 대부분이 참가했다. 몽골전통복장을 한 분들이 델게르마의 친정 부모님이다. 여수에서 열린 나담축제에는 여수, 순천, 광양의 결혼이주민여성과 노동자 5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경비 대부분을 델게르마가 부담했다고 한다. ⓒ 오문수
 
 
- 주위에서 사랑을 많이 받으며 베풀기도 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제가 받았던 사랑만큼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부탁하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국어를 못하는 친구들한테 통역을 해주고 아픈 사람들을 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료를 받게 해주고 잘 곳이 없으면 집에서 재우고 먹을 것이 없으면 가져다주기도 하고 모든 일을 내일 같이 생각하고 했습니다. 몽골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친구일이 잘 되면 내일도 잘 풀린다." 그것처럼 지금까지 저희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남편일도 잘 되고 행복하게 잘살기를 빕니다."
 
 
행복한 가정의 취재를 마치고 나오며 델게르마 아버지 보양 델게르(63)씨 한테 한국에서 사는 심경을 물었다.
 
"애들 대부분이 한국에서 와서 열심히 살고 있어 좋아요. 한국은 열심히 일하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이잖아요"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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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