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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바람처럼 스쳐간…
전두성의 산과 삶의 자취
20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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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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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雪嶽山) # 토왕성
【여행】
(2018.06.12. 23:37) 
◈ 토왕의 추억(1)
등산학교 겨울 수련과정이 끝난 다음 주에 산 친구인 속초 119구조대 장남중(정 13) 님이 내 생각을 물었다. 이번 겨울에 119구조대원 팀으로 토왕성 빙벽을 오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등산학교 겨울 수련과정이 끝난 다음 주에 산 친구인 속초 119구조대 장남중(정 13) 님이 내 생각을 물었다.
이번 겨울에 119구조대원 팀으로 토왕성 빙벽을 오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내가 알기로 장남중 님을 제외한 다른 대원은 올해 처음으로 빙벽 등반을 시작한 대원들이다.
남은 겨울 동안 좀 더 훈련하고 내년 겨울에 시도하는 것이 좋겠다며 만류했다.
등반 능력이 우수하고 체력이 좋은 대원이라 내년에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판단한다.
 
지난 설 연휴에는 내가 소속했던 어센트 산악회 후배 몇 명이 토왕성 빙폭을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등한 리더는 내가 이끌었던 90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남벽 원정 때 대원으로 참가했던 후배이고
또 다른 한 명은 13~4년 전쯤 암벽등반을 지도하며 함께 산행했던 여성 후배이다.
그들의 등반기를 읽으며 이젠 토왕성 빙폭이 무척 가까이 다가왔음을 실감하였다.
 
며칠 전 산악 선배(고령산악회 구신회 님) 한 분이 등산학교 훈련센터를 찾았다.
67세의 연배로 이젠 산악 원로 반열에 오르실 나이다.
 
대뜸 “나 지난주에 토왕성 등반했어!” 하고 말씀을 꺼내신다.
06~07년 겨울 열린캠프 산행을 통하여 빙벽등반에 동기를 느꼈던 분이다.
빙벽 등반을 하고 싶어 하기에 장비를 사들일 동안 등산학교 아이스바일 두 자루를 오랫동안 빌려드렸었다.
 
작년엔 우이동에 있는 O2 인공빙벽에서 매주 한 차례 이상 훈련을 하며 실력을 연마하였으며
틈틈이 열린캠프를 찾을 때면 빙벽 등반 기술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다.
나와 같은 연배인 윤대표 산악인의 선등으로 토왕성 빙벽을 올랐다며 그동안 열린캠프 도움에 고마워하셨다.
 
덕분에 젊은 시절 열정으로 부딪쳐 갔던 토왕성 등반 추억이 떠올라 몇 자 끼적거려본다. (2008년 2월에 전두성)
 

 
70~71년 겨울, 내가 소속한 어센트 산악회에서는 동계 토왕성 빙폭의 등반을 계획하였다.
당시 설악산의 토왕성 폭포 빙벽 등반은 한국 산악계에서 태동하기 시작한 머메리즘의 시발점으로
유럽 알프스 3대 북벽 등반에 버금가는 목표로 우리에게 다가들었다. (3대 북벽 : 마터호른, 아이거, 그랑조라스 북벽)
 
대원은 모두 4명, 69학번으로 대학 2학년이던 선배 세 분과(이도용, 최영식, 하용호) 고등학생이던 나, 그렇게 4명이었다.
처음 계획에 4명의 대원은 선발대로 베이스 구축과 전진 캠프를 설치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며칠 뒤 합류한다던 본대가 결성되지 않아
그 해의 토왕성 빙폭은 먼저 출발한 4명의 대원만으로 등반을 시도하게 된다.
 
출발 전 회현동 미성 양화점에서 동계 등산화와 남대문 등산 장비점에서 스텀파카를 맞추었으며
당시 국내에서 처음 제작하여 시판되었던 모래내-금강 제품의 8발 크램폰을 샀다.
등산화와 파카는 지금처럼 치수를 선택하여 살 수 있는 양판 형태가 아니고 사이즈를 재어 맞춤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보온 의류로는 스웨터가 고작이었고…
캐시밀론이란 합성 솜으로 속을 채워 누빈 스텀파카가 지금의 다운 재킷을 대신하던 시절이었다.
다운 재킷은 고급 장비점에 전시용으로나 걸려있었고 그나마 판매는 사절이었다.
 
토왕성 등반을 위한 빙벽장비로는 대장간에서 어설프게 제작한 30cm 길이의 나이프 브레이드 타입 아이스하켄 30여 개,
히말라야 등반에서 사용했던 30단 줄사다리, 아이스 해머와 아이스 대거(메스) 한 자루,
그리고 당시 국내에 처음 들여왔던 오스트리아 스투바이 제품의 핀 스크루 10여 개였다.
 
그나마 한 해 전에 히말라야 추렌히말 등반대원으로 참가하였던 산악회 전병구 선배가 토왕성 등반을 위해 준비한 장비였고
국내에서 그만한 장비를 가진 산악 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등반 기간으로 며칠을 예정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식량과 장비의 무게는 대단하였다.
떡국 식단으로 한 말 떡을 준비하였고 김치만 한 말 초롱으로 하나 가득 운반하였다.
아마 개인당 45kg은 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도용, 최영식, 하용호 선배와 나는 1월 초순, 7일쯤이던가? 설악산으로 향하였다.
 
현재 설악산 국립공원 설악동 매표소 입구 소공원은 당시 여관촌이었다.
동신 여관을 정하여 객실 한 달 사용에 삼천 원을 냈다.
 
그때의 여관은 보일러 시설이 없었고 아궁이에 나무를 태워 온돌을 데웠으며 삼천 원에 땔감 나뭇값은 포함되지 않았다.
여관을 이용하는 동안 군불을 지피러 몇 차례 나무를 하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우리는 토왕성 빙폭을 향하였다.
비룡폭포를 지나 토왕성 계곡 입구에 텐트를 설치하고 등반 장비를 옮겼으며
그곳에서 야영하며 토왕성 등반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이도용 선배의 선등으로 토왕성 하단에 첫 피켈을 찍었을 때만도 희망이 가득하였다.
그러나 며칠 뒤에 도착한다던 본대는 소식이 없었고 선발대만으로 등반을 시도하라는 연락이 왔다.
 
2학년을 마친 대학생 세 명과 고등학생 하나, 등반 경력은 모두 1~2년 남짓,
그것도 겨울 등반 경험자는 한 명, 토왕성을 오르기 위한 무모한 도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4명의 대원 중에 크램폰을 착용한 대원은 두 명이고 피켈을 가진 대원이 두 명이다.
그나마 프런트 스파이크가 있는 크램폰은 하나뿐이었고 대원 한 명의 등산화는 코리언부츠라 불리는 방한화였다.
 
대장간에서 제작한 아이스하켄은 무용지물이었다.
틈이 없는 얼음에 하켄을 때려 넣으면 얼음만 부서지고 아무리 애를 써도 하켄은 박히지 않았다.
그나마 핀 스크루가 제 역할을 발휘하여 간신히 빙벽에 확보물을 설치할 수 있었다.
 
프런트 스파이크가 있는 크램폰도 설벽용이라 빙벽에서는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수직의 빙벽에 피켈로 스텝을 깎아가며 그렇게 한 걸음씩 높이를 올리는 방식으로 등반을 진행하였다.
 
며칠간의 노력으로 토왕성 하단 우측으로 20여 m 높이까지 로프를 걸 수 있었다.
하강기나 확보기가 없던 시절로 빌레이는 어깨확보로 지탱하였고
하니스는 상단용뿐으로 로프를 직접 허리에 묶어 등반하였다.
 
막내 대원으로 내가 하는 일은 라면을 끓이고 간간이 빌레이를 교대하는 것뿐,
종일 눈 속에서 발을 구르며 추위를 이겨내는 것이 전부였다.
 
어느 날인가? 에코(Echo alpine club) 산악 팀의 선배 두 분이 토왕성 계곡을 올라왔다.
빙벽 장비를 실험하려는데 하루만 일정을 양보해 줄 수 있느냐고 정중하게 물어온다.
 
그때의 등반예절은 어느 팀이 등반 대상 루트를 계획하고 발표하면
그 대상에 대해 기득을 인정하고 등반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는 풍토였다.
지금같이 몇 개의 팀이 루트 하나에 매달려 살벌하게 올라가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시기였다.
 
에코 팀은 목공예에서 사용하는 핸드드릴을 가져와 빙벽 확보물을 설치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지 실험하고는 곧 하산했다.
“잘 있어라 설악아!” 노래를 작사한 '마운틴 빌라' 팀의(서울고등학교 산악부 OB 회) 김태호 형도
당시 손수 제작한 아이스 대거(메스)를 실험해 보곤 환히 웃으며 자랑하던 기억이 난다.
 
 
폭설이 내리기 시작한 날, 우리는 여관으로 철수하였고 눈은 며칠간 계속 쏟아졌다. 그때 설악산은 매년 많은 눈이 내렸다.
69년에는 죽음의 계곡에서 눈사태 조난사고가 날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고 그 해도 며칠간 내려 쌓인 눈은 키를 넘길 지경이었다.
한동안 속초와 설악동의 도로도 끊기고 설악동은 사람들이 지나다닐 통로만 간신히 뚫어 소통하는 정도였다.
 
속초와 도로가 다시 연결될 때쯤 서울에서 연락이 왔다.
산악회 전병구 선배의 동생이 폭설이 시작하던 날 백담사 쪽에서 구곡담으로 등반을 시작했는데 행방불명이란다.
 
선발대 리더이던 이도용 님에게 용대리로 접근하여 구조 수색을 지원하도록 지시가 있었다.
이도용 선배가 용대리로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행방불명이던 선배 동생은 무탈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이도용 님은 용대리에서 그 길로 서울로 귀환하였다.
 
 
설악동에 남은 세 명의 대원은 등반 경험도 부족한 데다 폭설 탓에 시도해 볼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눈이 워낙 많이 쌓여 나무할 엄두도 못 낸 채 그릇에 물이 얼어붙는 냉방에서 미군용 닭털 침낭으로 체온을 유지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식량은 떨어져 가고 급기야는 하루 두 끼 식사로 절식하며 며칠을 견뎌야 했다.
 
부식이 없어서 여관 주방을 몰래 뒤지기도 했으며,
국거리가 없어서 한번 끊인 국을 절반만 먹고 다음 끼니때 다시 물을 부어 또 반을 먹고
이렇게 여덟 번인가 재탕해 먹었다.
 
배낭을 뒤지다 발견한 커다란 마른멸치 하나에 감격하던 날이다.
여벌 옷으로 가져왔던 군복 바지 뒷주머니를 뜯어 바느질로 멸치다시 주머니를 만들고 국을 끓였는데
옷감 염색이 탈색하여 시퍼런 초록색 국물을 먹어야 했던 날들이었다.
 
여관 앞에 마을 아이를 상대로 호떡을 구워 팔던 가게가 있었다.
여관 문밖에서 선배와 마주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데 호떡 기름지지는 냄새가 풍겨온다. 얼마나 향긋하던지…
선배와 눈이 마주치며 팔목에 차고 있던 시계로 눈길이 같다.
그날 난 시계를 맡기고 호떡 두 개를 얻어 선배와 나누어 먹었다.
 
 
마지막 쌀이 떨어지던 날, 서울에서 지원군이 왔다. 선배 한 분이 후속 리더로 도착한 것이다.
그 선배는 지금 우리 등산학교 8기로 입교하여 열린캠프 가족이 되어있는 김강원 님이다.
때맞추어 선배와 인연이 있는 산악 팀이(KAR 클럽-옛 자일 클럽) 설악산에 오르기 전 하루 저녁을 우리 방에서 묵으며 식량 꾸러미를 풀었다.
오랜만에 여러 반찬을 음미하며 참 맛있는 식사를 했다.
비록 다음 날부터는 다시 배급 식단제로 돌아갔지만…
 
 
다시 산을 올랐다. 어! 그런데 토왕성 계곡으로 눈길이 나 있다.
그동안 눈사태 위험으로 산행을 통제하였는데 누군가 그사이 다녀간 모양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캠프에 오르니 엄청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닥이 얼어붙고 눈에 묻힌 캠프를 누군가 파헤치고 보관해 둔 장비를 몽땅 훔쳐간 것이다.
 
토왕성 빙폭으로 올라서자 더욱 한심한 사건이 있었다. 고정해둔 로프의 여분까지 칼로 잘라 가져 가 버린 것이다.
당시엔 구하기 어려웠던 두랄루민 카라비너 20여 개, 스투바이 핀 스크루, 로프 등, 값나가고 귀한 장비는 모두 없어져 버렸다.
망연자실! 우리는 허탈하게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설악산에 들어온 지 벌써 한 달이 가까워 개학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뒤처리는 선배 대원이 맡고 간신히 마련해 준 차비로 먼저 설악산을 떠날 수 있었다.
 
알루미늄 지게 배낭 프레임이 휘어질 정도로 철수 장비를 가득 지고 돌아오는 것으로 나는 그해 겨울 등반의 막을 닫았다.
하지만 처음 밟아본 설악의 눈과 토왕의 수직 얼음 기둥은 나에게 새로운 주제를 던져주었으며
그 후 내 산행의 커다란 화두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설악산(雪嶽山) # 토왕성
【여행】 바람처럼 스쳐간…
• 첫 번째 히말라야 원정 떠나던 날
• 토왕의 추억(1)
• '열린캠프 등반훈련센터' (월간 '산' 취재기사 2006년 4월)
【작성】 전두성의 산과 삶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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