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3월, 히말라야(안나푸르나 4봉) 원정등반 출국을 한 주일쯤 앞둔 어느 날, 눈앞이 캄캄해지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외항선 선원으로(통신국장) 바다에 계셨던 아버지가 갑자기 귀국하신 것이다.
하나뿐인 자식이 죽음을 부르는 산에 간다며 머리 싸매고 누워계신 어머니를 나 몰라라 하고 마무리 등반 준비에 열중하던 때이다.
그 시절 대부분 사람은 몇 해 전 마나슬루 원정에 따른 대형참사로 말미암아 히말라야 등반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등반으로 알고 있었다.
며칠 전 어머니에게만 히말라야 등반대에 선발되어 곧 출국한다고 내뱉듯이 말했었다. 그런데 외국에 계신 아버지가 어떻게 알고 오신 걸까?
당시 나는 아버지를 무척 두렵게 알고 무서워하였다. 완고하고 엄격한 성품의 아버지께 미리 알려드리지도 않았으니 원정에 참가하기는 틀렸다.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에 그날부터 출국일까지 잠적하고자 집에 들어가지 않고 부모님을 피해 다녔다.
떠나는 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산악회 사무실에서 출발에 따른 점검을 하는 데 전화가 걸려왔다. 저녁에 집으로 들어오라는 아버지 목소리였다. 그날 저녁 난 죽을 각오를 하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뜻밖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모처럼 외국에 가는 데 돈 필요하지 않니?" 하며 백만 원이 들어 있는 봉투를 내 앞에 내밀었다.
내가 김포공항을 출발하고 난 다음 날 아버지를 실은 외항선은 인천항을 떠났다. 아버지가 다음날 떠나신다는 이야기를 나는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에서 들었다.
떠나는 날 어머니는 참 많이도 울었다. 하루 시차를 두고 자식은 죽음을 부르는 산으로, 남편은 철판 한 장 아래가 지옥인 바다로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하셨을까? 이젠 두 분 모두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젖어든다.
그때의 내 나이만큼 자식이 훌쩍 커버린 지금, 히말라야 원정 떠나던 날 공항에서 고개 돌리고 눈물 훔치시던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이제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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