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체류하는 (등산학교 4기)조태용 님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 주에 잠시 귀국하는데 주말에 함께 산행하고 싶단다. 열린캠프를 통해 벌써 14년째 인연을 쌓은 친구의 청을 거절하기가 어렵다.
토요일 열 시, 우이동 약속 장소에서 잠시 기다리는 동안 아는 산 벗들 십여 명이 지나치며 반가워한다. 산으로 만나 삼사십 년씩 정을 쌓은 벗들이다. 모처럼 함께 오르기를 권하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약속이 있어 어울릴 수가 없다.
<한국대학산악연맹 서울치대 박동욱(67), 성균관대 최준곤(68), 건국대 정창호(72), 광운대 전신규(68) 권혁만(71) 김성기(71), 열린캠프 조용환(연구), 하이얀 산악회 김한주 강종인, 그외 이름이 가물가물한 몇분>
잠시 후 (4기)노승헌, 조태용 님이 도착하여 산길로 접어든다. 오늘은 등산학교 4기 동문과의 산행이다. 인수봉이 마주 보이는 고갯마루에 이르러 한숨 돌린다. 봉우리를 바라보며 다들 교육 수련에 몰입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어울렸던 사람, 도전과 성취, 도움으로 얻은 깨우침, 모두 지나버린 아름다운 시절의 단편이다,
앞장을 내게 양보하기에 이젠 허물어 버린 옛 인수산장이 있던 터에서 야영장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우리 등산학교를 처음 시작하며 둥지를 틀었던 캠프사이트를 찾아 사진 한 컷을 찍고 잠시 그때의 야영생활을 회상한다. 팔 년 동안 매주 주말이면 등산학교의 교육장과 주말 야영터로 열린캠프의 근간을 만들었던 장소이다.
기왕 이쪽으로 접어든 바에 인수봉 북면을 따라 돌며 교육주간 장거리 하이킹 때 비박하던 흔적을 하나하나 찾아본다. 간간이 쉴 때마다 소주 한 팩으로 목을 축이며 잊어버린 에피소드를 떠올린다. 지난 이월에 등산학교를 마감한 뒤 두 번째 북한산 산행이다. 그새 불어난 체중 탓인지 스톡을 사용하는데도 무릎이 시큰거리며 거동이 신통찮다. 노승헌, 조태용 님, 내 보행 속도 느린 것이 오히려 본인들에겐 부담 없다며 좋아한다.
숨은벽 계곡으로 따라 올랐다. 백운대와 인수봉을 가르는 호랑이 굴 옆을 지나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인수봉 남동면이 마주 보이는 능선을 따라 내려가며 빌라, 거룡, 동양길을 더듬고 아미동과 B 루트 건너 의대길까지 살펴본다.
백운산장 야영터를 지나 마당바위 슬랩으로 접어들면서 구조활동차 출동한 경찰구조대 김창곤 대장을 만났다. 산중에 무척 여러 갈래로 뚫린 산길인데 만나야할 인연은 어떻게든 만나는 게 운명인 모양이다. 반갑게 안부를 나누며 만남을 기뻐한다.
우이동으로 내려오니 벌써 네 시가 넘었다. 조태용 님이 가족에게 줄 선물 살 것이 있어 에델바이스 장비점을 잠시 들린다.
이런, 장비점 앞에서 가을 수련으로 이번 주 등반을 마치고 하산한 열린캠프 가족 일행을 우연히 만났다. 반가움에 잠깐 맥주 한 잔으로 정을 나누고 선약 때문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용준, 김동욱, 이인희, 김문종, 박정태, 안유라, 김경덕 님>
저녁은 조태용 님의 고교(배제고등학교) 동창이자 열린캠프 가족인 한형배 님과 약속을 하였다. 한형배 님 역시 우리 등산학교 11기로 홍익대 미술대학을 나온 금속공예 아티스트이다. 뜻한 바 있어 인사동에서 '각'이라는 아담한 갤러리를 운영하며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사동, 오랜만에 와보는 곳이다. 거리는 온갖 차림의 사람으로 가득하다. 한형배 님의 갤러리를 찾아 전시 중인 작품을 잠깐 감상한다. 관장인 한형배 님이 성의껏 설명하지만 예술에 문외한인 내게는 쇠귀에 경 읽기다. 서둘러 갤러리를 닫고 어울릴 술집을 찾아 나선다.
식사 시간이라서인지 식당은 사람으로 넘쳐나고 마땅한 주점은 눈에 띄질 않는다. 인사동을 벗어나 옆 동네 낙원동에 자리를 잡았다.
얼큰히 취기가 돌고 산 친구와 모처럼 만남이기에 우쿨렐레를 꺼내 들었다. 오랜만에 태용 님과 화음을 맞추어 설악가를 불러본다. 음악성이 뛰어난 태용 님은 함께 산노래부르기를 좋아하여 이렇게 어울릴 때면 늘 화음을 맞추어 오던 사이이다.
주변 술객들의 시비를 피하고자 가만히 불렀던 산노래였지만 뜻밖에 사위가 조용해지며 관심이 집중된다. 설악가를 끝내자 환호와 함께 모두가 계속 노래 불러주기를 청한다. 삼사십대의 젊은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도 노랫말과 화음이 그들에게 느낌을 주었던 모양이다. 결국 대여섯 곡의 캠프송을 더 들려주고 '잘있거라 설악' 산노래로 마무리를 하였다.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이었고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주말 외출에서 만난 많은 산친구들, 우연히 만나 즐거운 시간을 함께 어울렸던 이름 모를 젊은이들, 온종일 즐겁고 기쁜 만남의 연속이었고 어울림의 세상이었다.
조금만 긍정으로 바라보면 대부분 만남을 이렇게 기쁘게 마무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에 따른 작은 분노가 지혜를 가리는 것을 우리는 가끔 잊어버리고 있다.
열린캠프 가족 누구나 우리 캠프에서는 어떤 시비도 상대의 처지에서 자신를 바라보고 부족함을 성찰하며, 자신의 견해에서 바라보는 상대를 긍정적으로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태용 님 덕분에 또 한 번 깨달음을 얻었던 기쁜 주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