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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스쳐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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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꽃 보다 아름다운 섬! 울릉도…

2018 이사부 항로 답사, 전두성의 항해 이야기(2) 독도를 향하여

2018 이사부 항로 답사, 전두성의 항해 이야기(1) 삼척까지

2018년 06월

연안선 승선 선원의 법정교육, 전두성의 '기초안전' 연수!

인수봉에서 가장 아름다운 5월의 고독길

2018년 05월

봄 향기를 만끽한 남녘 4월의 여정

2018년 04월

선원으로 어울린 첫 번째 해기사 교육

2018년 첫 항해!

너희가 게 맛을 알아?

2018년 02월

anchors aweigh!

2018년 01월

전두성의 5차 항해 이야기 (2017년 마무리)

전두성의 4차 항해 이야기 2 (금오도 우학리)

2017년 12월

전두성의 4차 항해 이야기 1 (사도, 안도 방문)

전두성의 3차 항해 이야기 3 (여수 회항까지)

전두성의 3차 항해 이야기 2 (통영에서)

전두성의 3차 항해 이야기 1 (욕지도 경유한 통영 항로)

2017년 11월

통영, 제11회 이순신장군배 국제요트대회 그림들

2017년 10월

범선 코리아나의 해적…

초짜 선원 전두성의 항해일지 6 (Fin)

초짜 선원 전두성의 항해일지 5

초짜 선원 전두성의 항해일지 4

초짜 선원 전두성의 항해일지 3

초짜 선원 전두성의 항해일지 2

2017년 09월

초짜 선원 전두성의 항해일지 1

영동선 철길 계곡과 봉화 청옥산 산행(9월 6~7일)

2017년 08월

[사진기록] 넷째 날 삼척 회항과 돌고래(8월 6일)

이사부 항로탐사 범선 승선과 독도 첫 항해(3)

[사진기록] 셋째 날 독도 해돋이와 울릉도 항해(8월 5일)

[사진기록] 은빛 밤 바다(8월 5일)

이사부 항로탐사 범선 승선과 독도 첫 항해(2)

[사진기록] 둘째 날 독도 항해(8월 4일)

[사진기록] 첫날 시범 항해(8월 3일)

이사부 항로탐사 범선 승선과 독도 첫 항해(1)

2015년 11월

목포와 맺은 인연 2015-1107

2015년 08월

손녀 윤서와 추억 쌓기 여행, 두 번째!

2015년 05월

울릉도, 그 찬란한 자연과 아름다움!

2014년 08월

손녀 윤서와 추억 쌓기 여행

2014년 06월

장흥 천관산 산행과 처음 누려본 호사한 여행

설악산 다녀오던 길에서…

내게 다른 일요일 2003-1201

2013년 11월

황혼에 기우는데…

2013년 08월

알피니스트 비망록-전위적 클라이머, 산노래로 살아온 Alpinist

2013년 06월

전두성의 해병 이야기(마지막 편)

전두성의 해병 이야기(7)

전두성의 해병 이야기(6)

전두성의 해병 이야기(5)

전두성의 해병 이야기(4)

전두성의 해병 이야기(3)

전두성의 해병 이야기(2)

전두성의 해병 이야기(1)

2013년 05월

산나물은 사 먹어야 해!

2013년 04월

건국대학 산악부와 어울린 남도산행 (3월 30~31일)

2013년 03월

산악인들 애환 담긴 산노래 (글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2013년 02월

하얀 능선에 서면 (2002년 12월 마지막 주의 추억)

알피니스트의 꿈 (2003년 1월부터 2월 말까지 기록)

2013년 01월

완전 새 됐다!

2012년 12월

마지막 피켈(Pickel)

빛고을 요들러와 어울린 주말

감동이 쌓여 행복이 된다.

시인이 되었던 겨울등반

2012년 11월

우쿨렐레(ukulele)의 만남

포항의 추억

2012년 10월

도쿄 여행

손녀를 보면 그냥 즐겁습니다.

2012년 09월

어울림의 세상과 기쁜 만남

2012년 02월

설악아 잘있거라!

2011년 09월

전두성의 마지막 '한눈보기 암릉등반' (2011년 9월 23~25일)

2011년 04월

술하늘의 北辰과 북한산의 북斗聖

2011년 03월

도봉산의 낭만파, 만이 형의 추억

2011년 02월

내 청춘 산에 걸고(도전과 첫 추락)

2008년 03월

120번째의 소식지를 발송하며

산악잡지 '사람과 산'의 인연

아버지의 마음

백운동의 폭우

설악을 뛰어다니던 시절

달리는 아담과 긴빠이

천화대 암릉, 74년 겨울 개척등반의 기록

워카(군화)에 얽힌 옛 기억

토왕의 추억(2)

2008년 02월

하얀 빙벽 위에 울던 표범

첫 번째 히말라야 원정 떠나던 날

토왕의 추억(1)

2006년 10월

'열린캠프 등반훈련센터' (월간 '산' 취재기사 2006년 4월)

손기정 선생님의 선물

about 바람처럼 스쳐간…

▣ 바람처럼 스쳐간…     바람처럼의 지식창고 2018.06.13. 09:16 (2018.06.13. 09:16)

전두성의 해병 이야기(4)

미아(迷兒) 해병 병과를 잃고 차렸 포!를 알다.
(김포 2해병여단으로…, 그러나 )
 
해군 시설학교 지휘통신 차량 운용교육을 수석으로 수료하고 드디어 김포 2해병여단에 배치되었다.
집에 들러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는 곧 김포 여단본부에 들러 신고를 했다.
 
그런데 함께 여단에 명령이 난 다른 해병은 곧장 부대 배치를 받아 소속부대로 떠나가는데
나는 부대 배치를 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지 않는가?
어차피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니 굳이 내가 걱정할 사안은 아니었고
아무튼 여단 본부중대 내무실에서 편안하게 대기병 생활을 하였다.
 
당시 내가 대기병 생활을 청산하고 여단본부를 떠난 얼마 뒤부터 김포 여단에 배치된 신병, 전입병은 사격장과 벽암지(산악유격훈련의 해병대 표현) 뺑뺑이를 이수하고 소속부대 배치를 받았으니 그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 강화를 사수하던 수색대대는(우린 酒色대대라고 불렀다.)
그 후 대대에 전입하는 병력을 수색 훈련까지 시킨 후에야 부대에 배치한 것으로 들었다.
 
 
며칠쯤 지났을까? 드디어 1대대 전출 명령을 받고 오리정 예비대에 주둔하던 1대대를 찾았다.
그런데…, 1대대 S-1(인사)에서는 또 나를 본부소대 내무실에 대기시킨다.
통신반 내무실이 바로 코앞인데 나를 통신반으로 보내지 않고 그냥 대기 시키는 것이다.
무언가 수상했지만 쫄병이 어찌하겠는가? 그냥 시키는 대로 해야지---
 
일주일쯤 대기병 노릇을 했더니만 본부소대에서도 귀찮았는지 나를 81mm 박격포 소대로 명령을 낸다.
아니, 나는 졸지에 내 병과를 잃고 보병 중에서도 문제아들만 모인 81mm 대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81mm 반에서도 난리가 났다. FEBA 근무 때나 지원받는 통신병이 예비대에서 81mm에 배치되다니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내가 대대 통신에서 배치한 것이 아니고 병과를 잃어버린 미아(迷兒)라는 것을 알고는 곧 탄약수 역할을 주고 포술 훈련에 투입하였다.
 
'차렷 포'? 전혀 처음 듣는 말이다.
겨냥대가 뭔지 편각과 사각이 어떤 것인지 포 방열에 대해 전혀 배우지 못한 내가 무엇을 알 것인가?
 
해병대대의 중화기 전력은 본부중대 소속으로 81mm 박격포 소대와 106mm 무반동포 소대가 있었다.
그때 1대대 중화기 내무반의 특징은 본부중대장보다 선임장교인 전투중대 중대장이 기피하는 해병들이 많았으며,
전투중대에서 데리고 있기 싫은 사고자와 뭉치 고문관들을 본부중대에서 억지로 받아 별도로 관리하는 일종의 꼴통 소대였다.
 
내무반 옆 탄약고에서는 매일 밤 야간 참모회의가 있었으며,
영창 사고 때문에 제대 누락한 선임들이 몇 명씩 눌러앉아 후임들 괴롭히는 낙으로 시간 보내던 곳이 81mm 소대다.
이런 81mm 내무반에서 포 제원도 모르는 나 같은 탄약수는 당연히 문관에 취임 등록할 수밖에 없었고 선임들의 좋은 노리개였다.
 
몇 주간 생활하며 문관 노릇도 차츰 적응되어갈 무렵 식사 당번으로 나간 대대 주계(취사장)에서 통신학교 동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화 끝에 의아해하기는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상륙전학교 통신교육대 수석 수료생이 81mm가 웬 말이냐?
그나마 동기들이 통신장교에게 고자질해주어 나는 81mm 소대에서 통신소대로 다시 전출하였고 간신히 내 병과를 찾을 수 있었다.
 
처음 며칠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81mm에 비하면 천국이다.
내 주특기를 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대대는 FEBA(Forward Edge of the Battle Area)에 투입되었고
본부 생활보다 중대 파견을 즐기는 선임들이 전투중대로 빠져나간 바람에 통신반 내무실에서 그나마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내가 진해에서 R-Jeep 교육을 받았기에 1대대에선 잠시 통신에 배속된 차량 운용을 맡았다.
따라서 수송반 대원과 어울리기도 하였지만, 통신반 황금 보직인 기재, 보급행정, 체신(상급부대와 문서연락병) 쪽의 선임들이 조수로 채용하고자 경쟁하는 덕분에 곧 통신반에서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아직 상병은 아니었지만 통신반 고참들이 중대로 빠져나간 바람에 마이가리 계급장을 달고 무게도 잡았다.
 
미국 대통령의 방한으로 전방에 비상이 걸렸을 땐
유도(DMZ 내에 있는 임진강 위의 섬) 매복 근무에 본부 파견 통신병을 자원하기도 하며 FEBA 생활의 즐거움을 한껏 누리고 있을 때였다.
 
집안에서 어머니와 외삼촌이 면회를 왔다.
외삼촌은 당시 육사 15기 출신으로 육군 대령이었고 국방부에 근무하였다.
 
면회하고 돌아간 외삼촌이 국방부에 함께 근무하던 해병 중령에게 내 이야기를 했던 모양이다.
아뿔싸! 그분은 우리 대대의 직전 대대장이었고 부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분이었다.
내가 입대한 지 10개월이 넘도록 교육과 전출로 휴가를 못 간 사실을 알았던 그분은 곧 대대장에게 연락하여 특별휴가를 주선하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대대 인사에서는 대대장 명령이라며 열흘간 특별휴가를 다녀오란다.
통신반에서도 내 사정을 잘 아는 터라 선임들의 별다른 시비 없이 휴가를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휴가는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었다.
 
꿀맛 같은 휴가!
 
진해 시설학교에서 교육 때 주말 외박으로 서울까지 올 수는 있었지만 늘 시간에 쫓겼으며
밤새 군용열차를 타고 올라와 하루를 보내곤 다시 열차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 고행이었다.
 
열흘간의 휴가는 오랜만에 맛보는 축제였다.
11개월 만의 처음 경험하는 휴가는, 열흘이란 기간이 얼마나 대단한 창조를 할 수 있는 시간인지 눈뜨게 하였다.
하긴 하느님은 일주일 만에 우리 세상과 인간을 만드셨는데…
나는 삶의 새로운 감동과 희열을 느꼈고 그 희열을 만끽하였다.
 
어떻게 휴가를 나올 수 있었는지 몰랐던 사유는 외삼촌께 인사드리며 비로소 감춰진 내막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나는 해간 15기 해병대 대령보다 육사 15기 육군 대령을 더 존경할 수 있는 똘레랑스의(tolerantia, 寬容) 내공을 갖출 수 있었다.
 
모처럼 나온 김에 공병감으로 재직하시던 작은아버지를 찾아 인사도 드렸다.
그런데 내가 보병대대에 있고 DMZ 매복 근무를 자원했다는 자랑을 하자 작은아버지가 고개를 갸웃하시는 거다.
"네가 왜 1대대에 있지?"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자 전출 명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105mm 견인포 대대인 포병 1대대! 청천벽력이었다. 아니 내가 왜? 하지만 아무도 내용을 설명해 주는 이는 없었다.
 
크리스마스이브를 하루 앞두고 나는 또 곤봉(군용 duffel bag의 해병대 표현)을 꾸려 눈물로 1대대를 떠났다.
【작성】 전두성의 산과 삶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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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