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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스쳐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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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보다 아름다운 섬! 울릉도…
2018년 7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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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성의 5차 항해 이야기 (2017년 마무리)
2018년 1월 1일
전두성의 4차 항해 이야기 2 (금오도 우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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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성의 3차 항해 이야기 2 (통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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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성의 3차 항해 이야기 1 (욕지도 경유한 통영 항로)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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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제11회 이순신장군배 국제요트대회 그림들
2017년 10월
2017년 10월 19일
범선 코리아나의 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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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짜 선원 전두성의 항해일지 6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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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 항로탐사 범선 승선과 독도 첫 항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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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와 맺은 인연 201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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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그 찬란한 자연과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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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 윤서와 추억 쌓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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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 산악부와 어울린 남도산행 (3월 30~31일)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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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들 애환 담긴 산노래 (글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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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능선에 서면 (2002년 12월 마지막 주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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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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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의 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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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을 뛰어다니던 시절
2008년 3월 11일
달리는 아담과 긴빠이
2008년 3월 8일
천화대 암릉, 74년 겨울 개척등반의 기록
2008년 3월 6일
워카(군화)에 얽힌 옛 기억
2008년 3월 1일
토왕의 추억(2)
2008년 2월
2008년 2월 29일
하얀 빙벽 위에 울던 표범
2008년 2월 27일
첫 번째 히말라야 원정 떠나던 날
2008년 2월 25일
토왕의 추억(1)
2006년 10월
2006년 10월 6일
'열린캠프 등반훈련센터' (월간 '산' 취재기사 2006년 4월)
2006년 10월 5일
손기정 선생님의 선물
about 바람처럼 스쳐간…

전두성의 산과 삶의 자취
2018-08-27
【홍보】
【홍보】
▣ 바람처럼 스쳐간…     바람처럼의 지식창고 2018.06.13. 09:21 (2018.06.13. 09:20)

전두성의 해병 이야기(5)

견인포 (牽引砲) 해병 신고냐 산고(産苦)냐?
(105mm 견인포, 포병 1대대에 둥지를 틀다!)
 
 
다섯 번째 내무실의 신고는 혹독했다.
포항 1해병사단 22대대에서 진해 시설학교로, 그리고 김포 2해병여단 보병 1대대에서 포 1대대로???
넌 도대체 뭐냐? 왜 그리 여러 곳을 찍었고 이곳으로 왔나? 뭉치냐, 끗발이냐?
글쎄, 나도 그걸 알았으면 좋겠다만 아무것도 모르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전입신고 와중에 팔각모에 살짝 꼬불쳐진 마이가리 상병 계급장까지 노출되는 불상사가 있었다.
"어쭈구리! 보병 1대대 군기가 그것밖에 안 되나? 쫄병이 기압빠져스리… 꼰아 박아!"
 
웬 놈의 선임은 그리 많은지? 포대가 델타까지 4개 포대이다 보니 통신반 병력도 그만큼 많았던 모양이다.
아무튼, 보병 1대대는 이곳에 비하면 천국 중의 천국이었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왜 그리 1대대가 그리워지던지….
 
통신반에서는 진해 시설학교 운짱교육 출신 중에 꼴통이 많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내가 뭔가 큰 사고를 치고 숨기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워 했다.
따라서 신고는 더욱 호되고 빡세게 이어졌고 구타로 턱이 부어 며칠간은 밥을 못 씹을 정도로 시련을 당했다.
 
그러나 통신관은 뭔가 눈치를 챈 것 같았다. "너 해병대에 누구 친척 있나?"
난 굳게 입을 닫고 시치미를 떼었다.
 
통신공학을 전공하고 가방끈이 조금 길다고 나는 257기가 사수로 있는 기재실 부사수로 보직을 받았다.
하지만 보직은 말뿐,
두어 달 뒤에 있을 여단 예하 부대 대항 통신경연대회에 통신관 특별지시로 선수에 선발되어 피나는 훈련에 돌입하게 되었다.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RC-292 안테나 설치 및 PRC-25 무전기와 원방조정기를 연결하고
100여 m 떨어진 지점까지 최단 시간에 와이어를 깔아 SB-22 교환기와 가장 빠르게 연동하는 것이 과제였다.
81mm의 '차렷 포!'와 유사한 훈련이라 할까? 그리고 음어 해독 경연이 있었다.
 
소령 진급을 목전에 둔 통신관은 필사적이었고
나는 경연대회 연습을 통해 선임들과 가까와지며 그렇게 포 1대대에 조금씩 적응할 수 있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인사관(S-1)이 불렀다.
"어이, 전 해병! 너 대대장님이 휴가 보내라고 하는데..." (누군가 또 불을 지폈다. 이번에 작은아버지냐, 또 외삼촌이냐?)
근데 이건 특별휴가가 아니란다. 내가 휴가를 가면 우리 내무실의 누군가는 휴가 차수가 순연되는 정기휴가이다.
휴가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 싫었지만, 안 그래도 살벌한 내무실의 선임들 얼굴이 떠올라 애써 유혹을 외면했다.
 
이제 겨우 내무실에 적응하고 왕따를 면해가고 있는데
대대장 후광으로 차례가 아닌 휴가를 가게되면 기압빠진 해병이라고 평지풍파를 일으킨다.
"제 휴가 차례가 올 때 가겠습니다!" 과감히 휴가 제안을 뿌리치고 내무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양보한 휴가는 그 뒤 5개월이나 지나서 찾을 수 있었다.
 
어머니가 면회를 오셨던 어느 날, 난 어머니에게 엄청나게 화를 내며 투정을 하였다.
도대체 왜 나를 이렇게 못살게 하느냐?
보병부대에서 잘 생활하는 나를 왜 포병부대로 옮겨 골탕을 먹이느냐? 모두 어머니 탓이다!
 
어머니기 울며 집으로 돌아가신 뒤 난 뜻밖의 호출을 받았다.
여단 공병참모(중령)께서 저녁 무렵 jeep를 보내 나를 찾은 것이다.
 
비공식 외출로 jeep를 타고 기다리는 식당에 가니
해안, 공병중대장 등 감히 쳐다보기 어려운 분들이 공병참모와 함께 동생처럼 따뜻하게 맞아준다.
따거(작은아버지)의 부탁이라며 참모께서 내 처지를 물어본다.
가라는 휴가는 왜 안 갔는지? 어머니께 화를 낸 이유가 무언지, 부대 생활에 애로는 없는지?
 
각오하고 이유를 여쭈었다.
해병 병사의 생활이 어떠한지는 다 짐작을 하실터인데
내가 왜 보병대대에서 병과가 무시된 채 81mm 소대에 배치되어야 했습니까?
보병대대에서 적응하고 다시 제 병과를 찾아 잘 근무하고있는데 왜 또 포병대대로 전출하여 새롭고 서먹한 생활에 적응해야 합니까?
해병생활 잘하고 있는 나를 왜 이렇게 뺑뺑이 돌려 고생하게 합니까? 왜, 왜, 왜???
 
돌아온 답변은 뜻밖이었다.
여단에 처음 배속되었을 때 내게 전출명령이 난 부대는 원래 포 1대대였다는 것이다.
작은아버지의 부탁으로 외아들(독자)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FEBA 투입 부대인 보병 대대를 피해 포병 대대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운이 없게 그 시점에 MOS별 TO(주특기별 인원편성)에 대한 국방부 검열이 있어 잠시 보병 1대대에 대기병으로 가 있게 되었고,
검열이 끝난 뒤 여단 인사에서 그만 원대복귀 명령 잊어버린 것을 몇 달 만에 바로잡아 원 소속부대인 포 1대대로 보낸 것이다.
 
보병 1대대에선 여단본부에서 아무런 지시가 없는 대기병이다보니 너를 사고자 취급하여 81mm로 보낸 것이고,
통신반으로 전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네가 똑똑하여 스스로 네 병과를 찾은 것이다.
그래도 원칙적으로 너는 대기병이었기 때문에 인사상 실수를 바로 잡은 것이다.
 
미치고 펄쩍 뛸 일이었다.
아무리 인사상의 실수라도 피해를 보는 나는 어찌되었겠는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내게 참모님이 제안했다.
고생 많았는데 이해해라. 대신 지금 근무하는 부대 생활이 힘들면 어디든 네가 원하는 부대로 옮겨주마!
 
귀가 번쩍 띄는 제안이었다.
한참 생각 끝에 보병 1대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건의를 했다. 이번엔 참모님이 펄쩍 뛴다.
인사 명령이 잘못된 것을 큰소리치며 원상회복 시켰는데 체면 때문에라도 그것만은 안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난 그때 여단의 어느 부대가 내게 실속있고 유리한 부대인 줄 몰라 어디든 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던져버렸다.
또다시 전출입 신고를 한다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그럼 계속 포병대대에 있겠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려주신 것만도 고맙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공병참모가 이렇게 신경 써 배려하는 것을 부대 내의 대대장 말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포병대대에서 좀 더 당당할 수 있었고 차츰 내 역할과 권리를 찾아갈 수 있었다.
걱정된 어머니는 격주로 면회를 오셨고,
그 사이에 내가 김포로 올라온 것이 소문이 나며 외가 친척 및 친구와 여인들까지 서서히 면회를 오기 시작했다.
 
전입 후 두 달 동안 나를 찾은 공식 면회 신청이 거의 10회 이상 되었나?
우리 통신관은 기어이 나를 면회 불가 명단에 올렸다.
내무반에서는 그렇게 잦은 면회에 대해 신기하게 바라보았고 나는 또다시 특별 관리 대상이 되었다.
 
통신 경연대회가 끝나고 내 휴가 차례가 다가왔다.
그런데 통신관 따까리(당번병)를 하던 기압 빠진 후임이 통신관 후광으로 내 휴가를 채 가지 않는가?
그넘 잘못은 아니었지만 이게 전입병의 비애였다. 억울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쯤 여단본부에서 수상한 교육 차출 명령이 내려왔다.
근무중대(보급 및 정비 지원중대) 통신 정비실에서 주관하는 12주간의 전자장비 정비교육이었다.
가급적 통신 주특기 병사 중에 전역 후 사회활동에 도움되는 기술교육을 시켜준다는 취지로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고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었다.
 
해병 병장 고참 지첨서에 보면 '말년엔 떨어지는 나뭇잎도 피하라.'는 구결이 있다.
그러니 어떤 고참이 그 교육을 가려 할 것인가?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휴가 차수도 제대로 찾아먹지 못한 나는
통신선하(통신반 선임하사관-중사, 상사 계급)에게 담배 한 보루를 상납하며 교육 보내 줄 것을 청하였다.
 
다행히 선임들 모두 교육을 기피하는 바람에 결국 원했던 데로
석 달간 근무중대로 교육 파견을 가게 되었다.
실무에서 여섯 번째 생활하는 내무반을 내가 선택한 것이다.
【작성】 전두성의 산과 삶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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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