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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래도 바다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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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로운 바다와 하늘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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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범선 한 척과 길잡이 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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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타륜과 바람 노래에 펄럭이는 하얀 돛만 있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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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린 안개 깔린 바다에 잿빛 아침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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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래도 다시 바다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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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혹은 맑게, 내가 거부할 수 없는 소리와 흐르는 물결이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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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 날리는 바람 부는 날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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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흩날리는 물보라와 솟구치는 물거품, 갈매기의 울음소리만 있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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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래도 다시 바다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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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집시의 신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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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같은 바람이 부는 곳, 갈매기가 가는 길, 고래가 가는 길을 나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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껄껄대는 뱃놈들의 신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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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항해가 끝난 뒤의 깊은 잠과 달콤한 꿈만 있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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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태양 아래 펼쳐진 큰 바다는 짙은 잉크 빛으로 심연의 색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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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근처 하얀 물거품으로 시작하여 연한 초록 물빛으로, 차츰 짙은 푸르름으로 깊어가는 바다는 언제나 내게 그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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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영국 시인 'John Masefield'의 詩 '바다에의 열병(Sea Fever)'을 아니 그려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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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 Fever written by John Mase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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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must go down to the seas again, to the lonely sea and th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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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all I ask is a tall ship and a star to steer her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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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he wheel's kick and the wind's song and the white sail's sha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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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a gray mist on the sea's face, and a gray dawn brea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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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must go down to the seas again, for the call of the running t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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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a wild call and a clear call that may not be den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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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all I ask is a windy day with the white clouds fl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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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he flung spray and the blown spume, and the sea-gulls cr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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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must go down to the seas again, to the vagrant gyps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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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the gull's way and the whale's way, where the wind's like a whetted kn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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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all I ask is a merry yarn from a laughing fellow-r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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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quiet sleep and a sweet dream when the long trick's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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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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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도 처음이고 범선 항해도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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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삼척에 사는 산악 후배들과 술 한잔할 때 크루저 요트 항해로 독도와 울릉도 탐방하는 얘기를 얼핏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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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시 이사부 기념사업회에서 추진하는 연례행사로 참가 대원을 공개 모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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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 신청에 별다른 제약과 요구하는 능력과 범위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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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 : 신라 지증왕 13년에-512년 지금의 울릉도인 우산국을 병합하여 신라 영토에 편입시킨 장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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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독도와 관련하여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인물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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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항해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았던 삼척 후배들이 5월 초에 있었던 참가자 모집 공고를 알려와서 선착순으로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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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나이 제한이 없었고 운이 좋아서인지 대원으로 선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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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인 가족으로 자란 나는 어려서부터 뱃사람 되는 것이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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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때 알피니스트의 길을 걸으며 뱃사람의 꿈을 접었으나 바다는 내게 또 다른 동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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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요트 항해는 무척 매력적인 모험이었는데 crew는 아니지만, passenger로 뜻밖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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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7월 초 일정으로 계획한 것이 장마로 일정을 한 달 늦추는 바람에 참가 대원의 변동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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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절친한 친구인 고교동창 전계능 님께 권유하여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행운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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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독도, 울릉도 탐방에 관한 예전 항해일지를 찾아보며 꿈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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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에 대한 지식, 항해 용어, 내가 타고 갈 범선의 history까지 구석구석을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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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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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을 앞두고 무사 항해를 기원하는 행사가 삼척 이사부 공원에서 있었다. "항로탐사 안전기원제 및 출항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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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친구 전계능 님을 만나 아침 첫차를(06:30) 탔다. 다행히 행사 시작 시각에 간신히 맞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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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제에 먼저 와있던 동해 산악인 김진수 아우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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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전에 흥을 돋우는 사물놀이와 민요 공연이 있는 다음 무사 항해를 기도하는 기원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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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청중과 가깝게 소통하는 기원제였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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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시범 항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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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승선하여 항해할 배는 기범선 '코리아나' 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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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대 넷에 길이 41m, 폭 6m, 136톤의 '코리아나'는(복원력 납추 275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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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과 선원 12명, 여기에 승객 60명까지 승선하여 먼바다를 항해하는 크루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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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항 방파제 안쪽에 정박한 코리아나는 항구를 배경으로 떠 있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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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 항해였기에 항로 탐사 대원이 아닌 누구라도 승선할 수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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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 기념사업회 가족과 아이들도 함께 배에 타서 범선 항해와 해류병 띄우기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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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선하여 항해하는 동안 한 시간 이상 김문길 교수님의 선상 강의가 있었는데 내용을 흘려들어서인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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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해양탐험가 이효웅 님의 해류병 설명이 있었고 왕복 네 시간가량 항해하며 근해에 100여 개의 해류병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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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길 : 부산외대 명예교수, 일본 역사를 전공, 이번 행사에 독도 역사 강의를 위해 초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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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진실 http://star.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349912#c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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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류병 : 해류의 속도와 방향을 조사하기 위해 투하지점의 경도, 위도와 날짜를 적은 종이를 넣고 밀봉한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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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띄운 다음 발견한 사람이 습득한 장소의 위치와 시간을 적어 보내온 자료를 토대로 해류의 방향과 속도를 추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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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 기념사업회 이효웅 이사가 동해의 해류 연구를 위해 매년 항해 때 해류병 띄우는 행사를 주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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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엔 삼척에 사는 산악 동지들과 기쁜 만남주 한 잔 나누며 우리들의 음악회로 항해 전야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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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출항 시간이 일러 자정 전에 술자리를 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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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 술 : 발렌타인 30년, 중국 백주, 소주 대여섯… 로열 샬럿은 따로 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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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 : 삼척에서 홍금표, 김승민, 김진수, 최승국, 이재민 님, 서울에서 전계능 님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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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4일, 둘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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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까지 집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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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기관장을 제외한 승선 인원 총 52명을 확인하고 3개 조로 편성한 항해 당직 조를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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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촬영과 이사부 기념사업회 회장님 격려 말씀을 듣고 출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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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45 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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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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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 일 전 발생한 태풍 '노루'가 일본 남쪽 바다에서(오키나와 동북동 650km 해상) 소란을 피우는데 다행히 여기까지 북상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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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때까지 계속 좋은 일기가 이어지기를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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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을 정박한 곳이 선박 주유소 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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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 한 척이 연료를 채워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범선 때문에 주유소 계류장 접안이 어렵다는 불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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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업 출항에 마음 급한 어선 덕분에 바쁘게 출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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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를 빠져나오자 곧 선장 님이 항해 일정, 선실 사용, 안전과 선내 행동 수칙 등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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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사부 주최팀 이효웅 이사의 항해 목적과 의의, 선상 이벤트(해류병 투하), 독도 돌아볼 곳 등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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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 코리아나에 여러 차례 승선하여 항해에 익숙하고 이사부 기념사업회 항해 행사에도 몇 차례 동행했던 궁인창 선임 crew가 사회를 맡으며 매끄럽게 진행을 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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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왕 이사부' 영화 제작팀과 국립 해양문화재 연구소 등의 단체 참가 팀 소개가 있었고 그 외 참가 대원 소개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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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은 정채호 님, 올해 69세의 멋진 바다 사나이로 '코리아나' 호 선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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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인원은 배를 움직이는 선장, 기관장(정학의), 항해사(이대일)와 crew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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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관계자 6명, 선발 대원 30명, '동해 왕 이사부' 영화 제작진 8명, 국립해양문화재 연구소 연구원 4명 등 모두 54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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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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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를 마치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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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땡… 학교 종이 아닌 식사 알림 종이 울리고 곧 배식이다. 항해 시작하고 첫 식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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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울렁증이 느껴졌지만, 멀미 수준은 아니다. 밥을 먹으니 오히려 속이 편안해진다. 아무래도 엊저녁 음주가 좀 과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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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잔잔하여서 인지 파고가 작고 pitching (앞뒤, 위아래로 오르내림), rolling이 (좌우로 기울어짐)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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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부터 당직 근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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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 외 10여 명으로 편성한 3개 조가 주·야간 4시간씩 교대하는 당직은 배식과 설거지, 그리고 항해 견시와 조타를 보조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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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당직이지 배식과 설거지 돕는 일 외엔 아무 간섭이 없어 명목뿐인 당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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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가 사라졌다. 여기부터는 망망대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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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고 그사이 공간은 내가 중심점이 되었다. 눈길 끝에는 둥그런 수평선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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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바다에 나와도 바람과 파랑이 적다. 덕분에 파고도 높지 않고 바다는 잔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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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너울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배의 흔들림이 기분 좋은 느낌으로 다가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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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몇몇 대원은 멀미가 느껴지는지 데크에 누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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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세일을 펼쳐 바람의 동력을 이용하리라고 기대했는데 앞바람이라 배는 계속 기관 항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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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시범 항해에선 그래도 jib sail 하나라도 펼쳤는데…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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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내내 엔진 동력으로만 이동하고 한 번도 세일을 펼치질 않았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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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선장이 주도하여 바다 노래 한 곡을 따라부르기로 알려주고 곧 선상 노래자랑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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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전 출항 준비가 바쁠 뿐 항해를 시작하면 여유 시간이 많다. 특히 패신저는 무료함을 많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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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잘 아는 선장님인지라 출발하자마자 모두 어울릴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 즐거움을 주고자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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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번 참가 대원 중에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아 노래와 함께 좋은 말씀을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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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하는 것을 즐기는 분이 뜻밖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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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내 차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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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나왔으니 이왕이면 해양 노래를 소개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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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이 먼저 노래하며 싱어롱으로 알려준 '바다로 가자' 군가의 작사, 작곡자와 만들어진 때, 노래의 가치 등을 이야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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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해군가', '브라보 해군', '앵커 송' 등의 군가를 시대별로 나누어 발표된 때과 작곡가, 에피소드 등을 전하며 노래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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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좀 많이 썼지만 뜻밖에 호응이 좋았다. 특히 선장은 깜짝 놀라며 노래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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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엔 주방을 맡은 삼척 후배들이 멋진 안주를 만들어 권주하기에 가볍게 한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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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그림과 파도 어울림을 술잔에 녹여 해풍과 함께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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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체온을 빼앗아 재킷을 꺼내 입었다. 저녁 식사 전에 멀리 울릉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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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뒤에 석양이 다가들었다. 노을이 곱다. 수평선이 잠깐 붉게 물드는가 했더니 해는 빠르게 stern 쪽 바다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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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끓어오르는 듯했던 바다는 이내 해를 품은 채 잠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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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선상 강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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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열심히 얘기해 주는데 머리에 들어오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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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노력을 생각해서 애써 들어주는 척은 하였지만, 머릿속에 팽팽히 차오른 바다의 로망 때문인지 강의는 머리 밖에서 맴돌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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