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질도 등반 능력이 있어야, 범선 코리아나에서 마스트 등반을…
10월 15일(일요일), 범선 코리아나 마스트에 얽힌 로프 정리를 위해 잠시 여수에 다녀왔다. 지난 9월, 후포 항차 중 강풍으로 범선 그림에 얼룩진 것들이다. 8월에 있었던 독도 이사부 항로 탐사 항해에 함께 어울린 친구 전계능 님과 동행하였다.
오 년 전 등반활동을 정리했을 때 내가 가졌던 모든 장비를 산악단체에 기증하여 마스트 오를 장비가 없다. 열린캠프 옛 동지들께 수소문하여 며칠 전부터 장비들을 챙겼다. 로프, 하니스, 카라비너, 퀵픽스, 런너, 에트리에… (어센더, 미니트렉션, 도르래, 등반 장갑 : 준비는 했는데 사용 않은 장비)
11시에 서울 센트럴시티 터미널 출발, 세 시가 되기 전에 여천터미널에 도착했다. 택시로 소호 요트마리나 이동 중에 정채호 선장님과 통화하여 방문을 알리고 범선에서 뵙기로 약속한다. 차를 타고 가다 보니 아직 마리나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데도 높이 솟은 마스트가 보인다. 소호 마리나 도착하여 정박해 있는 범선을 보니 무척 반갑다.
선착장 자물쇠를 열고 오랜만에 범선에 승선한다. 곧 배낭을 열고 하니스 착용, 마스트 꼭대기에 얽혀있는 로프를 살피고 마스트 지탱하는 스태이 중에서 어떤 것을 오를지 결정한다.
마스트 톱에 오르는 방법은 범선 항해하는 동안 이미 연구해 두었던 터다. 또한 어센더(ascender, jumar)로 로프 오르는 것은 평생 해온 익숙한 등반이다. 그러나 스틸 와이어를 오르는 것은 처음이다.
프루지크(prusik) 매듭보다 트위스트 매듭이 효율적이라 판단하여 트위스트(꼬아 매기) 매듭을 선택했다. 90cm 런너(runner) 활용하여 스태이에 트위스트 매듭을 걸고 마찰력과 유동성을 확인한다. 다행히 와이어 표면 미끄러움에 비해 마찰 저항은 체중을 잡아주는데, 밀어 올리는 동작에 조임 매듭 저항이 커서 팔심을 소모한다.
트위스트를 한 번가량 덜 감았더니 이번엔 중량을 버텨줄 만한 마찰이 부족하다. 오버행에 매달린 형태로 조심스럽게 조금씩 한 스텝만큼 매듭을 밀어 올린다. 발디딤 에트리에(étrier)와 와이어 버팀을 이용해 반발력을 얻고 팔심을 절약한다.
꽤 오랜만에 시도하는 기술적 등반이라 그런지 시간도 오래고 체력 소모도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꾸물거리던 날씨는 차츰 빗방울을 뿌리고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 등반을 방해한다. 지켜보던 선장님, 웬만하면 작업을 중단하고 내려오라고 걱정이 태산이다.
얽힌 로프를 정리할 수 있는 곳이 15m 높이쯤 되는 지점이다. top spreader(Cross tree)까지 올라서 런너를 걸어 확보했다. 얽힌 로프를 절단하고 풀어내려 작업을 마친다. 오르는 것이 힘들었지 안전 조처를 하고 얽힌 로프를 정리하는 것은 잠깐이다.
마스트와 spreader 교차하는 곳에 작은 틈이 있었다. 허리에 묶어 온 로프를 그곳에 걸어 내리고 튜브 하강기 활용하여 레펠(rappelling)로 마무리한다. 범선에 도착하여 장비 배낭 열어서 준비하고 마지막 정리까지 40여 분 걸렸다.
ㅎㅎ 내 능력이 아직 녹슬진 않았구나 하고 자만했더니만 웬걸! 다음날부터 며칠간 팔 근육이 욱신거려서 달래느라 애썼다.
선장님 안내로 이순신 마리나를 돌아보았다. 바다 위 장섬을 사이에 두고 소호 마리나와 마주 보는 이순신 마리나는 소호와 딴 세상처럼 요트가 많고 분주했다. 호주에서 요트 항해로 여수에 온 나이든 외국인 부부를 보며 행복의 정의를 다시 그려본다.
항해 중 배 밑바닥에 달라붙은 따개비, 제거하지 않으면 저항으로 말미암아 배의 속력이 늦춰진다.
독에 (dock) 접안한 요트는 바퀴가 있는 이동 크레인으로 들어서 육상에 옮긴 다음 필요한 정비를 한다.
선장님 내외와 함께 저녁 식사하고 범선으로 돌아와 선실을 해상 호텔로 사용했다. 지난번 독도항해 때도 선실 베드를 차지하지 못했던 계능 님이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다음 날 아침엔 출근한 기관장님과 반가운 해후를 했다.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함께하고 범선과 이별한다.
친구를 위해 여수 그림을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돌산대교를 건너 공원에서 여수 경관을 내려다보고 해상케이블카로 바다를 건넜다. 그동안 경조사로 몇 번 여수를 왔었지만 내게도 첫 경험이다.
돌아가는 교통편은 KTX를 예약해 두었다. 선장께서 연락을 주셔서 점심을 함께 나누고 헤어진다.
세 시간 만에 서울로…, 마침 행신행 KTX다. 친구 집이 일산이라 추가 요금 몇백 원 더하여 행신에서 내린다. 일산에서 또 한 잔 나누며 즐거운 여행을 되돌아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