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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계 현정(楓溪賢正)의 『일본표해록』 항로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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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현(長崎県) 여수시(麗水市)
【보고서】
(2018.07.10. 10:04) 
◈ 풍계 현정(楓溪賢正)의 『일본표해록』 항로 탐사
생활문화아카데미 궁 인창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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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머리말

 

1.1. 1) 나가사키와 하멜과 여수의 관계

2016 나가사키 범선축제가 2016년 4월21일부터 25일까지 개최되어 나는 범선 코리아나호(선장 정채호, 135톤)를 타고 참가했다. 2016년 4월18일 오후 2시에 전남 여수 소호요트경기장에서 출항하여 4월19일 오후 1시에 일본 나가사키 입구에 있는 ‘나가사키 선셋 마리나(Nagasaki Sunset Marina)’에 입항하여 검역과 입국 수속을 하였다. 배가 출항한 여수 소호요트경기장은 1986년 아시아 게임당시 요트 경기가 열렸던 곳으로 아름다운 가막만에 위치해 있어 국내 해양 레저의 전진 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2) 정채호 선장은 17년 동안 나가사키범선축제에 참가하였다.
 
코리아나호는 동해 독도를 세계에 알리는 코리아컵대회와 동해의 왕 이사부기념사업회의 독도 방문 행사로 매년 2차례 이상 독도를 방문하고 있으며, 국내의 요트대회에서는 대회 본부정으로 활용되고 있다.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은 1653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선원으로 스페르호크(Sparrow Hawk)호를 타고 대만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 출항하였으나 대만해협에서 풍랑이 심하여 배가 파손되어 제주도 남쪽 해안에서 난파한다.3) 제주도에서 한양으로 압송되어 조선에서 13년 동안 억류되어 생활하다가 지방으로 보내어져 여수에서 돛단배를 구해 호버트 데니슨 등 8명과 함께 1666년 9월에 여수 고소동 앞바다에서 탈출했다. 하멜은 1668년 7월 고향인 네덜란드에 돌아가 조선에서 체험한 사건과 마을 이름, 거리, 풍속, 언어를 기록하고 『하멜표류기』를 발간한다. 이번 나가사키항해는 하멜이 여수에서 출항했던 고난의 바닷길 350km를 항해하는 것이다.
 
 

1.2. 2) 대한해협 항해일지

이번 항해에는 선장 1명, 기관장 1명, 항해사 7명, 선주 1명이 승선하였으며, 근무는 3교대 2시간씩 항해를 담당했다. 항해를 시작할 때는 사전에 기상청 해양기상정보를 파악하고 완벽한 항해 준비를 갖춘다. 항구를 출항하여 항해하는 도중에는 해상기상특보를 수시로 체크하고, 항로의 다른 선박의 위치를 확인하고 무전 교신 내용을 청취한다. 여수에서 출항할 때 바다의 상태는 아주 평온하고 파고도 높지 않았다. 가막만 입구에 있는 양식장을 벗어나 상해나 부산항으로 항해하는 초대형 상선이나 유조선들을 피하여 횡단하여 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남해 동부 먼 바다를 향해서 항해를 시작할 무렵에는 유의파고가 2.0m이상으로 높았고 바람이 풍속 14m/s이상 세차게 불어 배가 많이 흔들렸다. 자정 무렵 대한해협(Korea Strait)을 거쳐 대마도 남쪽 공해상을 통과할 때는 풍랑이 더욱 높게 일고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범선 항해는 바람을 자연스럽게 타면서 항해를 해야 배가 덜 흔들리고 안전성이 좋은데, 레이다에 의지하여 직선 코스로 항해할 때는 배가 요란스럽게 요동쳤다.
 
일본 출입국관리소에 마리나 입항 예정시간을 오후 1시로 통보하여, 4월19일 새벽 2시부터는 속도를 5노트 이하로 항해했다. 항해 속도를 줄이니 한결 배가 안정되었다. 야간 항해는 바람이 거세고 풍랑이 아주 심했는데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빨리 대한해협을 통과하였다. 사이카이시(西海市) 해안은 200년 전에 풍계 현정 선사가 지나갔던 곳으로 파도가 전혀 없었고 점차 날씨가 좋아져서 오랜 시간을 해상에서 머물렀다. 일본 나가사키현 사이카이시 (西海市) 마츠시마(松島) 해역을 지나서부터는 아주 평화롭고 자유로운 힐링 시간과 여유를 만끽했다.
 
2016 나가사키(長岐)범선축제는 구마모토 대지진으로 행사를 축소하여 불꽃놀이, 범선관람 및 승선체험 등 많은 행사를 취소하고 범장 시범과 입출항 퍼레이드만 진행하였다.
 
 

2. 2. 일본표해록(日本漂海錄)에 나타난 나가사키현 표류 항로

 

2.1. 1)대흥사 천불전 조성 경위

범선 코리아나호를 타고 나가사키 항까지 항해한 목적은 풍계 현정 선사가 1821년 편찬한 『일본표해록(日本漂海錄)』에 나오는 표류 지역를 직접 답사하고 조사하기 위해서다. 나가사키에서 만난 분들에게 200년 전의 해남 대흥사 불상의 조성과 운송도중에 발생한 표류상항을 전하고 그 유적을 알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선배의 표류 사실을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하였고, 대흥사 불상과 15명의 승려이야기에 상당히 관심이 높았다.
 
코리아나호 정채호 선장은 ‘나가사키범선축제실행위원회’에서 개최한 환영회에서 200년 전 대흥사 천불을 실었던 배가 조선의 부산 동래 근해에서 해남으로 항해하다 강한 바람과 풍랑으로 표류하여 일본 나가사키현 오시마에 도착하고 나가사키 항까지 왔던 내용을 발표하였다. 참가한 러시아 국적의 팔라다호와 일본 국적의 미라이호, 칸쿤마루호, 니폰마루호, 톤도레다호의 선장과 선원은 물론 나가사키 항만 관계자도 매우 흥미롭게 경청하고 많은 질문을 하였다.
 
문화재청은 2013년 8월 5일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소재한 대흥사 천불전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제1807호로 지정했다. 해남 대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22교구 본사로 호국정신과 법희선열의 문화(文化)가 살아 숨 쉬는 도량이다.4) 875년(신라 헌강왕1) 도선 국사가 당에서 귀국하여 비보사찰로 5백 개의 사찰을 지을 때 함께 창건하였다고 한다. 1604년(선조37) 서산대사가 대흥사를 삼재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고, 만세토록 파괴됨이 없는 곳이라 하며 자신의 의발(依鉢)을 대둔산에 전할 것을 유언하여, 그 뒤부터 선교 양종의 대사찰로 발전하였다.
 
서산대사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3.26.~1604.1.23)은 조선중기의 고승이자 승군장으로 1592년 조일전쟁(朝日戰爭, 임진왜란, 1592~1598)이 일어나자 전국에 격문을 돌려 각처의 승려들이 구국(求國)에 앞장서도록 하였다.5) 구국의 승장(僧將)으로 큰 전공을 세우고 나라를 구하여 선조로부터 최고의 존칭을 하사받아 산중에서 주석하다가,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나이 85세, 법랍 67세로 입적하여 해남 대흥사에 표충사(表忠祠)에 제향되었다.6)
 
1811년(순조11) 2월 야간에 대둔사 사찰 창고를 방문한 완도 가리포 첨사 일행의 횃불에서 불씨가 떨어져 화재가 발생한다. 지장전, 팔해당, 용화전, 적조당, 천불전, 대장전, 약사전, 가허루 등 대흥사 여러 전각이 소실된다.
 
완호 선사는 우리나라 다도(茶道)를 중흥 발전시킨 초의 선사의 스승으로, 1813년에 대흥사 사찰의 중건을 맡게 되어 천불전을 함께 조성한다. 선사는 능주 쌍봉사에 계신 풍계 현정(楓溪 賢正)에게 천불전에 모실 천불(千佛)을 의뢰하여 풍계 선사는 경주 남산7)자락에 있는 기림사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서 천불전 불상을 조성한다. 현정 스님은 속성이 밀양 박씨로 집안이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집안의 후손이었다.
 
천불전 불상을 조성한 기림사는 경주 함월산 자락에 있는 절로 신라 때 인도 승려 광유(光有)가 창건하여 임정사(林井寺)라고 불렸다. 150년 후 원효(元曉, 617~686)가 중창하고 머물면서 기림사로 이름을 바꾸고 이 곳에서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를 저술했다.8) 기림사는 붓다가 머물렀던 스라바스티(Shravasti)의 기원정사(祈園精舍)에서 유래한다. 9)기원정사는 인도 코살라국의 수도 사위성(舍衛城) 남쪽 1.6킬로미터 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최초 불교사원으로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이라고도 한다. 붓다가 45년간의 수행과 전법기간 동안 24회의 우안거(雨安居)를 지내고 금강경을 설한 장소이다. 당시 7층의 가람이 있을 만큼 웅대한 규모였다.
 
초의 선사의 상좌인 대강사 범해 각안(梵海 覺岸,1820∼1896)이 쓴 '천불조성약기千佛造成略記'(『범해선사문집(梵海禪師文集)』에 의하면, 현정이 천불을 조성할 때 처음에 경산(京山)화원 8명으로 일을 시작하였지만, 마지막 점안을 할 때는 경산 화원 9명, 영남(嶺南)화원 24명, 전라도(全羅道)화원 11명이었다고 적었다.
 
 

2.2. 2) 대흥사 천불전의 표류 경위

『일본표해록』 1817년 11월의 기록을 살펴보면 불상을 운반하여 해남으로 출발하는 모습이 보인다.
 
11월16일 경주 기림사에서 불상을 소달구지를 이용해서 경주 장진포로 향한다.
 
11월18일 완도 상선에 불상을 싣고 장진포를 출항해 동해(東海) 울산 장생포로 가는데 배가 무거워 5일이 걸렸다.
 
11월23일 울산 장생포에서 완도 상선(232위)과 함경도 홍원 상선(768위)에 불상을 나뉘어 싣고 항해를 시작하다.
 
11월24일 두 상선은 울산 군령포에 무사히 도착한다.
 
11월25일 두 배는 동래로 항해하다가 심한 바람과 기상변화를 만나 완도상선은 연안을 타고 동래 항으로 들어간다. 연안에서 멀리 떨어진 홍원호는 3일간 표류를 해 오시마섬(大島, https://goo.gl/RSgGLP)에 표착한다.
 
11월29일 일본 규슈 나가사키현에 속해있는 오시마섬에 표착. 일본 관리와 문답을 통해 일본 서해도 축전국 종상군 대도포(日本 西海道 筑前國 宗像郡 大島浦)임을 알게 되고 도움을 청(請)한다. 여기서 5일을 머물고 이동하여 조선관이 있는 나가사키까지 예인하여 출항한다.
 
12월3일 무나가타군(宗像郡) 스야자키우라(津屋岐浦, 【연결】https://goo.gl/DXxssL) 10일간 체류. 지금의 후쿠쓰(福津市).
 
12월10일 남도포(藍島浦, 相島 아이노시마우라, 【연결】https://goo.gl/8sHR8B) 당백포(唐白浦)도착. 9일 체류. 90리 항해
 
12월23일 100리를 가서 아이노시마섬(柏島)에 도착
 
12월24일 40리를 가서 호자도(呼子島,요부코 唐進市 가베시마(加部島, 【연결】https://goo.gl/gtEUsf) 도착. 5일을 지냄.
 
12월28일 100리를 가서 삼율도(三栗島)도착, 12월29일 100리를 가서 서도(西島, 니시지마)도착
 
1818년 1월2일에 450리를 가서 나가사키항에 도착한다. 나가사키에 놀러온 야마토(大和絵) 화가 우키다 잇케이(浮田一蕙, 1795~1859)는 조선 승려들과 만나 필담을 나누고 1838년에 조선표객도(朝鮮漂客圖)를 남긴다. 불화에서 비롯된 채색화는 자연과 풍속을 선과 색채로 부드럽게 그려내는데 이를 야마토에라고 한다. 재일사학자 이원식 선생이 1996년 일본 교토의 고서점에서 우연히 그림과 시 2수를 발견한다.
 
4월14일 에도막부의 허락으로 나가사키를 출항, 4월18일 히라도(平戶島, (【연결】https://goo.gl/nBZ9CN) 도착
 
5월 3일 이키섬 (【연결】https://goo.gl/JNuUK4) 출발, 480여리를 가서 대마도 도착
 
6월17일 대마도 남쪽 출항, 북단 도착하여 6월18일 대마도 대풍도 출발
 
6월19일 웅천(熊川, 진해) 가덕도 천성진(天成鎭,) (【연결】https://goo.gl/u4nrGn) 도착, 480리 이동
 
6월27일 부산진 도착, 동래부 조사 방문, 7일간 조사를 받고
 
7월 5일 동래를 밤에 출발하여,7월 6일 동래 왜관 통과, 7월10일 통영 도착
 
7월13일 통영 출발, 장흥 향일도 도착. 1861년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 장흥지역의 섬 지도에도 확인이 안 됨.
 
7월14일 해남 앞바다 도착, 7월15일 대흥사에 도착하고 8월15일 대흥사 천불전에 천불상을 봉안한다.
 
 
 

2.3. 3) 대흥사 천불전 불상의 도착지 추정 장소

풍계현정 선사는 『일본표해록』에 7월14일에 해남 앞바다에 도착했다고 기록했다. 나는 남해안을 요트로 항해하면서 지금은 매립되고 사라진 옛 포구들을 조사하고 답사하였는데, 해남 앞바다는 고달도선소(古達島船所)가 있었던 해남군 북평면 남창마을로 생각한다. 남창마을(외부:https://goo.gl/Sjccbu)에서 대흥사까지의 거리는 약 23km로 최단 거리이다. 남창은 완도군 군외면과 인접한 바다에 있는 선소(船所)마을10)로 해남군과 완도군을 이어주는 중요한 국도 13호선이 지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이 마을의 ‘북평 용줄다리기’는 연산군 때 시작된 500년 전통의 용줄다리기다.
 
 

2.4. 4) 대흥사 천불전 불상의 "日"표시와 다산 정약용의 편지

불상이 일본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다산 정약용은 8월 11일 완호 선사에게 일본에 갔다 온 768여구의 불상에 "日" 한자를 표시했으면 좋겠다고 편지를 보내, 완호 선사는 천불전에 모시기 전에 불상 바닥에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1818년 8월15일 천불전에 千佛을 모시고 낙성식을 奉行한다.
 
2002년 6월 9일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다산 탄신 250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정민 교수는 완호 선사와 다산 정약용 간의 주고받은 편지를 논문으로 발표했다.11) 다산은 『대둔사지』를 작성하고 있었고 많은 승려를 제자로 두었다.
 
 

2.5. 5) 대흥사 천불전 불상의 문헌 기록

해남 대흥사 천불전 불상에 대한 기록은 사찰의 유명한 화원승(畵員僧)이었던 풍계 현정 스님의 『일본표해록』를 비롯하여 범해 각안(梵海覺岸, 1820∼1896)이 작성한 『천불조성악기』에도 나온다. 범해는 은사인 초의 선사와 호의 시오(鎬衣始悟)선사가 7개월에 걸쳐서 보고 들은 일본에 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풍계 현정 스님의 신상 기록은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이 쓴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도 보인다. 조선왕조실록과 많은 문집 에 표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표류민이 생기면 상호부조의 정신과 애민(愛憫)의 마음으로 적극 도왔다.
 
풍계 현정 선사의 귀국 후에 대마도는 1818년 5월 조선국에 전남 해남 승도 15명과 선원 12명의 표류민12)과 구조경위, 송환 경위을 알리는 표차사(漂差使)를 동래부에 파견하고 진기한 토산품을 선물한다. 이것은 경상감사를 통해 조정에 보고되었고 조선국 예조참의 윤정렬(尹鼎烈)이 1818년 7월 일본국 대마주 태수 습유 평공에게 답서와 별품을 보낸다. 이로서 양국간의 표류민 외교적 절차가 모두 끝난다.
 
 

2.6. 6) 쌍계사 16나한 불상의 일본 표류

법성은 1616년에 성주에서 태어나 17세에 가야산 해인사에 출가하였다. 1654년 봄에 경주 천태산에 들어가 쌍계사 나한전에 모실 16나한 불상을 조성하고 바닷길을 통하여 경남 하동 쌍계사로 불상을 이운한다.
 
5월에 경주에서 바다로 항해하다 뜻하지 않게 동래 해상에서 폭풍을 만나 17일을 표류하여 멀리 동해 울릉도를 지나 북해도까지 표류한다.13) 선원 26명과 쌍계사 16나한 불상이 실린 이 배는 2년에 걸쳐 일본 사람들의 친절한 도움을 받아 먼 곳까지 갔다가 모두가 살아서 돌아온다. 법성의 표류 이야기를 들은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이 『곡운집(谷雲集), 법성전14)』에 수록했다.
 
 
 

3. 3.나가사키에서의 문화교류

 

3.1. 1) 만난 사람들

나가사키항 데지마 마리나에 접안해 있는 범선 코리아호에는 매일 아침 일본인 친구들이 찾아온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仁位孝雄(Nii Takao, 78歲) 선생15)은 쓰시마지청장을 지냈고 ‘나가사키역사문화박물관’에서 〈조선통신사의 길, 사진전〉을 2013.10.26.~12.15에 개최하신 어른이다. 환영식장에서 받은 명함에 조선통신사의 얼굴이 있어 질문을 드렸는데 다음날 CD를 가지고 배에 오셨다. CD에는 조선 선조의 맏손자로 가토 기요마사(可藤淸正)에게 함경도 회령에서 임해군 광해군과 함께 붙잡혀 1593년 4살 때 누나와 함께 일본에 인질로 끌려간 뒤 13살 때 출가해 일본 불교 법화종 제 18세 법주(法主)가 되어 고승반열에 오른 일연상인(日延上人, 太雄 1589~1665)과 경남 하동 출신의 본묘사(本妙寺) 일요상인(니치오·日遙上人·余大南)과 조선통신사의 많은 내용이 있었다. 기무라(木村 英人, Kimura Hideto, 74歲)선생은 교편을 잡았던 분으로 NGO활동을 활발하게 하시는데, 대흥사 불상의 일본 표류이야기에 감탄하여 『일본표해록』 책을 빌려가 밤새 읽고 다음날 일본 지도를 가져와 일본의 표착 지점을 알려주고 바닷길을 함께 토론했다. 기무라 선생님의 안내로 풍계 선사가 지나갔을 가능성 있는 많은 섬들과 포구를 방문하고 중간에 메이지시대 산업유산과 탄광, 어뢰발사장, 방공호, 태평양전쟁 유적, 이삼평 도예비을 방문했다. 4일 동안 운행거리가 500km가 넘었다. 나가사키현의 해안선의 길이는 4,137km로 정말 섬도 많고 항만도 89개로 홋카이도의 해안선보다 더 길고 복잡하다.
 
 

3.2. 2) 전통항해기술

풍계 현정 일행을 태운 홍원상선이 일본에서 돌아와 7월5일 동래를 출발해서 해남까지 10일이 걸린 것은 순전히 조류와 돛을 이용한 전통항해 방법이었다. 이제 우리나라에는 옹기배16)나 조운선17) 같은 배는 거의 사라지고,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건조한 배와 해양전시관의 전시 목적으로 만든 몇 척의 작은 범선만 남아있다.
 
강진 옹기배를 60년 이상 운항했던 신연호(85세) 뱃사공의 항해기술18)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하나씩 채록되고 있다. 옹기19)는 흙그릇에 드는 것으로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통틀어 말한다. 1970년대 30척씩 있었던 강진 옹기배들은 1975년 플라스틱 그릇의 출현과 납잿물 광명단 사건으로 된서리를 맞아 점차 쇠퇴한다.
 
코리아나호의 정학의(76세) 기관장은 동해 바다 및 울릉도와 연근해 항해를 50년 이상 하신 분으로 항해와 관련된 체험담이 많다. 최영석(84세) 선장은 1960년대부터 부산해양대학교에서 실습선 갑판장과 교관을 하고, 미국 배의 용어사전과 교본을 만들고, 노르웨이 선박회사에서 7년 근무, 독일 스테이트 마리나에서 4년, 해양대 해상안전교육 교관 등을 하였다. 바다를 땅처럼 누벼온 해양 원로들의 경험담과 지혜를 기록하고 남기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3.3. 3) 조선(朝鮮)과 러시아 범선 팔라다호의 관계

팔라다호(Pallada, 선장 니콜라이)는 극동 블라디보스톡 국립수산기술대학교 소속 해양실습선으로 승선인원이 150명이며 톤수 2987t, 전장 10.8.6m, 전폭 14m, 흘수 6.8m이다. 팔라다호는 ‘러시아의 공주’를 뜻하며 3개의 큰 돛대를 가진 최고 18노트로 항해하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범선이다. 2014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돛을 펴고 싱가포르까지 45일간 실습항해를 하였다. 몇 년 전에 팔라다호는 중국 대련을 출항해 싱가포르로 항해하다 대만 동쪽 공해상에서 강한 돌풍과 번개를 맞아서 돛대가 부러지는 대형 사고를 당했다. 목포항에서 수리를 하였는데 당시의 참혹했던 기록 사진이 팔라다호 내부에 남아있다. 팔라다호는 1989년에 다시 건조된 범선이지만 배안에는 100여년의 역대 항해 기록사진 및 선장, 방문지에서 받은 장식품을 모두 전시하고 있어 항해하는 범선박물관이라고 말한다.
 
팔라다(Pallada)호의 한국 방문은 160여년 前으로 올라간다. 1852년 10월7일 발틱해 연안 끄론슈타브를 출항해 고틀란드, 카테카트 해협, 스커게라크 해협를 통과했다. 1953년 1월18일 포르투갈령 Madeira 섬을 지나 북회귀선을 지나고 2월3일 북회귀선을 통과했다. 3월9일 아프리카 희망봉 동족 펄스만(Faise Bay)를 지나 5월1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연안에 이른다. 1853년 6월26일 광동성 홍콩을 출항하여 태평양의 보닌제도, 나가사키, 상하이를 거쳐서 1854년 4월 2일부터 7일까지 거문도(Port Hamiltion)에 보스톡호, 올리부차호, 공자 멘쉬코호프와 함께 정박한다. 팔라다호는 4월9일 나가사키를 3번째 방문하고, 조선의 동해안 조사를 결정하여 4월20일부터 22일간 강원도 초산만(현 울산만)에서 멀리 함경도 두만강까지 실측조사를 시행했다.20) 당시 팔라다호 전함의 함장은 소령 운꼽스키로 장교 22명과 승무원 439명, 이중에 365명의 수병과 30명의 비전투 장병, 26명의 악사가 승선했다. 팔라다호는 목조 범선으로 2284t, 전장 52.7m, 선폭이 13.3m, 흘수 4.3m, 대포를 52문 장착했다. 팔라라호의 소속 함정인 오리부차호는 동해를 항해하던 중에 동해의 동도와 서도를 발견하고 서도를 올리부차, 동도를 메넬라이로 명명하고, 1855년 1월에 러시아 해군지에 이 내용을 발표한다. 당시 팔라호에 동승하였던 러시아 소설가 곤차로프(I·A·Goncharof)는 승선일기 형식의 항해기인 『전함 팔라다(Frigate Pallada)』를 1858년에 출판하여 당시의 사정을 알려주고 있다.21)
 
 

4. 4. 맺음말 - 향후 연구과제

2016년 4월 25일 오후 2시 나가시키 항의 시민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고 범선들이 출항했다. 항로는 고토열도(五島列島) 북단인 히라시마섬(平島) 해역으로 항해를 하였다. 비가 조금씩 내리며 파고는 0.5m~0.8m, 해양기상도 양호했다. 바람이 알맞게 잘 불어주어 돛을 올리고 순항하여 4월 26일 오전 10시경에 여수 엑스포 신항으로 돌아왔다.
 
항해 시간이 20시간으로 평소 30시간 정도 걸리던 것을 많이 단축시킨 것은 선원들의 뛰어난 항해술과 도전정신, 출항 전에 배를 여수조선소 도크에 올려서 배 밑바닥에 달라붙은 해초류와 조개를 모두 제거하여 바닥을 새로 칠하고, 밸브와 부품 등을 교환하고, 엔진을 완벽하게 정비를 한 까닭이다.
 
그동안 범선 코리아나호를 타고 독도(獨島) 3회 왕복 항해, 나가사키 1회 왕복 항해, 새만금 1회 왕복 항해를 하였다. 옹기배을 타고는 남해안을 항해했다. 이번 항해에서 바람이 세고 파고가 높은 날 돛은 정말 중요한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배웠다.22) 돛을 올려 펼치고 바람을 읽어 자연스럽게 순응하면 아무리 거친 바다에서도 배는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표해록』에 나오는 홍원호 뱃사공의 올바른 지혜와 전통항해기술 덕분에 표류민과 천불전 불상은 온전하게 보존할 수가 있었다.
 
나가사키 범선 마쓰리23)에 참가하여 사찰과 유적지를 방문하고 많은 안내판을 보았지만 한국과 관련된 내용을 없었다. 안내판에는 중국, 네덜란드, 영국, 미국과의 문화교류 사실만 적혀 있었다. 이번 기회에 해남 대흥사 천불전 불상을 실은 홍원호의 일본 표류와 환대, 송환의 내용을 담은 안내판을 ‘나가사키항 오하토터미널’과 대형 크루즈(cruise)24)가 정박하는 ‘나가사키 마쓰가에 국제터미널’앞에 건립해서 과거 한·일간의 있었던 선린우호(善隣友好)의 정신을 적극 알리고자 한다.
 
지난 ‘2015 나가사키범선축제’에서는 나가사키와 네덜란드 교류 400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진행되었다. 앞으로 다가올 ‘2018 나가사키범선축제’에서는 풍계 현정 선사가 편찬한 『일본표해록』의 내용을 옛 지도와 문헌과 나가사키 방문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대흥사 불상 일본 표류와 송환을 기리는 20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자 한다.
 

참고문헌
 
1. 일본표해록, 풍계 현정, 김상현 옮김, 동국대학교출판부, 2010.7.5.
2. 전국요트일주도,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 2015.12,
3. 한국불교문화사전, 불교문화연구원 편, 운주사, 2009.2.3.
4. 북한사찰연구, 사찰문화연구원 편저, 한국불교종단협의회, 1993.9.1
5. 경주 남산 겨레의 땅 부처님 땅, 윤경렬, 불지사, 2000.3.10
6. 다산 탄신 250년 기념 학술대회, 정민, 2002.6.9.
7. 仁位孝雄(Nii Takao), 우호교류를 지탱한 고난의 4000km 조선통신사의 길 CD, 2013.10
8. 옹기배와 전통항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10.12.28
9. 전통선박 조선기술3 강진옹기배, 2011.12
10. 고려시대 조운선 (마도1호선) 복원 보고서, 2015.9
11. 뿌리깊은나무, 옹기점, 오소백, 1979.6
12. 요트경기의 전략과 전술 날쌔고 슬기롭게 1, 데이비드 델렌바우, 대한요트협회, 2011.4.30.,
13. 서양인들이 본 韓國近海, 이상업, 한국해양개발(주), 2003.10.31
14. 크루즈산업의 이해, 이경모, 대왕사, 2004,2.25
15. 섬의 시대, 바다의 시대를 열다,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2015.8.20
16. 쌍계사 16나한과 대흥사 천불, 일본을 표류하다,이종수, 법회와 설법 2010.9
17. 곡운집(谷雲集) 법성전, 한국문집총간
18. 신과 인간이 함께 즐기는 마쓰리-한국인이 본 일본 축제, 박전열, 토향, 2008.9.27.
 

각주
 
1) 일본표해록, 풍계 현정, 김상현 옮김, 동국대학교출판부, 2010.7.5. 37쪽
2) 전국요트일주도,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 2015.12, 129쪽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선원 36명이 제주도 산방산 앞바다에 상륙하였다. 737쪽
4) 한국불교문화사전, 불교문화연구원 편, 운주사, 89쪽
5) 한국불교문화사전, 불교문화연구원 편, 운주사, 409쪽
6) 북한사찰연구, 사찰문화연구원 편저, 묘향산 보현사(普賢寺), 245쪽
7) 경주 남산 겨레의 땅 부처님 땅, 윤경렬, 불지사, 20쪽
8) 한국불교문화사전, 불교문화연구원 편, 운주사, 63쪽
9) 구글 지도 【연결】https://goo.gl/pR1sQZ (단축주소와 사진)
10) 고지도로 본 경사우수영의 선소 특징과 유적현황, 한샛별, 섬의 시대, 바다의 시대를 열다,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2015.8.20., 375쪽
11) 기념 학술대회, 정민, 2002.6.9. "작년 겨울 석불이 동쪽으로 떠내려가 눈물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 누군들 노인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겠습니까. 바람을 받아 배가 와서 뜻하던 일이 마침내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또 누군들 노인을 위해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소동파의 『대아라한찬(大阿羅漢贊)』에 말하기를 “어느 것이 셋이고 어느 것이 일곱인지 아는 자가 없다”고 했는데, 이제 대둔사의 석불 또한 이 같은 염려가 있습니다. 훗날 뉘라서 어느 것이 먼저 온 300개의 부처이고, 어느 것이 동쪽으로 떠내려갔던 700개의 부처인 줄 알겠습니까? 반드시 부처의 등에다 모두 작은 전자(篆字)로 ‘일(日)’자를 써서 표시로 삼아 일본으로부터 온 것임을 적어둔 뒤라야 서로 뒤섞이는 탄식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 뜻은 모름지기 초의(艸衣) 의순(意洵)과 함께 의논하십시오.(중략)“.
12) 표민대화의 사료적 가치, 문경호,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2015년 제6회 전국해양문화학자대회, 176쪽
13) 쌍계사 16나한과 대흥사 천불, 일본을 표류하다, 법회와 설법 2010.9, 이종수,
14) 곡운집(谷雲集) 법성전, 한국문집총간
15) 仁位孝雄(Nii Takao), 우호교류를 지탱한 고난의 4000km 조선통신사의 길 CD
16) 옹기배와 전통항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10.12.28. 102쪽
17) 고려시대 조운선 (마도1호선) 복원 보고서, 2015.9, 15쪽
18) 전통선박 조선기술3 강진옹기배, 2011.12, 17쪽
19) 뿌리깊은나무, 옹기점, 오소백, 1979.6
20) 서양인들이 본 韓國近海, 이상업 , 한국해양개발(주), 2003.10.31. 러시아의 해양조사활동, 161쪽,
21) 서양인들이 본 韓國近海, 이상업 , 러시아 동부 발틱해 연안의 도시 St. Petersburg에서 출판, 163쪽
22) 요트경기의 전략과 전술 날쌔고 슬기롭게 1, 데이비드 델렌바우, 대한요트협회, 2011.4.30., 185쪽
23) 신과 인간이 함께 즐기는 마쓰리-한국인이 본 일본 축제, 박전열, 토향, 2008, 138쪽
24) 크루즈산업의 이해, 이경모, 대왕사, 2004, 34쪽
나가사키 현(長崎県) 여수시(麗水市)
【보고서】 궁인창의 논문모음
• 新安船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 풍계 현정(楓溪賢正)의 『일본표해록』 항로 탐사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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