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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019년 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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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비장타령 (裵裨將打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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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 배비장타령
【학습】
(2019.07.18. 21:00) 
◈ 배비장타령 (裵裨將打令)
현재 판소리 창으로나 창본인 사설이 전하지 않는다. 다만 김삼불이 국제문화관에서 출판한 교주본인 '배비장전'이 판소리 창본의 내용이 되리라고 추측되며, 판소리 열두 마당 중 한 마당으로, 작자 ·연대는 미상이나, 영 ·정조 연간에 배비장의 설화가 판소리에 사설로 극화(劇化)된 것으로 짐작된다.
목   차
[숨기기]
 

1. 요점 정리

• 연대 : 미상
• 작자 : 미상
• 성격 : 폭로적, 야유적, 풍자적
• 주제 : 양반 계층의 위선을 폭로
 
 

2. 내용 연구

 
 
 

3. 이해와 감상

현재 판소리 창으로나 창본인 사설이 전하지 않는다. 다만 김삼불이 국제문화관에서 출판한 교주본인 '배비장전'이 판소리 창본의 내용이 되리라고 추측되며, 판소리 열두 마당 중 한 마당으로, 작자 ·연대는 미상이나, 영 ·정조 연간에 배비장의 설화가 판소리에 사설로 극화(劇化)된 것으로 짐작된다. 내용은 양반에 대한서민들의 보복과 양반계층의 위선을 폭로한 작품으로 풍자와 야유가넘친다. 여색(女色)에 굳다고 소문난 제주목(濟州牧)의 배비장이 목사(牧使)의명을 받고 유혹해오는 기생 애랑(愛娘)에게 반하여 망신한다는 줄거리로짐작된다. (고전 소설에서 배비장전을 참고할 것)
 
 

4. 심화 자료

배비장전
 
배비장전은 작자와 제작 연대가 알려져 있지않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풍자소설이다. 이 이야기는 영조와 정조시대에 걸쳐 이미 판소리로 발표된 일이 있다. 옛날에는 기생을 해어화(解語花)라했다. 규방 규수들이 꼭꼭 닫혀진 대문 속에서 바느질을 하는 동안 기생이라는특정 계층의 여자들은 남자들의 술자리에서 술시중을 들어 한량들이일컬어 '말하는 꽃이다' 해서 해어화라는 이름을 얻었다. 기생이 언제부터있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나 고대부족사회의 무녀가 그러한 일을 하지않았겠나 하는 추측이 일반적이다. 즉 제사와 정치가 하나였던 사회에서의사제였던 무녀가 왕권과 신권이 분리되고 국가가 성립되는 과정에서지방세력가와 결합해 근대의 기생 비슷한 역할을 했을 거라는 얘기다. 조선 중기 이후 기생문화는 독특하다.
우선 유교문화와 더불어사대부들의 문학 예술이 기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황진이, 이매창같은 명인들이 문명을 날렸다. 한편 말기에 오면서 기생들은 일패(一牌), 이패, 삼패 등 셋으로 구분되는데, 일패는 전통 무가의 보존, 전승자로뛰어난 예술감각을 지닌 기생들이 다. 일패는 대부분 관기로 그들 내부에서는규율도 엄했고, 자부심도 굉장했다. 이패는 밀매음(密賣淫), 삼패는공창(公娼)의 기능을 했다. 일제시대 진주 기생 산홍은 "기생 줄돈이 있으면 나라를 위해 피흘리는 젊은이에게 주라"고 하릴없는한량들을 꾸짖었다고 한다. 〈배비장전〉은 일패기생 애랑이 양반을갖고 노는 이야기로 애교 있고, 의기 있고, 재주 뛰어나고, 미모도 있는애랑이와 애랑의 꾀에 빠진 배비장에 대한 풍자가 주된 이야기로 전개된다.
당시의지배층인 양반들의 위선을 폭로함으로써 서민들의 양반에 대한 보복심리를잘 묘사하였다. 원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에 실려 있는 '발치설화(拔齒說話)'와 '동야휘집(東野彙集)'의 '미궤설화(米櫃說話)'가 '배비장전' 줄거리를 구성하는 근간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설화에서판소리 작품으로, 다시 그로부터 소설로 발전한 과정을 살펴보는 데좋은 본보기가 되는 풍자소설의 백미편이다.
 
배비장전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국문구활자본. 판소리로 불리어진 〈배비장타령 裵裨將打令〉이 소설화된 작품이다. 판소리 열두마당에 속하지만, 고종 때 신재효(申在孝)가 판소리 사설을 여섯마당으로 정착시킬 때 빠진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배비장타령〉은 판소리로서의 생명을 잃어 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런데 신재효가 창작한 것으로 보이는 〈오섬가 烏蟾歌〉에 〈배비장전〉의 한 부분인 애랑과 정비장의 이별 장면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또 배비장이 애랑에게 조롱당하는 사실이 서술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 시기까지 〈배비장타령〉은 부분적으로 불리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1938년에 〈배비장전〉은 판소리가 창극으로 공연되었으며, 최근에는 재창조되기도 하였다.
인쇄된 〈배비장전〉의 자료로는 중요한 이본(異本)의 차이를 보이는 두 종류가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1916년부터 발간되었던 것으로 알려진 구활자본이고, 또 하나는 필사본을 대본으로 한 1950년에 나온 주석본이다.
앞의 자료에서는 배비장이 애랑과 방자의 계교에 빠져 온갖 곤욕을 치른 뒤에 정의현감(旌義縣監)이라는 관직에 오르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뒤의 자료에서는 배비장이 애랑과 방자의 계교에 빠져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알몸으로 궤 속에서 나오는 장면으로 끝나고 있다.
〈배비장전〉의 소재가 되었을 것으로 지적된 근원설화(根源說話)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랑하는 기생을 이별할 때 이빨을 뽑아 주었던 소년의 이야기인 발치설화(拔齒說話)이다.
다른 하나는 기생을 멀리하였다가 오히려 어린 기생의 계교에 빠져 알몸으로 뒤주에 갇힌 채 여러 사람 앞에 망신을 당하는 경차관(敬差官)의 이야기인 미궤설화(米櫃說話)가 지적되어 왔다.
서거정(徐居正)의 ≪태평한화골계전 太平閑話滑稽傳≫에 실려 있는 발치설화는 애랑과 정비장의 이야기에 수용되었다. 한편, 이원명(李源命)의 ≪동야휘집 東野彙輯≫에 실려 있는 미궤설화는 애랑과 배비장의 이야기에 수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실제 있었던 일이 어떻게 설화로 바뀌어지는가 하는 관점에서 〈배비장전〉의 바탕이 된 미궤설화의 근원이 더욱 자세히 밝혀지기도 하였다. 김안로(金安老)의 ≪용천담적기 龍泉談寂記≫에 수록된 〈모안렴위기광욕 某按廉爲妓狂辱〉, ≪실사총담 實事叢譚≫에 실린 〈풍류진중일어사 風流陣中一御史〉라는 이야기 등이 미궤설화의 근원이 되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관인사회(官人社會)에 처음 참여하는 사람이 겪어야 되는 입사식(入社式)인 신참례(新參禮)도 소재로 수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의 형성시기는 정확하게 알기 어려우나, 유진한(柳振漢)이 남긴 만화본(晩華本)〈춘향가〉에 〈배비장타령〉의 존재를 암시하는 대목이 있다. 영조 때까지는 판소리 한 마당으로 성립되었던 〈배비장타령〉이 판소리로서의 생명을 잃고 그 사설만 기록되면서 소설화된 것이 〈배비장전〉으로 남아 전해졌을 것이다.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주 기생 애랑은 여러 모로 빼어난데, 배비장은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김경(金卿)을 따라온 평범한 인물이다. 이러한 설정은 배비장에 대한 애랑의 우위(優位)를 예견하게 한다.
작품 첫머리에는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김경 일행이 풍랑을 만나 고생을 겪은 뒤에 제주도에 도착하는 사건이 묘사되었다. 이 부분에는 비장들의 자탄사설(自歎辭說)이 끼어 있는데, 이는 〈적벽가 赤壁歌〉에 나오는 군사들의 자탄사설과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이어 애랑과 정비장의 이별장면이 벌어진다. 이 장면은 그 자체가 희극적이지만, 동시에 애랑과 배비장 사이에 벌어질 사건을 준비하는 구실도 하고 있다. 정비장이 애랑에게 창고에 넣어둔 자신의 짐을 모두 내어주고 이별하려 할 때, 애랑은 정비장의 몸에 지닌 것을 남김없이 얻어 내고는 끝내 그의 이빨까지 빼게 만들었다.
서울을 떠날 때 어머니와 부인 앞에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떠났던 배비장은 이 장면을 보고 정비장을 비웃다가 애랑을 두고 방자와 내기를 걸게 되었다. 기생과 술자리를 멀리하면서 홀로 깨끗한 체하는 배비장을 유혹하기 위해서 방자와 애랑은 계교를 꾸몄다.
이러한 계획은 목사가 지시한 일이었다. 목사는 계교의 실행을 돕기 위하여 야외에서 봄놀이판을 벌였다. 목사 일행을 따라나와 따로 자리잡은 배비장을 유혹하려고 애랑은 수풀 속 시냇가에서 온갖 교태를 부리며 노닐었다.
이에 크게 마음이 움직인 배비장은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뒤처졌다. 이 부분에 금옥사설(金玉辭說)이 끼어 있는바, 이것은 앞 부분에 끼어 있는 기생점고(妓生點考)와 함께 〈춘향전〉에 나오는 금옥사설·기생점고 부분과 비교될 만하다.
배비장은 방자를 사이에 넣어 애랑이 차려주는 음식상을 받아 먹고서, 애랑을 잊지 못하여 마음의 병이 들게 되었다. 배비장은 방자를 매수하여 애랑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만날 기약을 얻어냈다. 배비장은 방자가 지정하는 개가죽옷을 입고 애랑의 집을 찾아갔다.
배비장은 애랑의 집 담 구멍을 간신히 통과하여 애랑을 만나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방자가 애랑의 남편 행세를 하며 들이닥치자, 황급해진 배비장은 자루 속에 들어갔다. 방자가 술을 사러 간다고 틈을 내준 사이에 배비장은 피나무궤에 들어가서 몸을 숨겼다. 방자는 배비장이 숨어 들어가 있는 피나무궤를 불을 질러 버리겠다고 위협을 하다가, 다시 톱으로 켜는 흉내를 하면서 궤 속에 든 배비장의 혼을 뽑아버렸다.
배비장이 든 피나무궤는 목사와 육방(六房)의 아전들 및 군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동헌(東軒)으로 운반되었다. 바다 위에 던져진 줄 안 배비장이 궤 속에서 도움을 청하자, 뱃사공으로 가장한 사령들이 궤문을 열어주었다. 배비장은 알몸으로 허우적거리며 동헌 대청에 머리를 부딪쳐 온갖 망신을 다 당하였다.
1950년도 출간본은 희극적 파탄이 최고조에 도달한 이 부분에서 끝났다. 구활자본에서는 이와 같은 망신을 당한 배비장은 목사를 하직하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하여 배를 기다리다가, 애랑이 해남(海南)에 간다고 소문 내면서 준비해 놓은 배에 숨어 들어갔다가 다시 애랑을 만나고, 뒤에 정의현감으로 임명되어 애랑과 함께 부임해서 그 고을을 잘 다스리고 행복을 누렸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작품은 판소리 사설이 기록화되면서 소설화된 것이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판소리 사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의 문체는 판소리 사설의 문체적 특징을 수용하고 있다.
판소리로 불리어진 다른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삽입가요(揷入歌謠)도 발견된다. 그런데 1950년도 출간본은 판소리 사설에 더욱 가까운 면을 지니고, 구활자본은 소설로 바뀌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방자는 배비장의 약점과 위선을 폭로하고 파괴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그런 면에서 가면극에 등장하는 말뚝이와 상통한다. 〈춘향전〉에 나타나는 방자보다도 더 날카로운 풍자의 기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배비장전〉의 방자는 판소리 사설이나 판소리계 소설에서 작가의 목소리를 개입시키는 장치로 형상화되는 인물유형의 하나로 주목될 수 있다.
이 작품은 위선적인 인물 또는 위선적인 지배층에 대한 풍자를 그 주제로 하는 작품으로 이해된다. 〈배비장전〉은 관인사회의 비리(非理)와 야합상(野合相)을 소재로 하여 관인사회 일반을 풍자한다. 그러기에 날카로운 웃음의 긴장상태가 계속되는 작품이라는 주장도 있다.
 
≪참고문헌≫ 裵裨將傳(金三不, 國際文化館, 1950), 韓國說話文學硏究(張德順, 서울大學校出版部, 1970), 裵裨將傳의 諷刺構造(李石來, 韓國小說文學의 探究, 一潮閣, 1978), 房子型人物考(權斗煥·徐鍾文, 韓國小說文學의 探究, 一潮閣, 1978), 裵裨將傳硏究(權斗煥, 韓國學報 17, 1979)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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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