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당시의 재정고문이 집회소를 계획하였는데 같은 시기에 천일은행과 어음조합에서도 사옥이 필요하였으므로 1908년 2월에 착공하여 1909년 5월에 2층 양옥의 근대적인 벽돌조 건물을 준공하였다. 건물의 1층에는 천일은행, 어음조합에서 사용하고 위층에는 광통관으로 회의실, 흡연실, 공실(控室)을 두었다. 절충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전면에 화강석으로 이오니아식 주두(株頭)의 붙임기둥을 설치하여 건물의 중심을 강조하였다.
중앙상부에 삼각형 페디먼트를 두고 양쪽날개부분에 바로크 풍의 돔을 얹었다. 1914년 화재 후 지붕과 각 부위를 지금의 모습으로 복구하면서 각 부의 장식, 창문 주위, 지붕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현재 우리은행에서 영업장으로 사용하고 있어 내부에는 옛 모습이 남아 있지 않고 외관만 화재 이후 수리된 모습으로 남아 있다.
▲ 1908년 10월 4일 광통관 상량식이 열린 사실이 게재된 1908.10.6자 황성신문
건물은 아래층의 기둥, 창틀, 난간 등을 화강석으로 하고 벽체는 붉은 벽돌로 선이 굵으면서 의장성이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건물 양쪽 지붕에 얹혀진 돔(Dome)은 바로크풍을 짙게 풍기며 화려한 감을 준다.
광통관은 비록 작은 규모이나 당당하고 서구적 이질감을 강하게 풍기고 있는 건축물로서 여러 차례 개축되어 일부분이 변형되었지만 아치형의 창, 벽면과 지붕의 장식 난간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처리하고 있어 현대건축에서 맛보기 힘든 섬세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