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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동 사명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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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惟政) # 장충단 공원
(2019.11.21. 19:07) 
◈ 장충동 사명대사
장충단 비와 수표교에 이어 장충단 공원의 사명대사(泗溟大師) 동상을 둘러보고 올린다. 사명대사하면 임진왜란 때 승군을 이끌고 왜군과 싸웠고,일본에 가서 우리나라 사람 3,000여 명을 구해 온 승려와 외교관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좀 더 알아보려고 한다.
장충단 비와 수표교에 이어 장충단 공원의 사명대사(泗溟大師) 동상을 둘러보고 올린다. 사명대사하면 임진왜란 때 승군을 이끌고 왜군과 싸웠고,일본에 가서 우리나라 사람 3,000여 명을 구해 온 승려와 외교관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좀 더 알아보려고 한다.
 
▶사명대사에 대하여
 
①조선의 승려 사명대사(泗溟大師, 1544~1610)는 선조(宣祖,1552~1608,재위 1567∼1608) 때의 승려로 속성은 임씨(任氏),이름은 유정(惟政)이며,자(字)는 이환(離幻),시호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이다.
 
②1561년(명종 16) 승과(僧科)에 급제하고,1575년(선조 8)에 봉은사(奉恩寺) 주지로 초빙되었으나,사양하고 휴정 서산대사(西山大師,1520∼1604)의 법을 이어받았다
 
③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사명대사는 승병을 모집하여 서산대사의 휘하로 들어갔다. 이듬해에는 승군도총섭(僧軍都摠攝)이 되어 명(明)나라 군대와 협력하여 평양을 수복하고,도원수 권율(權慄,1537~1599)과 의령에서 왜군을 격파하였다.이러한 전공을 인정받아 당상관(堂上官)의 위계(位階)를 제수받기도 하였다.
 
④1594년(선조 27)에는 왜장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1562~1611]의 진중(陣中)을 3차례 방문하여 화의(和議) 담판을 하면서 적의 동태를 살폈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는 명나라 장수 마귀(麻貴)와 함께 울산과 순천에서 전공을 세웠다.
 
⑤이후 1602년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使)가 되었고, 이어 1604년(선조 37)‘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의 임무를 띠고 국왕의 친서(親書)를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1543~1616]와 강화를 맺었다.
 
그 결과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 3,000여 명이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사명대사가 이들을 인솔하여 귀국하였다.
 
⑥사명대사는 선조가 승하한 뒤 해인사(海印寺)에 머물다가 그곳에서 입적하였으며, 밀양의 표충사(表忠祠),묘향산의 수충사(酬忠祠)에 배향(配享)되었다.
 
⑦이처럼 임진왜란 당시에는 의병(義兵) 및 승병(僧兵)의 역할이 매우 컸다. 조선 시대에 불교는 억불정책(抑佛政策)으로 말미암아 많이 위축되었지만, 승려들은 나라의 위기 앞에서 모두 집결하여 의병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왜군을 물리치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승병은 그 외에도 축성 작업에도 참여하여 방어에도 힘썼다. 이렇듯 많은 승려들이 국가에 위기가 닥치자 힘을 합쳐 나라를 지켜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조선왕조 선조실록의 사명대사 기록
 
☞유정(惟政,泗溟堂)은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이 사람은 비록 중이기는 하나 장수로 쓸 만한 사람이다. 유정은 영남 사람이니 영남으로 내려보내어 원수(元帥)의 절제를 받게 하는 한편,승군(僧軍)을 거느리고 한쪽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다만 의엄과 유정 두 중에게 공명고신(空名告身)을 지급할 수는 없으나 선과(禪科)에 대해서는 첩(貼)을 많이 만들어 주어 권위가 그들로부터 나오게 한다면 그 부하들에게 호령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이 두 중은 국사에 충성을 다하고 있으니 후하게 대우하지 않을 수 없다.-1596년(선조 29)-
 
☞유정이 일본에서 돌아오면서 우리 나라 남녀 3천여 명을 쇄환(刷還, 외국에서 동포를 데리고 돌아오던 일)하다. -1605년(선조38)-
 
\na-;▼장충단 공원의 사명대사 동상 위치
 
 
 
\na-;▼좌대 높이 5.7m, 동상 높이 3.9m의 사명대사 동상
 
 
 
 
 
 
\na-;▼사명대사 동상 건립문 : 1968년
대사의 속성은 임(任)씨, 이름은 유정, 호는 송운 또는 사명 . 1544년 10월 17일 영남 밀양에서 태어나다. 어려서 유학을 다음으로 불도를 수행하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왜적이 무엄하게도 국토를 유린하매 위급존망의 국운을 만회하러 승군을 조직하고 한편 전화 속에서 참혹하게 허덕이는 수많은 중생을 제도하려 분연히 칼을 들고 일어서서 ......
 
 
 
 
\na-;▼장충동 사명대사 동상과 사찰의 사명대사 진영과 비교
 
 
\na-;▼대구 동화사 유정 진영 ,보물 제1505호, 세로 145.2㎝ X 가로 106㎝이며 국내에 전해오는 10여점의 사명당진영 가운데 가장 뛰어난 필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현존하는 영정 중 비교적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na-;▼오대산 월정사의 유정 사명대사 진영이다.
 
 
\na-;▼군위의 압곡사
 
 
\na-;▼양산 통도사
 
 
\na-;▼밀양 표충사
 
 
\na-;▼동국대
 
 
\na-;▼2019년 10월 개최한 일본내 유묵 전시
 
 
 
 
 
 
 
 
 
 
 
 
 
 
\na-;출처: 민족문화대백과,국사편찬위원회,대구 동화사,조선왕조실록,국립중앙박물관
 

 
※ 원문보기
유정(惟政) # 장충단 공원
문화재·역사·전
• 헤이그 특사 "이준" 열사
• 장충동 사명대사
• 장충단으로 간 수표교(水標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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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