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 명절인 정유년 설날입니다. 어린 시절 섣달 그믐날에 "복조리 사려. 복조리" 라고 외치던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추억 속의 복조리가 되었습니다. 한 해의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뜻에서 설날 새벽 벽에 걸어두었지요.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원래 조리는 쌀을 이는 기구인데 그 해의 행복을 쌀알과 같이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믿음에서 생겨난 풍속으로 보입니다.
민족 최대 명절인 정유년 설날입니다. 어린 시절 섣달 그믐날에 "복조리 사려. 복조리" 라고 외치던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추억 속의 복조리가 되었습니다. 한 해의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뜻에서 설날 새벽 벽에 걸어두었지요.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원래 조리는 쌀을 이는 기구인데 그 해의 행복을 쌀알과 같이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믿음에서 생겨난 풍속으로 보입니다.
복조리는 있던 것을 쓰지 않고 복조리 장수에게 산 새 것을 걸었는데 일찍 살수록 길하다고 여겼기에 섣달 그믐 자정이 지나면 복조리 장수들은 “복조리 사려.”를 외치며 골목을 돌아다니고, 여인들은 다투어 복조리를 사는 진풍경을 이루었습니다. 물론 복(福)을 사는 것이라 여겨 복조리 값은 깎지도 물리지도 않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