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지식놀이터 ::【고재완의 지식창고 문화재·역사·전
문화재·역사·전
2018년
  2018년 8월
2018년 8월 30일
2018년 8월 27일
개성 경천사 터 10층 석탑이 왜 국립 중앙 박물관 로비에 있을까?
2018년 8월 24일
2018년 8월 15일
about 문화재·역사·전
경천사 10층 석탑(敬天寺十層石塔) 국립 중앙 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2019.11.21. 19:07) 
◈ 개성 경천사 터 10층 석탑이 왜 국립 중앙 박물관 로비에 있을까?
​광복절을 맞이하여 서울 용산의 국립 중앙박물관(무료)에 다녀와 포스팅합니다. 국립 중앙박물관 전시실에 들어서면 긴 중앙홀 안쪽 끝에 우뚝 서 있는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敬天寺址) 10층 석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경천사 터 10층 석탑이 왜 박물관 건물 안에 있는 걸까? 탑은 원래 사찰의 법당 앞에 있어야 하는데...
​광복절을 맞이하여 서울 용산의 국립 중앙박물관(무료)에 다녀와 포스팅합니다. 국립 중앙박물관 전시실에 들어서면 긴 중앙홀 안쪽 끝에 우뚝 서 있는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敬天寺址) 10층 석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경천사 터 10층 석탑이 왜 박물관 건물 안에 있는 걸까? 탑은 원래 사찰의 법당 앞에 있어야 하는데...
 
\na-;▼경천사 터 10층 대리석 석탑
 
 
 
 
 
국립 중앙박물관 로비에 전시된 경천사 10층 석탑은 원래 개성 경천사(敬天寺)에 있었는데 이 탑이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에 있게 된 수난사를 알아본다.
 
ⓐ 언제, 왜 만들었나? ​​
이 석탑은 지금부터 670년 전 원(元) 나라 항쟁기였던 1348년(고려 충목왕 4)에 고려 수도인 개성(開城) 부소산 경천사에 세웠다고 1층 몸돌(탑신석)의 명문에 적혀 있다. 석탑 시주자는 당시
친원(親元) 세력으로 권세를 누린 강용(원나라 승상 "탈탈"의 장인),
고용봉 등이다.
 
라마불교의 영향을 받았던 이 탑은 원나라 황실과 고려 왕실의 안녕, 번창과 국태민안, 중생의 성불을 기원하며 세웠다.
 
ⓑ 높이와 무게?
13.5m의 높이에 ​약 100톤의 대리석 10층 석탑으로 조각이 화려하고 변화가 많아 고려 후기 대표적인 석탑이다.
 
ⓒ​ 산성비에 약한
대리석 석탑이 또 있는가?
한국의 많은 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 오랜 세월을 견디는데,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과 경천사 터 10층 석탑의 영향을 받은 서울 탑골공원의 원각사지 10층 탑이 대리석석탑으로 알려져 있다.
 
ⓓ 일제 궁내 대신(장관)의 약탈과 밀반출
1907년 대한제국 황태자 결혼식 축하를 위해 방문한 일본
궁내 대신(장관) 다나카
미쓰야키(田中光顯)는 고종 황제가 경천사 탑을 하사했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인 뒤 3월 7~9일 사이 석탑을 해체했다. 주민들이 반발하자 무장경찰 등 200여 명을 동원해 막았다. 그는 해체한 석탑을 10여 대의 달구지에 실어 개성역으로 운반한 뒤 일본 도쿄(東京) 자신의 집으로 빼갔다.일본 대신(大臣)이라는 권력을 이용하여 한국 문화재를 멋대로 약탈해갔다.
 
ⓓ-1 일본 대신 다나카는 경천사 터 석탑을 어떻게 알았을까?
일본 미술 사학자 세키노 타다시(關野貞,1868 ~1935)의 "한국 건축 조사 보고"란 출판물이 빌미가 되었다. 세키노는 1902년 7월 5일 인천에 상륙하여 9월 4일 부산을 떠날 때까지 62일간에 걸쳐 서울, 개성, 부산, 경주, 해인사 등지의 고건축과 유물들을 살펴보았고, 그 후 정리 작업을 거쳐 1904년 7월에 "한국 건축 조사보고"를 정식 출간하였다.
 
\na-;▼ 폐사된 개성
경천사의 석탑이 해체 전(1904년 한국 건축 조사 보고)
 
 
​ⓔ​ 1918년 국제 여론이 악화돼 한국으로 마지못해 반환
석탑 강탈 사실은 외국 언론인들의 적극적인 비판 기사, 기고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베델(1872∼1909, 대한 매일신보 창간,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힘) ​과 헐버트(1883~1949,고종의 자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힘)는 1907년 영자신문 ‘Korea Daily News’와 대한 매일신보 및 일본의 영자신문 ‘Japan Mail’과‘Japan Chronicle’에 일제의
경천사 탑 약탈 사실을 폭로(누가 석탑을 훔쳐 갔는가? Who Removed the Pagoda?) 하고 반환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또한 만국평화회의를 보도하던‘만국평화회 의보’를 비롯해 ‘뉴욕 포스트’‘뉴욕 타임스 등 국제적 신문들이 이를 받아 대서특필하면서 비난 여론에 직면했고, 결국 1918년 이 탑을 한국에 돌려주었다. 탑은 조선 총독부가 있던 경복궁 회랑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na-;▼영국 청년 베델이 지켜낸 경천사지 10층 석탑(동영상)
 
​ⓕ 40년간 방치(放置)
​1918년 반환 이후 별다른 보존 조치 없이 포장된 상태로 경복궁 회랑에 방치되었다. 사람들은 이 탑에 별다른 눈길을 주지 않았고 그렇게 40여 년이 흐른 1959년 탑의 존재를 깨달아 보수에 들어갔다.
 
​ⓖ 보수,복원 및 국보 지정
​1년간의 작업 끝에 1960년 탑을 복원해 경복궁 경내에 전시했다. 당시로 최선을 다해 없어진 부위를 시멘트로 메우는 등 보수, 복원하여 1962년 국보 86호로 지정되었다.
 
경천사 터 10층 석탑은 복원 후 경복궁 야외에 전시되면서 대리석이 취약한 풍화작용과 산성비 등으로 인해 훼손이 계속되었다.그러자 더 이상의 훼손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95년 해체 보수를 결정했다.
\na-;▼경복궁
전시 때 사진
 
 
​ⓗ 탑 해체 보수 및 2005년 국립 중앙박물관 실내로 이전 및 전시
1995년 해체 보수작업은 먼저 탑의 142개 부재를 모두 해체한 뒤 대전의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옮겨 처리했다. 산성비와 풍화 및 새똥으로 인해 약화된 대리석을 단단하게 경화(硬化) 처리하고, 균열 부위를 천연 접착제로 붙였다. 1960년 복원 때 채워 넣었던 시멘트를 제거하고 레이저를 이용해 표면의 오염물도 닦아냈다. 해체된 탑의 부재 142개 가운데 심하게 손상된 64개를 새로운 대리석으로 교체했다.
 
이 탑의 원래 대리석과 암질(巖質)이 유사한 강원도 정선 지역의 대리석을 사용했다. 보수 보존 처리를 하는 사이, 문화재 전문가들은 경천사 터 10층 석탑을 국립 중앙박물관 실내에 전시하기로 결정했는데 야외에 세울 경우, 훼손이 심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탑골공원의 원각사 10층 대리석 석탑도 유리창속에 보존 전시하고 있다.
 
ⓗ-1 복원의 아쉬운 점
1902년 한국 건축 조사보고 사진과 경복궁 전시와 현재(국립 중앙 박물관) 석탑의 꼭대기(상륜부) 사진을 비교하면 달라져있다. 왜 달리 복원했을까 의문이 드는데, 중앙박물관내 석탑 안내문에는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어 지붕만을 복원했다"고 표기되어 있다.
 
 
 
 
 
ⓘ​ 원래 위치로 가는 날이 언제 올까?
​문화재는 원칙적으로 원래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문화재의 의미가 제대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천사 터 10층 석탑도 마찬가지. 하지만 지금은 분단되어 고향 개성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문헌으로 본 개성 경천사
 
​☞ 경천사의 한자 표기는 慶天寺로도 사용하였고, 탑의 층수는 과거(기단 포함 13층 탑)와 달리 현재는10층 탑이라 함.
 
▣국립 중앙 박물관 정보
 
☞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 02-2077-9000
☞ 관람시간
10시~18시:월,화,목,금요일
10시~21시:수,토요일
10시~19시:일,공휴일
☞ 휴관일: 신정,설날,추석,국립중앙박물관 지정일
☞ 상설전시 문닫는 날 : 4,11월 첫째 월요일
☞ 관람료: 무료(상설전시), 유료(기획전시)
☞ 보안 검색대에서 소지품 검사를 하며 반입제한물품 미리 체크하시고 물품보관소 활용
☞ 주차료: 15인승 이하는 2시간에 2000원 (초과 30분당 500원)
☞ 찾아가기
이촌역(4호선, 경의중앙선) 2번 출구, 502번과 400번 버스
 
\na-;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한국학 중앙연구원,국사 편찬 위원회, 문화재청, 이광표,한정구,네이버,유튜브
 
원각사 10층 석탑
 
간다라 최고의 불상
 
양화진 외국인 묘지
 
 

 
※ 원문보기
경천사 10층 석탑(敬天寺十層石塔) 국립 중앙 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문화재·역사·전
• 경천사 터 10층 석탑의 서유기(西遊記) 조각
• 개성 경천사 터 10층 석탑이 왜 국립 중앙 박물관 로비에 있을까?
• 국보1호 숭례문과 흥인지문(보물 1호) 차이
추천 : 0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로그인 후 구독 가능
구독자수 : 0
▣ 정보 :
미정의 (보통)
▣ 참조 지식지도
▣ 다큐먼트
▣ 참조 정보 (쪽별)
◈ 소유
◈ 참조
 
 
▣ 참조정보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 참조정보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