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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피의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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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四一九革命) 김주열(金朱烈)
(2019.11.21. 19:07) 
◈ 분노와 피의 화요일!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미국 시인 T.S. 엘리엇은 말했다. 한국의 4월도 제주 4.3 사건, 세월호 침몰과 강원 산불 등 사고가 많고 잔인하다. 부정선거, 독재와 부정부패에 항의해 목숨을 바친 4.19 혁명도 4월이다. 올 59돌 4.19를 맞이하지만 아직 한국의 부정부패 순위가 100위(경제적 순위 27위)라 참으로 부끄럽다. 또한 "불의, 부정, 부패를 자행하고 민심을 거스르는 정권은 어떻게 되는지" 잊어서는 안된다는 역사의 교훈도 배우는 4월이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미국 시인 T.S. 엘리엇은 말했다. 한국의 4월도 제주 4.3 사건, 세월호 침몰과 강원 산불 등 사고가 많고 잔인하다. 부정선거, 독재와 부정부패에 항의해 목숨을 바친 4.19 혁명도 4월이다. 올 59돌 4.19를 맞이하지만 아직 한국의 부정부패 순위가 100위(경제적 순위 27위)라 참으로 부끄럽다. 또한 "불의, 부정, 부패를 자행하고 민심을 거스르는 정권은 어떻게 되는지" 잊어서는 안된다는 역사의 교훈도 배우는 4월이다.
▶4.19 혁명 동영상
▶김주열의 사망 사진
▶4.19 혁명 개요
이승만 정권(자유당)은 발췌개헌(1952), 사사오입 개헌(1954), 3.15 부정선거를 통해 장기 집권을 하고자 함
▣발생 배경
ⓐ제 4대 대통령과 제5대 부통령의 부정선거(사전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대리투표, 공개투표, 야당 참관인 축출 등)로 장기 집권에 반대
ⓑ자유당 독재와 부정부패
 
▣ 대구 2.28 학생 의거
1960.2.28 일요일 대구에서 민주당 장면 부통령 후보 선거 유세가 열리는 날, 학생들이 유세장에 참석할까 봐 일요일임에도 학교 등교 지시를 함에 따라 학생들이 항의, 결의문 발표한 후 시위
▣ 3.15 부정선거 및 마산 시위
ⓐ1960.3.15일 실시
ⓑ자유당 후보(이승만 :1875~1965, 이기붕 부통령:1896~1960) 및 민주당 후보 (장면 부통령)
ⓒ선거 벽보(조병옥 대통령 후보는 서거)
 
 
▣선거 결과
치밀한 부정선거로 자유당 후보의 득표율이 95%에 이르자 이승만 85%, 이기붕 73%로 조작 당선 발표.
▣ 4.11일 김주열(17세 사망) 학생 시신 발견
ⓐ전북 남원 출생(1943~1960), 마산상고 입학
ⓑ3.15 마산 시위(자유당은 시위를 공산당 조직에 의한 폭동이라 함) 중 행방불명된 김주열 시신이 1960.4.11일 눈에 최루탄 맞은 상태로 마산 중앙 부두 앞에서 발견되어 불에 기름을 넣는 것처럼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
ⓒ4.12일 전국 학생 등교 중지령
 
\na-;▼남원 김주열 묘(마산 3.15 묘지 및 서울 4.19 국립묘지는 가묘)
 
▣ 4.18 고대생 피습 및 4.19 시위
3000여 명 고대생의 부정 선거 규탄 시위(4.18)에 폭력배 동원해 습격 및 4.19 시위에 계엄령 선포해 시위 무차별 진압으로 많은 사상자 발생
 
 
"피의 화요일"이라 불리는 1960년 4월 19일, 학생들은 이른 아침부터 선언문을 낭독하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국회의사당에 모인 학생 시위대열은 경무대(현 청와대) 방향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부정선거 규탄과 학원의 자유를 요구했던 시위가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혁명의 대열로 바뀌고 있었다. 젊은 학생들은 전우와 애국가를 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시민들도 학생들의 대열에 합류했고, 서울시내는 온통 민주를 외치는 시위대열로 뒤덮였다.
이 무렵 시위대의 숫자는 이미 10만 명을 넘고 있었다. 경무대로 향하는 학생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과의 공방은 치열했다. 최루탄과 공포 사격으로 저지하던 경찰의 1차 저지선은 민주 신념에 불타는 학생과 시민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시위대는 경찰의 최후 저지선인 경무대를 향해 달려갔다. 소방차를 앞세운 시위대와 경찰의 간격이 10여 미터로 좁혀졌을 때, 경찰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경무대 사격을 시작으로 서울 시내 곳곳에서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사격이 가해져 꽃다운 젊은 학생과 시민들이 수없이 희생되었다.
분노한 시민들은 반공청년단 본부와 왜곡 보도를 일삼았던 신문사를 불태웠으며,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소방차를 뺏고 경찰관서를 습격하는 등 항의 시위를 전개했다. 혁명의 불길이 걷잡을 수없이 번져가자, 자유당 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며 사건 무마에 온 힘을 기울였지만, 민심은 보다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였다.
 
 
 
 
\na-;▼최초 발포 현장 표지
 
 
\na-;▼초 중학생 19명 사망
 
\na-;▼유서(한성 여중2. 진영숙)
 
▣대학교수단 시국 선언 및 시위(4.25)
 
▣ "승리의 화요일"에 이승만 대통령 하야 발표(4.26)
▣ 이기붕 일가 사망(4.28)
▣ 이승만 대통령 하와이 망명(5.29)
▣제2공화국 탄생(내각책임제, 1960.8.13~1961.5.16)
윤보선(1897~1990) 대통령과 장면(1899~1966) 국무총리
 
▣ 책임자 처벌
최인규 내무장관(사형), 유충렬 서울시 경찰국장(사형), 정치깡패(이정재, 임화수 사형)
 
▣4.19 혁명 전개
 
\na-;▼4월 혁명 1주년 우표 발행
 
\na-;▼4.19 혁명 기념관(이기붕 의장이 살던 서대문 집터에 건축)
 
\na-;▼서울 국립 4.19 민주묘지
 
★ 4.19 국립묘지
\na-;출처: 국가기록원, 부산일보, 오마이뉴스, 4.19혁명 기념관, 국립 4.10혁명민주묘지, 구글, 네이버, 유튜브, EBS, 우정본부, 중앙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국가보훈처, 위키백과
 

 
※ 원문보기
4·19 혁명(四一九革命) 김주열(金朱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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