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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역사·전     고재완의 지식창고 2019.11.21. 19:07 (2019.11.21. 19:07)

【여행】경술국치 결정 장소

1910년 8월 29일을 경술국치일이라 한다. 대한 제국(순종 황제)이 없어지고 일본의 식민지배가 시작되는 날이다. 대한 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御前會議)는 창덕궁 흥복헌(대조전에 붙은 건물)에서 1910년 8월 22일 13시에 열려 한일 강제 병합 조약을 결정하고, 그날 16시 이완용과 데라우치 통감은 남산의 통감관저에서 한일 강제병합 조약을 체결했다. 그달 29일 순종황제는 인정전에서 대한제국을 일본에 양여(讓與)한다는 조칙을 내렸고 이로써 통감부에서 총독부(조선 총독부 관보 1호에 게재)로 넘어갔다. 1917년 화재로 재건한 흥복헌을 보고 싶으나 들어갈 수 없다.
1910년 8월 29일을 경술국치일이라 한다. 대한 제국(순종 황제)이 없어지고 일본의 식민지배가 시작되는 날이다. 대한 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御前會議)는 창덕궁 흥복헌(대조전에 붙은 건물)에서 1910년 8월 22일 13시에 열려 한일 강제 병합 조약을 결정하고, 그날 16시 이완용과 데라우치 통감은 남산의 통감관저에서 한일 강제병합 조약을 체결했다. 그달 29일 순종황제는 인정전에서 대한제국을 일본에 양여(讓與)한다는 조칙을 내렸고 이로써 통감부에서 총독부(조선 총독부 관보 1호에 게재)로 넘어갔다. 1917년 화재로 재건한 흥복헌을 보고 싶으나 들어갈 수 없다.
그날 8월 22일 창덕궁 안팍에 일본 군대를 동원해 압박하면서 어전회의를 왕비의 침전 옆에서 하다니 ....
한일 병합 조약안(韓日倂合條約案)에 대하여 국무 대신(國務大臣) 이완용 외에 황족(皇族) 대표자 이재면 및 문무 원로의 대표자들이 회동(會同) 하여 어전회의를 열었다. -1910년 8월 22일 순종실록-
▼용마루가 없는 대조전(大造殿:보물 816호)
 
대조전은 창덕궁의 정식 침전(寢殿)으로 건물 용마루가 없는(임금이 용이므로) 왕비의 생활공간이다. 원래는 대조전 주변을 수많은 부속건물들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흥복헌(興福軒)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극의 현장이다.
1917년 불타 없어진 터에 1920년에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지어 현재의 대조전이 되었다.
또한 순종황제는 1926년 4월 이곳 비운의 장소인 흥복헌에서 세상을 마감한다.
▼보이는 사진의 오른쪽 건물이 흥복헌
 
▼동궐도에 보이는 대조전과 흥복헌
 
▼1917년 대조전 화재 이전 사진
 
▼흥복헌 배치도
 
▼전면
 
▼현판
 
▼후면
 
▼대조전 후원
 
▼조선 통감 관저(서울시 중구 퇴계로 26가길 6)와 경술국치 109주년 기억식(2019.8.29) 행사 안내
 
https://blog.naver.com/jawkoh/221598140778
https://jawkoh.blog.me/220450919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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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정문인 돈화문(敦化門:보물 383호, 1609년)
돈화문은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가 있을 때 출입문으로 사용했고, 신하들은 서쪽의 금호문으로 드나들었다. 원래 돈화문 2층 누각에는 종과 북을 매달아 통행금지 시간에는 종을 울리고 해제 시간에는 북을 쳤다고 한다. 돈화문은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1609년(광해군 2)에 재건되었으며, 보물 제383호로 지정되어 있다.
 
▼회화나무(학자 나무)
 
▼금천교(錦川橋 : 보물 제1762호)
금천교는 창덕궁이 창건되고 6년 뒤인 1411년( 태종 11) 3월 진선문 밖 어구에 설치되었는데, 그 후 숱한 화재와 전란에도 불구하고 창건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현존하는 궁궐 안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규모는 의장(儀杖)을 갖춘 국왕의 행차 때 노부(鹵簿)의 폭에 맞도록 설정되었으며, 상면은 길이 12.9m, 너비 12.5m로 정사각형에 가까울 정도로 폭이 넓다.
 
▼금천교와 진선문
 
▼인정문(仁政門:보물813호)
 
▼인정전(仁政殿:국보 225호)
창덕궁의 중심 건물로 효종·현종·숙종·영조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희정당(熙政堂:보물 815호)
원래 이름은 숭문당이었으나 1496년(연산 2)에 희정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원래의 편전인 선정전이 비좁고 종종 혼전으로 쓰이면서, 침전이었던 희정당이 편전의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
 
지금의 희정당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20년에 복구하면서 경복궁에 있던 강녕전을 옮겨 지은 것이다.
 
https://jawkoh.blog.me/221368257226
https://jawkoh.blog.me/220384728363
출처 : 창덕궁 홈페이지, 기억의 터, 구글, 네이버,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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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