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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역사·전
2021년
  2021년 9월
2021년 9월 17일
칠궁(七宫)은 궁(宮)이 아니고 사당(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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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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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祠堂) 종로구(鍾路區) # 칠궁
【역사】
(2021.09.24. 11:16) 
◈ 칠궁(七宫)은 궁(宮)이 아니고 사당(廟)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은 가봤는데 칠궁은 궁금했지만 관람하기 어려워 못갔습니다. 왜냐면 청와대와 붙어 있으므로 관람인원과 관람 횟수 등 제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올해 9월 관람객은 거의 없을 정도로 방문에 무리가 없었습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은 가봤는데 칠궁은 궁금했지만 관람하기 어려워 못갔습니다. 왜냐면 청와대와 붙어 있으므로 관람인원과 관람 횟수 등 제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올해 9월 관람객은 거의 없을 정도로 방문에 무리가 없었습니다.
청와대와 붙어 있는 칠궁은 조선시대 왕을 낳은 후궁 7인의 신주(神主)를 모신 왕실 사당(廟)입니다. 왕을 낳았지만 왕비가 아니므로 종묘(宗廟)에 모실 수 없지요. 따라서 왕의 생모의 사당을 아들이나 후손 왕이 주도하여 건립하고 왕이 향사(享祀)하는 묘(廟)를 높여 궁(宫)이라 했습니다.
원래 이곳은 영조가 생모 숙빈 최씨를 기리기 위하여 1725년 (영조 1)에 지은 사당을 숙빈묘(淑嬪廟)라 하였다가 1744년 (영조 20)에 " 상서로움을 기른다"는 의미로 육상묘(毓祥廟)로, 1753년에 궁(宫)으로 승격해 육상궁이 되었습니다. 83세에 생을 마감한 영조는 52년의 재위 기간 중 232회 육상궁을 방문하였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돌아가신 생모 숙빈 최씨의 사당을 왕으로 오른 후 세우고 묘에서 궁으로 승격시키며 많이 방문한 목적은 ①궁녀 출신의 아들이 왕이라는 콤플렉스가 있었고, ② 돌아가신 생모에 대한 효를 실천하는 군주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③ 왕권 계승의 정당화와 왕권 유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1908년 여러 곳에 있던 후궁 사당들을 관리 목적으로 이곳으로 모아 6궁이었다가, 1929년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귀비 엄씨(고종의 후궁) 사당인 덕안궁을 이곳으로 옮겨 7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년 10월 넷째 주 월요일에 "칠궁제"를 지냅니다.
▼칠궁 관람 안내소(무궁화 동산 내)에서 칠궁으로 가려면 횡단보도를 건너야 합니다.
 
\na-;▼배치도
 
\na-;▼외삼문(外三門)으로 왼쪽 아래에 하마비(下馬碑)가 보인다.
 
\na-;▼재실(齋室) 정문
 
▼재실(齋室)
재실은 제례를 준비하는 곳으로 앞 건물 서쪽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의 송죽재(松竹齋,소나무와 대나무), 동쪽은 영조가 쓴 푸른색의 풍월헌(風月軒,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현판이, 뒤편 건물은 삼락당(三樂堂,3가지 즐거움)이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재실은 정면 8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우측에 청와대가 보입니다.
 
▼수피가 매끄럽고 100일 동안 꽃이 핀다는 목 백일홍(배롱나무) 2그루에 하얀 꽃이 핌(꽃말이 "헤어진 벗에게 보내는 마음")
 
▼왕궁에서 쓰던 용두, 봉황 및 용 문양(수막새와 암막새 기와)의 중문
 
▼삼문(동쪽)
 
◈ 한 건물에 정빈 이씨(영조 후궁)와 숙빈 최씨(영조 생모)의 신주가 같이 모셔져 있습니다. 육상궁(연호궁)으로 연결된 전돌 깔린 길은 3개(신도 神道, 어도 御道)지만 덕안궁과 대빈궁은 1개이며 저경궁과 선희궁(경우궁)은 없습니다.
 
▼연호궁(延祜宫)
☞추존 왕인 진종(효장 세자)의 어머니이자 영조의 후궁인 정빈 이씨(?~1721) 사당
☞무덤(墓)은 파주 수길원.​
☞1788년(정조 2) 순화방(현재 청와대 자리)에 사당을 세우고 연호궁(복을 이끈다)이라 하고 1870년(고종 7) 육상궁으로 옮김
☞현재와 같이 한 건물에 숙빈 최씨와 같이 있게 된 내력은 분명하지 않음
 
▼육상궁(毓祥宫)
☞영조의 어머니이자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1670~1718)의 사당
☞무덤은 파주 소령원이며 원찰은 파주 보광사
☞1725년(영조 1) 폐허 된 경북궁 북쪽에 숙빈 사당을 짓고 숙빈묘(淑嬪廟), 1744년 (영조 20)에 " 상서로움을 기른다"는 의미로 육상묘(毓祥廟)라 영조가 썼고, 1753년 궁으로 승격해 육상궁이 되었다가 1883년(고종 20)에 소실된 육상궁을 중건
☞육상묘 현판이 연호궁보다 뒤에 걸리는 것은 윗사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함
 
▼사당 내부 -문화재청 사진-
 
☞'신주 단지 모시듯'
신주(神主)란 죽은 사람을 상징하는 신위(神位)의 일종이다. 흔히 볼 수 있고 여러 곳에 있는 위패와는 달리 오직 하나뿐이며 부모를 잊지 않고 섬기는 마음으로 밤나무로 만든답니다.
 
▼냉천정(冷泉亭)과 냉천(샘)
 
▼냉천정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건물이며 뒤쪽 우측에 초가 정자가 있습니다.
 
▼냉천정 현판은 영조의 글씨랍니다.
 
▼ 새로 보수한 냉천정은 단청을 안 했기에 미보수 부분과 목재 색이 다릅니다.
 
☞냉천정은 영조(재위 1724~1776 )가 숙빈 최씨의 제삿날에 몸을 씻고 제사를 준비하던 곳
☞냉천(차가운 샘)은 냉천정 건물 뒤편 북동쪽에 있으며 샘은 뚜껑이 덮어져 있고 언제 샘물이 흘렀는지 말라 있음
☞냉천 북쪽 장대석에 영조가 지은 글을 새겼다고 하나 보지 못함
 
▼자연(紫淵, 자줏빛이 감도는 연못) -한국학 중앙 연구원 사진-
냉천정 아래쪽에 사각형(7.5mx6.3m, 수심 0.9m)의 연못으로 냉천 샘물이 수로를 따라 흘러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방문한 날에 연못의 물은 빠져있었고 테두리에 紫淵(자연)이라는 글씨(전서체)가 새겨져 있네요.
 
▼삼문(서쪽)
 
▼덕안궁(德安宫)
 
 
☞영친왕의 생모이자 고종의 후궁인 순헌귀비 엄씨(1854~1911, 숙명여학교와 진명여학교를 세움)의 사당
☞무덤은 청량리 영휘원
☞1912년 덕수궁 내 경선궁을 덕안궁으로 개칭하고 1913년 태평로(현재 코리아나 호텔 위치)에 사당을 세웠다가 1929년 육상궁으로 옮김
※ 덕안궁이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과 일직선이 아닌 앞에 배치한 것이 궁금해 확인하니 일직선상에 있다 앞쪽으로 변경 배치됨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당으로 가는 전돌(塼石) 깔린 길은 축소되고 없어져 덕안궁과 대빈궁으로 연결됩니다.
 
▼저경궁(儲慶宫)
 
 
☞추존 왕인 원종(元宗 1580~1619년,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의 생모이자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1555~1613)의 사당
☞무덤은 남양주 순강원이며 봉영사가 원찰
☞1755년(영조 31) 송현방(현재 한국은행 자리)의 인빈묘를 저경궁(경사를 모아 쌓는다)이라 하고 1870년 (고종 7) 경우궁안 별묘에 모셨다가 1908년 (융희 2) 육상궁으로 옮김
▼대빈궁(大嬪宫)
 
 
☞경종 (1688~1724)의 생모이자 숙종(肅宗, 1661~1720년)의 왕비였다 쫓겨나 빈으로 강등된 희빈 장씨(1659~1701) 사당
☞무덤은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에 있음
☞1701년(숙종 27) 희빈이 죽자 정동에 있는 사저에 신주를 모셨다가 1722년(경종 2) 경행방 교동(현 종로 세무서 위치)에 대빈궁(큰 부인이란 뜻) 조성했고 1870년(고종 7)육상궁 안으로, 1887년(고종 24) 대빈궁을 원래 위치로 갔다 1908년(융희 2) 육상궁 안으로 다시 모심
☞왕비까지 올라갔다 죽은 희빈 장씨의 대빈궁 건물의 특징은 사각(四角) 기둥이 아닌 원형(圓形) 기둥이고 다른 건물의 계단보다 1계단 많음
◈ 한 건물에 영빈 이씨와 유비 박씨의 신주가 같이 모셔져 있음
 
▶경우궁(景祐宫)
 
☞순조의 어머니이자 정조(1752~1800)의 후궁인 유비 박씨(유빈 박씨,1770~1823)의 사당
☞무덤은 양주 배봉산(현재 서울 시립대 위치)에서 남양주 휘경원으로 옮김
☞1823년 아들인 순조가 왕위에 있을 때 사망해 1824년(순조 24) 양덕방 (현재 계동 현대빌딩)에 사당을 세워 경우궁(크나큰 복이란 뜻)이라 했다. 1886년(고종 23) 인왕동(현재 옥인동)으로 옮겨지었다가(이궁 사유: 1884년 갑신정변 때 김옥균 등이 고종과 명성왕후를 경우궁에 모신 일이 있었는데 이때 일본 군대가 호위 명목으로 경우궁으로 진입하는 일이 발생) 1908년 (융희 2) 육상궁 안으로 옮김
▼선희궁(宣禧宫) 현판
 
▼서울 농학교(청운 효자동)에 남아 있는 선희궁(2015. 9월 사진)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장조)의 생모 영빈 이씨(1696~1764)의 사당
☞무덤은 고양 수경원
☞1765년(영조 41) 순화방(현재 서울 농학교)에 사당을 세우고 의열묘라 했고 1788년(정조 12) 선희궁(복을 베풀다는 뜻)으로 개칭했으며 1870년(고종 7) 육상궁 안으로 옮겼다가 1897년(고종 34) 선희궁을 원래 위치로 갔다 다시 1908년(융희 2) 육상궁으로 옮김
▼커다란 느티나무가 수복방과 삼문 사이에 있는 이 나무는 과거를 알고 있을 것이다.
 
▶칠궁 비교표
 
☞ "빈(嬪)"은 내명부(內命婦)의 정 1품 품계인 궁녀로서 왕비 바로 다음 서열
☞ 덕종(성종 부친. 경릉), 원종(인조 부친. 장릉), 진종(효장세자. 영릉)), 장조(사도세자. 융릉), 문조(효명세자. 수릉)는 추존왕(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이에게 왕의 칭호를 올리는 것)이고 영친왕은 일제 강점기라 왕위에 오르지 못함
☞ 왕의 아버지였으나 왕으로 추존되지 못한 덕흥대원군(선조 부친), 전계 대원군(철종 부친) , 흥선대원군(고종 부친)이 있으며 오직 흥선 대원군만 아들 고종이 왕이 되었을 때 살아계셨음.
▶칠궁 옛터
 
※의빈궁(宜嬪宮)
정조의 후궁이며 문효세자의 생모인 의빈성씨의 사당으로 1873년(고종 10)에 ①저경궁, ②육상궁, ③경우궁, ④대빈궁, ⑤연호궁, ⑥선희궁과 함께 ‘궁(宮)’에 속했다. 1898년(광무 2)에는 ‘칠궁(七宮)’ 중 한 궁이 되었다가 1908년(융희 2) 7월 23일에 제사 제도가 개정되어 의빈궁(宜嬪宮)은 칠궁 제향에서 제외됨
▣ 관람 후기
☞칠궁이 처음 개방되었을 땐 많은 분들이 찾아서 방문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코로나19로 방문객이 거의 없고 자유관람을 실시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미리 알고 가면 이해가 빠릅니다.
☞한자로 쓴 현판 이름은 잘 쓰지 않는 글자라 읽고 뜻을 알기 어렵고, 현판의 궁의 한자가 宮이 아닌 宫으로 쓰여 있습니다.
☞ 기존 경우궁의 수빈(綏嬪) 박씨 또는 수비(綏妃) 박씨를 안내판에 왜 유비(綏妃) 박씨로 표기했습니다. 한자 綏자를 수나 유로 읽는다네요.
 
박씨 사망 당시에 한글로 쓰여진 진향문(進香文)에 "수빈"이 아니라 "유빈"으로 기록하고 있어 "수빈"보다 "유빈"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겠고, 후에 정조임금을 황제로 높였기에 "유빈"에서 "유비" 로 변경한 것으로 보입니다.
 
 
☞무덤 묘墓 와 사당 묘廟는 다른 것으로 한글 사용 시 주의가 필요하며,
조선 왕족의 무덤은 왕실의 위계에 따라 능(陵), 원(園), 묘(墓)로 분류한다.
ⓐ능(陵)은 왕, 추존왕(追尊王, 실제로 왕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죽은 뒤에 묘호가 내려진 왕)과 추존왕비의 무덤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왕의 사친(私親 : 종실로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임금의 생가 어버이)의 무덤
ⓒ묘(墓)는 나머지 왕족, 즉 왕의 정궁의 아들, 딸인 대군과 공주, 왕의 서자와 서녀인 군과 옹주, 왕의 첩인 후궁, 귀인 등의 무덤
☞5개 사당 건물들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고 냉천정과 재실은 팔작지붕 건물이다. 부속시설로 이안청, 수복방, 행각 등이 있다.
☞현재의 칠궁은 선조 이후에 사당 이름을 변경하거나 지어진 것으로, 왕의 출신이 귀하지 않거나 왕위에 오를 때 걸림돌(?)이 있던 왕들은 왕권 유지나 강화 목적으로 모친의 사당을 짓고 방문하였다. 선조의 부친인 덕흥대원군도 중종의 후궁인 창빈 안씨 소생이므로 선조 이후 왕들은 후궁 출신의 자손들이라 말한다.
☞실제 왕이었던 연산군과 광해군의 모친의 경우 연산군 모친(폐비 윤씨, 회릉)과 광해군의 모친(선조의 후궁 공빈 김씨, 남양주 성묘)은 무덤만 있고 사당은 없음을 보면서 자식이 잘 돼야 하는구나 생각이 든다.
☞1929년 옮긴 덕안궁의 위치가 1968년(청와대 무장공비 침투 사건 발생 후) 도시 계획으로 좌우 일직선에서 앞뒤 위치로 변경되었고, 전돌 깔린 길도 축소되거나 없어졌는데 덕안궁 안내판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네요.
☞냉천정 아래 연못(자연)에 물이 가득 찼으면 좋았을 덴데 참 아쉽습니다.
☞ 매년 10월 넷째 주 월요일에 열리던 "칠궁제"가 코로나19로 제대로 열릴지 모르겠습니다.
칠궁제 https://www.youtube.com/watch?v=reABm6Xy1RI
▣관람 정보(2021년 9월)
 
\na-;▼무궁화 동산 위치
\na-;출처: 칠궁, 경복궁, 네이버, 구글, 장서각, 다음, 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 중앙 연구원, 문화재청, 유튜브, 서울시
▣주변
\na-;▼무궁화 동산(10.26의 궁정동 안전가옥 철거 후 조성)
 
\na-;▼무궁화 동산 내 보호수인 커다란 회화나무(창덕궁 돈화문 안 좌측에도 있으며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로 알려져서 궁궐, 서원 향교에 많이 심어져있음)
 
\na-;▼무궁화 동산 내 병자호란 때 끝까지 싸우자는 척화파(斥和派) 김상헌(1570~1652)의 집터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na-;▼청와대 앞 분수
 
★ 청와대 사랑채 https://cwdsarangchae.kr/#firstPage
★경복궁 (신무문으로 입장 OK) http://www.royalpalace.go.kr/
★ 국립 고궁박물관 https://www.gogung.go.kr/main.do
★ 박노수 미술관, 윤동주 하숙집, 수성동 계곡(겸재 정선 그림과 비교) 등 둘러봐도 좋음
★주변에 통인시장, 토속촌 삼계탕, 카페, 체부동 음식거리에 가서 먹거리 선택 OK
 

 
※ 원문보기
사당(祠堂) 종로구(鍾路區) # 칠궁
【역사】 문화재·역사·전
• 향원정 해체·보수하고 OPEN!
• 칠궁(七宫)은 궁(宮)이 아니고 사당(廟)
• 백택(白澤)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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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