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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다큐먼트소개 자료실
지식지도
작업내역
2020년 5월
2020년 5월 26일
홍산문화의 우하량 유적지와 적봉시의 홍산(紅山)으로 가다
2020년 5월 17일
대련의 대흑산(大黑山)과 북진의 의무려산(醫巫閭山)을 오르다
2020년 5월 11일
미창구(米倉溝) 장군묘와 호산장성 대신에 봉황산에 들리다
2020년 5월 4일
환인지역의 흘승골성(訖升骨城)을 답사하다
2020년 4월
2020년 4월 27일
장군총과 환도산성 및 국내성을 답사하다
2020년 4월 18일
고구려 장천1호분과 국동대혈을 답사하다
2020년 4월 12일
제3차 고구려 역사유적 및 산성을 답사하다.
2020년 4월 5일
청조의 조종산인 장백산이 있는 나통산성(羅通山城)을 향하다
2020년 3월
2020년 3월 29일
고구려의 흔적 고구려산성을 답사하다
2020년 3월 22일
두만강가에서 꽃제비를 만나고 모아산(帽兒山)에 오르다
2020년 3월 15일
백두산 현명봉과 토문강, 두만강 원류를 답사하다
2020년 3월 8일
민족의 성산(聖山) 백두산을 다시 오르다
2020년 3월 1일
간도개척과 항일투쟁의 중심지 용정을 가다
2020년 2월
2020년 2월 23일
봉오동 전투현장과 두만강가 ‘사이섬’으로 가다
2020년 2월 16일
KBS 역사스페셜 팀과 토문강·두만강 원류 탐사를 떠나다
2020년 2월 9일
발해만 지역의 고구려산성을 처음으로 답사하다
2020년 1월
2020년 1월 30일
태자하(太子河)에 접한 난공불락의 백암성(白巖城)을 답사하다
2020년 1월 19일
심양 고궁(古宮)과 요령성 박물관을 관람하다
2020년 1월 5일
연변대의 학술세미나 거부당하고 국동대혈을 답사하다
2019년 12월
2019년 12월 23일
모용황, 정말 미천왕릉을 도굴해 시신을 가져 갔을까
2019년 12월 17일
광개토호태왕릉비와 장군총을 다시 찾다
2019년 12월 9일
고구려 벽화의 상징적 사상과 미적 아름다움에 빠지다
2019년 12월 2일
세계의 문화유산인 아름다운 고구려 벽화를 보다
2019년 11월
2019년 11월 25일
집안에서 ‘고구려문화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다
2019년 11월 12일
중국의 고도 낙양·서안서 5천년 전 성황당 원형 발견
2019년 11월 4일
세칭 중원문화의 중심지 정주(鄭州)를 향하다
2019년 10월
2019년 10월 21일
동양평화 파괴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하얼빈 역에서
2019년 10월 14일
안중근의 기개 어린 송화강가의 하얼빈시를 가다
2019년 10월 8일
길림시의 고구려시기 용담산성에 오르다
2019년 10월 7일
제2차 조선학국제학술토론회에 참가하다
2019년 9월
2019년 9월 30일
다시 구름이 가득 낀 백두산을 오르다
2019년 9월 22일
웅장한 장군총과 꿈에 그리던 광개토대왕비를 만나다
2019년 9월 16일
수많은 고구려의 적석총을 만나고 환도산성에 오르다
2019년 9월 8일
집안의 고구려 벽화를 실제로 보기로 결심하다
2019년 9월 1일
북경의 만리장성에 오르고 유리창 거리를 거닐다
2019년 8월
2019년 8월 25일
연변 동포들의 문학과 예술의 수준은 어떠할까
2019년 8월 18일
남·북한·미국 및 연변대 동포학자들과 어울린 학술회의
2019년 8월 12일
연변대학의 조선학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다
2019년 8월 4일
꿈에 젖은 이별의 강, 두만강을 마주하다
2019년 7월
2019년 7월 28일
동간도지역 개척지의 첫 마을 용정을 가다
2019년 7월 21일
백두산에서 천제(天祭)를 지내며…조국의 번영과 통일을 기원
2019년 7월 13일
백두산의 천지와 주변 봉우리 명칭은 누가 지었나
2019년 7월 6일
우리 민족의 성산…백두산의 천지를 오르다
2019년 6월
2019년 6월 29일
간도 첫 답사…‘요하문명’의 실체는 ‘홍산 문화 유적’
2019년 6월 22일
간도 대륙 역사를 시작하며…아직 살아있는 간도협약
about 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 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이일걸의 지식창고 2020.05.18. 10:02 (2020.05.18. 10:02)

【역사】대련의 대흑산(大黑山)과 북진의 의무려산(醫巫閭山)을 오르다

[스카이데일리 연재] 중국 동북공정의 현장…현재 아닌 후세 시각을 위한 전략
가끔 만나는 친구 중에 중국에서 기업체 CEO를 17년간 헸던 친구가 퇴직하더니 넓은 중국을 체계적으로 답사 여행을 하자고 제의했다.
 
자신도 중국에 오래 있었지만 회사 업무 때문에 여행다운 여행을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 나도 나이 더 먹기 전에 좋다고 하였다. 중국은 필자가 들락거린 횟수가 많다면서 여행계획을 짜라고 맡긴다. 그래서 홍산 유적을 보러 가자고 하니 모두들 좋다고 했다.
 
홍산 지역 관련 여행 정보를 수집하여 보니, 개인적 여행경비가 너무 많이 들었다. 안면이 있는 영토학회 안동립 이사에게 조언을 구했다. 안동립 이사는 ‘고조선 역사유적지 답사단’ 회장이기도 했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8월 1일부터 홍사유적 답사단으로 가면 되겠다 조언했다. 단체 답사 여행이라 경비도 저렴하여 쾌히 승낙하고 친구들에게 연락하니 6명이 가기로 됐다. 안 회장이 우리 일행을 간도 팀이라 명명하였다. 이번 답사단의 단장은 최성미 임술 문화원장이 맡았으며, 총무는 김난석이었다.
 
9시부터 인천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받고 11시경 이륙하여 1시간 30분 정도 비행하여 대련공항에 도착하였다. 우리를 안내할 30대 후반의 차진우씨가 나와 있었다. 2층 버스에 승차하여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대흑산 아래에 있는 광장에 도착하여 비포장도로를 따라 오르기 시작하였다. 비사성(卑沙城)으로 가는 것 같았다.
 
대흑산 풍경지역을 소개하는 간판이 나타났다. 대흑산은 대련시에서 25km 거리이고 주봉은 663.1m로 산의 색깔이 검다고 해서 이름이 ‘대흑산’이라고 하였다. 북으로 장백산과 천산(千山)이 있고 남쪽의 황해와 발해에 연하는 요동반도의 요충지로 대련의 관문인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였다. 대흑산의 자연 풍경도 대단하여 옛사람들은 요동의 절승지라고 했다.
 
100여 미터 올라가니 ‘대련당왕궁(大連唐王宮)’이라는 정문이 나오고 삼관전(三官殿)이 나타났다. 이층 기와지붕의 제법 웅장한 사찰 형식의 건축이었다. 삼관전의 안내문에는 삼관의 대제(大帝)인 천관(天官), 지관(地官), 수관(水官)의 대제(大帝)를 삼원절(三元節 : 1.15, 7.15, 10.15)에 제사지내는 사당이었다.
 
이곳은 도교(道敎)풍의 사찰이었다. 또한 ‘대당의 왕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곳까지 당의 태종 이세민이 대흑산까지 올랐다는 조작된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중국의 또 다른 형태의 ‘동북공정’을 일삼는 현장에 왔던 것이다. 중국은 문헌 뿐만 아니라 대형 건축물 및 성곽을 지어 놓고 과거 중국 왕조시기의 유적이라고 우기는 형태를 종종 보았다.
 
중국은 2002년 ‘동북공정’의 추진을 공식화하고 나서 ‘간도지역’ 관련된 역사 및 한중영토 분쟁에 관련된 엉터리 서적과 논문이 수 천편이 양산되곤 하였다. 그들이 추진했던 ‘만리장성’ 연장론에 이어 고구려의 ‘박작성’을 허물고 ‘호산장성’이라는 가짜 ‘만리장성의 동단’이라고 우기는 궁극적인 목적은 ‘현재의 시각이 아닌 미래 후세의 시각을 위한 전략’의 하나로 추진하는 것이었다. 과거 중국 왕조는 문헌을 통해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인 ‘조공체제’를 자신들이 유리한 형태로 해석하고 변조시켰으며 역사서(歷史書)를 왜곡시켜 남겼다.
 
답사단은 비사성의 정문을 지나 점정대와 조양사(朝陽寺), 석고사(石鼓寺), 관음각(觀音閣) 등을 둘러보고 광장으로 하산하여 승차했다. 다음 일정은 의무려산(醫巫閭山)이다. 고속도로를 달려 개주, 영구 등의 도시와 요하를 지나쳤다. 북진(北鎭)이라는 도시를 지나 ‘백루농가원(白樓農家院)에서 점심을 먹었다. 곧 의무려산 입구에 주차하여 등산을 하기 시작하였다. 의무려산은 중국 12 명산 중의 하나로서, 과거 유주의 진산이었다. 인산 산맥의 지맥의 하나이며 미산(微山), 육산(六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최고봉인 망해봉(望海峰)은 866,6m이며, 영험한 산으로 알려져서 청나라 강회제, 건륭제 등이 이곳에 제사를 지내고 유람했다고 했다.
 
의무려산(醫巫閭山)의 입구에서 보는 산의 전경도 보기 좋았다. 뒤의 바위산이 대부분인 의무려산(醫巫閭山)의 배경은 아름다웠다. 분수대가 나타나고 의무려산(醫巫閭山)이라고 쓴 5m 가랑 높이의 비석도 보였다. 사신(四神)상도 조각해놓았다. 산은 크게 높지나 않지만 높고 낮은 산행로가 아기자기한 멋이 있었다. 옥천사(玉泉寺), 대각(大閣), 대관음각(大觀音閣), 호선당(胡仙堂), 문수원(文殊院) 등이 유명하였다. 모두들 조망이 좋은 명소마다 올라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나 역시 명소마다 많은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 부분 내려오는 길에 폭포물이 떨어지는 곳의 풍광도 절벽 바위와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웠다.
 
의무려산(醫巫閭山)과 우리 고대사와 관계에 여러 가지설이 있다. 고구려의 초기 도읍지를 의무려산 부근으로 비정하여 흘승골성과 졸본천도 의무려산 부근이라는 것이다. 이는 삼국유사의 “卒本州 在遼東界”라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주몽이 세운 졸본성이 요하 서쪽과 대릉하 동쪽에 위치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김모 교수는 우리 민족의 진정한 주산은 백두산이 아니라 의무려산이라고 주장했다. 세상에서 상처받은 영혼을 크게 치료하는 산은 의무려산인데 이것이 고조선의 주산이었다는 것이다. 의무려산은 흰 바위가 많아 백악산으로 부르기도 하였으며, 조선의 허목, 홍대용, 장지연 등이 북장영토의 주산으로 의무려산으로 보았다. 김 교수는 의무려산이 고조선의 활동무대로 삼는 중심축이라고 설명했다.
 
여하튼 고구려의 졸본성의 위치의 환인지역론에 대한 반론이다.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설의 허구라는 주장이 묵시적인 근거가 되고 있기에 초기 고구려 수도의 변천과정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답사단은 조양으로 향했다. 부신(阜新) 휴게소에 들렸으며, 오후 4시경에 조양 북탑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북탑 일대의 골동품 상가를 지났다. 거리 양편에 골동품을 진열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북탑에 도착하여 중앙 부분에 부처상을 보기 위해 좁은 통로를 지나서 내부의 불상과 외부의 조각을 볼 수 있었다. 또한 300m 거리에 있는 크기도 거대한 남탑도 구경하였다. 높이 42.6m, 13층 전탑으로 1076년 遼시기에 건축되었다. 본래 동탑이 있었지만 무너졌다고 하였다. 오후 5시에 북탑 박물관에 들어갔다. 특별한 것 보다는 서기 3세기 무렵 이곳 조양으로 중심으로 흥기했던 선비족 모용 씨의 역사인 전연(前燕) 역사를 소개하고 있었다.
 
조양(朝陽)은 삼연(三燕 : 前燕, 後燕, 北燕)의 도시였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다. 조양이 삼연의 도읍지가 아니며, 동북공정 이후 나온 주장이라는 것이다. 조양의 명칭은 청 건륭제 1778년에 시작되었다. 이전에 이 지역은 북부여의 땅이었지만 고구려가 계승하였다. 모용외는 용성으로 개칭하였으며, 광개토대왕이 이 용성을 점령한 역사가 있다. 고구려가 망한 후 영주(營州)로 바뀌었다. 이 조양(朝陽)에 대한 지난 역사에 대하여 연구를 해야겠다. 오후 6시경에 ‘가가락대주점’에서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다. 내일은 홍산 지역의 우하량 답사가 기대된다.
【작성】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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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