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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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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조선(箕子朝鮮) 단군 신화(檀君神話) 동북공정(東北工程)
【역사】
(2021.04.22. 14:11) 
◈ 중국학계의 기자조선의 진실에 대한 왜곡 실상 (Ⅱ)
[스카이데일리 연재] 중국학계의 기자(箕子) 관련 주요 단행본 9편 분석
목   차
[숨기기]
(전편에 이어)
 
 

1. 6. 묘 위(苗 威)

『古朝鮮硏究』, 香港亞洲出版社, 2006.
 
이 저서는 제4장을 ‘기자의 나라(箕子之國)’라는 제목 하에 한반도의 첫 고대국가로서 ‘기자조선’을 다루면서 단군신화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있다. 은·주 교체기의 기자의 성격과 건립한 국가인 진국(辰國)의 실체와 海路를 통해 한반도에 이동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진국(辰國) 집단은 문명 수준이 높은 대동강 유역으로 이주하여 양이(良夷) 집단과 융합하여 국호를 ‘조선’으로 바꾼다고 하였다.
 
조선(朝鮮) 명칭의 네 가지 기원에 대한 설명과 기자조선의 위치와 강역에 관한 학계의 주장인, 요서설, 요동설, 이동설, 평양설을 검토하여, 현재 중국, 일본 학자들이 주장하는 ‘평양설’에 동의하고 있다. 또한 강역의 핵심부분인 ‘만번한’, ‘패수’등의 위치 비정을 검토하여 기자조선의 강역은 평양일대의 낙랑군 영역과 맞먹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기자조선의 주변국과 중원왕조와의 관계를 고찰하여, 산동지역의 제(齊)와는 『관자』의 문피(文皮) 및 신선(神仙) 관련 기사를 근거하여 경제적 왕래의 가능성과 제(齊)의 신선방술 문화가 한반도에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전국시대 말기의 연(燕)과의 충돌로 기자조선이 연의 속국으로 몰락하였지만, 중원문화를 더 활발하게 수용하였다. 동호 및 요동의 맥인(貊人)과의 관계에선, 하가점상층문화의 주인공인 동호의 ‘비파형동검’의 문화가 한반도에 영향을 주었다.
 
은(殷)과 동이(東夷) 유민의 이주로 한반도의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고인돌’의 기원에 대해 남방·북방·서방기원설 및 자생설을 소개하고, 남방 도작문화권의 문화가 벼 재배기술의 전파와 함께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였다. 이어 대동강유역의 농경·목축업·어렵·토기·석기·청동기 제조 등과 관련된 고고학 자료를 소개하면서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는 중국의 동북지역으로부터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자조선의 풍속과 문화에 대해서는, 동이족의 태양숭배 관념을 언급하면서 기자의 은 유민도 동이족의 한 갈래로서 태양숭배 문화를 가졌으며, 이러한 문화가 ‘조선(朝鮮)이라는 국호에 반영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토지숭배·신선숭배 관념도 중국문화의 영향이 크다고 하였다.
 
이 저서는 중국에서 출판된 최초의 ‘고조선’ 종합연구서이나 고조선을 중국인이 건립한 고대국가이며, 단군·기자·위만조선의 전개과정을 부정하였다. 단군조선을 후대에 창조된 역사로 간주하여, 한반도의 첫 고대국가는 기자조선이라는 등 정치적인 요소의 기술이 엿보였다. 이와 같은 소수지배자의 정체성을 근거로 해당 역사의 귀속문제를 논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2. 7. 이덕산(李德山) · 난범(欒凡)

『中國東北古民族發達史』, 중국사회과학출판사, 2003.
 
기족(箕族)의 기록이 갑골문에 확인되고, 요서지역의 기기(箕器)는 은말주초의 동이족 계열의 기족(箕族)이 소유한 것으로 산동지역에서 출토된 기기(箕器)를 근거로 제시하였다. 기족(箕族)의 기원지는 왕헌단(王獻唐)의 ‘산동설’을 취해 산동반도의 서부지역이며, 기자가 은의 왕족임을 강조하였다. 초기 중심지는 대릉하 유역이며, 초기에 연(燕)에 예속되었다가 남쪽으로 이동하여 고조선족과 융합하여 왕실과 귀족지배층을 형성하였다고 하였다.
 
고조선(古朝鮮)의 명칭은 현재의 조선과 구별하기 위함이며, 고조선은 중국 고대의 소수민족임을 주장하였다. 고조선을 기자가 건국한 고대국가설을 비판하고, 기자의 앞서 고조선족 집단이 존재하였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기자부정론’을 비판하면서 은(殷)멸망 후의 ‘기자동천’의 실재를 논증하고 있다. 요서지역에서 고조선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치국대법(治國大法)’인 ‘八條之敎’에 대한 소개와 기자의 문화 전파로 인해 고조선은 ‘중화(中華)’를 표방하였으며, 연과 조선의 경계인 ‘만번한(滿番汗)’의 위치는 압록강 하류일대로 보았다. 기자조선은 중앙정부의 번속으로 존재하였으며, 한 무제의 정벌은 침략이 아닌 내정이었음을 역설하였다. 위만조선이 멸망한 후 한족과 고구리족의 주민들이 융합되어 중화민족의 일부가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 저서는 동이집단의 한 갈래인 ‘고조선족’에게 중화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하면서 기족(箕族)을 동북지역 토착집단이 아닌 중국의 이주민 집단으로 보고, 따라서 기자조선을 포함한 고조선의 역사는 중화민족의 역사라는 것이다.
 
 

3. 8. 조해군(趙海軍)

「古今文獻之箕子記載與硏究綜述」, 동북사범대학 석사논문, 2006.
 
이 논문은 기자관련 쟁점이 되는 문제와 관련된 고대 문헌 기록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였다. 3장에선 기자동천의 문제점인 시간, 장소, 원인 등의 쟁점사항을 다루었다. 기자는 멸망 전에 조선에 이르렀으며, 동천의 원인으로 주(周)에 칭신하지 않기 위함이라는 주장과 은(殷)의 명맥을 잇기 위함이라는 주장 및 자신의 주장을 실천하기 위함이라는 세 가지 원인을 살폈다. 4장에선 중국 동북지역을 문명화시킨 기자의 선진문화의 전파자로서의 공적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이덕산(李德山)의 제자로 기자로 주제로 다룬 중국내 첫 학위 논문이며, 현재 중국학계의 여러 쟁점사항들을 고문헌과 함께 검토한 것이다.
 
 

4. 9. 장벽파(張碧波)

연구책임자, 『기자여기자조선(箕子與箕子朝鮮』, 2002, 수행기관:흑룡강성 사회과학원. <동북공정의 과제로 선정됨>
 
1) 중국 연구경향 :동북사 연구과제로 급부상, 東遷 원인, 동천경로, 기자조선 초기 위치 및 강역 연구, 요서에 출토된 箕器 사용 집단의 성격, 고조선문화 연원 연구, 홍범의 문화적 의미, 기자가 건국한 동방의 군자국 연구
2) 국외 연구경향 :일본과 남북한 기자조선의 허구성 주장, 기자와 기자조선은 漢代에 날조, 『삼국유사』의 신화를 근거로 단군역사창조
3) 문제의식과 연구방향 : (1)조선반도는 中華 十日神話 형성지역, 高陽문화와 殷商문 화의 영향을 입증, (2)古辰國은 殷의 屬地, 이는 기자동천의 원인 입증. (3)갑골문, 先秦문헌에서 기자실재, (4)은(殷) 멸망 전후의 시기 기자의 조선 이주 맥락과 ‘홍 범’을 통한 기자의 사상과 동방 군주국 형성 배경 규명. (5)기자조선 후기의 역사전개. 기자조선과 연(燕), 진(秦)과의 관계. (6)위씨조선의 귀속문제와 한사군 문제. (7)기자조선의 쟁점 문제. (8)기자조선의 역사적 지위 - 중국 동북사의 시작.
4) 논리 전개와 방법 : 中華史와 東北史의 틀에서 기자와 기자조선 연구 접근.
5) 학술적 의의 : 기자조선은 商周史와 中國東北史에서 중요 의미 지님, 기자조선은 은(殷)의 유민이 조선반도에 건립한 지방정권, 周에 신속하였고 후대에는 周·秦의 해외 속국, 위씨조선은 ‘外臣’의 성격, 한 무제시기는 군현설치로 직할지역, 한반도 북부 동부지역의 역사는 기자조선-위씨조선-고구려사-발해사로 전개됨. 동북사의 시작으로서 기자조선 연구의 중요성
6) 연구 구성 : (1)조선반도의 고대문명, (2)고진국(古辰國), (3)한(韓)과고진국(古辰國)-단군조선 검토추가, (4)기자사적, (5)은 멸망 전후의 기자의 행적, (6)기자조선 말기의 역사 전개, (7)위씨조선 문화 고찰, (8)기자조선 연구 쟁점
 
이상의 중국학계가 발행한 8권의 단행본과 1부의 ‘동북공정의 과제’를 분석해본 결과 중국학계가 기자 및 기자조선의 역사를 왜곡시킨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진포청(陳蒲淸)의 『기자평전(箕子評傳)』을 제외하고는 남북한이 부정하는 ‘기자조선’의 실체를 중국지방정권으로 인정하고 있다(장벽파). 기자조선은 은(殷)의 족속이고 주(周)의 책봉을 받아 화하(華夏)문화를 수용하였기에 중국사의 범주다(장벽파).
 
둘째, 고조선을 중국 고대의 소수민족(이덕산·난범)으로 단정하거나, 중국인이 건립한 고대 국가였다(묘위). 셋째, 기자조선의 문화는 한강 이북에 건립된 중화문명의 한 갈래이며 고조선문화의 시초인 동시에 동북 고대강역사의 시작을 의미한다(장벽파). 수·당의 고구려 침공의 정당성의 근거인 ‘고중국지(古中國地)’를 주장하면서 기자조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였다(황빈·유후생). 漢과 위만조선의 충돌은 중원왕조와 지방정권의 충돌이다(장벽파)
 
셋째, 기자조선의 동천문제는 요서설(장박천)과 평양설(장벽파)로 나누어지나, 장박천도 요서에서 요동으로 이동하였다가 연의 세력에 밀려 평양으로 옮겼다고 주장한다. 이는 중국문명의 발원지의 하나이자 은(殷)문화의 발원지인 요서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넷째, 고조선의 특징 문화인 ‘비파형동검’과 ‘고인돌’문화의 실체를 부정하여, 은(殷)문화의 영향이나 북방초원지대 문화의 영향(장벽파)으로 보거나 동북청동기문화는 조선후국의 문화로 간주하였다(장박천). 심지어 청동단검의 기원은 산융-동호의 가능성도 크다.(장벽파)
 
다섯째, 기자를 중국문화사상 제1인자로서 중원문화 전파의 공적을 찬양하였으며(황빈·유후생), 기자의 팔조금범 시행으로 예맥지역이 동북지역의 문명지로 도약하였으며(장박천), 홍범을 지은 기자는 조선반도에 특유의 군자국 문화를 창조하였다(장벽파).
 
여섯째, 연과 위만조선의 경계인 ‘만번한(滿番汗)’의 위치를 압록강 하류일대로 보았다(이덕산·난범). 또한 만번한을 청천강으로, 패수(浿水)를 대동강으로 비정하였다(장벽파)
 
일곱째, 한반도의 모든 역사는 한국(조선)의 역사가 아닌 중국사의 일부였다(장벽파).
특히 장벽파는 ‘기자조선’ 연구결과 얻은 결론은 “한반도의 모든 역사는 한국의 역사가 아니며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였으며, 이덕산·난범은 고조선을 중국 고대의 소수민족으로 단정하였다. 서기전 24세기 전후 만주와 황하일대의 중원지역은 고조선(단군조선)만이 최대 강국이었으며, 한족(漢族) 국가는 나타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이와 같이 중국학계는 있지도 않은 국가마저 상상하여 역사를 조작하려고 한다. 또한 허구의 기자조선을 왜곡화시켜 동북아의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단군조선)”을 부정하려는 중국학계의 움직임이 “고조선 공정”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2002년에서 시작하여 2008년까지 강행하였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중원지역과 만주일대에 건설한 韓民族의 유구한 역사와 영토를 빼앗으려는 저들의 검은 흉계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심지어 만주지역의 역사와 영토는 물론 한국의 북부지역 조차 중국화 하겠다는 영토야욕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장기적인 대응책이 요구된다.
기자 조선(箕子朝鮮) 단군 신화(檀君神話) 동북공정(東北工程)
【역사】 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 중국학계의 ‘기자조선론’의 특징과 추진 배경 이론 분석
• 중국학계의 기자조선의 진실에 대한 왜곡 실상 (Ⅱ)
• 중국학계의 기자조선의 진실에 대한 왜곡 실상(I)
【작성】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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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