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에 동학 교도들이, 억울하게 처형당한 교조
최제우의 죄명을 벗겨 줄 것을 정부에 요구한 운동.
2세 교조
최시형의 노력으로 세력이 커진 동학 교도들이
1892년(고종 29년)에 삼례에 모여 정부에 진정한 일이 계기가 되었다. 이어
1893년에는 진정서를 정부에 보내고 박광세 등 40명이 서울에 올라가 신원 운동을 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 때부터 동학 교도들의 주장에 외국인 배척의 내용이 들어가게 되고, 같은 해 4월의 보은 집회 때에는 탐관 오리의 숙청과 외국 세력의 배척을 주장함으로써 정치 운동화하였다.